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리는 아리송 창비청소년시선 45
정연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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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정연철 선생님이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물들어가면서 직접 '송아리'라는 학생이 되어 적은 시들이다.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기 보다 이런 저런 의견들을 접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아리송한게 많은 팔랑귀이지만, 그만큼 잘 들어주고 수용과 공감에 열려있는 마음을 지닌 캐릭터가 탄생되었다.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아, 그건 줏대 없는거 일 수도 있지만 공감을 잘하는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제나 맞다고만 하진 않는다. 때때로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에 대핸 과감하게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는 송아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팔랑귀'에 '아리송'한 것이 많지만 덕분에 사람에게 상냥하고, 성심껏 잘 '들어준다'는 장점을 갖고있는 송아리에게 『송아리는 아리송』이라는 제목을 붙여준 이 시를 보면, 어쩐지 남북 전쟁 중이던 중위가 외딴 전초기지 황야에서 수족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안 부족을 만나 충돌, 교류, 수용, 우정등을 다누는 『늑대와 함께 춤을』 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주인공인 던바 중위가 '늑대와 춤을'이라는 이름을 채택하고 수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주먹쥐고 일어서', '발로차는 새', '머릿속의 바람', '열마리 곰' 등 인연을 맺는 이 이야기에서, 극중 사람들의 이름이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신념이나 성격을 드러냈던 점이 '송아리는 아리송'과 어쩐지 닮은 점이 보였다.


성심껏 들어준다. 들어만 준다.

들어준다는 건 어쩌면 천근만근 묵지근한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

<들어준다는 것> 中


더욱이 수록된 시구 중에 '들어준다는 것은,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 이라는 표현은 이름도 특이하게 짓는 인디언 부족의 말로 '네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가 바로 '친구'를 뜻하는 것과 연결선상에 있는 느낌을 가져다 준다.

'등에 지고 가는 것=덜어주는 것=들어주는 것'

그래서 인지 가장 마음에 드는 표현은 바로 이 시였다.


너 알아? 사람은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는 거.

넌 수학공식에서 괄호야,

가장 먼저라는 뜻, 잊지마.

<괄호> 中


'뒷모습의 표정'도 눈치채고는 이내 마음쓰여 얼른 힘이 되어 주고 싶어 다가가는 친구 송아리, 그런 친구에게 고등학생 다운 표현, 수학공식에서 가장 먼저 계산하라는 기호인 '괄호'를 예를 들며, '너가 항상 가장 먼저야'라고 말해주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네 슬픔을 등에 지고가는 자' '네 등의 슬픔을 가장 먼저 알아봐 주는 자'이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들어준다'는 것은 삶의 무게 뿐만이 아니라 계속 같이 걸어주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관계'를 말할 때 '곁'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집과 학교 구석구석에, 골목 곳곳에,

틈날때마다 채집해준 단어들로 '해시태그'를 달아둔다.

그럼 내 안에 '알고리즘'이 작동해

좋은것만 보게 돼 좋은것만 생각나.

<멘탈보호 해시태그>中


두번째로 좋아하는 표현이 있는 시는 이 시이다.

어느날 문득, '어째 행복하지가 않다'라는 말을 내뱉었을대, 지인이 자신만의 방법이라고 알려준 방법과 비슷했다.

'그럴 땔 대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행동들을 메모장에 잔뜩 적어두는게 중요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행복을 까먹거든. 메모장에 가득 좋아하는 일들을 적어놓고 그럴때마다 펼쳐보면서 거기에 써있는 행동을 하면 돼. 강아지와 산책 후 샤워하기, 발마사지기 하면서 과일먹기, 핸드드립 커피 내린 후 책 읽기, 다이어리 꾸미기, 팝콘 먹으며 영화보기 등 사소하지만 즐거운 기운을 가져다 주는 것들을 잔뜩 수집해 두어야 해. 그래서 행복이 뭔지 모를때 그걸 꺼내 보내는 거지. 그중에 하나는 반드시 내 기분을 다시 좋아지게 할꺼야.'

그 표현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 바로 이 시였다. 틈날때마다 채집해 둔 나의 #소확행 해쉬태그를 열어 알고리즘 작용을 시켜 좋은 기운으로만 수렴되도록 마음을 가다듬는 일, 그걸 어른이 되서야 알게되었는데 고등학생 송아리가 벌써 행복의 원리를 알고 있는것 같아서 대단했다.


