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 없는 새벽

 달빛은 어둠을 제대로 사르지 못했고, 어둠은 달빛을 마음대로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달빛과 어둠은 서로를 반반씩섞어 묽은 안개가 자욱히 퍼진 것 같은 미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한 편의 시와 같은 아름다운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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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분단된 삶을 통찰함에 있어서 일천구백사십팔년 시월 십구일에 여수·순천을 중심으로 일어난 사건은 분단비극의 시발점으로서 그의미를 지니고 있다. 『태백산맥』제1부는 바로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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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2 - 제4부 동트는 광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
언제 독립이 될지를 알면서도 읽는 내내 가슴조려가며 하루빨리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이 독립 되기를 간절히 바랬다. 드디어 독립의 꿈을 이루었지만, 조선의 산천과, 백성들은 성하지를 못했다.

일제는 160여만 명을 강제징용했고, 30여만 명의 여자들을 위안부와정신대로 끌어갔고, 4천5백여 명의 학도병을 포함해 징병으로 전쟁터에끌려간 젊은이들은 40여만 명이었다.
16살의 남자아이들과, 12살의 여자아이들이까지 전장으로 끌려갔다..

시인 모윤숙, 이화여전 교장 김활란.
여성들은 웃음으로 내 아들과 남편을 전장으로 보내야 한다며 일제의 전시동원에 앞장서라고 충동질하였고, 지성인이라는 유명 문인들은 친일과 변절로 일본을 찬양하고 신사참배를 선동 했다. 삼일만세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에서 고문을 끝까지 끗끗하게 이겨내고 재판장에서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고 당당하게 내세운 사람은 한용운 선생 한 분 뿐이었다고 한다.

아들의 말이 귓가들 때린다. 엄마도 그렇고, 왜, 여자들은 군대 가보지도 못했으면서, 남자들보다 더 아는척 하는거야. 그렇게 별게 아니면 본인들이 지원해서 가던지.

남자 아이를 낳고 어느 광고에서 자동차를 타고 굽이굽이 길을 돌아 아들 군면회를 가는 장면을 볼때마다 가슴이 울컥하여 체널을 돌리던 때가 있었다. 아들이 사춘기를 맞아 의무복무에 대한 불합리성에 대해 열을 올리며, 안갈수 있으면 안가고 싶다고 할 때 마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국민의 의무를 강조하곤 했다. 협박아닌 협박을 하기도 했다. 대학생이된 아들은 어느날 내년 2월에 입영 신청을 했다고 통보를 했다. 잘했다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런데 가슴이 먹먹하고 허전해 지는건 왜, 일까? 지금의 나도 이런데 그 어리디 어린 자식들을 전쟁터로 떠나 보내는 어미의 마음을 감히 헤아릴수 있다고는 말을 못하겠다.

읽을때 마다 가슴이 먹먹해 진다. 모두가 꼭 한번씩은 읽었으면 좋겠다. 역사 교과서로 손색이 없는 너무도 훌륭한 역사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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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10 - 제4부 동트는 광야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0부는 중국과, 소련, 조선, 일본에 사회주의 바람의 불기 시작하고, 독립운동 1세대의 죽음과, 하와이 이민1세대 들이 죽음을 맞이 한다.

그들 중 그 누구도 자신의 대에서 독립을 이루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자식들이 사는 세상에는 꼭 평화롭고, 자유롭게 살거라 생각했다. 그 희망 하나로 목숨을 내놓고 독립운동을 했으며, 이민의노예 생활을 견디어 냈다.
그들의 삶은 치열했고, 격동적 이었던 만큼. 애달프기 그지 없었다. 만주의 허허벌판에 한줌의 재로 흩날렸고, 하와이의 짙푸른 바다에 소리없이 녹아내렸다.

해질녘 만주벌판에 무릎꿇고 꺽~꺽~ 울던 송수익의 모습이 눈에서 아른거린다. 금강송 같이 곧고 우직하며,, 백두산 호랑이 같이 용맹스러운 그들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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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9 - 제3부 어둠의 산하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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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선의 백성들은 조선의 땅에서만 핍박을 받은것이 아니었다.
누런 흙먼지 뿐인 허허벌판 중국 땅에서, 꽁꽁언 시베리아의 땅에서 노예의 삶을 살고 도륙을 당했다. 일본은 조작극을 벌여 만주사변을 일으켜 수많은 조선동포를 도륙했고, 러시아는 20만 조선사람들을 멀고도먼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를 시켰다. 나라 잃은 백성들의 서러움. . . . 그들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는 곳은 없었다. 그들은 잊혀진 존재, 무의 존재 였다.

[용서를 받아야 할 자들이 용서를 빌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를 하라는 것인가. 일본이 독일식의 용서를 빌지 않는 한 우리 민족은 <용서하지도 않고 잊지도 않는다> 민족적 동의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 그 동의에 충실하고자 나는 ˝아리랑˝을 쓰는 것이다.] - 작가의 말 -

언제적 일인데 아직까지 그 타령이야~~~~, 지겹지도 않나~~~~, 아리랑에 있는 표현 처럼, 입을 쫙---------
잘못을 저지른 놈은 사과할 생각도 없는데 쿨하게 손을 내밀며 너의 사과를 받아준다는 것도 웃긴 것이다. 전두환이나, 일본이나 똑같은 것들이다. 나랑 무슨 상관이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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