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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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외로 꼬고 맞은편 자리에 앉아 글을 끄적이다가 창문 밖을 건너다 보며 상념에 빠지는 언니를 만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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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드 오브 퓨처 안전가옥 FIC-PICK 1
윤이나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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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하게 이어져 온 취미답게 책을 고르는 나름의 기준이 있는데(손에 잡히는 대로 읽을 것 같지만 나름 고른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한 카테고리만 치우쳐서 읽지 않는 것이다. 가령 현대 소설을 요즘 자주 읽었다면 다음번에는 필히 에세이나 민음사의 고전 문학 시리즈나 정치학 혹은 인문학 중에서 골라야 한다. 문학의 경우에는 아무리 뒷내용이 궁금하지 않을 정도의 '지구야 미안해'여도(요즘은 성공률이 많이 높아져서 만나기 어렵지만) 끝까지 읽고, 에세이라면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문장을 발견하는 즉시 덮어도 용인한다. 그러나 이런 원칙을 우습게 무시하는 건 대개 어떤 출판사의 팬이 되었을 때 이야기인데, 바로 이 책을 출판한 안전가옥 같은 경우다. 조예은 작가의 <칵테일, 러브, 좀비>라는 다소 괴랄한 제목에 끌려 단편집을 읽게 되었다가 출판사까지 좋아하게 되었다. 이런 것을 '덕통사고'라고 하던데...






안전가옥은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인데, 장르문학이라 함은 역시 SF 소설이 주류인 것 같아 별로 끌리지 않던 나를 홀딱 빠지게 한 건 의외였다.(최근에 읽은 안전가옥 책 중 가장 열광한 것은 <잘 먹고 잘 싸운다, 캡틴 허니 번>인데 아직 서평을 못 씀. 히어로물이다. 재밌겠지?) 왠지 이과적인 사고를 요할 것 같아 SF나 특히 우주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손도 대지 않았는데 안전가옥에서 나왔다고 하면 결국 읽게 된다. 이번 <무드 오브 퓨처>도 아무 생각 없이 읽게 됐는데 다 읽고 나서야 SF+로맨스 단편집인 걸 알았다. 조금 찔려서 고백하자면, 나는 이미 SF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고백했지만 로맨스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니 나에게는 불호+불호의 조합이었던 셈.


다섯 편의 단편에서 가상 현실, AI 등의 소재를 활용해 멀거나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지도 모르는 조각들을 끌어다 보여주었는데 로맨스가 결합되니 인간처럼 따뜻한 피부를 가진 로봇과 대화를 하는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생각 많은 문과 인간답게 4차 산업 혁명이 다가오는 근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이 다소 위로가 됐다. 사랑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 덮어놓고 걱정했던 것처럼 마냥 차갑고 손쓸 수 없이 뒤쳐지는 일은 없을지 모른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느낌이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은 가장 첫번째인 "아날로그 로맨스"였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사람과 번역기에 의지해 연애를 하는 주인공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나에게는 가장 충격적이었다. 정말 이런 미래가 도래하겠구나, 싶으면서 무척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천천히 흘러가는 것의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데 도가 튼 나는 아마도 올리처럼 란토를 거부하지 않을까. 귓속에서 속삭이는 가짜 음성이 아니면 연인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수조차 없는 세상. 연애를 할 일은 없겠지만 친구가 란토를 꽂은 채 내 눈 한 번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대화를 이어간다면 슬플 것 같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는 건 늘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래서인지 다섯 작품 모두 다소 인간미가 거세된 세상에서 사랑이라는 매개를 통해 한 줄기의 빛을 좇는 인물을 보여준다. 각자의 세상을 서술하는 부분에서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끼다 내가 아는 감정이 나오면 숨통이 트였다. 그러니 사랑은 얼마나 위대하고 원대하고 집요한가. 정말이지 지긋지긋하리만큼 순수하고 힘이 센 감정이다.






해당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 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무드오브퓨처 #윤이나 #이윤정 #한송희 #김효인 #오정연

#안전가옥 #장르소설 #SF로맨스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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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드 오브 퓨처 안전가옥 FIC-PICK 1
윤이나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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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의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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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의 영역 새소설 10
이수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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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미신을 믿는지 물어보고 싶다. 고대의 샤머니즘까지 갈 필요도 없이 재미로 가끔 타로카드, 사주 등을 보는지? 나의 대답은 '아주 그렇다'로 치우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연초에는 핸드폰 어플을 사용해 유료로 신년운세를 점치고(대개 나쁜 건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되뇌인다. 그래서 사주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편), 전에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타로카드를 봐주는 어플로 매일 '투시 타로', '짝사랑 타로' 등을 봤다. 기분 탓인지 한 걸음 다가간 날은 좋은 카드가 나오고 세 걸음 뒷걸음질친 날은 나쁜 카드가 나왔다. 당연히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짝사랑을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의 반절 정도는 타로카드로 점쳐보기였다. 그래서 짝사랑에 관련된 시를 쓸 때도 타로카드 이야기가 들어간 적이 있다. 적당히 찌질하고 적당히 창피한, 내밀한 소재였다만.

