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에서 이 소설을 읽은 한 소년은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만들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오라는 학교 과제로 미리 갚아요‘ 캠페인을 시작한다. 즉 자신이 세 명의 다른 사람에게 앞으로 질 빚을 갚는호의나 친절을 베풀고, 그 세 사람이 각기 또 다른 세 사람에게 친절을베푸는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이 세 사람이 되고, 세 사람이 아홉 사람이 되고, 아홉 사람이 스물일곱 명이 되고……. 그래서 누구든 ‘미리‘ 갚는 세상, 남보다 ‘미리‘ 친절하고 ‘미리‘ 도와주는 좋은 세상을 만드는 꿈을 갖고 소년이 열심히 캠페인을 벌여 간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마지막은 소금 3퍼센트가 바닷물을 썩지 않게 하듯이 우리 마음 안에 나쁜 생각이 있어도 3퍼센트의 좋은 생각이 우리의 삶을 지탱해 준다‘ 였다.

결국 이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인간의 패기도, 열정도, 용기도 아니고인간의 선함‘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 자체에 대한 연민, 자신뿐니라 남을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선함이 없다면, 그러면 세상은 금방이라도 싸움터가 되고 무너질지 모른다.

‘무더기 불가사리 중에서 요행히 그 소년이 바닷속으로 보내준 그 불가사리는 생명을 건진 셈이다. 그리고 그런 불가사리가 하나씩 둘씩 모이면 결국 ‘무더기 불가사리가 되는 것이다. 가난은 나라도 구제 못 한다는데 그깟 한 명 도와준다고 세상 달라질 것 있나 했던 생각은 무더기 환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무더기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아가는 데익숙한 내가 한, 참으로 알량한 생각이었다.

올해 내 계획은 주변의 ‘무더기’ 사람들, ‘무더기‘ 학생들 중에서 한 명씩 끄집어내서 ‘나의 불가사리‘로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무더기 환자‘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내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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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지음, 김석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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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두에 핵심을 밝히는 글을 환영한다.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런 내 마음을 사전에 알았는지 주제를 처음부터 명료하게 밝히고 시작한다. 그래서 딱딱하지 않게 잘 읽혔다. 비록 일독으로 한 사람의 사상을 완벽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머릿속에 남은 걸 정리해봐야겠다.


먼저 핵심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근대인은 개인을 안전하게 하면서도 속박했던 사회에서 벗어나 ‘소극적 자유’를 찾았지만, 개인의 지적, 감각적, 감정적 잠재력을 표현하는 ‘적극적인 자유’는 획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소극적 자유- ‘무엇으로부터의 자유’, 적극적 자유-‘무엇을 위한 자유’)

중세 사회의 붕괴로 개인의 독립성과 합리성은 높아졌지만 그만큼 ‘고립’과 ‘불안’의 힘도 커져서 이러한 자유가 두렵고, 도피 메커니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그래도 세계.사회.자연과 연결되어 있었고 소속되어 있었으며 각자의 신분적 위치에서 경쟁보단 협력하며 생활했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론 규제와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졌지만 개체화가 되면서 고독과 의심, 무력감 등이 커졌다. 그래서 개인은 이러한 자유가 부담이 되었고, 적극적인 자유를 찾지 못하면 도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도피의 메커니즘은 세 종류로 나온다.
첫째, 권위주의다. 개인은 고독감과 허무감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새로운 유대를 찾는데, 대상에 복종하든가(피학) 대상을 지배하는 방식(가학)이다. 당연히 합리적이지 않은 비도덕적 공생관계를 만드는 것이다.
둘째, 파괴성이다. 파괴성은 대상과 결합하길 원하는 가학성과 달리 대상을 제거하는 걸 목표로 한다. 대개 개인의 물질적, 감정적 중대한 이해관계에 위협이 되면 불안감이 생기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파괴적 경향이 생긴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자동인형적 순응이다. 이는 자아를 상실하고 외부 세계와 같아 지려는 것이다. 나의 생각, 감정은 나 자신으로부터 생긴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제시된 것, 외부에서 기대하는 바인 가짜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적즉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것일까?
바로 ‘자발적 활동’을 해야한다. 자발적 활동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희생하지 않게 하면서 고독과 불안의 공포를 극복하게 해준다.
자발적 활동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대상을 소유하거나 지배, 또는 대상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독립된 본래 모습을 긍정적으로 존중하며 결합하는 활동을 말한다.
다음 요소로 ‘생산적인 일’도 있다. 나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 바라는 이상에 따라 생산적인 일에 참여한다면 세계와도 연결되면서도 자유롭고 독립된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어려운 과제를 제시한다. 참 중요하지만 바쁜 생활 속에서 잊고 있고, 답을 피하려는 질문.
바로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다.

