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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었습니다 - 마스다 미리 산문집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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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만난 마스다 미리의 책. 40대에 들어선 작가가 겪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묶인 책이다. 앞서 읽은 ‘잠깐 저기까지만’도 그랬지만 미사여구가 없는 간결한 문장들과 평범한 이야기들이 매력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읽을수록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 중간에 책을 덮으려다 끝까지 읽어 보았다.

책 속에서 찾은 그녀와 나의 공통점은 다이어트와 영어공부에 대한 열의가 작심삼일이라는 것. 그녀가 영어회화를 신청하러 갔다가 생긴 에피소드를 읽을 땐 마치 나의 40대를 미리 보는 것 같아서 크게 소리 내서 웃기도 했다. 아직 30대이지만 평소에 40대가 멀다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녀의 고민들(특히 젊을 때는 전혀 고민해보지 않았던 것들)이 남일 같지 않았다. 부모님의 부양 문제, 나잇살, 나에 대한 반성, 건강에 대해 살짝 걱정이 있었지만 현재 아이와 가정에 온 정신을 쏟고 있는 터라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녀 덕분에 그런 것들을 남보다 앞서 (살짝)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나이를 먹어도 그대로여야 하는 게 있고, 나이를 먹으면 변해야 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마스다 미리는 곱게 잘 나이 들고 있는 것 같다. 책에 어떤 큰 지혜나 메시지가 담긴 건 아니지만 그녀의 나이듦, 살아감을 보며 이제 30대 중반에 들어서는 내가 잘 나이 들고 있는지 한 번 돌아보게 되었다. 결론은 좀 쌩뚱맞지만 나이들 수록 나잇값을 해야겠다는 것.^^

*내 비록 30대이지만 그녀와 혼연일체가 되어 공감했던 부분......

95쪽 _ 친한 친구와 가볍게 식사를 한 뒤, 아직 시간이 이르니 "차라도 마시자" 하고 카페에 들어간 것이 오후 10시 30분. 입으로는 "살 빼고 싶어, 살 빼고 싶어"하면서 생크림이 듬뿍 든 슈크림과 홍차 세트를 주문한 나였다.

그러고 보니 30대 때 마음먹은 일이 있었다.

40대가 되어도 50대가 되어도 체중은 55킬로그램을 넘지 않게 노력하자.

그런데 마흔두 살이 된 현재의 내 체중은 곧 58킬로그램.......

 

 

95쪽 _ 친한 친구와 가볍게 식사를 한 뒤, 아직 시간이 이르니 "차라도 마시자" 하고 카페에 들어간 것이 오후 10시 30분. 입으로는 "살 빼고 싶어, 살 빼고 싶어"하면서 생크림이 듬뿍 든 슈크림과 홍차 세트를 주문한 나였다.
그러고 보니 30대 때 마음먹은 일이 있었다.
40대가 되어도 50대가 되어도 체중은 55킬로그램을 넘지 않게 노력하자. 그런데 마흔두 살이 된 현재의 내 체중은 곧 58킬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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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저기까지만, - 혼자 여행하기 누군가와 여행하기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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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블로그를 하면서 알게 된 마스다 미리. ‘수짱’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가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몰면서 이웃 블로거의 책리뷰에서 종종 보았던 터라 그녀의 책이 궁금했다. 그녀의 여러 책 중에서 가장 먼저 읽게 된 것은 그녀의 여행기.

 

그녀의 여행은 무박 일정이나 1박 2일, 길어도 2박 3일이 넘지 않는 소박한 여행이 주를 이루고 있었고 제일 멀리 떠난 여행은 핀란드였다. 어떤 여행은 너무 짧아서 여행이라기보다 콧바람 쐬러 외출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소소한 발자취까지 모두 기록으로 남기는 습관은 본받고 싶었다. (당장 일주일 전에 어딜 갔었는지도 가물가물한 나)

지금까지 봐왔던 여행기는 여행지에서 현지인과 소통하고, 좌충우돌하며 여러 문제에 부딪치고 헤쳐 나가는 경험을 통해 삶에 대해 한 수 배우는 내용들이었다면, 그녀의 여행은 보고, 먹고, 쇼핑하고, 짧은 생각을 적은 게 다라서 조금 심심하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책장은 슉~슉 잘 넘어가는데 그 와중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그녀의 짧은 생각들이 있었다.