송아리는 쪼그려 앉아 작은 무당벌레에도 한참 시선을 빼앗기는 잔정이 많은 아이다. 그렇기에 시 전반에는 그런 송아리의 마음이 듬뿍 담겨있다.


하고 싶은게 많고, 자신의 좋은 점을 발견해 칭찬하려 애쓰고, 사랑과 그리움, 고민과 궁리, 반박과 반항, 틈과 행복, 삶에 대한 응원들이 한가득 담겨있어서, 마지막 시에 이를 즈음 '송아리 많이 컸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시를 읽는 나는, 고등학생을 훨씬 오래전에 떠나온 나도 송아리 만큼 많이 컸을까. 하며 돌아보게 만든다.

항상 시는, 마음에 와닿는 시구절을 만나면 내 인생과 마주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더 이입하면서 읽게 된다. 청소년 시선에서 쓰인 청소년 시이지만, 그시절을 지나왔기에 여전히 청소년의 마음이 남아있어 그런 마음으로 읽어내려간것 같다.


새해를 맞이한지 9달이 지나고 단풍이 지는 계절이다.

선선해지고 선명해졌지만, 현명해지고 있는걸까 하는 아리송함이 든다.

바닥에 낙엽이 떨어지고 그 잎들이 바싹 말라 썩어가도, 우리에게 그 잎은 여전히 단풍잎이다. 내 지나온 삶의 얼룩투성들도 고운 단풍으로 기억될까 의문이다.


매일 지나는 길에 있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기대한다.

모퉁이 너머에 있는 그길을 선택한건 잘한걸까, 그 너머엔 무었이 있을까, 잘하고 있는걸까, 내가 선택한 길에 책임질 수 있나, 나는 내가 걷는 보폭만큼 진화하고 있나.


이리 치이고 저리치이고, 이런 저런 핑계에 지고 사는 요즘,

'진다'는 말에, '해도 하루를 다 지내고 진다. 내일 또 뜨려고 오늘은 이만 진다.'라는 그 뻔한 말이 적잖이 위로가 되는 가을 밤.


마음 먹는대로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할땐, 차라리 마음 '먹지' 말고 '굶어'.

괜찮아 방황해, 그 방황하는 길목으로 물줄기를 주면서 나만의 길로 가꿔나가면 돼.


잘하고 있나 질책하고 돌아보다가도,

뭐 괜찮아, 괜찮겠지 라며 결국 다독이는 것도 자기 자신.

만만하지 않은 세상을 호락호락(好樂好樂)하게 사는 것이 방법이라고


작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 잔정을 뿌려주는 것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면, 차라리 느리게 살면서 천천히 많은 것을 보며 차츰 단단해 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 웃자, 웃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자꾸 웃어야 웃음도 는다.


웃음 꽃이 피어야 인상도 피고 인생도 피고, 예쁜 문양을 가진 나뭇잎이 되어 선명하게 무르익으면 다시 가을이 되어, 지고 떨어져 모퉁이를 돌고 거름이 되었다가 다시 선명한 잎으로 피어나는 일이 돌고 돌겠지.


특별하고 각별해. 세상은 아리송하지만, 호락호락(好樂好樂)하게 살아가자고 말하는 시, 『송아리는 아리송』이다.


어둡고 잘지만 다양해서 찬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고등학생 송아리의 시선으로 학교생활 속 교우관계세상 속 편견 맞서려는 의지, 자신만의 개성을 찾으려는 고민들을 담으며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별도의 진도를 나가는 중' 인 송아리의 성장담을 담고 있는 이 시를 읽으면서,


세상 작은 일들을 시처럼 단비처럼 적셔 내리며 맞이하며 사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함께 마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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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한 내 친구 - 신나라 그림책
신나라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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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하던 아이의 일상에 찾아온 오싹하고 수상한 친구와의 특별한 하루'라는 줄거리로 책의 표지를 장식하며 책 소개를 하고 있다.


'한 아이의 외로움'이 어떤 특별한 친구를 불러냈다는 이야기인데, 그 외로운 아이라는 표현에 나도 모르게 눈길이 멈췄다. 책의 내용이 시작하기 전에 아이들이 놀고 있는 그림에서 아이를 포함한 학생들이 모두 짝수인 8명인데도 불구하고 2명,2명,3명이 모여 어디에도 끼지 못한 채 서성이는 아이의 외로운 쭈뼛거림이 보였다.


