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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미천왕편 세트 - 전3권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12월 중반부터 시작해서 어제를 끝으로 김진명의「고구려」를 5권까지 읽었다. 5권이 마지막 권인줄 알고 읽기 시작해서 흥미진진한 내용에 지루한줄 모르고 읽었는데 현재 5권까지 출판되었을 뿐 앞으로 더 출간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 1권부터 3권까지는 그 내용을 일일이 적어서 요약했는데 내용이 너무 방대해서 4권부터는 포기했다.
고구려의 초대왕은 동명성왕이지만 이 책은 봉상왕이 안국군과 돌고를 살해하고 그의 칼날을 피해 도망한 을불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맨몸으로 도망하여 소금장수를 하는 등 궂은일을 하며 자라지만 왕손의 피는 그의 운명을 고구려의 왕이 되도록 이끈다. 1~3권은 을불이 온갖 고초를 겪으며 15대 미천왕에 오르기까지의 여정과 그가 죽음에 이르는 내용이고, 4권에서 5권은 을불(미천왕)이 죽은 이후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큰아들 사유가 고국원왕으로 재위하는 동안의 내용이다.
봉상왕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는 데만 급급해 전쟁을 피하고 상대국에 비겁한 모습을 보인다. 그로 인해 빼앗긴 땅이나 국경지대에 사는 백성들은 약탈에 노출되고 굴욕적인 삶을 산다.
을불은 도망자의 신분일 때 백성들의 참담한 현실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한 만큼 잃어버린 땅과 백성들에게 잃은 신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결국 그는 백성의 마음을 얻어 왕이 되고 평생 숙원이었던 낙랑성을 되찾는다. 을불은 아무리 어려운 전쟁이라도 꼭 필요하다면 불사하여 끝내 승리로 이끄는 전무후무한 리더십을 발휘한다. 물론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그에게 충성을 다하고 묵묵히 따라준 여러 장수, 국상, 책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소설이니만큼 작가의 상상력이 많이 가미되었겠지만 그러한 내용을 읽을 때마다 무언가 울컥하는 감격스러움이 느껴졌다.
을불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 ‘사유’는 백성을 내 몸처럼 아낄 정도로 사랑했으나 장수로서의 기질은 전혀 없고, 둘째 ‘무’는 을불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태어나서 모두 한 마음으로 둘째 ‘무’를 태자로 여기지만 을불은 어쩐 일인지 ‘사유’를 태자로 추대한다. 대소신료들의 걱정은 그대로 맞아 떨어져 사유가 을불처럼 백성을 위하는 지극하나 그 마음이 도를 넘어 전쟁이라면 백성을 위해 무조건 피해버린다. 이것은 을불이나 ‘무’와는 반대되는 성향이어서 주변국들과 마찰을 빚을 때 손해를 보면서도 항상 물러서기만 하는 겁쟁이의 왕은 신하들에게 참을 수 없는 굴욕감을 안겨준다. 오랜 세월 서로 소통하지 못하고 결국 어머니와 동생, 아내, 신하들로부터 외면 받는 외톨이가 되는 ‘사유’를 보니 너무 안타까웠다.
1권부터 5권까지 3대 왕이 등장한다. 봉상왕, 미천왕, 고국원왕. 셋 중에 누가 왕으로서 제일 통치를 잘했는지 객관적으로 따진다면 누구나 ‘을불’ 미천왕을 꼽겠지만 5권을 마지막까지 읽고 나니 그것을 따지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전쟁은 서로 번갈아 따귀를 때리는 일과 비슷해요. 어느 한쪽이 맞고 그만두어야 끝나는 거지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때린 뒤 그만두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맞고 끝내려는 거예요. 즉 사람들은 거짓으로 전쟁을 끝내려 하고, 아버지는 참으로 전쟁을 끝내려 하시는 거예요.”라는 ‘구부(사유의 아들)’의 말처럼 ‘사유’는 자신의 이상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불행한 왕일 뿐 못난 왕은 아니었다.
전쟁의 승패도 중요하지만 통치자가 어떤 신념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 인재들이 적재적소에 쓰이기도, 허무한 삶을 살기도 하고, 백성들의 삶의 양상까지 큰 차이를 보였다. 통치자와 신하, 백성들이 서로에게 갖는 믿음과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고구려가 어마어마한 영토를 지배했던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이라는 것을 이제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장수와 병사를 꾸려 전쟁을 하기에 앞서 그들의 책사와 장수들이 물고 물리는 머리싸움을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왜 삼국지를 읽기 전에 고구려 먼저 읽으라는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평소 사극, 전쟁, 역사 관련 책은 관심이 없어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스스로 그 시대 지도와 인물,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도 이 책을 읽고 고구려에 관심을 갖고 자긍심을 느꼈으면 한다. 6권도 어서 출간되길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