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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범 1 - 개정판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5
미야베 미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3월
평점 :
마리코가 실종되었다. 단순가출인지 유괴인지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상태가 지속되다가 오가와 공원에서 마리코의 가방과 다른 여성의 토막 난 팔이 발견된다. 동종·유사 전과자들 중 ‘다가와’가 용의자로 지목되지만 TV 생방송 중 범인으로부터 농락당함으로써 실제 범인이 따로 있음이 알려지고, 이후 3권까지 교활한 범인과의 머리싸움이 흥미진진하게 벌어진다.
1권에서는 범인의 살인 의도가 우발적인 것인지, 원한에 의한 복수인지 그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는데 2권에서 범인 ‘피스’와 ‘히로미’의 대화를 보며 소름이 끼쳤다.
"진정한 악이란 이런 거야. 이유 따위는 없어. 그러므로 피해자는 자기가 왜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는지 모르는 거야. 원한, 애증, 돈, 그런 이유가 있다면 피해자도 납득을 할 수 있겠지. 자신을 위로하거나 범인을 미워하거나 사회를 원망할 때는 그 근거가 필요한 거야. 범인이 그 근거를 제시해 주면 대처할 방법이라도 있지. 그러나 애당초 근거같은 건 없었어. 그거야말로 완벽한 ‘악’이야.”
"모든 피해자에게, 모든 피해자의 가족에게 영원히 풀리지 않을 수수께끼를 던져주는 거야. 왜? 우리 딸이 죽어야 했을까? 범인은 왜 우리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일까? 왜, 왜, 왜? 그러나 아무도 그 이유를 몰라. 별것도 아닌 놈들이 잔머리를 굴려보겠지. 경찰도 눈을 부라리며 수사를 할 테지. 그러나 그들은 몰라.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걸 아는 사람은 나, 아니 우리뿐이지.”
범인들은 살인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숨어도 모자랄 판에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며 점점 대담한 모습을 보인다.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마리코의 할아버지 ‘아리마 요시오’ 등 피해자와 사건 관련 인물들을 농락하는 모습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한 범인들의 행태를 접할수록 독자 입장에서 범인 이외의 모든 인물들에 대한 감정이입이 커져만 갔다. 소설이 중후반에 들어서고 주범이 ‘피스’라는 게 드러나자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이름이 아닌 ‘피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누구든지 하루 빨리 그의 정체를 밝혀서 더 이상 사건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다르게, ‘피스’는 사람들에게 이유 없는 고통을 안겨주고 그것을 즐기며 스스로 절대 악이고자 했다. ‘히로미’를 사이에 두고 대립했던 ‘가즈아키’로 인해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느끼고 반성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정말 악을 위해 태어난 주인공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자기가 짜놓은 판의 주도권을 빼앗기자 너무도 쉽게 무너져버렸다. 간악한 모습 이면에는 모래성처럼 조그만 금에도 쉽게 허물어져버리는 유아적 사고를 가진 하찮은 인간이 있을 뿐이었다. 비슷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런 인간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자로 인해 피폐한 삶을 살게 되는 피해자들은 어떻게 보상받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지 서서히 죽여가기 때문이야. 하지만 그 가족을 죽이는 것은 살인자 본인이 아니라 그 가족들 자신의 마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