쭈뼛거렸던 책 속의 아이는 사실 씩씩하다. 누구에게나 '새학기 스트레스'가 있듯 새로운 곳으로 '전학' 온 이 아이는 아직은 낯선 환경이 익숙치 않고 조금 어색 할 뿐이다. 그런데 마침 기회가 찾아왔다. 전학 온 어린이 집에서 첫 핼러윈 데이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할로윈 데이는 죽은 영혼들이 이 땅위로 내려오는 날이다.

영미권 문화로 죽은 영혼들에게 몸을 빼앗기지 않기위해서 같은 복장을 입는다고 하며, 멕시코의 '망자의 날'은 죽은 영혼이 자신의 모습과 사람들의 모습이 달라 놀랄까봐 같은 모습으로 분장 한다는 말이 있기도 하다. 어쨌든 우리나라로 유입되면서는 그 유래나 뜻보다는 코스프레(Cosplay: '복장(costume)’과 ‘놀이(play)’의 합성어)를 하면서 파티나 행사를 즐기는 날로 인식된 날이다. 언젠가부터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단골 행사가 되었고, (중고등 학교 행사로 하지는 않지만) 어른들도 좀처럼 한국엔 없었던 이 행사를 가면 무도회를 즐기듯 제법 자리잡은 문화이다.

전학생 지우 역시 어린이 집 '행사'로 기획된 이 날을 즐기기 위해 '고양이 가면'을 준비했다. '가면'은 지우에게 기회이자 용기를 줄 수 있는 훌륭한 아이템이였다.

단순히 외모를 가려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전학온 아이'라는 것을 가려줄 가면이였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언제 말을 걸 수 있을까, 어떤 놀이에 낄 수 있을까 고민할 필요 없이, 이 할로윈 파티 가면 뒤에 숨어 친구들과 잘 섞여 어울리며 행사를 즐길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신났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통학 버스에 올라타면서 부터 평소의 조용한 모습과는 달리 '가면을 쓰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 보다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을 보여준다. 아이들에게 가면은 역시 저 친구는 누구일까 맞추기 놀이가 되기도 하지만, 가면의 캐릭터 자체를 흉내내는 역할 놀이 이기도 하면서, 가면들이 뒤섞인 파티이기도 했다.

아이는 오늘을 즐길 준비가 잔뜩 되어 있었다. 우리는 8명이고 두명씩 짝을 맞추어 추는 춤 파티에도 어울릴 수 있고 수다떨며 간식을 먹거나 밖에 나가 놀 수 있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지 오늘 뭔가 틀어진다. 춤 파트너 짝이 맞지 않고, 간식도 모자라고, 나가 놀 신발도 없어졌다.

하지만 가면 속 친구들은 가면 속 지우가 용기있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만큼 이에 대답해 주며 친절을 베푼다.

셋이서 추니까 더 즐거웠어요.

나누어 먹으니까 더 맛있었어요.

빌려 신은 신발로 뛰어 노니 더 신났어요.

혼자였으면 심심했을텐데 둘이 같이 있으니까 재미있었어요.

오늘 헤어진게 아쉬었지만 내일 또 만나서 놀 수 있어서 좋아요.

오늘, 정말정말 재미있었어요!

같이 추자, 같이 먹자, 내 꺼 빌려줄게.

혼자 있으면 심심했을 텐데 아이에게 오늘은 정말 모두 '친구'가 되어 주었다.


하나 둘 시간이 흘러 가면을 벗으며 귀가하면서 베일이 벗겨졌다.

아 누가, 누구였구나, 아 이건 누구였구나, 가면 맞추기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단 하나의 퍼즐이 안맞춰진다.


넌.. 누구야?

8명인 우리 어린이집에서 도무지 유추할 수 없는 한명의 유령 친구.

공룡, 꽃, 핫도그, 호박, 거미,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 고양이 분장들 사이에서 마침 분장도 유령이다.



오싹~하다기보다 그저 내 친구가 누구인지 궁금할 뿐인 아이의 시선이 순수하다.

넌 누구야 (소오오름) 이 아니라, 넌 누구양? (궁금) 으로 끝난다.

그리고 네가 누군지 오늘 당장 몰라도 괜찮다, 내일은 가면을 벗은 채로 다시 만나 놀 수 있으니까. 오늘 놀았던 친구는 내일도 만날 수 있는거다.

