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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의 영역 ㅣ 새소설 10
이수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2/0302/pimg_7977421073327535.jpg)
다들 미신을 믿는지 물어보고 싶다. 고대의 샤머니즘까지 갈 필요도 없이 재미로 가끔 타로카드, 사주 등을 보는지? 나의 대답은 '아주 그렇다'로 치우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연초에는 핸드폰 어플을 사용해 유료로 신년운세를 점치고(대개 나쁜 건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되뇌인다. 그래서 사주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 전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타로카드를 봐주는 어플로 매일 '투시 타로', '짝사랑 타로' 등을 봤다. 기분 탓인지 한 걸음 다가간 날은 좋은 카드가 나오고 세 걸음 뒷걸음질친 날은 나쁜 카드가 나왔다. 당연히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짝사랑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의 반절 정도는 타로카드로 점쳐보기였다. 그래서 짝사랑에 관련된 시를 쓸 때도 타로카드 이야기가 들어간 적이 있다. 적당히 찌질하고 적당히 창피한, 내밀한 소재였다만.
이 책의 주인공 이단은 마녀의 딸이다. 단의 모친 이연은 타로카드로 생계를 유지하는 마녀다. 이렇게 설명하면 엥? 타로카드점이나 봐주는 마녀라고? 라고 할 테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마녀가 자신의 힘을 부릴 일은 잘 없다는 걸 설명하고 싶다. '이연타로'의 적중률이 높아 알음알음 장사가 제법 된다는 것 정도면 꽤나 영험한 마녀 아닐까? 타로카드를 보러 찾아오는 사람을 시커라고 하는데, 이연은 단에게 어디까지나 점괘는 점괘일 뿐 그것을 받아들이고 변화시키는 건 시커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이연과 이단은 모녀지만 마치 시커와 리더의 사이에 가까운, 나이차이가 조금 나는 동거인 정도로 보인다. 그렇게 애틋하지도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지도 않는다. 다만 이연은 이단을 자신이 세운 작은 울타리 안에서 안전할 수 있게 보듬는다.
이 책은 크게 보면 3세대 마녀의 기록이다. 이연을 거둔 키르케, 최연소 동양 마녀가 된 이연, 마녀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이단. 오롯한 여성 3대의 이야기를 본 적이 없어서 낯설고 흥미로웠다. 단이 궁금해하자 친부인 에이단의 존재를 알려주고 주기적으로 만나게 해주기는 하지만 그저 그뿐이다. 에이단조차도 그다지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들이밀지 않았다. 그러나 이연과 이단의 인생이 급물살을 타게 되는 건 단연 에이단에게 벌어진 불행이다. 이단이 에이단의 불행 타령을 멎게 해주고자 준비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에이단은 행운의 사나이가 되지만, 그것도 잠시 에이단은 불행의 소용돌이를 결국 피하지 못했다. 이연과 이단은 이연의 고향인 미국에 와 지내면서 각자의 방황을 한다. 이연은 방에 틀어박혀 '마녀의 서'를 집필하고, 이단은 자취를 시작하고 대학에 다니며 연인과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책을 덮을 즈음, 두 사람은 저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음을 깨닫게 된다.삶이라는 것이, 혹은 삶의 결말이라는 것이 인간을 어떻게 흔드는지와 그것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에 대하여.
지극히 이국적이라고 생각했던 '마녀'라는 소재가 지극히 일상적으로 다가와 당황스러웠다. 배경이 미국으로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이단이 내 앞에서 지나쳐갈 것만 같고 이연의 옹송그린 채 끄적이는 어깨가 보이는 듯했다. 언제나 삶과 그 너머의 경계에 걸쳐진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준다.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타로카드 어플을 켜고 타로카드를 한 번 보고 싶다. 결과가 어떻든 주눅들지 않을 것이다. 점괘는 점괘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지 거부하는지는 시커의 영역이므로.
본 포스팅은 출판사 자음과모음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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