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평점 :
샤를 페로가 지은 동명의 소설에서 모티브를 얻어 21세기 잔혹동화로 재탄생시킨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 원작의 결말을 알고 있기에 아멜리 노통브가 그것을 어떻게 비틀었을지 더욱 기대하며 읽어보았다.
‘돈 엘레미리오’는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고귀하다 생각하는 에스파냐 출신 귀족이다. 그는 사교생활에 따분함을 느끼고 20년째 집에서 두문불출하고 있다. 그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미사에는 가지 않는다. 그가 원한다면 에스파냐인 신부가 그를 위해 미사를 올리러 찾아오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필요할 때는 세입자 광고를 내서 여자가 찾아오도록 한다. 파리에서 제일 부유한 사람들만 사는 파리 7구의 호화로운 방을 파격적인 가격으로 세놓으면 팍팍한 현실에 지친 여자들이 제 발로 그를 찾아온다.
9번째 세입자가 된 ‘사튀르닌’은 세입자 면접장 대기실에서 다른 여자로부터 돈 엘레미리오에 대한 풍문을 듣게 된다. 이미 8명의 여자가 그 방을 얻었는데 모두 사라졌다는 그리고 당신이 가장 젊고 예쁘기 때문에 방은 당신 차지가 될 거라는 이야기이다. 8명의 여자가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당장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있었지만 이미 월세 조건에 현혹된 그녀는 그런 이야기쯤은 개의치 않는다. 결국 여자의 말대로 방은 사튀르닌의 차지가 되었다.
원작의 푸른 수염 남편과 달리 돈 엘레미리오는 섬세하고 예민하며 주의 깊은 성격이었다. 그는 첫날부터 사튀르닌에게 사랑을 고백하더니 날이 갈수록 그 열정이 더해만 간다. 사튀르닌은 유혹하는 남자들을 끔찍하게 싫어하기에 그의 그런 모습에 거부감을 느끼지만 점점 그의 열정과 배려에 빠져들고 만다. 그러나 그의 사랑에는 단 하나의 규칙이 존재했다. 어디든 돌아다녀도 좋으나 암실만은 안 된다는!! 그는 규칙이 명확하니 위험을 피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녀는 절대 암실에 들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하지만 그를 사랑하게 되자 그가 살인자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진다. 나는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암실의 비밀을 알아야만 하는 사튀르닌과 암실과 실종된 여자들에 대해서 순순히 밝혀 오히려 사튀르닌을 자극하는 돈 엘레미리오의 설전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돈 엘레미리오는 사튀르닌에게 열렬히 사랑함을 주장하지만 그의 대화를 잘 읽어보면 ‘사랑하지만 권리를 위반할 경우 처벌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항상 들어있다.
13쪽 - “여긴 내가 사진을 현상하는 암실의 문이오. 잠겨있진 않소. 신뢰의 문제니까. 물론 이 방에 들어가는 건 금지요. 당신이 이 방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내가 알게 될 거고, 당신은 크게 후회하게 될 거요.”
103쪽 - “사랑은 믿음의 문제요. 믿음은 위험의 문제이고. 난 그 위험을 제거할 순 없었고.”
115쪽 -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시험하오.”
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합리화시키기 위한 이러한 트릭을 오히려 훤히 드러내보이는 대담함을 보여준다. 이미 불이 붙은 호기심을 더욱 부추기기에 나조차도 같은 여성으로서 시험받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이 남성이어도 아마 암실을 향한 호기심을 억제할 수 없으리라. 자신의 환희를 위해 스스로 신이 되어 암실에 들어간 여자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처벌하는 그의 잔인한 모습과 열렬히 사랑하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는 그의 이기적인 사랑방식이 안타깝기도 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날 사튀르닌이 얼핏 느낀 것처럼 그는 미치광이였던 걸까? 암실에 들어서는 순간 자기가 어떤 운명에 놓일지 아는 사튀르닌이 이를 극복하는 모습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그러나 마지막장을 읽는 순간 이게 누구를 위한 해피엔딩인지 잠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열린책들 독자 서평단 3기◀
이 책은 출판사의 제공으로 읽고 남긴 리뷰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