15쪽 _ 엄마는 이웃 사람들에게 나눠줄 선물을 많이 사서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진지한 얼굴로, “이제 가나자와에 올 일도 없을지 모르겠네” 하고 중얼거렸다.

무심결에 나온 말이어서 갑자기 울 뻔했다.

엄마는 올해 예순여덟 살이다. 그런 대사를 읊을 때가 되었다. 그럴 때 나는 내가 아직 한참 어린아이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엄마와 헤어질 날이 온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38쪽 _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친구란 참 좋구나, 하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더 나이를 먹어도 이렇게 나란히 작은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106쪽 _ “나도 올해 일흔 살이구나.”

전철 안에서 엄마가 해맑게 웃었다. 설날에 5일, 추석에 5일, 함께 여행을 한다고 해도 일 년에 만나는 날수는 15일 정도. 나는 엄마와 앞으로 며칠을 더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았다.

결혼을 하고 고향을 떠나니 친구와 엄마를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서 저 글들을 읽으며 살짝 울적해지기도 했다. 가볍게 독서하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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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내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최정수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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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프랑스의 여류작가는 아멜리 노통브만 알았는데 이 책을 통해 현재 프랑스 현대 문단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라는'마리 다리외세크'를 만났다. 책표지에 '가시내'라는 제목과 함께 여자의 브래지어와 팬티가 그려져 있는데 '가시내'라는 단어가 '계집아이'라는 뜻이기 때문인지 야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 속의 내용은 다소 파격적)

 

어릴 적부터 이웃집 남자 비오츠와 비오츠 노부인의 손에 길러진 솔랑주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여자아이이다. 그녀는 마을에서 축제가 있던 6월의 어느 날 밤 12시 15분 전 아빠가 술에 취해 홀딱 벗은 채 '그것'을 내놓고 달리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날 그녀의 첫 월경이 시작된다. 그게 무엇이든 '첫 경험'은 깊이 기억되게 마련인데 그녀는 한날 강렬한 두 개의 경험을 하게 된다.

 

시골 마을 '클레브'의 사춘기 아이들은 성별을 따지지 않고 그 관심이 '성'에 쏠려 있다. 특히 솔랑주는 성적인 호기심이 많고 그 문제에 예민하다. 그녀는 먼저 첫 경험을 한 친구들처럼 자신도 진정한 여자가 되고 싶다고 열망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사춘기 소녀답게 보고, 듣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게 제멋대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50쪽 "세상이 형태를, 소리를, 색을 펼친다. 하지만 그녀는 유리로 된 상자 안에 격리되어 있다"라는 글을 보며 사춘기라는 불완전한 시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본능과 쾌락을 좇다가 그녀의 세상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버릴까 불안했다.

 

어쨌든 평생 어린애로 있을 수 없기에 그녀는 남자들과 어설픈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여자로서의 자신감을 갖게 되는데(그녀가 느끼기엔 자신감이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기과시라고 느껴지는) 그 자신감을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키워주다시피 한 비오츠에게 난폭하게 휘두르는 모습이 못내 아쉬웠다. 비오츠가 늙은 노모와 늙은 개 륄리를 끝까지 거둔 것처럼 자기가 비오츠에게 어떤 짓을 하더라도 끝까지 책임질 거라는 확신이 있었던 걸까.

 

솔랑주에게 실제 일어난 일과 기억, 상상이 시간 순서와 상관없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처음에는 헷갈리기도 했지만 이 책 자체를 어느 여자애의 머릿속이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이후부터는 책읽기가 조금 수월했다. 그리고 밝히는, 까진 여자애의 표현이 날 것 그대로 쓰여 있어서 솔랑주가 여자가 되고 싶은 건지, 암캐가 되고 싶은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끝까지 농탕한 어른 흉내를 내는 그녀, 여전히 어떤 게 옳고 그른지 분별 능력이 없는 아이지만 다시는 아이로 돌아갈 수 없다. 그래서 1부 마지막장이 영화처럼 내 가슴에 잔상으로 남는다.