이 책의 주인공 이단은 마녀의 딸이다. 단의 모친 이연은 타로카드로 생계를 유지하는 마녀다. 이렇게 설명하면 엥? 타로카드점이나 봐주는 마녀라고? 라고 할 테지만,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마녀가 자신의 힘을 부릴 일은 잘 없다는 걸 설명하고 싶다. '이연타로'의 적중률이 높아 알음알음 장사가 제법 된다는 것 정도면 꽤나 영험한 마녀 아닐까? 타로카드를 보러 찾아오는 사람을 시커라고 하는데, 이연은 단에게 어디까지나 점괘는 점괘일 뿐 그것을 받아들이고 변화시키는 건 시커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이연과 이단은 모녀지만 마치 시커와 리더의 사이에 가까운, 나이차이가 조금 나는 동거인 정도로 보인다. 그렇게 애틋하지도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지도 않는다. 다만 이연은 이단을 자신이 세운 작은 울타리 안에서 안전할 수 있게 보듬는다.

이 책은 크게 보면 3세대 마녀의 기록이다. 이연을 거둔 키르케, 최연소 동양 마녀가 된 이연, 마녀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이단. 오롯한 여성 3대의 이야기를 본 적이 없어서 낯설고 흥미로웠다. 단이 궁금해하자 친부인 에이단의 존재를 알려주고 주기적으로 만나게 해주기는 하지만 그저 그뿐이다. 에이단조차도 그다지 아버지로서의 권위를 들이밀지 않았다. 그러나 이연과 이단의 인생이 급물살을 타게 되는 건 단연 에이단에게 벌어진 불행이다. 이단이 에이단의 불행 타령을 멎게 해주고자 준비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에이단은 행운의 사나이가 되지만, 그것도 잠시 에이단은 불행의 소용돌이를 결국 피하지 못했다. 이연과 이단은 이연의 고향인 미국에 와 지내면서 각자의 방황을 한다. 이연은 방에 틀어박혀 '마녀의 서'를 집필하고, 이단은 자취를 시작하고 대학에 다니며 연인과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책을 덮을 즈음, 두 사람은 저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음을 깨닫게 된다.삶이라는 것이, 혹은 삶의 결말이라는 것이 인간을 어떻게 흔드는지와 그것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에 대하여.

지극히 이국적이라고 생각했던 '마녀'라는 소재가 지극히 일상적으로 다가와 당황스러웠다. 배경이 미국으로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이단이 내 앞에서 지나쳐갈 것만 같고 이연의 옹송그린 채 끄적이는 어깨가 보이는 듯했다. 언제나 삶과 그 너머의 경계에 걸쳐진 이야기는 큰 울림을 준다. 생각난 김에 오랜만에 타로카드 어플을 켜고 타로카드를 한 번 보고 싶다. 결과가 어떻든 주눅들지 않을 것이다. 점괘는 점괘이고, 그것을 받아들이는지 거부하는지는 시커의 영역이므로.

본 포스팅은 출판사 자음과모음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시커의영역 #이수안 #한국소설 #성장소설 #경장편소설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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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차 방앗간의 편지
알퐁스 도데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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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초등학교에서 코딩을 배운다고 들었다. 라떼는 한글 프로그램 다루는 걸 배웠던 것 같은데. 그 외에도 타자 연습을 참 많이 했었다. 나는 컴퓨터 학원에서 선생님으로 근무하시는 어머니를 따라 학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는데, 한때는 순간 타자 속도가 5-600타를 육박할 정도의 속도를 자랑했다. 학교에서도 타자 대회를 할 정도로 타자를 빨리 치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은데 나는 타고난 거북이 성정을 벗지 못하는지 굳이 승부를 붙이지 않으면 타자 연습 중에서도 '긴글 연습'을 가장 좋아했다. 긴글 연습에서 가장 짧은 건 '애국가', 가장 재미있는 건 '마지막 잎새'와 '별'이었다. 대화가 많아 소설치고 금방 칠 수 있는 건 '부자와 당나귀'. 나는 '마지막 잎새'와 '별'을 칠 때면 손가락은 기계적으로 글자를 따라 치되 눈으로는 텍스트를 음미했다.

그 때도 '별'은 참 문장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우동 한 그릇'이나 '마지막 잎새' 등의 소설처럼 '별' 또한 아련하게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다.




벌써 성인이 되고도 10년이 지났는데, 이제 와 다시 읽으니 어렴풋한 그리움과 함께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가장 빛나는 별 하나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내 어깨 위에 내려앉아 잠이 든 것'이라니... 이처럼 따뜻하고 솔직한, 순수한 찬사라니. 일련의 지난한 로맨스들에 신물이 났지만 잊어버린 감정마저 심폐소생하는 것 같은 문장이다.

어릴 때 '별'이라는 단편만 접했기 때문에 그 '별'이 단편집에 수록된 작품이라거나 그 단편집의 제목이라던가 하는 것은 전혀 알지 못했는데, 따뜻하고 진솔한 이야기들로 가득해서 작품 해설을 본문을 읽다 말고 돌아가 읽기도 했다. 직접 겪지 않은 일들을 일기처럼 적어 잠들기 전 잠자리에서 읽자니 누군가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라 좋았다. 고전이니만큼 기본적으로 공감할 수 없는 정서들이 은은하게 깔려 있기는 하지만... 고전을 읽을 때는 그런 부분을 포기하고 읽기 때문에 괜찮았다. 무엇보다도, 지금 우리가 보기 힘든 아름답고 맑은 풍경을 묘사한 문장들이 수려하다. 특히 나처럼 어릴 때 '별'을 읽긴 했지만 어렴풋하게 어떤 내용이었지, 정도의 기억만 남아 있다면 한 번쯤 다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본 포스팅은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프랑스소설 #교과서소설 #풍차방앗간의편지 #알퐁스도데 #별 #소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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