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방위군 사건‘과 ‘거창양민학살‘

‘국민방위군 사건‘
1950년 12월 이승만 정부가 군경과 공무원이 아닌 만17세 ~ 40세 장정 (학생제외)을 국민방위군으로 편성하고 이들을 후방으로 집단 남하시키는 과정에서 방위군 간부들이 국고금과 군수물자를 부정처분하고 착복해서 수만명이 아사 또는 동사한 사건.

희생자들은 인근 공동묘지나 야산에 임시로 매장됐으며 유해 매장 사실도 유가족에게 통보하지 않았다.

‘거창양민학살‘
6.25전쟁 중 52년 2월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양민학살이 자행되었다.
거창 희생자 719명 중 절반 상이 15세 이하의 이린아이들 이었다. 인근 산청, 함양 포함 총 1,421명이 공비토벌 이라는 명분에 집단 총살 되었다. 국가가 이승만이 자행한 국가 폭력 이었다.

책임자를 처벌했지만 이승만이 특별사면 했으며, 고위직까지 올랐다고 한다. 유족들은 배상을 못
받았으며 법안은 국회에서 잠자는 중 이라고 한다.

"강압에 의한 행위였다고 해서 그 행위를 통해 저지른 잘못이 용서되거나 상쇄되는 건 아니었다. ‘강압에의한 행위‘는 행위의 원인에 지나지 않았다. 강압에 의한 행위로 저지른 잘못을 용서받으려면 그 강압적 힘을 박차고 나가 죄지은 만큼의 참회행위를 해야만 비로소 면죄가 가능할 것이었다. 행위의 원인으로 행위의 범죄를 합리화하려 하거나 모면하려고 하는 것은 간악한 교활이고, 파렴치한 비열이었다. "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426235


https://m.blog.naver.com/omdsanghak/22135982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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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정치의 적극적 수단이면서, 정치의 목적인 인간의 인간적 삶자체를 파괴하는 괴물이었다. 전쟁의 기본은 적과 우방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가르는 것이었다. 그 양분법 앞에서는 그 이외의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중도적 입장은 기회주의일 뿐이었고, 객관적 입장은 방관주의일 뿐이었고, 종교적 사고는 허무주의일 뿐이었고, 개인적 판단은 이기주의일 뿐이었다. 전쟁이 정치를 넘어서 역사라는 명분과 맥을 대고있을 때 그런 결론은 더욱 선명해졌다. 민기홍은 기회주의자이며 방관주의자이며 허무주의자이고 이기주의자인 자신이 그나마 해체되어 버리고 한쪽에 가담되어 있는 초라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박차지않고 주저앉아 있는것을 
체념주의나 패배주의라고 한다.

서울은 역시 어쩔 수 없는 우익의 집구나, 하고 생각했다. 역사의 정당성이고, 다수의 삶을 위한 혁명고 다 필요없이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지키려고 몸부림하는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사는 도시가 서울이었던 것이다. 자신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기득권이 없으면서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로 휩쓸리며 서울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 다만 공산주의가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고, 이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민기홍은 자신의 의식 저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이런 식의생각을 굳이 깃발로 꺼내들고 싶지 않았다. 그건 자기합리화의 변명일뿐이었고, 조금 배웠다는 자가 자기를 위장하는 가증일 뿐이었다. 당면한 위험을 피하고 싶으면 그저 조용히 떠나는 것이 오히려 진실이었다.

사실 정부에서는 병력확보만을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을 뿐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조처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 단한 가지 자지 들의 급식을 해결하기 위하여 방위군에 양곡권을 주고는 그것으로 현지의 군수나 읍장 그리고 경찰서장에게 급식을 요청하도록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전쟁상태에서 세금은 제대로 걷히지 않고, 지방행정은 거의 마비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한두 명도 아닌 사람들의
급식제공이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일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보행군의 거리상으로 중복해서 일을 당하게 되는 지방관청에서는말썽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추위에 못 견뎌 바짝 웅크릴 대로 웅크린 채 죽은 동사자들의 시체는 상상하기 어럽게 너무나 작았다. 똘똘 뭉쳐놓은 무슨 덩어리 같은 그 작은 시체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지경어었다. 그 시체들을 땅에 묻어야 하는 것도 비감했지만, 중병자들을 아무 집에나 떠맡기고 떠나는 것도 비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국민방위군을 편성한 정부의 무모함에 대해 전국적으로 비난의 여론이 거칠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 비참한 몰골의 국민방위군 대열을 ‘죽음의 대열‘ 이니 ‘해골의 대열‘ 이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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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동안…… 내가 미국에게 유리하게 한 것이 무엇이며, 민족에게불리하게 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따질 것도 없이 통역 행위 자체가 민족에 대한 배반이었다. 강압에 의한 행위였다고 해서 그 행위를 통해 저지른 잘못이 용서되거나 상쇄되는 건 아니었다. 강압에 의한 행위‘는 행위의 원인에 지나지 않았다. 강압에 의한 행위로 저지른 잘못을 용서받으려면 그 강압적 힘을 박차고 나가 죄지은 만큼의 참회행위를 해야만 비로소 면죄가 가능할 것이었다. 행위의 원인으로 행위의 범죄를 합리화하려 하거나 모면하려고 하는 것은 간악한 교활이고, 파렴치한 비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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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령이 소령의 철모를 지휘봉으로 내려갈기고, 대위가 소위의 장단지뼈를 연거푸 걷어차는 것이 예사로운 군대에서 장교가 사병들에게 행사하는 폭력은 폭력이 아니라 규율이었다. 그건 일본제국 군대의잔재가 아니라 일본제국 군대 자체가 생존하고 있는 모습이었고, 일본군대의 물이라고는 먹어본 일이 없으면서도 양효석은 선배장교들의 경력을 순식간에 전수한 모범이었다. ˝-

사람은 자기의 사고의 방식을 고집하는데에서 벗어나거나 교육의 편견을 극복하기가 무척 어렵다. 올해는 광복 75년 이다. 지금 까지도 일본의 잔재가 생존하고 있는게 너무도 많다.