할로윈 데이 행사는 단 하루뿐인 놀이였지만, 오늘이 지나도 두고두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화제거리일 뿐이다. 내일도 우리는 어린이집에 나오고, 어제 이야기를 하면서 평소와 같은, 하지만 더 친밀해진 내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어른의 시점에서 봤을땐, 순수한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와 같은 역할을 맡은것 처럼 유령의 역할도 잘 적응하지 못한 지우를 적응시켜주기 위해서 누군가 했겠지 싶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그저 기묘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렴 어때 싶었을 것이다.


그 친구는 누구였을까, 불청객이였을까, 당연했던 잔잔한 일상에 작은 사건들을 일으켜 '관계맺기'에 변화를 준 중요한 도우미였을까.

오싹한 내 친구는, 오싹한 내 친구의 정체가 중요한게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건,우리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어떤 사소한 사건과 계기를 우리는 놓치지 않았고, '덕분에' '더' '재미있고 즐겁게' 핼로윈 파티를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학(새로운 환경)을 와서 어색했던 사이는, 파티(새로운 환경)를 가서 더이상 어색해지지 않게 되었다.


'누구냐 너는!!!' 이라면서 추리하며 그 친구가 누구인가라는 정체를 알아내려 하기보다, '너무너무 재미있었다'며 웃으며 어린이 집을 나서는 지우가 내일은 더 즐겁게 어린이집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길 응원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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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반짝이는 정원
유태은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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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창비 에서 세상 모든 어린이에게 보내는 초록빛 러브레터의 그림책을 펴냈다. '뉴욕 타임스 올해의 우수 그림책' 선정 작가인 유태은 작가가 실제로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던 집에서 살면서 할아버지가 정원을 정성스럽게 가꾸던 유년시절의 기억이 담긴 '자전적인 그림책'이기도 하다.

작가는 미국에서 태어나 이 정원이 있는 집에서 풀과 꽃과 나무들과 강아지와 고양이와 함께 증조할아버지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할머니, 엄마와 아빠, 형제들이 모인 대가족 집에서 자랐다.


이 책에서는 할아버지 정원에서 식물들과 함께 큰 사랑을 받는 손녀딸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계절에 따라 만개하는 꽃들이 각기 달라 늘 표정이 바뀌는 정원처럼 손녀의 자라남과 세월이 흐르면서 맞이하는 변화들을 각기 다른 식물에 비유했다.


물뿌리개도 혼자 들 수 없을만큼 '새싹'처럼 작았을때, 아주 큰 정원이 있는 집에서 흙냄새와 풀냄새를 맡으며 할아버지가 콧노래를 부르며 보살피는 식물들과 함께 자랐던 손녀는 정원을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좋았다. 사랑하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런 모습을 닮게 되기 마련이다.

비록 물을 줄 순 없지만, 물을 주는 할아버지를 그렸고, 그런 할아버지의 물을 받는 화분을 그렸다. 이 추억의 장면은 흙냄새, 물냄새, 할아버지의 콧소리, 꽃내음, 놀아달라고 재촉이는 반려견, 산들바람, 햇빛, 사각거리던 스케치북 소리까지 모든 것이 포근하게 남게된다.

할아버지가 물을 주고 나면 이제 손녀를 돌본다. 산들바람이 부는 가운데 노곤한 기운에 반려견은 잠들어 있고, 꽃과 벌레와 곤충들이 한가롭게 노닌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돌보는 식물들을 알려주고 싶은건지 식물에 관한 책을 읽어주신다.

함께 책을 보며 가장 좋아하는 식물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두 꽃의 개화시기는 가정의 달이기도 한 5월이다.

손녀는 부귀영화, 행복한 결혼, 열렬한 사랑의 꽃말을 지닌 화려한 '모란'꽃을,

할아버지는 순수한 열정과 사랑의 꽃말을 지닌 우아하고 청초한 '난초'꽃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하는 시간은 중요하다. '그것'들을 말하는 순간, 동시에 말 한 '사람'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것'은 곧 '그 사람'이 되는 마법에 걸리게 된다.

손녀는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그려드렸고, 할아버지는 손녀가 좋아하는 '모란' 화분을 선물한다. 이제 할아버지에게 모란 꽃은 손녀딸 그 자체이다. 그리고 손녀딸에게도 모란 꽃은 할아버지 그 자체가 된다. 꽃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꽃이 되어 곁에 머물고 있다는 착각마저 일으킬만큼 푹 빠진다.


