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토벌대는 우리 읍내의 치안을 위하고, 도주한 빨갱이들을 소탕하기 위해서 오는 것입니다. 그분들은빨갱이들로부터 우리 읍민 전체의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중차대한일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이에 우리 읍에서도 그분들의 노고에 다소나마 보답하는 뜻으로 민간후원회를 조직하는 것이 떨까 하여 이리 모인 것입니다.

밤마다 간헐적으로 울리는 총성이 계엄령이 발효중임을
강조하고 있었고, 대낮에도 실시되는 검문검색으로 계엄령의 살벌한 얼굴을 대해야 했다. 읍내는 회색빛으로 죽어 있었다.
장날이라고 해야 아침부터 파장꼴이었고, 철다리 아래
선창에는 배가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사람들은 문밖출입을 저어했고, 어둠살이 퍼지기 전에 벌써 읍내 큰길은 텅 비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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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역사의 중심에 있고자 한다. 그것은 곧 지배의 욕구다. 그러나 그 누구도 역사의 중심에 있을 수 없다. 역사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역사의 생리는 수은주 이하의 냉철한 비판이기 때문이다.사회주의 건설을 위한 무산자 혁명, 그것이야말로역사의 그늘이나 역사의 변두리로부터 역사의 중심에 서고자 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자 함이 아닌가. 지배욕구, 사회주의를 건설하면누구를 지배하게 되는가. 봉건주의의 지배층과 제국주의의 부유증, 그래서 계급없는 사회를 건설했는데도 역사는 중심에 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인가. 수은주 이하의 냉철한 비판을 생리로 가진 역사의 정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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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굴곡진 삶의 아리랑이 드디어 독립을 맞이 하였다. 아리랑에서의 무장투쟁이 해방된 조선의 태백산에 이르러 이념 의 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건 완벽한 자주독립이 아닌, 또 하나의 덫에 걸린 한이 맺힌 독립이었기 때문이다. 김구 선생님 은 조선의 독립을 못내 아쉬워 하셨다. 조선의 힘으로 이룬 자주 독립이 아니었 기 때문이다. 선생은 3천만 동포에 읍고 하였다.

[ ~ 우리가 자주 독립의 통일 정부를 수립하려면 먼저 국제의 동정을 쟁취하여야 할 것이요. 이것을 쟁취하려면 전민족의 공 고한 단결로 써 그들에게 정당한 인식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일절 내부 투쟁은 정 지하자! 한국이 있고야 한국사람이 있고 한국 사람이 있고야 민주주 의도 공산주의도 또 무슨 단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족은 자꾸만 이념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민족을 통합 시키 기 위해 읍고하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이념으로 남과 북은 갈라 졌고, 남쪽은 이념의 대립으로 서로에게 끝없는 총을 쏘아대었다.

태백산맥 1은 여순반란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념의 갈등에서 비 롯된 이즘의 폭력화로 촉발된 사건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이념 의 갈등으 로만 볼수도 없다. 1-6의 소제목 처럼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가 빨갱이를 맹글었다. 조선이 제대로된 해방을 맛 볼수 있었던 건 두 달 남짓 뿐이었다. 미군정이 들어서자 나라는 다시금 혼돈속으로 빠져 들었다. 새나라 세우기는 미군의 점령 과 함께 시작된 군정의 조선인 인민공화국 부인으로부터 균열 을 일으키기 시작 했다. 공산당의 합법활동은 지하활동으로 전 환될 수밖에 없었고, 도망갔던 지주들과 친일파들이 다시금 활 개를 쳤다. 해방이 되고 풀려난 독립 투쟁자 삼분의 이가 다시 잡혀들어갔다. 일정치하에서 경찰질을 해 먹었던 자들의 손에 다시 잡혀들어간 그들의 죄목은, 일본이 미국으 로 바뀌 었을 뿐인 것처럼, ‘독립투쟁자‘에서 ‘공산주의자‘로 바뀌어 있었다. 미곡수매라는 억지법은 그들을 또다시 배불렸다. 관리들의 부 정으로 균형을 상실한 배급제도 때문에 백성은 굶주림에 시달 렸다 좌익이 되고 싶어 된 사람 보다는 나라가 백성을 좌익으로 생각을 돌 리게 만들었다. 옳은 소리를 해도 바른 소리를 해도 모두 좌익으로 몰았다. 일정때보다 더 못한 세상이라고 아우성 이었다.