 

81쪽 _ 그리고 한가운데에 앉은 누군가가, 놀라서 주의 깊게 살펴보는 표정을 한, 어깨가 가녀리고, 파란 수영복 아래 조그만 젖가슴을 가진 어느 계집애가, 그 계집애의 어리고 포동포동하고 빨간 얼굴이 백미러 속에서 자동차 안의 여러 얼굴들 중 여자 여섯과 비오츠 씨가 아닌 누군가를 찾고 있다. 서부의 가득한 햇살이 그 영상을 산산조각 낼 때까지, 그리고 그 영상이 파란 수영복, 조그만 젖가슴, 솔랑주 그녀의 얼굴, 그녀, 솔랑주를 포함할 때까지. 백미러 속에 있는 사람은 솔랑주라고 불리는 <나>이다. 그리고 나는 해변에서 열 살의 내 육체 속으로 돌아오고 있다. 피레네 산맥 밑에서 미래를 기다리는 나에게로.

 

▶열린책들 독자 서평단 3기◀

이 책은 출판사의 제공으로 읽고 남긴 리뷰임을 밝힙니다.

 

 

81쪽 _ 그리고 한가운데에 앉은 누군가가, 놀라서 주의 깊게 살펴보는 표정을 한, 어깨가 가녀리고, 파란 수영복 아래 조그만 젖가슴을 가진 어느 계집애가, 그 계집애의 어리고 포동포동하고 빨간 얼굴이 백미러 속에서 자동차 안의 여러 얼굴들 중 여자 여섯과 비오츠 씨가 아닌 누군가를 찾고 있다. 서부의 가득한 햇살이 그 영상을 산산조각 낼 때까지, 그리고 그 영상이 파란 수영복, 조그만 젖가슴, 솔랑주 그녀의 얼굴, 그녀, 솔랑주를 포함할 때까지. 백미러 속에 있는 사람은 솔랑주라고 불리는 <나>이다. 그리고 나는 해변에서 열 살의 내 육체 속으로 돌아오고 있다. 피레네 산맥 밑에서 미래를 기다리는 나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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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다 - 특별한 기회에 쓴 글들
움베르토 에코 지음, 김희정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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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은근히 고집이 있는 편이라 평소 누군가에게 잘 설득되는 편이 아닌데 책을 읽을 때는 그 작가의 생각과 주장에 많이 공감하고 동화되는 편이다. 스스로 보통 사람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어떠한 것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고 성찰하고 깨우친 사람들의 생각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움베르토 에코의 ‘적을 만들다’를 읽기 전부터 나는 이미 에코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모조리 받아들이고 설득되겠다고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다가 포기한 기억이 있기에 이 책을 대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책 속에는 그가 간담회나 학회, 강연, 잡지 등에 기고한 14편의 글들이 실려 있다. 그런데 14편의 글들이 담고 있는 자료는 기본적으로 중세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고, 그의 지식 또한 너무나 방대해서 한 번만 읽고 이해하고 해석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면이 있었다. 여유를 갖고 다시 한 번 책장을 넘기자 그제야 에코가 해주는 이야기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서양사와 종교에 약한 나의 한계로 여전히 이해 못하는 부분이 많았지만 말이다.

내가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상상 천문학', '속담 따라 살기', '섬은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다. 고대 서적에 실린 세계지도에 기초한 작가의 무한 상상력에 빠져들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런 내용의 글을 좋아해서인지 지리학이나 천문학에 무지하지만 이 세 편의 글은 어렵지 않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그리고 관심 있게 읽었던 것은 '적을 만들다', '보물찾기', '천국 밖의 배아들', '검열과 침묵', '위키리크스에 대한 고찰'이다. 이 글들을 읽으며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 문제를 직시할 수 있었고 잠시나마 많은 생각에 잠겼다. 가장 관심 있었던 글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적을 만들다'와 '검열과 침묵'이었다. '적을 만들다'에서는 이름과 대상만 달랐을 뿐 우리에게는 항상 적이 있어왔고 적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는 것에 많이 놀랐다. 그리고 적을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우리들 서로가 적이고 지옥이라는 그의 마지막 문장에 반기를 들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쭉 빠지고 소름이 끼쳤다.