이후 '모란'이 화분을 벗어나야 할만큼 크게 자랐을때는, 물뿌리개를 혼자 들어 물을 줄 수 있을 만큼 함께 훌쩍 자랐다. 


'해바라기'만큼 할아버지보다 훌쩍 키가 자랐을땐, 할아버지 짐도 들어들이고, 이별, 학업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몇가지 화분만 들고 작은 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나무'만큼 자라나 자신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낼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땐, 독립을 하게 된다.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 수 있는 시기가 되었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자신만의 가족을 만들어 자신의 '딸'이 아직 '새싹'처럼 작을 때,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더 작은 집에서, 더 작아진 할아버지지만 여전히 손녀가 좋아하던 꽃을 준비해두었던 할아버지는 손녀에게 주었던 사랑이 가득 담긴 화분을 증손녀에게 선물한다.


할아버지는 손녀가 다시 '새싹'만한 증손녀를 데리고 올만큼 자라도 아직도 손녀가 '새싹'만할때 그려줬던 그림을 보물처럼 액자에 보관하고 있다.

손녀 역시도 그것을 알기에 새로운 식구가 된 반려견과 할아버지가 함께 있는 새로운 그림을 선물해 주었다. 또다른 새로운 식구인 '증손녀'와 함께.


증손녀는 그 사랑을 이어받아 물뿌리개를 혼자 들어 물을 준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이 마지막 장면이다.

엄마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의 딸에게도 사랑 담아 이어진 할아버지의 '모란'과, 홀로 물을 주고 있는 '손녀'와, 이제는 곁을 떠났지만 새롭게 손녀딸을 지켜주려 곁에 온 새'반려견'식구까지. 세대가 교체되도 남는 것들은 그대로 남겨져 이어진다.

사랑은 이렇게 정원을 떠나서도 계속해서 이어진다.


할아버지의 정원에서 '모란'은 손녀딸 그 자체였다.

그러나 손녀딸에게도 '모란'은 할아버지 그 자체였다.

'모란'화분이 곁에 있는 것 만으로도 할아버지가 곁에 있는 것처럼 든든했다.

뿐만 아니다. 길을 걷다가도 할아버지가 좋아했던 '난초' 향기를 맡는것 만으로도 함께했던 그 시절의 향수가 찾아와 위로 받는다. 어지러운 도시 '속'에 있어도, 어지럽혀진 '방'안에 있어도 할아버지는 늘 곁에서 위안을 준다.

'사랑'과 '그리움'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이들의 각자의 '방'을 들여다 보면 된다.

정원이 사라졌어도 정원처럼 느끼게 한다.

손녀의 그림과 할아버지의 화분은 그들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가깝게 한다.

살아가는 것이 '끊임없는 변화에 적응하며 새로운 길을 나가는 것이 삶의 과정'이라고 하지만 사랑받은 기억, 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 그런것들이 살게 한다.

'단단한 나만의 새로운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형태로든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함께 한다고 느끼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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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 온다 창비교육 성장소설 10
이지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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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성장 소설을 좋아하는데는 이유가 있다.

성장소설에는 항상 중요한 키워드로 '호의의 연대'를 말한다. 물론 어떠한 상처를 극복하는데 자신의 마음먹기와 행동이 최우선이겠지만 거기엔 늘 관계 맺기가 있다.

누군가와 연대하고 누군가 마음을 나누고 보다듬고 그것을 또 누군가에게 나눠주는데 까지 이르러야, '성장'이라고 말하는 것에 다다르는 것이 성장소설에 큰 특징이다.

늘 내가 받은 호의를 다른 다시 전달하는 것으로 끝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그리고 어쩐지 뭉클해졌던 대사는,

"그러게 서로서로 좋은것만 줘야지. 결국 이렇게 돌아오잖아"라는 한마디였다.


' 사랑도 받아본사람이 잘받고 잘준다 ' 고 했던가.

호의를 받아본적 없는 사람은 그것을 언제 어떻게 갚아야할지 몰라 어색해 한다. 주는것도 받는것도 익숙치않다. '호의는 반드시 돌려받기 위해 주는것이 아니라는 것' 을 모를리 없지만서도 그것에 안절부절하며 '어쩔 줄 모르겠다'며 굳은 표정을 하는 친구들.