자기를 이해하고, 자아를 실현하는 것은 인간의 상위 욕구이자, 삶에 진정한 행복과 만족감을 준다. 그렇기에 이런 활동 과정은 정말 중요하다. 반면에, 도피 메커니즘은 주관적으로는 매력적일 수 있으나, 실제 삶에는 해롭다. 즉, 강박적이고 비합리적인 생활의 악순환이 일어나게 한다.
이렇게 볼 때, 우리 안에 행복과 안정을 추구하는 욕구가 있다면 적극적인 자유를 추구해야할 당위성은 충분한 것 같다.

하지만 개인이 아무리 혼자 적극적인 자유를 추구하겠다 발버둥쳐도 사회가 이를 허용하고 실현하도록 토대를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프롬도 사회심리학 측면에서 사회의 경제.정치.문화적 상황과 개개인의 성격 구조 간 상호 영향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사회적 성격은 사회 구조에 동적으로 적응하며, 사회적 조건이 변화하면 사회적 성격도 또 새로운 욕구와 사상을 낳으며 안정이 된다는 것이다. 쉽게 생각하면, 오늘날 이런저런 불확실한 상황으로 고독과 불안을 느끼는 사회가 ‘적극적으로 연대해야한다’는 새 사상에 민감해지면 이를 하나의 사회적 성격으로 자리잡게 하고, 이에 사회적 구조도 변화.적응하며 인간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같다.

잠시, 사회심리학과 관련해서
심리학은 물론, 사회심리학에 대해 아는 게 없는 1인이지만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일이 잘 안 될 때 우리는 상황과 환경을 탓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내가 그 환경/상황이 될 수도 있다.’
나의 작은 날개짓 하나가 다른 사람에겐 큰 환경이 될 수 있단 걸 명심하란 것이다. 개인과 상황의 역동적 관계를 생각해보기 좋은 말이었다.

다시 돌아와 보면, 이 책을 읽으며 왜 불합리한 권위에 복종하는지, 왜 생명을 파괴하려하는지, 왜 생각없이 남들이 하니까~하며 따라하고,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는지 등 그 심리적 이유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옳고 그름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분석적으로 말이다.(요즘 들리는 가슴아픈 뉴스들과도 연결된다..) 책에서는 구체적으로 히틀러와 나치즘 심리를 분석하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시사점도 던지며 훨씬 풍요롭게 논거를 제시해 재밌었다.

다른 역사적,지리적 상황에 놓인 경우에도 불안과 고독의 심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불안과 고독 같은 심리는 자본주의가 발아하기 전에는 전혀 내재하지 않았을까? 등 다른 궁금한 점도 많지만 이는 나의 불완전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보고 일단 넘겨야겠다.

