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래빗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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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워서 읽다가 어느 부분에 다다르면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킨다!


소년 시절, 이사카 고타로는 자신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던 한 소설을 읽고 자신도 언젠가 독자들이 깜짝 놀랄 만한 소설을 쓰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 이사카 고타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와 오쿠다 히데오 같은 일본 문학계 거장의 이름을 언급할 때 꼭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일본 대표 작가로 우뚝 자리 잡았다. (아마 한국에선 최근 개봉한 <골든 슬럼버>로 더 유명할지도)소년 시절의 열망을 담아, 미스터리 소설의 대가 이사카 고타로가 내놓은 회심의 작품이자 작가 자신조차 소중하게 여긴다고 고백한 작품, <화이트 래빗>! 기대 되지 않을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재밌었다. 책을 덮고 나서도 머릿속으로 인물과 사건의 퍼즐 조각을 맞춰보느라 한참을 끙끙거려야 했지만, 이런 게 바로 미스터리를 읽는 묘미인가! 싶을 만큼 즐거웠으니까.

작가 김탁환은 소설을 쓰다가 어느 순간 인물들이 작가 자신의 손을 떠나 제멋대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사카 고타로는 철저히 인물을 탄생시키고 조종하는 신의 역할에 충실한 것 같다. 그는 밤하늘에서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신처럼 인물들을 자유자재로 움직이기도 하고, 때론 그들이 알아서 하도록 유유자적 방관하기도 한다. 일본작가에게 어울리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때론 판소리의 소리꾼처럼 "자, 이제 앞의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하면서 독자들을 시공간 사이로 이리저리 끌고 다닌다. 타고난 이야기꾼, 익살스런 재간둥이다.


유괴범의 아내가 유괴되었다!


어부가 물고기를 잡고, 회사원이 업무를 보듯 주인공 우사기타 역시 자신의 일에 충실한 평범한 직원이다. 다만 그  일이 유괴라는 게 흠이라면 흠이랄까! 그러던 어느날, 우사기타가 몸 담은 유괴조직의 자금이 몽땅 털리는 일이 일어난다. 조직의 두목 이나바는 돈을 빼돌리고 잠적한 오리오오리오를 잡기 위해 역설적으로 우사기타의 아내를 유괴하는! 기막힌 일을 저지른다! 기회는 딱 하루! 아내를 살리고 싶다면 오리오오리오를 찾아야만 한다!


신비한 별자리를 중심으로


이야기는 밤하늘을 수놓은 삼각형의 별, 오리온 자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우사기타의 아내는 오리온 자리에 얽힌 낭만적인 전설을 믿는 여자였고, 범인 오리오오리오는 이름처럼 오리온 자리에 관한 한 모르는 게 없는 별자리 마니아다. 하다못해 사건을 담당한 형사까지 별자리에 얽힌 사연이 있는, 이쯤되면 거의 주인공이 오리온자리는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될 정도. 작가의 이런 집요함 덕분에 소설의 분위기는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거기에 작가가 치밀하게 짜 놓은 반전과 오리온 자리 전설을 활용하는 복선까지 훌륭하다! 작가의 말처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마침내 아아 이래서 이렇게 된 거구나!" 하고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섣불리 머리 굴리다간 뒤통수 제대로 맞는 소설!


이 소설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사카 고타로의 회심의 역작인 만큼 혹시 이게 이렇게 된 걸까! 추측하다가 헛다리만 짚을 수도! 그렇다고 느긋하게 보다가는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게 되는 충격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러나 저러나 작가가 그려놓은 큰 그림에 일단은 자유롭게 몸을 맡겨 보는 게 가장 좋다. 헛다리를 짚어도! 짜릿한 반전에 충격을 받아도! 이 모두 즐겁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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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노는 정원 - 딱 일 년만 그곳에 살기로 했다
미야시타 나츠 지음, 권남희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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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태어나 스무 살이 넘어서야 도시로 이사하게 된 나는, 솔직히 도시가 더 좋다^ㅡ^

도시 생활 10년도 안되었지만 시내로 나가려면 1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가야 했던 시골과 달리 

