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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왕 이야기 - 양장본
진 에드워드 지음, 허령 옮김 / 예수전도단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불의와 부정과 부패함을 마주하게 된다. 비단 사회 뿐만 아니라 교회 안을 들여다 보면 권위와 분열이 난무하여 마음의 상처를 입은 그리스도 인들이 너무도 많다. 목회자에게 상처 받고 성도간에 알력 다툼으로 상처받아 교회를 등지거나 맞서 대항하는게 지금 교회의 현실이다. '세 왕 이야기' 는 이런 상처받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의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 하며, 소망을 주어, 온전히 회복시켜 준다.
세 왕 사울, 다윗, 압살롬을 비교 분석한 재미있는 이야기로, 쉽게 읽히는 짧은 이야기 이지만 읽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되며 깊은 진리를 깨닫게 된다.. 또한 대인 관계와 현실의 부당함에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고 정확하게 알려준다.
*사울 왕: 백성을 연합하여 나라를 세움. 하나님의 영에 충만했던 사람.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을 위해 놀라운 일들을 행함.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왕.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자. 그러나 질투에 사로잡혀 살인을 꾀하고, 기꺼이 영적인 어두움 속에 살기로 함.
*다윗 왕: 두 번째 왕으로 선택 되어 기름 부음을 받았다. 깨어진 자. 원수에게 저항하지 않음, 말하는 것보다 침묵 함. 하나님의 때를 기다림. 이기는 것보다 지는것을 택함. 권위를 주장하기 보다는 섬김. 외적인 능력보다 내적인 성장을 추구. 자신의 고통을 백성에게 전가하지 않음.
*압살롬: 충성 스러우면서도 야망을 가진자. 상황에 부합한 자. 다윗에 반역한 아들.
다윗은 압살롬의 나이때 사울을 섬겼으나 사울에게 수많은 위협과 고난을 당했고. 사울의 나이가 되어 왕 이었을 때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도망을 가는 고통을 겪었다. 젊었을 때는 늙은 사울에게, 늙어서는 젊은 압살롬에게 공격을 당한 것이다.
다윗은 왕국을 분열시킬 수도, 사울을 넘어 뜨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분열을 초래하기 보다는 도피를 선택 했다. 연합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걸었으며, 사울의 모든 부정에 대해서는 입과 귀를 막았다. 반역을 일으킬 충분한 이유를 가졌음에도 대적하지 않았다. 사울은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 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하였다. 시편에는 수많은 다윗의 애가가 기록되어 있다. 다윗의 고통과 괴로움이 얼마나 컸는지 뼈져리게 느껴진다.
다윗은 사울의 불의한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는 그가 자신을 죽이는 것을, 자신이 사울과 같이 되는 것보다는 그가 자신을 죽이는 것이 낫다고 했다. 다윗은 왕들을 미쳐버리게 하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다윗의 심장 안에 있는 사울을 제거하지 않으셨다면, 양치기 다윗은 사울 왕 2세로 성장했을 것이다.속사람 사울을 제거하기 위해 겉사람 사울을 선택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종종 형편없는 사람, 가치없는 자들에게도 능력을 주신다. 지독한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일지라도 밖으로는 완전히 은사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아주 어듭고 추악한 행위를 하곤 한다. 모든 사람들로 그 사람 안에 있는 내적인 헐벗음의 진정한 모습을 보도록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기름을 부의신 것이다.
우리는 사울 왕의 반열에 있는 사람을 알 수 없다. 오직 하나님 만이 아신다. 사울 계열에 있는 사람, 다윗 계열에 있는 사람 중 누가 옳은지 알 수 없다. 나의 왕은 사울 일 수도, 다윗 일 수도 있다. 우리의 판단은 다윗 계열에 속한 사람이라 저주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전적이 있다.(못박은 이가 다윗계열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에 차서) 사울이라 확신한 나머지 하사님의 자리를 기꺼이 빼앗은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림 뿐이다. 그 시간이 지나는 동안 우리의 지도자는 많은 행동을 보여주게 될것이다. 그 시간의 흐름. 그리고 그 지도자에 대한 나의 반응들이 - 그가 다윗이건, 사울이건 간에 - 많은 것을 보여 주게 된다. 다윗은 결코 스스로 결정하지 않았다. 잠짐히, 혼자서, 그 가혹한 시련을 겪었으며. 그의 속사람 전부가 절단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성품이 변화 되었다..