여기에 나오는 친구들은 그랬다. 도무지 '익숙해 질 수 없는 호의', 모든게 낯설기만 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친구들.

'어떻게 되는 것도, 어떻게 크는 것도 바란적 없이, 어떻게든 되겠고, 어떻게든 컸잖아' 라고 말하는 아직 어른이 덜 된 이 친구들은 '보호 종료'가 된 '자립 준비 청년'이다.

이 소설은, 그룹홈에서 자란 친구들이 독립해서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서로의 독립을 지켜보며 서로를 돌보고 위하는 마음이 가득담긴 책이다.

어떤 것들을 받았기에, 좋은 것들만 줘야지, 라고 말 할 수 있는걸까.

"결국 돌아오니까 서로 좋은것만 줘야지"라는 말은 정말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말이다.



이 책의 주요 인물들인 민서, 해서, 솔은 '그룹 홈'이라고 부르는 '공동 생활 가정'에서 함께 지낸 친구들이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친권을 포기하면서 맡겨진 김민서(6), 이혼과 재혼으로 맡겨진 민해서(10), 아버지의 가정폭력을 신고하면서 맡겨진 윤솔(9)이 만난 나이는 다 10세 이하일 때였다.

그룹홈은 부모가 돌볼 수 없거나 부모가 돌보기를 거절하여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모여 사는 집이다.

학교에 다니는 (또래)아이들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하는게

그룹홈의 목적이라고 했다.

그룹홈은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그룹을 지어 '보통 가정'과 '비슷한 가정 환경'을 만든다. 일단 보육원, 고아원과 같은 '시설'이 아니라 일반적인 주택이나 아파트같은 주거지에서 생활하며, '담당 사회 복지사'들이 보호자 역할을 한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기에 이곳에 적응했다'는 말처럼 해야 할 일과 하면 안되는 일이라는 '규칙'들 속에서 이를 지키며 지내는 입소생활을 한다. 그리고 그 규칙의 최종 단계가 바로 '통장에 찍힌 오백만원의 자립 지원금과 함께' 떠밀리듯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나가야 한다' 라는 규칙이다. '보호종료아동'이 되는 것이다.

'보통가정'처럼 보이기 위해 보통의 주거에서 살다가 갑자기 오백만원과 함께 살곳을 잃은 아이들은 곧바로 살곳부터 찾아야 했다. 살아간다는건, 살 곳이 있는것이 전제였다.

'보호'가 '종료'된 채로 살아간다는건, 살 '곳'을 마련해야 하고, 그렇게 살림을 차렸으면 나아갈 방도를 꾸려나가며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 '보호'자였던 '자립지원전담요원'의 역할도, 돌봄도, 집도, 모두 직접 구해야 한다.

이 모든 일은 '누구나' '언젠가' 해야할 일이지만,

'보호아동'의 '보호 종료'에는 '선택'이 없기에

'보통가정'의 '독립'과는 다르다.

'보통 가정' 이라는 것은 온전한 부모 아래의 가정을 말한다.

그러니까, 부모를 '선택'한 적 없지만 부모가 '온전히 있다'는 것을 말한다.

온전한 부모가 돌보는 가정에서 자라는 것이 '옳은 인생'이라면,

그렇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는 것은 '오점 인생'이 되는걸까.

남들과 다른 까닭에 설명할 게 많은 인생은 피곤했다.

자세히 설명한다고 더 환영받는 것은 아니기에

시간을 들여 설명하는 일은 분명 손해였다.

남들과 '다른' 까닭에 '설명'할게 많은 인생은 피곤한 삶,

누린 적 없는 삶의 형태를 평균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모습이 모든걸 말해준다.

'온전한'이 '완벽함'이라면, '다름'은 불완전이고 불안함이된다.

'다름'은 '놀림'의 대상이거나 '약점'이되었기에 자연스럽게 '오점'처럼 남겨져있다.

어쩔 수 없이 상처받는다.

상처의 원인을 생각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였고, 거기에 따른 방법도 제각각이었다.

민서는 어렸을때부터 '아빠 탓'을 했다. 그러나 해서와 솔은 '자기 탓'을 해왔다.

"부모를 바꾸는것보다 나를 바꾸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나한테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는게 쉬웠어. 그게 희망이었고"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같았으나 살아가는 모습은 달랐다. 서로의 변화가 궁금했기에 그들은 자립하고 나서도 자주 만나게 되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을

'불행'이라는 두글자에 담기엔 그릇이 너무 작게 느껴졌다.

