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지음, 황근하 옮김 / 멜라이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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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케이크? 특별한 슬픔? 언뜻 어울리지 않는 단어의 조합에서 호기심을 느끼고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의 화자는 어린 소녀다. 이 소녀는 평범하다. '특별한 맛이 나는 레몬 케이크'를 먹게 되기 전까지는 그랬다.

로즈는 엄마가 만든 기가 막히게 맛있어 보이는 레몬 케이크를 먹는다. 뭔가 이상하다. 로즈는 '무언가 부족한 맛'을 느낀다. 엄마는 레시피대로 완벽하게 제조했다고, 오빠와 아빠는 더할 나위 없이 맛있다며 먹는데 로즈는 여전히 무언가 이상하다. 로즈 스스로도 혼란스럽다. '공허한 맛'이라고? 그런 맛이 있나? 로즈는 일단 한숨 자기로 한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도 여전히 로즈는 음식에서 특정지을 수 없는 맛을 느낀다. 그러다 로즈는 깨닫는다. 이것은 '맛'이 아니라 이 음식을 만든 이의 '감정'이라는 것을. 그렇게 로즈는 자신이 음식을 만든 이의 감정을 맛으로써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적당히 무덤덤한 가족, 적당히 거리를 지키는 가족, 그 속의 로즈. 나와는 전혀 다르면서도 또 가끔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감정 과잉(이라고 생각했던 상태)이 가장 큰 단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커서 보니 공감 지능이 높은 것이었다. 지금은 의식적으로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것을 차단기 내리듯 차단하고 있지만 어릴 때는 많이 버거웠다.

하물며 음식을 먹으면 자동으로 만든 사람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니, 상상도 못할 괴로움이다. 아직 어린 로즈에게는 더더욱. 부모와 형제에게 어리광만 부려도 좋을 나이에 엄마의 공허를 느끼게 되는 건 슬픈 일이다.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아도 그렇다. 아직 어리고 생각이 미성숙하기 때문에(사실 또래다운 것일 뿐 성숙/미성숙이라고 말하기 조금 그렇지만) 엄마가 느끼는 공허감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그 불편함을 얼른 해소하고 싶어 떼를 쓰지 않을까? 어떤 감정은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특히 스스로가 갈무리해야만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모를 테니 말이다.

책을 읽으며 로즈가 성장하는 것이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다. 너무 많은 감정을 느끼는 게 버거워 보일 때면 안아주고 싶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소설 초반의 로즈와 오빠의 시시껄렁한 대화가 그리워 다시 펼쳐 보았다. 추천사를 쓴 사람도 이 부분이 좋았다고 했는데, 정작 초반부를 읽을 대는 무심히 지나쳤다가 다시 읽으니 참 좋았다. 뭐랄까, 무탈함과 일상적인 것에서 오는 평온함? 마지막으로 이 도서를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굉장히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적절한 화자를 사용한 소설이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영미소설 #레몬케이크의특별한슬픔 #에이미벤더 #멜라이트 #성장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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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에이미 벤더 지음, 황근하 옮김 / 멜라이트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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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기적인 아이디어로, 적절한 화자를 사용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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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다는 착각 - 왜 여성의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는가?
메리 앤 시그하트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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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힙한 표지를 본 순간 끌릴 수밖에 없었던 책.

일단 나는 아닌데 왜들 '이제는 평등한 사회'라고 하는지 궁금하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는 '권위 격차'인데, 그 권위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회적 권위 말고도 일상적인 부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실험과 자료를 토대로 저자는 우리가 단순히 성별 때문에 서로 다른 역할을 하거나 취급을 받거나 응답을 받는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아마,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한다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그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남성과 여성 간의 올바른 관계는 상대 여성에게 총리가 될 만한 능력이 있을 때조차 다정한 삼촌과 예뻐하는 조카의 관계인 거죠. 여성을 실력으로 그 회의에 정당하게 참석한 동등한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위의 말을 한 이는 무려 한 나라의 '총리'다. 그럼에도 그는 '다정한 삼촌'처럼 굴려고 하는 남성들에게 무례하고 상냥한(?) 말을 줄곧 들었다. 특히, '다정한 삼촌과 예뻐하는 조카의 관계'라는 말에 여러 번 밑줄을 긋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이 되었다. 30년 가량 살아오면서 내가 남성인 누군가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때면 매번 예쁨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 관계를 정확히 표현한 문장이라서 무심코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장광설을 늘어놓는다고 느꼈'던 그 감각을 나 또한 깊이 이해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도 "에이, 진짜 이렇게까지 말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어?"라고 말할 때-아직 인류애가 남아 있었을 때-가 있었는데 몇 번의 입씨름 뒤 그 멍청이가 생각보다 세상에 많이 널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남성과 여성이 섞여 있던 모임에서 어떠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기로 하였을 때-특히 강제성이 부여되었을 때- 여성혐오적인 시선의 작업물에 대해 또박또박 피드백을 하면 대개 '감정적으로 말하지 말라'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그 이야기를 하는 내내 나는 일정한 톤으로, 말이 그다지 빨라지지도 않은 채로, 비속어나 경멸하는 표현을 쓰지 않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타인(심지어 질문자가)에 의해 계속해서 말이 끊기고, '감정적'이라는 피드백을 여러 번 들어서 어안이 벙벙했는데, 그것이야말로 권위 격차였다. 이른바 예쁘게 말하면 들어는 주겠다는 식의 '남성 페미'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다. (그러므로 남성들이 스스로를 페미라고 일컫는 행위는 아주 주의해야 한다. 자기도 모르게 권위를 오남용할 수 있기 때문)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도 '내가 예민해서 그렇게 받아들이는 건가?' 혹은 '이런 것에 기분나쁜 게 이상한 건가?' 하는 등의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하던 말을 난데없이 자르고 들어온다거나 감정적이라며 무시하거나 전문성을 의심하는 건 전부(전부가 아니라면 99.9999999% 정도는) 권위 격차 때문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정말 간단하고 진부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다정한 삼촌'이나 '예쁨받는 조카'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관계맺기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회학 #평등하다는착각 #메리앤시그하트 #앵글북스 #권위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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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다는 착각 - 왜 여성의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는가?
메리 앤 시그하트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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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고 진부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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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 인 스펙트럼 안전가옥 FIC-PICK 5
배예람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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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의 옴니버스 픽션 시리즈인 FIC-PICK의 다섯 번째 책이라고 한다. 앤솔로지 시리즈인 줄 알았다가, 후기를 쓰려고 검색해보고서야 알았다. 안전가옥은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출판사 중 하나인데, 여러 모로 다양한 시도를 해 매번 신선한 글을 읽을 수 있다. 이번 책은 다름 아닌 여성 서사 다섯 편을 모은 단편집이라 아니 읽을 수 없었다.

