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 - 힘겨운 삶에 지친 이들을 위한 철학 처방전
오카다 다카시 지음, 홍성민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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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절망감에 빠져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너무나 큰 불행을 감당하고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그냥 어디로든 도망치고 싶었다. 그곳이 죽음의 골짜기라도 괜찮다고 여길 만큼 나는 정신도 몸도 피폐한 상태였다. 눈물이 다 말라서 더 이상 흐를 것도 남지 않았을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의 그림자가 찾아오기 전 화창한 어느 날에 서재에 들여놓은 책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마음 먹고 있을 때 잔인한 운명처럼 불행이 날 덮친 것이다. 


물론 그 절망의 골짜기에서 이 책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이미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이유'라는 긍정적인 제목이 와 닿을 리 있겠는가. 나는 너무나 평범하고 나약한 사람이라 책 한 권에 마음이 변하고 태도를 고쳐먹는 위인이 아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이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이 책 덕분에 내가 살았다고 쓰려는 게 아니라 날 덮친 폭풍우가 지나간 후에 돌아보니 이 책에는 나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살아남은'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폭풍우 속에 있을 때는 죽음이 임박한 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바탕 고난이 휘몰아치고 난 뒤엔 폐허가 된 그 속에서 나를 비롯해 살아남은 사람들을 볼 수 있게 된다. 


나도, 당신도, 우리 모두가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인 것이다.


책의 저자 오카다 다카시는 "애착수업", "나는 왜 혼자가 편할까" 등의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이자 정신과 의사다. 그는 불행과 절망을 겪은 사람일 수록 논리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설득하는 것보다 형이상학적인 철학으로 상대를 다독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상대는 이미 정신과 마음이 황폐해져 있기 때문에 이성으로 다가가는 것보다 그가 살아있어야만 하는 '기분'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 책에 쓴 이야기들이 실현성 없는 철학이란 소리는 결코 아니다. 그는 오히려 누군가의 실제 인생에서 생긴 현실의 고뇌를 바탕으로 그 고뇌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적어도 고통을 겪는 한 인간을 구제했던 살아 있는 철학을 말한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철학자 쇼펜하우어, 불행한 결혼생활을 보냈던 마거릿 미드같은 위인부터 남편에게 온 삶을 헌신한 여자, 자살 시도까지 했던 남자 T 등 자신이 직접 상담했던 일반인의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례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특히 쇼펜하우어 같은 경우가 기억에 남는다. 엄격한 부모 밑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그는 그 고통을 극복하고 이겨냈다기보단 오히려 안으로 삭히고 감내한 끝에 염세주의 철학이라는 업적을 남겼다. 사람들은 말한다. "극복할 수 있다.", "이겨낼 수 있다." 그러나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오히려 그런 응원이 상대를 더 위축되게 만들 때가 많다. 저자의 의도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쇼펜하우어의 일화를 읽고, 마냥 자신을 채찍질 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님을 새삼 깨달았다. 그 고통을 간신히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진짜 필요한 사람들은 누굴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금'불행한 사람들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슬픔에 빠져 있을 때 이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것처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땐 책이 아니라 '사람'이 가서 위로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이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은 '앞으로 불행해 질 사람들'이다. 이상한 소리라고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평범한 우리들은 달콤한 행복보다 쓰고 떫은 고통들을 더 많이 겪지 않는가. 우리 앞엔 앞으로 많은 불행들이 있을 것이다. 크기와 상관없이. 그러니 미리 예방 주사를 맞는다고 생각하자. 우리보다 먼저 내가 겪은 고통, 내가 겪을 고통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앞으로 내게 다가올 지 모르는 불행들에 대비하자. 이 책이 훌륭한 처방전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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