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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하다는 착각 - 왜 여성의 말에는 권위가 실리지 않는가?
메리 앤 시그하트 지음, 김진주 옮김 / 앵글북스 / 2023년 3월
평점 :

제목과 힙한 표지를 본 순간 끌릴 수밖에 없었던 책.
일단 나는 아닌데 왜들 '이제는 평등한 사회'라고 하는지 궁금하던 차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요 주제는 '권위 격차'인데, 그 권위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사회적 권위 말고도 일상적인 부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수많은 실험과 자료를 토대로 저자는 우리가 단순히 성별 때문에 서로 다른 역할을 하거나 취급을 받거나 응답을 받는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아마, 여성이라는 성별을 가지고 사회생활을 한다면 누구나 겪어보았을 그것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남성과 여성 간의 올바른 관계는 상대 여성에게 총리가 될 만한 능력이 있을 때조차 다정한 삼촌과 예뻐하는 조카의 관계인 거죠. 여성을 실력으로 그 회의에 정당하게 참석한 동등한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위의 말을 한 이는 무려 한 나라의 '총리'다. 그럼에도 그는 '다정한 삼촌'처럼 굴려고 하는 남성들에게 무례하고 상냥한(?) 말을 줄곧 들었다. 특히, '다정한 삼촌과 예뻐하는 조카의 관계'라는 말에 여러 번 밑줄을 긋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감이 되었다. 30년 가량 살아오면서 내가 남성인 누군가와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때면 매번 예쁨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는데, 그 관계를 정확히 표현한 문장이라서 무심코 허를 찔린 기분이었다.

'장광설을 늘어놓는다고 느꼈'던 그 감각을 나 또한 깊이 이해한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도 "에이, 진짜 이렇게까지 말하는 멍청이가 어디 있어?"라고 말할 때-아직 인류애가 남아 있었을 때-가 있었는데 몇 번의 입씨름 뒤 그 멍청이가 생각보다 세상에 많이 널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남성과 여성이 섞여 있던 모임에서 어떠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기로 하였을 때-특히 강제성이 부여되었을 때- 여성혐오적인 시선의 작업물에 대해 또박또박 피드백을 하면 대개 '감정적으로 말하지 말라'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그 이야기를 하는 내내 나는 일정한 톤으로, 말이 그다지 빨라지지도 않은 채로, 비속어나 경멸하는 표현을 쓰지 않고,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타인(심지어 질문자가)에 의해 계속해서 말이 끊기고, '감정적'이라는 피드백을 여러 번 들어서 어안이 벙벙했는데, 그것이야말로 권위 격차였다. 이른바 예쁘게 말하면 들어는 주겠다는 식의 '남성 페미'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다. (그러므로 남성들이 스스로를 페미라고 일컫는 행위는 아주 주의해야 한다. 자기도 모르게 권위를 오남용할 수 있기 때문)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도 '내가 예민해서 그렇게 받아들이는 건가?' 혹은 '이런 것에 기분나쁜 게 이상한 건가?' 하는 등의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내가 하던 말을 난데없이 자르고 들어온다거나 감정적이라며 무시하거나 전문성을 의심하는 건 전부(전부가 아니라면 99.9999999% 정도는) 권위 격차 때문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정말 간단하고 진부하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만 '다정한 삼촌'이나 '예쁨받는 조카'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관계맺기를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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