권위를 되풀이 해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권위를 갖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 할 뿐. 순종에 대해 연설하는 사람은 자기들 마음 속에 있는 두 가지 두려움을 은영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 뿐 이다. 하나는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신 진정한 지도자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 두 번째는 자신을 대항할지도 모를 반역에 대해 죽음과도 같은 두려움.
다윗은 순종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반역을 두려워 하지도 않았다.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 빼앗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 어려움을 백성이 겪는게 아니라 지도자가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고통으로 부터 백성을 보호해 주었다.
하나님께로 부터 온 권위를 가진 사람은 도전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어하려 하지도 않고, 왕위에서 물러난다 하더라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누군가 사울같이 나를 죽이려고 나에게 창을 던진다면?나는 용맹스럽고 담대하게 창을 주워 상대에게 던질 것이다. 함부로 할 수 없는 강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나는 부정이나 부당함에 대항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의로움 이다. 잘몬 된 것을 바로 잡고 정당하게 맞서는 것이다. ........ 훗날에 나는 온땅에 정의롭고 믿음의 수호자로 인정 받는 사람이 될것이다. .. 그리고 아마도 사울 처럼 되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다윗은 압살롬의 반역을 제거할 명분과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모든것을 다 잃느냐, 아니면 사울이 되느냐?의 선택만 한면 되었다. 그럼에도 사울때와 같이 변함이 없이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기다렸다. 사울이 되기를 거부한 것이다. 하나님이 권세있는 미친 왕으로 부터 아무 힘없는 한 목동을 구해 내셨듯이, 역시 야망에 찬 젊은 반역자로 부터 늙은 왕을 구하실 수 있는 분임을 확신한 것이다.
우리는 많은 상황 부합의 시험에 부딪치게 된다. 이건 정의로운 거야, 부당함에는 맞서 싸워야 해, 저 사람은 잘못됐어, 올바르지 않고 부정한 사람이야 라고 확고한 자기 신념에 빠진다.. 나의 오랜 경험과, 주위의 호응을 보며 섣부른 판단이 아니라고 확신에 차있다.
압살롬 처럼 젊은 혈기 왕성함에 권위에 반역을 한 때가 있었다, 그때는 순종과 맹종을 구분하지 못하는 청년들에 분개했고 권위를 내세우는 지도자에게 분개 했었다. 나는 부당한것에 대항하는 정의로운 압살롬 이었다, 내 지도자는 사울 계열 이었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나는 회피하지 않았고 변혁을 꿈꿨다. 되어야 할 것과 될 것에 대한 꿈. 이것이 내가 할 것 이라는 확고함이 있었던 때였다. 내 속에 사울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지 못했다.
사람들의 마음이 시험(test)을 받게 된다는 것을 몰랐던 어리석은 때였다. 시간이 흐르면 여러 주장과 또 그 주장을 반대하는 주장들 간에 관여된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 숨겨진 동기들이 드러나게 될 거라는 걸 알지 못 했었다. 사람의 마음에는 숨겨진 동기란게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도 내 마음을 알 지 못했다. 내 마음속에 나도 모르는 숨겨진 동기란게 있다는 것을...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감찰하지 못한다. 아무도 자기의 마음을 모른다.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나이든 다윗은 늙은 사울에게 겪은 시험을 또 받게되었다. 젊은 압살롬의 도전 이었다. 시험(test)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는 내내 우리는 하나님의 test를 받는다. 피할 수도 없다. 내 안의 젊은 압살롬의 야망 숨겨딘 동기와 늙은 사울의 시기와 질투심이 아직도 여전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안의 다윗을 일깨우는 것은 온전한 나의 몫이다. 다윗의 고백 처럼.
"아직까지 확신 할 수 있는 게 없다네." "다만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젊었을때 나는 압살롬이 아니었고, 지금 노년에 와서는 나는 사울과 같이 될 수 없다는 것이라네. 그저 늙은 이때에도 나는 다윗의 모습 그대로이고 싶을 뿐이라네."
우리 마음 속에는 사울과 다윗의 두 상반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내가 사울의 반열에 설 것인지, 다윗의 반열에 설 것인지는 내가 얼만큼 깨어짐으로 변화된 삶을 사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은 그가 소중하게 사용하는 사람을 깨뜨리신다.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하나님의 마음을 그 속에서 발견할 때까지 깨뜨리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이유를 제처 놓고 내 마음을 살피면서 그 마음의 사욕들을 제거하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 나의 운명을 넘겨 드리는 것이다.
다윗은이 하나님과 먼저 관계하고 나서 자기 위에 있던 사람과 밑에 있는 사람과 관계하였듯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뜻을 구하였다.
그럼 나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