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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빛 - 검은 그림자의 전설 ㅣ 안개 3부작 1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송병선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평점 :
9월의 빛
온 나라가 부산 김길태 사건으로 뒤숭숭하다. 한 여중생을 성폭행 그리고 살인하여 시체를 유기한 이번 사건으로 한국사회에 던져진 충격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성폭력범들의 전자발찌 도입, 사형제도의 부활등 여러 가지 무거운 처벌 사항을 두고 각계각층에서 논란을 이어가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옛말이 있다.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는 이러한 중범죄들이 생기는 이유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9월의 빛은 한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인생 전부를 자신이 만든 옥죄의 범주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 남자의 슬픈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유소년 시절의 인격이 주변 환경에 따라 어떻게 형성이 되고 그로 인해 삶의 얼마나 어긋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그것은 주인공 라자루스 얀의 잘못으로 치부하기에는 그가 살아온 인생이 너무 불쌍하게만 느껴진다.
이 책의 중요한 키는 크래븐 무어 대저택의 주인 라자루스 얀과 그의 이중인격인 그림자가 가지고 있다. 라자루스 얀은 어린 시절 신경쇠약의 어머니에게 받은 충격적 일들로 인해 해리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해리성 장애는 한 사람 안에 다른 둘의 인격이 존재하는 것으로 각기 다른 정체감과 인격 상태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보통 이 해리성 장애는 성장 시기에 어떠한 충격적 사건으로 가지게 된다고 보고되어져 있다. 어릴 적 지하실에 감금이 되고 가혹한 체벌을 받아야 했던 라자루스 얀. 그리고 지하실에 감금된 상태로 어머니가 죽음으로 일주일 이상 지하실에서 어둠과 홀로 보내며 자신만이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어릴 적 동경하던 세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장난감 나라를 어릴 적 가장 동경하던 세상 중 하나였다. 주인공은 그러한 유소년 시절의 아픔을 파리에서 전설로 내려오던 다니엘 호프만의 장난감 황제 이야기를 자신과 동일시하게 여기게 된다. 캄캄한 지하실속에서 다니엘 호프만의 환상을 자신의 안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의 또 다른 인격체를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 그림자라 명명한 인격과의 약속 그것은 라자루스 얀의 마음을 다른 이에게 절대 주지 않는 것. 라자루스 얀에게 그것은 어머니 사랑의 부재에 대한 증오심이었을 것이다.
알렉산드라 알마 말티스. 라자루스 얀의 아내. 유소년 시절 또 다른 자신과의 약속을 오직 이 한 여인 때문에 져버리게 되는 라자루스 얀. 그리고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 다시 살아난 그림자. 그리고 죽음. 절대 사랑하지 못하는 병. 차가워져 버린 아픔과 상처라는 자기의 유리 병속에 갇혀 버린 라자루스 얀.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또 다른 여인의 죽음. 그리고 이어지는 수많은 이야기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자칫 지루하고 어려울지 모르는 이야기들을 정말 환상적으로 엮어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한 영혼이 어떻게 상처를 받을 수 있으면 그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생겨 날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이 바로 9월의 빛이다. 아무런 상관도 아무런 연결 고리도 없는 듯 하지만 모든 이야기는 사랑이라는 주제를 떠안고 뭉쳐져 가게 만들어 놓았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많은 중범죄들과 범죄자들의 일생을 돌아보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유소년 시절 학대를 당한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부모와의 사랑의 부재, 친구들과의 사랑의 부재, 사람들과의 원만하지 못한 대인 관계가 한 사람을 최악의 범죄자로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중범죄를 일으킨 장본인들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어려운 소재를 가지고 여러 가지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전혀 다른 이야기 세상으로 초대를 하는 작가의 글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소설이 만약 영화로 만들어 진다면 꽤 괜찮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주얼한 스토리 전개와 구성이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의 소설이 기대가 된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충분히 기대해 볼만한 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