조금만 걸어 나가면 도시엔 극장과 쇼핑몰, 10분 간격으로 버스와 지하철이 다니는 편리한 교통, 맛있는 먹거리 등이 있으니까. 물론 도시 생활도 팍팍한 점이 있긴 하지만! 시골에서 살아본 내가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처럼, 지금 티비만 틀면 나오는 산촌과 어촌, 농촌의 모습처럼 시골이 다 느긋하고 여유로운 낙원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물론 내가 이렇게 못 박아두지 않더라도 다들 잘 알 것이다. 시골 생활을 동경하는 게 아니라 지금보다 좀 더 여유롭고 느긋한 삶을 동경한다는 것을. 그런 삶은 도시에서 사는 평범한 사람들에겐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티비 속 연예인들의 한가롭고 걱정 없는 전원 생활을 입 벌리고 바라본다는 것을. 도시에선 어른들도 바쁘지만 아이들도 엄청 바쁘다. 학교가 끝나면 부리나케 학원으로 달려가야 하고 밤늦게까지 학교와 학원 숙제에 시달려야 한다. 성인이라면 유년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것이다. 그 소중한 시기에 반짝반짝하게 놀아 본 경험, 친구와 소소하게 수다를 떨어 본 경험이 별로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면 아이들을 보는 내 눈빛이 조금 서글퍼지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 미야시타 나츠는 나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던(?)남편을 둔!!! 도시 생활을 좋아하는 여자다.

저자가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도시 생활에 에너지가 몽땅 방전되어 버린 남편이 가자고 해서 한순간에 덜컥 따라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엄청 툴툴대거나 못마땅해한 것은 아니지만 도시 생활에 익숙하고 만족하고 있던 저자로서는 굉장히 난감하고 걱정도 많았을 것이다. 당장 애들 학교는 어떻게 하고, 집이며 직장은 어떻게 구할 것인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면 그 뒷감당은? 



시골 출신으로서 저자가 했을 걱정이 구구절절 공감이 갔다. 남편이 조금 이기적이게까지 보이기 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웬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아이들까지 시골, 아니 그보다 더 산꼭대기에 있는 산촌마을로 들어가는 것을 반가워한다. 우등생인 첫째까지! 


기왕 이렇게 된 거 살아보는 거다. 산촌에서 딱 1년만! 저자는 굳게 결심하고 가족들과 함께 신들이 노는 정원, 기무이민타에 발을 딛게 된다. 신들이 노는 정원이라는 아름다운 말처럼 일본 북쪽에 있는 산 속 마을은 눈도 많이 내리고, 자연도 깨끗하고, 사람도 거의 살지 않는 평화롭고 조용한 곳이다. 


다행히도 근처에서 직장을 구한 남편과 일본에서 꽤 유명한 작가인 자신의 경력 덕분에 에세이를 쓰면서 수입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학교 근처에 있는 낡은 집도 대여할 수 있었고 아이들도 무사히 학교에 적응해간다. 의식주가 해결이 되니까 저자도 다소 걱정이 해소가 되었는지 글에서 여유롭고 평화로운 기분이 느껴졌다. 


도시에서 제대로 놀지 못했을 아이들도 전교생이 30명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산촌 학교를 다니면서 친구들과 돈독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생활을 하게 된다. 산촌까지 기어이 살러 들어온 사람들답게 이웃들도 다정하고 재밌고 여유가 있다. 청정 자연에서 직접 기른 소를 잡아 스테이크를 해먹기도 하고 +_+ 주위에서 먹을 수 있는 풀을 뜯어 바삭바삭 튀김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 또 아이들 덕분에 엄마이자 작가인 미야시타 나츠가 겪는 곤란한 상황들이 소소한 재미도 준다.