'검열과 침묵'에서는 소음이 사건보다 더 큰 소리를 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과 소음은 은폐와 같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글을 읽으면서 우리나라 언론에 대해서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온갖 종류의 정크 기사를 창출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그들이 하루 빨리 정부의 앵무새에서 벗어나 제 기능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태껏 살면서 이런 생각들을 깊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중세 철학자나 신학자의 이름과 그들의 주장이 낯설어서 글의 내용 자체가 나와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14편의 글을 모두 읽고 나자 마치 전쟁 같은 독서를 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에코가 아니었다면 어디서도 접하지 못했을 글들을 모두 읽고 나자 매우 뿌듯했고 나의 쪼그라든 뇌가 조금씩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쉬운 점이라면 나의 한계로 에코의 글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한 부분이다. 한 번 읽고 말 게 아니라 여러 번 읽어야 글들의 진가를 제대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여하튼 그의 통찰력과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그의 능력이 새삼 대단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열린책들 독자 서평단 3기◀

이 책은 출판사의 제공으로 읽고 남긴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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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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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페로가 지은 동명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어 21세기 잔혹동화로 재탄생시킨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 원작의 결말을 알고 있기에 아멜리 노통브가 그것을 어떻게 비틀었을지 더욱 기대하며 읽어보았다.

 

 

 

 

‘돈 엘레미리오’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고귀하다 생각하는 에스파냐 출신 귀족이다. 그는 사교생활에 따분함을 느끼고 20년째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그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미사에는 가지 않는다. 그가 원한다면 에스파냐인 신부가 그를 위해 미사를 올리러 찾아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필요할 때는 세입자 광고를 내서 여자가 찾아오도록 한다. 파리에서 제일 부유한 사람들만 사는 파리 7구의 호화로운 방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세놓으면 팍팍한 현실에 지친 여자들이 제 발로 그를 찾아온다.

 

 

 

 

9번째 세입자가 된 ‘사튀르닌’은 세입자 면접장 대기실에서 다른 여자로부터 돈 엘레미리오에 대한 풍문을 듣게 된다. 이미 8명의 여자가 그 방을 얻었는데 모두 사라졌다는 그리고 당신이 가장 젊고 예쁘기 때문에 방은 당신 차지가 될 거라는 이야기이다. 8명의 여자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있었지만 이미 월세 조건에 현혹된 그녀는 그런 이야기쯤은 개의치 않는다. 결국 여자의 말대로 방은 사튀르닌의 차지가 되었다.

 

 

 

 

원작의 푸른 수염 남편과 달리 돈 엘레미리오는 섬세하고 예민하며 주의 깊은 성격이었다. 그는 첫날부터 사튀르닌에게 사랑을 고백하더니 날이 갈수록 그 열정이 더해만 간다. 사튀르닌은 유혹하는 남자들을 끔찍하게 싫어하기에 그의 그런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점점 그의 열정과 배려에 빠져들고 만다. 그러나 그의 사랑에는 단 하나의 규칙이 존재했다. 어디든 돌아다녀도 좋으나 암실만은 안 된다는!! 그는 규칙이 명확하니 위험을 피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녀는 절대 암실에 들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그를 사랑하게 되자 그가 살인자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진다. 나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암실의 비밀을 알아야만 하는 사튀르닌과 암실과 실종된 여자들에 대해서 순순히 밝혀 오히려 사튀르닌을 자극하는 돈 엘레미리오의 설전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돈 엘레미리오는 사튀르닌에게 열렬히 사랑함을 주장하지만 그의 대화를 잘 읽어보면 ‘사랑하지만 권리를 위반할 경우 처벌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항상 들어있다.

 

 

 

 

13쪽 - “여긴 내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문이오. 잠겨있진 않소. 신뢰의 문제니까. 물론 이 방에 들어가는 건 금지요. 당신이 이 방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내가 알게 될 거고, 당신은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

 

 

103쪽 - “사랑은 믿음의 문제요. 믿음은 위험의 문제이고. 난 그 위험을 제거할 순 없었고.”

 

 

115쪽 -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시험하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합리화시키기 위한 이러한 트릭을 오히려 훤히 드러내보이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이미 불이 붙은 호기심을 더욱 부추기기에 나조차도 같은 여성으로서 시험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남성이어도 아마 암실을 향한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으리라. 자신의 환희를 위해 스스로 신이 되어 암실에 들어간 여자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처벌하는 그의 잔인한 모습과 열렬히 사랑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는 그의 이기적인 사랑방식이 안타깝기도 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사튀르닌이 얼핏 느낀 것처럼 그는 미치광이였던 걸까? 암실에 들어서는 순간 자기가 어떤 운명에 놓일지 아는 사튀르닌이 이를 극복하는 모습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마지막장을 읽는 순간 이게 누구를 위한 해피엔딩인지 잠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열린책들 독자 서평단 3기◀

이 책은 출판사의 제공으로 읽고 남긴 리뷰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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