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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빛 ㅣ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검은 빛
"아빠는 아름다운 저 섬에서 태어났어. 저기서 태어나서 우리한테 온 거야."(P358)
미하마[美浜]섬. 아름다운 물가라는 뜻을 가진 작은 섬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고즈넉하며 조용한 작은 섬 미하마. 그곳에 살고 있는 주인공 노부유키, 미키, 다스쿠. 중학생인 이들은 아름다운 섬에서 다른 이들과 같이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 불과하다. 동갑인 미키를 좋아하는 노부유키. 그리고 항상 노부유키를 따라다는 다스쿠. 근래에 보기 힘든 미모를 자랑하는 여학생 미키. 아무 일이 없는 듯, 조용한 이 작은 섬에 무언가 불어 닥칠 듯하다. 폭풍전 고요라 할까. 오히려 아무 일이 없는 이 섬이 앞으로 다가올 끔찍하고 더러운 일들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은 언젠가는 찾아올 아침의 빛이었다. 진실이 눈앞에 훤히 드러나는 순간이 조금이라도 멀리 있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P41)
아무런 일이 없을 것만 같던 그곳에 검고 큰 늑대와 같은 무언가가 덮치기 시작한다. 도망가면 도망갈수록 더욱 크고 무섭게 밀어 닥치는. 혹 그 크기에 그 검은 빛깔에 압도되어 아무런 저항을 못하게 하는 쓰나미. 쓰나미는 폭력을 의미하며 그 폭력은 조용하게 다가오지만 일단 부딪치기 시작하면 압도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덮쳐 버린다. 그 폭력은 예고되어진 일종을 운명 같은 것이었을까? 그 짙은 죽음의 그림자는 이들 세 명의 주인공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게 된 것일까?
미하마섬에 덮친 쓰나미. 주민들 거의가 영문도 모른 체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버렸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약하디 약한 다스쿠를 항상 괴롭히기만 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 섬의 불청객 손님은 항상 미키를 예의 주시한다. 미하마 섬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알 수 없는 폭력의 근원성에 근접하며 무엇이 악이며 무엇이 선인지 모호한 상태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불청객 손님은 미키를 덮치게 되고, 미키를 좋아하던 노부유키는 미키를 구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시작되는 이야기.
"죄의 유무나 언동의 선악에 관계없이 폭력은 반드시 들이닥친다. 그것에 대항할 수단은 폭력밖에 없다. 도덕, 법률, 종교, 그런 것에 구원받기를 바라는 것은 단순한 바보다. 진정한 의미에서 비틀리고 고통당한 경험이 없거나, 어지간히 둔하거나, 용기가 없거나, 상식에 길들어 포기했거나 그중 하나일 것이다."(P263)
본격적인 이야기는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 부터이다.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육지로 옮겨 살게 된다. 그리고 노부유키와 미키, 다스쿠도 헤어져 오랜 시간이 지나게 된다. 그리고 결혼한 평범한 공무원이 된 노부유키, 아직도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 한 다스쿠, 나름대로 유명한 연예인이 된 미키, 그리고 다스쿠와 바람이 난 노부유키의 아내 나미코. 그들을 둘러싼 알 수 없는 폭력의 그림자와 복수의 딜레마. 뒤죽박죽 섞여버린 그들의 운명은 과연 어떠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
거대한 폭력의 쓰나미에 살인이라는 폭력으로 대항할 수밖에 없었던 노부유키. 폭력의 쓰나미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 다스쿠. 폭력의 쓰나미에 모든 감정을 잃어버린 미키. 그리고 또 다른 폭력의 산물인 나미코와 쓰바키. 과연 그들이 두려워 한 것은 그들이 도망치고자 했던 그 무엇은 무엇일까? 도망가면 갈수록 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그들의 운명. 진실이라는 아침이 빛을 두려워한 그들의 삶의 종지부는 그들의 본향 아름다운 섬 미하마로 돌아가는 것이다.
미우라 시온의 소설은 섬뜩하면서도 허느적 거리는 인간의 본성을 잘 묘사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쉽게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그만의 독특한 사건의 진행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자꾸만 깊숙한 검은 수렁에 감추려고 하는 인간의 신랄한 본성을 느끼게 해준 미우라 시온의 검은 빛. 원제인 빛이라는 것이 말해주듯이 극한의 폭력성 속에서 한 줄기의 희망인 빛이 존재한다는 것을 미우라 시온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