예능처럼 환상적이거나 드라마처럼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 현실적이고 소중한 행복들이 책 속에 담겨 있다. 티비 속에서 연출 된 장면에 조금 이물감을 느꼈던 독자라면, 이 책에선 맑고 담백한 뭇국(!)을 먹는 것처럼 깔끔하고 따뜻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 김치찌개를 만들어 먹는 장면도 나왔는데 한국인으로서 뭔가  신기하고 흐믓했달까. 딱 1년만 살기로 결심했던 것처럼 작가의 가족은 다시 도시로 돌아가지만 오히려 그런 끝이 있어서 더 좋았다. 과장도, 환상도 없이 마치 잠깐 소풍을 떠났던 것처럼 느껴져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정말 딱 일 년 만, 신들의 정원 속에 인간으로 잠깐 들어가 살면서 느꼈던 소소한 행복, 살짝 훔쳐본 신들의 여유 덕분에 책 속의 가족들도, 책을 읽는 나도 모두 따뜻하고 반짝반짝 했던 시간이었다. 효리네 민박에선 아이유랑 박보검이 책을 한 권 씩 읽는 장면이 나오던데! 다가오는 황금 연휴에 나들이라도 가게 된다면 이 책 한 권 챙겨가는 게 어떨까? 책을 읽는 그 곳이 아마 '신들이 노는 정원'이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될 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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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철학 - 깊은 공부, 진짜 공부를 위한 첫걸음
지바 마사야 지음, 박제이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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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다양할 것 같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나처럼 10여 년 이상을 을 꼬박 매달려야 했던 입시와 시험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학원강사로 일하고 있는 나도 공부가 즐겁지 않은데 하루종일 문제집을 들여다봐야 하는 아이들은 오죽할까, 하는 안타까운 감정도 느낄 것이다. 그런데 별 다를 바 없는 옆 나라 일본에서는 <공부의 철학>이라고 딱 써붙인 이 책에 열광하다니. 


이 책을 읽다보면 공부를 '입시공부'에만 한정지었던 것이 민망해진다. 어릴 적. 아버지는 뙤약볕 아래 벼를 베시면서 내게 말씀하셨다. 세상 모든 것이 공부라고. 그러니 벼를 베고 일을 하는 것도 공부라고. 그 땐 잘 이해하지 못했던 그 말을 이 책을 통해 다시 듣게 된다. 아버지의 음성은 아니지만 이 책의 저자 지바 마사야도 그렇게 말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이 공부다' 그리고 '공부는 동조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시작이다' 


뉴스의 댓글에 쉽게 가치관을 정하고 다수의 여론에 휩쓸리고, 사회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사람들을 향해 '요즘 사람들은 왜 이렇게 불만이 많아'라고 중얼거려 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만 한다. 지바 마사야가 말한 '동조'에는 '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대로 살지 않은 사람, 내 가치관대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한순간에 무언가를 깨닫기란 어려운 법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내가 얼마나 세상을 곧이곧대로 믿어왔는지, 회의하지 않고 순진하게 따르기만 했는지 부끄러워진다.


저자는 이렇게도 덧붙인다. 의심을 품고 세상을 바라보다보면 사람들의 비아냥이나 따가운 눈초리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이 또한 긍정적인 현상이다. 내가 다수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지조대로 살고 있다는 뜻이니까 말이다. 한 가지 더 흥미로웠던 것은 공부는 지식을 더 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삭제하기 위해 하는 것이라는 역발상이었다. 즉 공부는 내가 몰랐던 것, 내가 잘못 생각해 왔던 것을 깨고 부수는 과정이다. 빈틈 없이 쌓인 지식이 아니라 비움으로써 지식을 넓히기 위한 과정.


"공부의 철학"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시험 문제를 풀 수 있도록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어른을 위한 공부법, 그게 바로 <공부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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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 힘겨운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철학 처방전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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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절망감에 빠져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너무나 큰 불행을 감당하고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그냥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그곳이 죽음의 골짜기라도 괜찮다고 여길 만큼 나는 정신도 몸도 피폐한 상태였다. 눈물이 다 말라서 더 이상 흐를 것도 남지 않았을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의 그림자가 찾아오기 전 화창한 어느 날에 서재에 들여놓은 책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마음 먹고 있을 때 잔인한 운명처럼 불행이 날 덮친 것이다. 


물론 그 절망의 골짜기에서 이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이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라는 긍정적인 제목이 와 닿을 리 있겠는가. 나는 너무나 평범하고 나약한 사람이라 책 한 권에 마음이 변하고 태도를 고쳐먹는 위인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이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이 책 덕분에 내가 살았다고 쓰려는 게 아니라 날 덮친 폭풍우가 지나간 후에 돌아보니 이 책에는 나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남은'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폭풍우 속에 있을 때는 죽음이 임박한 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바탕 고난이 휘몰아치고 난 뒤엔 폐허가 된 그 속에서 나를 비롯해 살아남은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인 것이다.


