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보이 호가스 셰익스피어 시리즈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박현주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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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란 누구나 그것에 대해 말하지만 아무도 읽어보지 않은 책"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나 역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읽어보지 않았다. 그나마 덜 부끄러운 거라면 오셀로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것에 대해 안다고 떠벌리지 않은 것이랄까. 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아도 누구나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근거는 그 고전을 관통하는 주제가 시대를 넘어 계속 빛을 발하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는 악당의 꿰임에 속아 아내를 죽인 남편 오셀로를 그린 소설로 믿음과 불신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셰익스피어는 주인공 오셀로와 악당 이아고를 통해 보여준다. 오셀로의 플롯과 주제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뉴보이도 믿음, 의심, 파멸 등의 큰 줄기를 공유하지만 슈발리에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작품의 무대를 1970년대 워싱턴의 작은 초등학교로 옮기고, 백인 오셀로를 흑인 소년 오세이 코코테로 바꿈으로써 원작보다 좀 더 복잡하고, 현대적인 주제로 도약했다. 


오세이는 교정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동물원의 원숭이처럼 아이들과 교사에게 전시된다. 그건 이후 오세이의 여자친구가 될 디처럼 순진한 호기심이기도 하고, 미미나 블랑카처럼 낯설고 기이한 것이거나 이언처럼 혼내주고 싶은 적대감으로 드러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전시되면서 다른 취급을 받는 오세이에겐 모두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 상황을 지금에 맞게 생각해보면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등 소수자를 박물관의 원시부족처럼 관람하는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비유가 극단적일 지 모르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인 그를 흥미로운 모형으로, 낯설고 기이한 것으로,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것으로 여기지 않겠는가. 특히 혐오와 차별이 더욱 적나라하고 손쉽게 배설되는 현대에선 초등학생들의 적대감보다 더 노골적이고 저열한 혐오가 벌어진다. 


결국 다수자가 소수자를 향해 드러내는 이런 차별감정은 소수자를 더욱 고립시키고 마침내 그저 "평범한"아이가 되고 싶었던 오세이를 폭력의 가해자로, 새드엔딩의 주인공으로 만들고 만다. 누명을 쓴 오세이를 향해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혹은 일어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단 듯 경멸 어린 목소리로 소리치는 브라반트 선생의 비명은 사실 오세이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소리치는 메아리나 마찬가지다.


"거기서 내려와, 이 깜둥이 녀석아!"


그러나 언제든 그들을 끌어내릴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은, 사건의 건수를 찾아 눈을 번뜩이고 있었던 것은, 그래서 사정없이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은 은밀하고 집요하게 소수자를 코너로 몰아붙인 가해자,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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