어제와 비슷하게, 예쁜 헛소리에 대한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이 사람들, 말을 참 점잖고 멋지게 합니다. ‘관용과 사랑을 베풀어서 우리 모두 더 나은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 ‘이렇게 갈등을 일으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남성과 여성 똑같이 책임이 있다’, ‘그래, 남녀 둘 다 인정하고 갈등을 더 이상 일으키지 말자’, ‘여성은 원래 평화로운 존재다’, ‘이렇게 화를 낼 일이 아니라 이왕이면 남녀가 서로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페미니즘이라는 극단적인 말 대신 양성평등으로’. 책임도 좀 지는 것 같고, 어쨌거나 평등으로 가자는 말이고, 귀를 거스르지도 않고, 이성적이고 말씨마저 예쁩니다. 이중 일부는 아까 말한 극우단체 회원이 강남역에 써 들고 온 피켓 문구였는데, 기존의 이미지와는 달리 점잖기도 하고 민주주의의 본보기처럼 느껴집니다.
이들은 참 점잖고 느긋합니다.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친 쪽’이 분개하면, 타이르기도 합니다.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중용을 지키며, 긍정적이고 사회에 보탬이 되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비슷한 예는 더 있습니다. 외모지상주의가 심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진단하겠다면서 외모지상주의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왕이면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게 건강에도 좋지, 학교폭력 당사자에게 아무리 그래도 친구인데 친하게 지내는 게 좋지, 청년 실업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학생이 무급 인턴으로라도 이력서를 한 줄 채워보겠다는데 굳이 거기에다 한마디 하기를, 그래도 다 네 실력을 쌓는 거고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니 좋지, 가사 분담에 무책임했으면서 내 덕에 요리실력이 늘게 된 거니까 고맙게 생각해. 간단히 말하자면, 눈치가 없는 겁니다. 눈치 없이 혼자 느긋한 이유는 달리 없습니다. 느긋해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느긋한 채로 살 수 있는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이 정해져 있어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는, 본인이 팔자가 좋다는 걸 드러내지 않는 게 예의입니다.“
느긋한 이유는 느긋해도 살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참 와닿는다. 어떤 점에서 나도 느긋하게 살아가는 부분이 있겠지만 이런 자기 검열 또한 지나치게 하지는 않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