책의 저자 오카다 다카시는 "애착수업",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등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다. 그는 불행과 절망을 겪은 사람일 수록 논리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설득하는 것보다 형이상학적인 철학으로 상대를 다독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상대는 이미 정신과 마음이 황폐해져 있기 때문에 이성으로 다가가는 것보다 그가 살아있어야만 하는 '기분'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 책에 쓴 이야기들이 실현성 없는 철학이란 소리는 결코 아니다. 그는 오히려 누군가의 실제 인생에서 생긴 현실의 고뇌를 바탕으로 그 고뇌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적어도 고통을 겪는 한 인간을 구제했던 살아 있는 철학을 말한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철학자 쇼펜하우어,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냈던 마거릿 미드같은 위인부터 남편에게 온 삶을 헌신한 여자, 자살 시도까지 했던 남자 T 등 자신이 직접 상담했던 일반인의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례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특히 쇼펜하우어 같은 경우가 기억에 남는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그는 그 고통을 극복하고 이겨냈다기보단 오히려 안으로 삭히고 감내한 끝에 염세주의 철학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사람들은 말한다. "극복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오히려 그런 응원이 상대를 더 위축되게 만들 때가 많다. 저자의 의도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쇼펜하우어의 일화를 읽고, 마냥 자신을 채찍질 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그 고통을 간신히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진짜 필요한 사람들은 누굴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불행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처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땐 책이 아니라 '사람'이 가서 위로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은 '앞으로 불행해 질 사람들'이다. 이상한 소리라고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평범한 우리들은 달콤한 행복보다 쓰고 떫은 고통들을 더 많이 겪지 않는가. 우리 앞엔 앞으로 많은 불행들이 있을 것이다. 크기와 상관없이. 그러니 미리 예방 주사를 맞는다고 생각하자. 우리보다 먼저 내가 겪은 고통, 내가 겪을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앞으로 내게 다가올 지 모르는 불행들에 대비하자. 이 책이 훌륭한 처방전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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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보이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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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누구나 그것에 대해 말하지만 아무도 읽어보지 않은 책"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나 역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읽어보지 않았다. 그나마 덜 부끄러운 거라면 오셀로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것에 대해 안다고 떠벌리지 않은 것이랄까.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아도 누구나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 고전을 관통하는 주제가 시대를 넘어 계속 빛을 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악당의 꿰임에 속아 아내를 죽인 남편 오셀로를 그린 소설로 믿음과 불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셰익스피어는 주인공 오셀로와 악당 이아고를 통해 보여준다. 오셀로의 플롯과 주제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뉴보이도 믿음, 의심, 파멸 등의 큰 줄기를 공유하지만 슈발리에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작품의 무대를 1970년대 워싱턴의 작은 초등학교로 옮기고, 백인 오셀로를 흑인 소년 오세이 코코테로 바꿈으로써 원작보다 좀 더 복잡하고, 현대적인 주제로 도약했다. 


오세이는 교정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아이들과 교사에게 전시된다. 그건 이후 오세이의 여자친구가 될 디처럼 순진한 호기심이기도 하고, 미미나 블랑카처럼 낯설고 기이한 것이거나 이언처럼 혼내주고 싶은 적대감으로 드러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전시되면서 다른 취급을 받는 오세이에겐 모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지금에 맞게 생각해보면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등 소수자를 박물관의 원시부족처럼 관람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유가 극단적일 지 모르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인 그를 흥미로운 모형으로, 낯설고 기이한 것으로,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것으로 여기지 않겠는가. 특히 혐오와 차별이 더욱 적나라하고 손쉽게 배설되는 현대에선 초등학생들의 적대감보다 더 노골적이고 저열한 혐오가 벌어진다. 


결국 다수자가 소수자를 향해 드러내는 이런 차별감정은 소수자를 더욱 고립시키고 마침내 그저 "평범한"아이가 되고 싶었던 오세이를 폭력의 가해자로, 새드엔딩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만다. 누명을 쓴 오세이를 향해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혹은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단 듯 경멸 어린 목소리로 소리치는 브라반트 선생의 비명은 사실 오세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소리치는 메아리나 마찬가지다.


"거기서 내려와, 이 깜둥이 녀석아!"


그러나 언제든 그들을 끌어내릴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은, 사건의 건수를 찾아 눈을 번뜩이고 있었던 것은, 그래서 사정없이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은 은밀하고 집요하게 소수자를 코너로 몰아붙인 가해자,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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