˝왔다리 갔다리˝, ˝땡깡 부리다˝, ˝무대뽀˝, ˝진검승부˝, ˝잔반˝, ˝고객˝, ˝애매하다˝~ 무수히 많은 지명

생각없이 살면 사는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내가 얼마나 생각없이 말하고 행동 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일본 제품 뿐 아니라, 언어와 일상속 행동까지 세세하게 살펴봐야 할 문제 이다.

https://youthassembly.or.kr/bbs/board.php?bo_table=B51&wr_id=37475

http://news.tongplus.com/site/data/html_dir/2016/08/17/201608170133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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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를 당했다.

-˝결국 전쟁이 터지고 말았다. 쌍방이 원했던 전쟁이고,
서로 이긴다고 장담했던 전쟁이었지. 허나, 서로 이기는 전쟁도 있나. 원시시대부터 지금까지 그런 전쟁은 없었다.
이 전쟁 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전쟁을 보는 관점*
- 손승호 -
탈 사상적, 순수 인간주의, 입장에서 전쟁이나자
좌파의식으로 돌아섰다. 전향에서 재전향... 사회주의
혁명을 통한 민족통일 추구세력과 친일 민족반역자에서 신식민주의자로 바뀐, 매국적 세력과의 싸움으로 규정하는 적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학송-
한반도의 대립 상황을 주도한 미쏘를 주체로하는 시각으로, 미국의 힘을 입은 반민족세력들이권력을 무너뜨리기까지 무고한 민중들이 수없이 피를 흘렸으며, 이는 미국이 저지른 죄이다. 그러므로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한 피를 흘리더라도 역사는 바로잡아야하며. 이번 전쟁은 우리 민족의 삶에 박힌 모든 갈등과 모순을 일소시키기 위해서, 외세와 반민족세력을 동시에 척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 한다.

-김범우-
미국이 전쟁에 개입한 이상 피를 흘리고 손해를 보는 건, 우리 민족일 뿐. 인민해방은 수포로 돌아가고 민족좌절만 남게 된다고 판단. 종교색이 전혀 없이 혁명의 당위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번 전쟁에 근본적으로 회의를 느낀다. 우리의 민족문제를 항구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선 전쟁
이라는 방법론 가지고는 어려우며, 좀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미쏘의 영향력을 동시에 배격할 수 있는 그 어떤 슬기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하며 외국 세력의 배격이 급선무라고 주장 함.

-민기홍-
사회주의 방법론을 거부하는 자유주의 입장에 선 개혁론자. 그래서 그는 전쟁이 나자 일찌감치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 올바른 의식으로 역사를 본 판단이다. 그러나 전쟁은 그것만 으로 이겨지는 것이 아니다. 전쟁은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지 모르지만 전쟁 자체가 정의는 아니다. 전쟁은 정의도 사상도 아니다. 윤리나 도덕은 더구나 아니다. 전쟁은
오로지 힘일 뿐이다. 철저한 폭력으로 결판나는 약육강식 이다. 그런데, 미국이참전을 한다. 어떻게 될까.~~ 세계의 왕이 되고싶어하는 나라 물량작전으로 독일을 초토화시키고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나라, ~~ 비축된 화력이 얼마인지 알 수가 없는 나라. 그 미국이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전쟁을 벌이려 한다. 위험천만이다,˝-

김범우의 말처럼 이념의 실천이 확고한 보장이 없을 때 대중들의 희생은 무엇으로 보상되고 어떻게 설명될 것인가?

http://aladin.kr/p/JFbnB

전쟁의 영웅 스메들리 버틀러가 군산복합체의 실상을 폭로한 책 ˝전쟁은 사기다˝에 실린 내용중에 세계대전에서 소수에 불과한 사람들이 전쟁에서 오는 이득을 챙겼으며, 세계대전 중에 미국에서 적어도 2만1000명의 새로운 백만장자와 억만장자가 생겼다고 한다.

-˝ 전쟁은 사기다. 언제나 그랬다. 전쟁은 아마 가장 오래된 사기일 것이다. 또 쉽게 가장 큰 이득을 남길 수 있는 사기이며 확실히 가장 사악한 사기이기도 하다. 독보적인 국제적 사기다. 이득은 달러로 계산하고 손실은 인명으로 계산하는 유일한 사기.˝-

강대국의 욕심으로 인해서 발발한 전쟁... 그들은
그 전쟁을 영웅화, 합리화 시킴으로 우리에게 사기를 쳤다. 손승호, 이학송, 민홍기는 어떤 심정 일런지?... 그 어떤 이념도 민족을 앞설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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