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소 기도
박인용 지음 / 두란노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지성소 기도




지성소의 원리를 이해하게 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다. 창세 때부터 지금까지 끝없이 우리를 지성소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껴보고 다가가기 위해선 지성소 기도의 본질적 의미를 우리는 다시 생각 해 보아야 한다.




지성소. 그곳은 주님인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는 온전한 연합의 자리입니다. 그 자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세로 세상을 다스리는 곳입니다. 그 자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자리입니다.(P153)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시는 하나님. 하지만 그 하나님을 배교하고 교만한 자리에 서기를 원했던 하나님의 백성. 성경은 지성소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것을 외면하고 자신들을 길을 가고자 했던 백성들을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최초의 지성소인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했고 그 결과로 지성소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부르셨지만, 우상숭배라는 배교행위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이라는 역사를 통해 가나안이라는 지성소로 부르셨지만, 인간본성의 타락으로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다시 연단을 통해 회복된 지성소를 허락하셨던 하나님을 뒤로 하고 같은 일을 되풀이 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지성소로 다시금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성소를 향한 구원의 여정을 걸어야 합니다. 애굽에서 나와야 하고 광야에서 연단을 받고, 성지에 들어가서 성전을 만들고, 성소와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아버지의 시은좌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세상의 죄악에서 빠져 나와야 하고 하나님의 종으로 쓰임 받기 위해 오랜 세월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성소에 들어가 자기중심적 기도에서 벗어나 중보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의 기도인 지성소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지성소 기도를 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말세의 징후중 하나가 사탄의 부흥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맞불처럼 일어나 그것을 덮고 이  땅을 회복시틸 하나님의 부흥도 일어납니다.(P38) 지금의 말세의 징조를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 한국 땅에 많은 교회가 세워졌지만 그 퇴락을 속도는 걷잡을 수 없습니다. 지성소 기도가 사라진 교회,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나 홀로 백성들이 수없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늘 이야기 해 왔듯이 그 결말은 참담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성소 기도 입니다.




기도에 대한 사탄의 최고의 적은 기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유혹입니다. "기도가 안 되고 기도하고 싶지 않는 순간이야 말로 바로 기도해야 하는 순간이다"(P23) -토레이. 응답이 오지 않는 다고 생각 될 때, 나의 삶의 너무 잘 풀려서 기도 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 될 때, 기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허황된 믿음을 가지게 되었을 때 우리는 성경의 경고를 기억해야 된다. 기도 외에는 아무런 유가 없다.




예수님께서 성막의 휘장을 찢음으로 우리 모두는 지성소로 나아 갈수 있게 되었다. 그것 또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이다. 축복의 통로가 될지 저주의 통로가 될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성소로 나와라. 여기까지 와라. 이 완전한 자리에 와서 나를 구하라. 내가 네게 열방을 주리라"(P222)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신다. 지성소로 나아오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