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정치의 적극적 수단이면서, 정치의 목적인 인간의 인간적 삶자체를 파괴하는 괴물이었다. 전쟁의 기본은 적과 우방을 간단하고 명확하게 가르는 것이었다. 그 양분법 앞에서는 그 이외의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았다. 중도적 입장은 기회주의일 뿐이었고, 객관적 입장은 방관주의일 뿐이었고, 종교적 사고는 허무주의일 뿐이었고, 개인적 판단은 이기주의일 뿐이었다. 전쟁이 정치를 넘어서 역사라는 명분과 맥을 대고있을 때 그런 결론은 더욱 선명해졌다. 민기홍은 기회주의자이며 방관주의자이며 허무주의자이고 이기주의자인 자신이 그나마 해체되어 버리고 한쪽에 가담되어 있는 초라한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것을 박차지않고 주저앉아 있는것을 체념주의나 패배주의라고 한다.
서울은 역시 어쩔 수 없는 우익의 집구나, 하고 생각했다. 역사의 정당성이고, 다수의 삶을 위한 혁명고 다 필요없이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지키려고 몸부림하는 사람들이 우글우글 모여사는 도시가 서울이었던 것이다. 자신은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기득권이 없으면서도 그런 사람들 중의 하나로 휩쓸리며 서울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 다만 공산주의가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고, 이 속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민기홍은 자신의 의식 저 밑바닥에 도사리고 있는 이런 식의생각을 굳이 깃발로 꺼내들고 싶지 않았다. 그건 자기합리화의 변명일뿐이었고, 조금 배웠다는 자가 자기를 위장하는 가증일 뿐이었다. 당면한 위험을 피하고 싶으면 그저 조용히 떠나는 것이 오히려 진실이었다.
사실 정부에서는 병력확보만을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을 뿐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조처는 아무것도 취하지 않은 상태였다. 단한 가지 자지 들의 급식을 해결하기 위하여 방위군에 양곡권을 주고는 그것으로 현지의 군수나 읍장 그리고 경찰서장에게 급식을 요청하도록 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전쟁상태에서 세금은 제대로 걷히지 않고, 지방행정은 거의 마비되어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한두 명도 아닌 사람들의 급식제공이란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 일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보행군의 거리상으로 중복해서 일을 당하게 되는 지방관청에서는말썽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추위에 못 견뎌 바짝 웅크릴 대로 웅크린 채 죽은 동사자들의 시체는 상상하기 어럽게 너무나 작았다. 똘똘 뭉쳐놓은 무슨 덩어리 같은 그 작은 시체가 사람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지경어었다. 그 시체들을 땅에 묻어야 하는 것도 비감했지만, 중병자들을 아무 집에나 떠맡기고 떠나는 것도 비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국민방위군을 편성한 정부의 무모함에 대해 전국적으로 비난의 여론이 거칠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 비참한 몰골의 국민방위군 대열을 ‘죽음의 대열‘ 이니 ‘해골의 대열‘ 이니라고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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