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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내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프랑스의 여류작가는 아멜리 노통브만 알았는데 이 책을 통해 현재 프랑스 현대 문단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라는'마리 다리외세크'를 만났다. 책표지에 '가시내'라는 제목과 함께 여자의 브래지어와 팬티가 그려져 있는데 '가시내'라는 단어가 '계집아이'라는 뜻이기 때문인지 야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 속의 내용은 다소 파격적)
어릴 적부터 이웃집 남자 비오츠와 비오츠 노부인의 손에 길러진 솔랑주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아이이다. 그녀는 마을에서 축제가 있던 6월의 어느 날 밤 12시 15분 전 아빠가 술에 취해 홀딱 벗은 채 '그것'을 내놓고 달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날 그녀의 첫 월경이 시작된다. 그게 무엇이든 '첫 경험'은 깊이 기억되게 마련인데 그녀는 한날 강렬한 두 개의 경험을 하게 된다.
시골 마을 '클레브'의 사춘기 아이들은 성별을 따지지 않고 그 관심이 '성'에 쏠려 있다. 특히 솔랑주는 성적인 호기심이 많고 그 문제에 예민하다. 그녀는 먼저 첫 경험을 한 친구들처럼 자신도 진정한 여자가 되고 싶다고 열망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사춘기 소녀답게 보고, 듣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게 제멋대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50쪽 "세상이 형태를, 소리를, 색을 펼친다. 하지만 그녀는 유리로 된 상자 안에 격리되어 있다"라는 글을 보며 사춘기라는 불완전한 시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본능과 쾌락을 좇다가 그녀의 세상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버릴까 불안했다.
어쨌든 평생 어린애로 있을 수 없기에 그녀는 남자들과 어설픈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여자로서의 자신감을 갖게 되는데(그녀가 느끼기엔 자신감이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과시라고 느껴지는) 그 자신감을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키워주다시피 한 비오츠에게 난폭하게 휘두르는 모습이 못내 아쉬웠다. 비오츠가 늙은 노모와 늙은 개 륄리를 끝까지 거둔 것처럼 자기가 비오츠에게 어떤 짓을 하더라도 끝까지 책임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걸까.
솔랑주에게 실제 일어난 일과 기억, 상상이 시간 순서와 상관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처음에는 헷갈리기도 했지만 이 책 자체를 어느 여자애의 머릿속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이후부터는 책읽기가 조금 수월했다. 그리고 밝히는, 까진 여자애의 표현이 날 것 그대로 쓰여 있어서 솔랑주가 여자가 되고 싶은 건지, 암캐가 되고 싶은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끝까지 농탕한 어른 흉내를 내는 그녀, 여전히 어떤 게 옳고 그른지 분별 능력이 없는 아이지만 다시는 아이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1부 마지막장이 영화처럼 내 가슴에 잔상으로 남는다.
81쪽 _ 그리고 한가운데에 앉은 누군가가, 놀라서 주의 깊게 살펴보는 표정을 한, 어깨가 가녀리고, 파란 수영복 아래 조그만 젖가슴을 가진 어느 계집애가, 그 계집애의 어리고 포동포동하고 빨간 얼굴이 백미러 속에서 자동차 안의 여러 얼굴들 중 여자 여섯과 비오츠 씨가 아닌 누군가를 찾고 있다. 서부의 가득한 햇살이 그 영상을 산산조각 낼 때까지, 그리고 그 영상이 파란 수영복, 조그만 젖가슴, 솔랑주 그녀의 얼굴, 그녀, 솔랑주를 포함할 때까지. 백미러 속에 있는 사람은 솔랑주라고 불리는 <나>이다. 그리고 나는 해변에서 열 살의 내 육체 속으로 돌아오고 있다. 피레네 산맥 밑에서 미래를 기다리는 나에게로.
▶열린책들 독자 서평단 3기◀
이 책은 출판사의 제공으로 읽고 남긴 리뷰임을 밝힙니다.
81쪽 _ 그리고 한가운데에 앉은 누군가가, 놀라서 주의 깊게 살펴보는 표정을 한, 어깨가 가녀리고, 파란 수영복 아래 조그만 젖가슴을 가진 어느 계집애가, 그 계집애의 어리고 포동포동하고 빨간 얼굴이 백미러 속에서 자동차 안의 여러 얼굴들 중 여자 여섯과 비오츠 씨가 아닌 누군가를 찾고 있다. 서부의 가득한 햇살이 그 영상을 산산조각 낼 때까지, 그리고 그 영상이 파란 수영복, 조그만 젖가슴, 솔랑주 그녀의 얼굴, 그녀, 솔랑주를 포함할 때까지. 백미러 속에 있는 사람은 솔랑주라고 불리는 <나>이다. 그리고 나는 해변에서 열 살의 내 육체 속으로 돌아오고 있다. 피레네 산맥 밑에서 미래를 기다리는 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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