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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 1 - 神秘
하병무 지음 / 밝은세상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신비 1,2
"武神秘記-무신비기 풀이하자면 싸움의 신, 혹은 전쟁의 신에 대한 비밀스런 기록"(1권P17). 이 소설의 제목은 신비이다. 신비는 무신비기 네 글자가 온전한 단어이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앞과 뒷 글자가 지워져 신비라는 글자만 남게 되었다. 때로는 신화 같으며, 때로는 무협소설 같은 뉘앙스를 자아내는 제목 신비. 사건의 발단은 저자가 백두산 여행길에서 어느 노인을 만나면서 시작이 된다. 이런 것을 기연이라고 하는가. 우연을 가장한 운명적인 만남으로 신비라는 제목을 가진 고서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장구한 이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두절이라는 사내의 회고록이다. 두절이라는 말은 머리를 잘라 은혜에 보답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어릴 적 본명은 생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 어린 시절 주인공 담덕에게 하사 받은 이름이다. 비적떼들에게 멸절을 당한 가문에서 홀로 살아남아 담덕과 함께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나이. 주인과 같은 담덕과 그의 주군의 여인 초영. 그리고 그들을 가만히 뒤에서 바라만 봐야 하는 지고지순한 뜨거운 사랑을 간직한 사내 두절.
"그런데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있어. 내가 그 사람 곁에 다가갔을 때 그 사람이 가만히 있는 것. 내가 그 사람의 손을 잡았을 때 그 사람이 가만히 있는 것."(1권P215)
광개토태왕 담덕은 39세에 정말 요절한 것일까? 그의 윗대 왕들도 아래의 왕들도 오랜 기간 장수를 하였고 담덕이 왕위에 올라 그가 죽기 전 2년은 고구려의 태평성대였음에도 그는 왜 죽은 것일까? 이 책의 시작은 이렇게 의문점을 달면서 시작된다. 무신비기라 불리는 광개토태왕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들이 1,600년이 흘러서야 밝혀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그는 죽은 것이 아니다. 단지 사랑하는 한 여인 백잔(백제)의 자손 초영을 위해 그는 떠난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왕이 되었어도 세상의 모든 권세를 손에 쥐고 있어도 행복하지 않다. 그 이유는 좋아하는 사람과 늘 함께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광개토태왕 담덕. 그의 출생은 어떠한가. 그의 친아버지는 대원수 이련 훗날 고국양왕이며 그의 양아버지는 고구려의 17대 왕인 소수림왕이다. 백잔과의 전투에서 심하게 다친 소수림왕은 대를 이을 수 없었다. 하여 그의 후계자를 위해 동생인 이련에게 아들을 낳아 줄 것을 부탁한다. 그리고 태어난 아이 담덕. 도를 쫓아 말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담덕. 당대 최고의 무신왕이라 불리는 광개토태왕의 아명은 그렇게 수수한 이름을 가졌던 것이다.
운명적인 만남. 그것은 광개토태왕과 두절 그리고 상대국인 백잔의 여인 초영. 그들은 정말 운명 같이 만나 운명 같은 삶을 살았고 운명 같은 헤어짐을 가져야 했다. 이러한 부분들은 남자의 향기에서도 잘 보여준 하병무만의 특색이다. 딱딱하고 지루할 남자들만의 이야기 속에 운명적 사랑이라는 아픔을 들어가게 되면서 이 이야기들은 구구절절한 이야기로 변모를 거듭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림자는 해가 있을 땐 보이지만 해가 저물면 보이지 않는다. 그림자는 또 그림자의 주인이 건재할 때만 존재하지 주인이 사라지면 그 그림자도 자취를 감춘다. "(2권P229)
빛이 담덕이라면 어두움은 두절이다. 왕이 담덕이라면 그의 분신은 두절이다. 비록 왕과 신하의 신분이 있지만 그들은 신분과 계층을 뛰어 넘는 우정을 선사한다. 진정한 남자들의 삶이 무엇인지 남자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담덕과 두절. 수 많은 전장과 죽을 고비에서 함께 하며 세상에 둘도 없는 사이로 변모해 가는 그들을 볼 때 이것이 운명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오랜만에 돌아온 하병무 작가가 다소 특이한 소재를 가지고 우리에게 돌아 온 것 같다. 중국의 동북공정으로 고조 되어져 있는 국내 사학계를 생각하며 한숨만 나올 뿐인데 그 오래전 광활한 대지를 누비면 다녔던 고구려인들의 기상을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 진다. 가장 치열한 곳에서 가장 위험한 전쟁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고구려의 전사들. 그들이 가진 내면의 목소리를 이곳에서 들을 수 있으며, 투박할 것 같은 그들의 삶이지만 그들이 가진 것은 어느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뜨거운 우정이며 애절한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