이제 중요한 건 위의 과제를 해결하는 것. 저 질문을 염두에 두고 내 자아를 이해하고 실현하는 활동을 실천해야겠다.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지, 내가 그리는 이상은 무엇인지, 남이 바라는 감정, 남이 말한 사상이 아니라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과 감정을 살리기 위해 적극성을 추구해야할 것이다. 주변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로선 어렵겠지만..ㅋㅋ 사랑과 생산적인 일..나도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환경이므로 계속 가치있게 도전해야겠다.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유대할 수 있도록 깨우침을 주는 좋은 책이다!!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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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2-10 15: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에리히 프롬은 원문에도 명료한 단어와 문장을 써서 주제 전달이 머릿속에 쏙쏙~
드비쉬님 이달의 당선작 추카~추카~
설연휴 가족들 모두 평안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0^

Dubussy 2021-02-10 17:25   좋아요 0 | URL
앗 당선작 된 줄 몰랐네요^^;; 감사합니다~~scott님도 건강하고 즐거운 설 명절 보내세요!!^^
 

사회적 성격은 인간의 본성이 사회 구조에 동적으로 적응한결과다. 사회적 조건이 변화하면 사회적 성격도 변하여 새로운 욕구와 불안이 생긴다. 이 새로운 욕구는 새로운 사상을 낳고, 말하자면 사람들이 새로운 사상에 민감해지게 한다. 이 새로운 사상은 다시 새로운 사회적 성격을 안정시키고 강화하며,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데 이바지한다. 바꿔 말하면 사회적 조건은 성격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념적 현상에 영향을 준다. 한편 성격은 사회적 조건에수동적으로 적응한 결과가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생물학적으로 내재해 있거나 역사 발전의 결과로 내재적이 된 요소들을 바탕으로하여 사회적 조건에 동적으로 적응한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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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상을 표현할 권리는 우리가 자신의 사상을가질 수 있을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

개인의 가장 큰 힘은 자신의 인격을최대한 완성시키는 데 바탕을 둔다. 그것은 자신에게 최대한 투명성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인간의 힘과 행복을 겨냥한 근본적인 명령의 하나다.

근대인은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지만, 사실 그는 ‘의당 원할 것을 원할 뿐이다.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아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누구나 반드시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문제의 하나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자발성에 대한 한 가지 전제는 인격을 ‘이성‘과 ‘본성‘으로 나누지 않고 인격 전체를 받아들이는것이다. 인간은 자아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억누르지 않아야만, 자신에게 투명해져야만, 삶의 다양한 영역들이 근본적으로 통합되어야만 자발적 활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인간 정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강한하나의 신념, 생명과 진리에 대한 신념, 그리고 개체적 자아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실현으로서의 자유에 대한 신념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만 허무주의의 세력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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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새로운 체제에서 맡아야 할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역할을 통해 적극적인 자유를 더 많이 얻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개인은 그에게 안전감과 소속감을 주었던 관계에서도 해방된다. 그는이제 인간이 중심이었던 폐쇄된 세계에서 살지 않는다. 세계는 무한해진 동시에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폐쇄된 세계에서그가 차지했던 고정된 자리를 잃고, 그에 따라 자신의 삶의 의미에대한 해답도 잃어버린다. 그 결과 자기 자신과 삶의 목적에 대한 의심에 사로잡힌다. 강력하고 초인간적인 자본과 시장이 그를 위협한다. 이제 모든 사람이 잠재적 경쟁자이기 때문에, 타인과의 관계는 적대적이고 소원해졌다.

‘양심‘이란 인간이 스스로 자기 마음속에 앉혀놓은 노예 감독에 불과하다. 양심은 인간이 자신의 것이라 믿는소망이나 목표에 따라 행동하도록 몰아세우지만, 사실 그 소망이나목표는 외부의 사회적 요구가 내면화한 것이다.

사람은 가학적이거나 피학적인 어느 한쪽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생 관계의 능동적인 쪽과 수동적인 쪽 사이를 진자처럼 끊임없이 오가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순간에 어느 쪽이 작용하는지를 알아내기 어려울 때가 많다. 어느 경우에나 개성과 자유는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 권위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공공연한 권위 대신 ‘익명의 권위가 지배한다. 그것은 상식과 과학, 정신 건강, 정상성, 여론 등으로 가장하고 있다. 그것은 자명하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부드러운 설득 외에는 어떤 압력도 가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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