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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 관하여
안현서 지음 / 박하 / 2015년 1월
평점 :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5/0202/pimg_7974541201146601.jpg)
책을 읽기 전부터 A씨가 도대체 누구일지 궁금했다. A씨는 영겁의 세월을 살아가는 존재로 영원한 시간을 갖고 사람들을
도와주는 신기한 사람, 비밀을 털어놓지 않아도 그 비밀을 알고 해결해준다는 인물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거리에서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었다. A씨를
매개체로 3편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각각의 줄거리가 대단히 몽환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느 한 편이 대단히 재미있다기보다 3편 다
인상적이고 재미있었다.
첫 번째 이야기 ‘개가 있었다’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6명의 존재 때문에 보통 생활이 불가능해진 소녀의
이야기다. 나는 다중인격이라는 것을 반전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로 처음 접했기 때문인지 지금까지도 다중인격은 무섭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개, 노인, 어린아이, 철학자, 염세적인 남자, 살인자라는 6명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녀를 보며 어린
작가의 통찰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내기가 점점 버거워지는 세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할지, 어떤 게 진정
나인지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 ‘고래를 찾아서’는 서로에게 상처로 남은 기억과 그 기억에 대한 비밀을 풀어내는 과정을 고래를 통해서
풀어낸다. 이안과 소현의 지극한 사랑 이야기를 보며 나 또한 나를 괴롭히는 감정들을 거부하고 외면하고 있지 않은지 떠올려보았다. 사람들은 각각의
인생을 살고, 그 삶속에서 생기는 사건과 그로 인해 느끼는 모든 감정들도 제각각이다. 좋은 것만 받아들이고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게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가장 몽환적이라고 느껴졌던 게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이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창밖의 풍경은 너무나 생경하고
주머니 속에는 목적지와 시간이 없는 기차표 한 장이 들어있다. 순간 들려오는 기차 경적 소리를 듣고 주인공은 본능적으로 기차를 타기 위해 30층
꼭대기에서 내려가기 시작한다. 계단을 통해 1층까지 내려가는 동안 눈앞에 펼쳐지는 계절의 변화!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뚜렷한 사계절이 있어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이었던 우리나라는 점점 그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봄과 가을이 극단적으로 짧아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계단을 한층, 한층
내려갈 때마다 펼쳐지는 계절의 변화와 그 표현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작가가 16세 소녀임을 떠올리니 문장의 성숙하고 섬세한 표현력과 함께 인간의 감정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동안 얼마나 어마무시한 독서력을 쌓았기에 불안정한 인간에게 용기를 주는 A씨라는 인물에 대한 책을 쓸 수 있었는지도 무척 궁금하다.
작가의 나이 때문에 이슈가 되었던 책이라 읽기 전 그리 큰 기대를 하진 않았지만 읽고 나니 앞으로의 작품에 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