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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 1~55쪽까지 읽고.
"오베라는 남자"가 한동안 베스트셀러여서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는데 사놓고 책장에 방치하다가
이번에 마음이 잘맞는 친구와 매일 책읽고 기록을 남기기로 하면서 드디어 첫장을 넘겨보았다.
표지에서부터 오베 아저씨의 까칠함이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만나는 사람들과 사사건건 부딪친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틀렸다고 생각하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오베 아저씨가
처음에는 전형적인 '꼰대'처럼 느껴졌다. 현재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서
20세기 중반 정도를 살아가는 듯한 모습은 살짝 거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중간중간 아내에 대한 애정이 엿보이는 문장이 있었지만 설마 했었는데
아내가 6개월 전에 오베를 떠났고, 회사로부터 일방적인 정리해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 까칠한 늙은이가 안쓰럽기 시작했다.
<55쪽>"보고 싶어." 그가 속삭였다.
아내가 죽은 지 6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오베는 하루에 두 번,
라디에이터에 손을 얹어 온도를 확인하며 집 전체를 점검했다.
그녀가 온도를 몰래 올렸을까봐.
2. 56~151쪽까지 읽고.
151쪽까지 읽고 나니 남들에게 비호감을 사는 오베의 언행이
사실은 그가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가 사는 마을과 주민들, 평생 몸바쳐 일한 회사에 대한 기억들이
대부분 대립하거나 분쟁하는 안 좋은 기억일지라도 말이다.
앞뒤 꽉 막힌 영감탱이로만 보였던 오베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부분이었다.
<57쪽>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그가 가진 색깔의 전부였다.
오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그의 아버지와 죽은 아내이다.
그의 아버지는 넉넉치 않은 사정에도 성실하고 공정했다.
그 모습은 오베의 마음속에 멘토로 자리잡고 오베가 갈등의 순간을
맞닥뜨릴 때마다 아버지와 같이 행동함으로써 스스로 자존심을 지킨다.
평소 오베의 유도리 없는 모습을 보면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아버지처럼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였다.
그런 그에게 단 하나의 색깔이었던 아내가 사라지자 상실감이 얼마나 컸을까.
이것만으로도 그가 왜 자살하기로 마음먹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러나...
절묘한 순간 그의 자살 실행을 훼방하는 이웃들의 등장이 반가운건 왜인지...
오베의 신경을 긁는 것들이 나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있다.
오베가 아니면 절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만 갖고 있는 그의 이웃들이 반갑다.
늙은 고양이, 금발 잡초와 성질 드러운 개, 옆집 멀대와 이란 임산부, 루네와 그녀의 남편까지~
온갖 짜증섞인 얼굴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는 오베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이웃들이 이후에는 어떤 문제로 오베의 앞길을 막을지 기대된다.
결론은... 오베 아저씨는 승질 좀 내야 매력적이라는 것.
3. 152~끝까지 읽고.
소설의 중반 이후부터 오베 아저씨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계속 된다.
353쪽 _ "다른 집 아내들은자기가 머리를 새로 한 걸 남편들이 못 알아본다는 이유로 짜증을 내잖아요.
제가 머리를 하니까 우리 남편은 내가 달라졌다고 며칠 동안 짜증을 내더라고요." 소냐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게 오베가 무엇보다 그리워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늘 같은 것.
이 구절을 읽을 땐 내가 평소 과거를 반추하고 그리워하는 일이 잦아서인지 깊이 공감되고 울컥하기도 했다.
소냐가 불의의 사고로 뱃속의 아이를 잃고, 걷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때 그러한 현실을 덤덤히
받아들이는 데 반해, 오베는 모든 것에 대한 분노로 길길이 날뛴다. 까칠하고 욱하는 성미,
원리원칙인 꼬장꼬장함은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으로부터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었다.
소설의 전반부부터 계속되던 오베의 비호감적인 모습이 이해되기 시작하자 아저씨가 약해질 때면
마음이 아팠다. 아저씨의 심장이 욱신거릴 때마다 내 심장이 얼마나 쿵쿵 거리고 긴장되던지...
436쪽 _ 사람들은 늘 오베가 '까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빌어먹을 까칠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내내 웃으며 돌아다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게 누군가 거친 사람으로 취급당해 싸다는 얘긴가?
오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남자를 이해했던 유일한 사람을 땅에 묻어야 할 때,
그의 내면에 있던 무언가는 산산조각이 난다. 그런 부상은 치료할 수 없었다.
시간은 묘한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바로 눈앞에 닥친 시간을 살아갈 뿐이다. 며칠, 몇 주, 몇 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 중 하나는 아마 바라볼 시간보단 돌아볼 시간이 더 많다는
나이에 도달했다는 깨달음과 함께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앞에 남아있는 시간이 없을 때는
다른 것을 위해 살게 될 수밖에 없다. 아마 그건 추억일 것이다.
소설의 엔딩이 슬프면서도 슬프지 않았던 건 그와 마지막까지 우정을 나눈 파르바네와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는 정작 오베 아저씨보다 파르바네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우리 옆집에 오베 아저씨같은 분이 살았다면 나는 어땠을까?
겉으로 보이는 괴팍한 모습을 이해하고 그속의 진심까지 들여다볼 수 있을까?
요즘 사회 추세라면 불가능할 일이기도 하고, 이제껏 오베에게 그런 사람은 아내뿐이었기 때문에
가족도 아닌 파르바네가 오베를 이해해주는 모습이 많이 되새겨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일까? 아무튼....정말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