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 담쟁이 문고
이순원 지음 / 실천문학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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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워낭




워낭 - [명사]마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단 방울. 또는 마소의 턱 아래에 늘어뜨린 쇠고리. (국어사전)




2008년 최고의 다큐멘터리 영화로 손꼽히는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 이 영화가 왜 그렇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격찬을 보낸 작품이다. 덕분에 워낭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워낭은 우리네 정겨운 소들의 목에 걸어 놓은 방울이다. 딸랑딸랑 소들이 한걸음 옮길 때마다 울려 퍼지는 소리는 참 또랑또랑 하면서도 정겨운 소리다. 요즘 같이 도시문화가 발달된 사회에서는 워낭 소리를 접하는 것은 쉽지가 않다. 물론 시골에 가도 워낭을 차고 있지 않은 소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어릴 적 들려오던 워낭 소리가 그리워진다.




이순원 작의 워낭은 영화 워낭과는 또 다른 느낌의 우리 시골 풍경을 보여준다. 사실 이 책은 가족성장 소설이라고 하지만 한국의 아픈 역사들을 간직한 역사소설이라 해도 무방 할 듯하다. 조선 말기 갑신정변에서 현대의 광화문 촛불까지 아우르는 시간대는 정말 놀랍기만 하다. 저자가 소라는 특수한 소재를 선택한 것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이슈는 무엇보다 광우병이었다. 물론 요즘은 좀 잠잠하지만 미국소 수입에 대한 온갖 소문과 진실 공방으로 한국 사회는 사분오열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 정부와,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소문에 매여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사람들. 서로의 주장과 생각이 옳다고 말만하는 그들 속에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차무집네. 이 소설의 주축을 이루어 가는 주인공들. 가난하던 시절 남의 집 암소를 대신 키워주면서 그 암소가 낳은 송아지는 자신들이 가지고 암소는 다시 돌려주는 그러한 임대형식의 소를 그릿소라 부른다. 그리고 그 차무집네에서 처음 낳은 송아지 흰별소. 그리고 흰별소를 낳은 많은 송아지들과 그들에게서 펼쳐지는 이야기. 이들 소들의 이름은 참 특이하기만 하다.




한가롭게 풀을 뜯어 먹던 우리네 농경 모습의 소. 이런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한 가족으로 여기며 정성껏 보살피며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친구로서의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오로지 돈 벌이에 현혹 되어 집단 사육으로 소들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 그리고 워낭은 점차 사라져 가고 그것을 대신해 디지털 문명의 산물이 바코드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인류에게 소라는 동물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하지만 그 특별함을 더욱 특별하게 생각했던 민족이 우리 한국인이다. 우리 민족에게 소는 부의 상징이었다. 우리말에서 우두머리라는 말의 의미 역시 소의 머리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농업 사회에 치중 했던 과거 우리 민족의 삶에 소가 가지는 위치는 확고부동했다. 그 만큼 소는 귀한 존재였고 가족과 같은 소중한 의미를 가졌다.




이제 시대는 변했다. 더 이상 우리에게 소는 그 이상의 의미를 주지 못한다.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서 희생당하는 존재로만 여겨지게 되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우리는 그 옛날 울려 퍼지던 워낭을 마음속에 그리워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순원의 워낭. 차무집네와 오랜 시간을 같이한 흰별소 가족. 그들이 지나온 세월은 그리움의 세월이며 아련한 추억의 향수이다. 옛 모습의 추억이 사라져 버린 요즘 정겹게 울려 퍼지던 워낭 소리가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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