<수직의 사랑>, <여우 구슬은 없어>, <하나뿐인 춤>, <누가 진짜 언니일까?>, <협탐:좁은 길의 꽃>이라는 총 다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으며 장르는 스릴러/로맨스/무협/판타지 등을 총망라했다. 처음 책을 받아보고 제법 무게감이 있어 당황했는데 그만큼 각 단편이 충실하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을 각자 가지고 있어서 알차게 차려진 밥상을 대접받는 기분이었다. 『내가 만든 여자들』, 『칵테일, 러브, 좀비』, 『종이 동물원』 이후로 단편집에 조금씩 흥미를 가지고 있는데(떠오르는 단편집이 많아진 걸 보니 이제는 좋아한다고 해야 할 것 같지만) 『우먼 인 스펙트럼』도 좋았다.

<수직의 사랑>, <누가 진짜 언니일까?>, <협탐:좁은 길의 꽃> 이 세 편이 인상 깊었는데 <수직의 사랑>은 그 세계관이 너무나 탄탄하고 참신해서, 계급을 건물로 나타내고 있을 법한 미래상을 그렸다는 사실이 확 와 닿았다. 정말 이런 미래가 도래하지 않을까? 두려우면서도 흥미로웠다.




<누가 진짜 언니일까?>는 탄탄한 묘사 때문에 완전히 푹 빠져들어서 봤다. 때마침 Melanie martinez의 Tag, you're it이라는 노래를 듣고 있었어서 더욱 몰입했던 것 같으니 혹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누가 진짜 언니일까?> 부분을 읽을 때는 한 번 들어주길.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서스펜스+스릴러+여성 연대+여성 빌런 전부 버무려진 종합 선물 세트였다고나 할까? 자칫 '여적여 구도'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내가 그랬음) 중요한 역할을 전부 여성이 한다는 사실에 집중하자. 사실 <누가 진짜 언니일까?>를 다 읽고 너무 좋아서 마지막 부분에 밑줄을 긋고 사진을 찍었는데 이 자체로 스포 같기도 하지만(혹시나 해서 이름만 가렸다)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주인공이 느끼는 불안이 정말 실체가 없는 건지 등의 심리 묘사와 결말까지 치닫는 빌드업이 탄탄해서 실제로 읽어봐야 참맛을 알 것 같다. 그리고 이 단편에서는 빌런이 누구인지 처음부터 느낌이 오고, 그 상태에서 조마조마하게 줄타기를 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마지막 <협탐:좁은 길의 꽃>은 내가 단 한번도 흥미를 느껴본 적 없는 장르다. 바로... 무협! 웬만한 소설 장르는 다 읽어 봤는데 무협 소설 만큼은 SF 소설보다도 더 읽기가 힘들고 고단해 한 번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이제 마지막 단편이네, 하고 펼쳤다가 어? 이거 무협이었어? 하고 당황했는데 낯선 한자어가 많이 나와 그렇지 무척 재미있었다. 게다가 사실적이다. 어우... 어떻게 이런 캐릭터를 쓰셨는지 모르겠으나 캐릭터들이 너무, 뭐랄까, 정확하다?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내가 언급하지 않은 두 개의 단편 또한 훌륭하다. 일단, 단편인데도 읽는 이로 하여금 완벽하게 그 세계관을 이해하게 하고 사건을 일으켰다가 결론을 지었다는 것부터가 수작이다. 여성 서사를 계속 쓰고 싶고 읽고 싶은 나에게도 여성 서사가 얼마나 다양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앞으로 나오게 될 다양한 여성 서사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한국소설 #단편집 #우먼인스펙트럼 #안전가옥 #장르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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