˝ 정치라는 것만큼 본질을 전도하는 것도 없을 것이고, 염상진은 그 전도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백 명쯤은 의당 죽일 수 있는 타당성 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대적인 힘은 두 배 이 상의 가격을 해야 할 필연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정치폭력의 역 학이라는 것은 별 것이 아닌 것이다. ˝서로 따귀 갈기기˝ 처벌법 이 갖는 가해성과 마찬 가지였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점점 더 상 대방을 세게 갈길 수밖에 없 는 가해성, 그때 내가 때리고 있는 것이 내 친라는 사실은 이미 망각 해버린 것이다. 그건 오직 나 를 아프게 하는 적일 뿐이고, 내가 아프 지 않기 위해서는 적을 물리쳐야 한다는 공격성만 가속화하는 것이다 김범우는 그 정 치적 가해성은 외면하고 있었다. 그건 비탈길을 굴러 내리기 시 작한 수레바퀴의 불가항력적인 힘이었기 때문이다.˝

군정과 공산당의 치킨게임. 군정의 폭력으로 인한 말살정책은 공산 당의 숙청으로 돌아왔고, 또 다시 군정은 뿌리뽑기의 학살 을 하였다. 내부의 투쟁을 정지하자는 김구 선생님의 바램은 이 루어지 못했다.

˝ 우리의 서울은 오직 우리의 서울 이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철학을 찾고, 세우고, 주장해야 한다. 이것을 깨닫는 날이 우리 동포가 진 실로 독립정신을 가지는 날이요 참으로 독립하는 날이다.˝

싸워도 우리끼리 치고받고 싸우고, 우리끼리 해결했어야 했다. 제3의 개입으로 본질은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로크니, 맑스, 스탈린의 철학이 아닌 우리의 철학으로, 다투고, 싸우고, 회해하 고, 다투고, 싸 우고, 화해하고 했더라면 언젠가는 하나로 뭉쳐 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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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승은 빨갱이‘란 말을 무수히 되풀이했다. 그 말은 
지칭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호칭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건 말이 아니었다. 공격의 무기였다. 지칭이든 호칭이든 
상관없이그 말은 되풀이될수록 기묘한 마력으로 육박해왔다김범우는 그 말이되풀이될 때마다 자신의 의식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는 위축감을 느껴야 했다. ‘빨갱이‘라는 
말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는말과는 그 색깔이나 
냄새나 느낌이 판이하게 달랐다. 그건 극악한 범죄자의 
대명사였고 극형의 죄목이었다. 그 말은 해방 이후 
수삼년에 걸쳐 그 어떤 말보다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그러나 그 느낌 이 그렇게 살벌하거나 
증오스럽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익승의 입에 오른 그 말은 
처형의 살기를 뿜고 있었다. 그 말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선택의 자유권을 상실한 지는 이미 오래 되었지만 
생존권까지 좌우하 게 된 상황임을 새삼스럽게 확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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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가 제아무리 불후의 멍작을 남겼다 한들 어찌 인도보다 더 위대할 수 있느냔 말야. 인도라늘 건대한 땅덩어리는 차치하고라도 거기 엔 사억을 헤아리는 인간들이 엄연히 생존하고 있어. 그 생명들의 존엄성보다. 셰익스피어가 더 위대하다니, 그 따위 발상법을 가진 영국인, 일본놈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식민주의자들이야. 물론, 어떤 유식한 자가 무심코 쓴 비유법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무심코‘에 있어. 영국인들은 자기네 자존심을 세워주는 그 비유에 `무심코` 만족을 느낀 것이고, 자기네 민족의 우월감을 과시지는 한 방법으로 셰익스피어를 세계화시키면서 또 그 비유를 무심코 써먹은 거야. 셰익스피어가 분명 봉건 왕조시대의 작가지만 자기의 작가정신이 그처럼 수없이 많은 인간들의 존엄성을 짓밟는 것으로비유되기를 결코 원하지 않았을 거야. 오히려 그 반대였겠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예 그런 좋은 작품들을 써내지 못했을 테니까. 셰익스피어는 후대를 잘못 둔 셈이지."
손승호의 그런 논리는 그가 왜 좌익의 테러화와 함께 사상적 전향을 하지 않을 수 없었는지를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건 문학적 인도주의를 사고의 바탕으로 마련하고 있는 손승호의 필연적 귀결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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