상처에 대한 기억은 그 '상처를 되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있지만 여기에 나오는 세명은 모두 다른 생각과 '반대의 선택' 을 보여주었다.

"나는 아빠와 닮지 않기 위해 아빠가 해 온 모든 것들을 하지 않기로 했다."

라며, 반복되지 않기 위해 '그 사람'은 물론 '그 사람'이 살던 방식과 최대한 멀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민서였다. 최고로 좋아하는 것보단 최선의 선택을 했고, 책임 질 수 있는 것들만 책임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준다.

"난 엄마처럼 삻기 싫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게 내 소원이야."

반면 내가 완벽하지 않았기 내가 부족했던 부분은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그 마음으로 어떻게든 채워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해서였다. 완전한 구슬이라는 뜻이라는 '완벽'이를 태명으로 짓고, 완벽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키우겠다는 꿈을 꾸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들 아빠를 너무 나쁘게만 생각하는거 같아."

한번을 미루고 다음 한번을 더 미루며 마음과 행동이 바뀔지도 모른다며 '다시, 잘 살거라고 믿었어'라며 희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솔이였다. 계속해서 기대하며 불행은 한때였을 뿐이며 다른 사람에게도 찬성표를 받고 싶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바닥인줄 알았는데 더 바닥이 있더라.

이것보다 더 바닥도 있을까봐 사는게 너무 무서워.

책 속에서 유일하게 '희망'이라는 것을 품고 살았던 솔이가 이런 말을 했을 때도, '나도 매일 밤 영원히 잠들게 해달라고 빌어'라고 대답하며 '이게 슬픈 얘기던가'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상처가 너무나 익숙하고 당연하게 물들어 있는 것이 이 친구들의 대화였다.

자립 준비금으로 받았던 돈이 오백만원이였던가, 그 돈을 받고 세상에 나왔을때 얼마나 막막했던가.

그러나 돈이 필요하단 소리에 오백은 줄 수 있어 선뜻 빌려줄 정도의 사람이 그룹홈의 친구들이였다. 그들에게는 부모와 자식간에도 얻을 수 없었던 연대와 믿음이 분명 존재했던 것이다.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제멋대로 주는 호의는 악의보다 나쁘다."

'선량한 얼굴로 선물을 사들고 그룹홈으로 찾아오다가 마음을 주면 어느순간 발길을 끊는 가족 단위 봉사자들'도, '먹을 것을 챙겨주면서도 아빠 욕을 하던 식당 이모들'도 '동정'이란 이름으로 남게되는 잘해주다가 쉽게 멀어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히려 사람을 더 아프게한다. 타인을 믿는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조심해야 할 일이 아닐까.

그들은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그래도 그들은 끝까지 '호의의 연대'를 말한다.

갚고, '살아'

'갚고 살아', 민서는 나를 놓지 말라는 말을, 그래도 우리는 서로를 놓지 말고 같이 살자는 말을 하기 위해 '살아' 라는 말에 힘을 주며 말했다. 갚는게 사는 이유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빚지고 갚으며 사는 것을 반복한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기대어 운다. 상처 받는 일은 허다하다. 다만 부디 홀로 울지 않았으면.


두렵다는 이유로 사람을 끊어내는게 아빠같은 방식 같았다.

나는 솔 언니와 해서 언니를 끊어내고 싶지 않았다.

전부 부질없더라도, 다시 상처받더라도, 결국 실패하더라도

나는 믿어보기로 했다


그 마음이 모아 세사람은 완벽이를 만날 준비를 한다.


무서워요. 어떻게 해야 해요?


완벽이를 처음 만나서 하는 말은, 너무나 작고 소중한 이 존재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무섭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차분히 아이를 안으며 '완벽이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는 사실을 책임감으로 받아들였다. 네가 겪을 세상에는 부디 내가 겪은 아픔은 없길, 부디 따뜻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완벽이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는 마음으로 다음 세대에게 연대하듯이, 우리도 우리가 겪은 상처와 불편함과 오점을 대할 때, '너도'가 아니라 '너라도'라는 마음으로, 호의를 연대하며 앞으로의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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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조각
윤강미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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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조각』은 어느 평범한 가족의 특별하고도 소중한 달없는 달밤의 숲속 여행기를 다룬 이야기이다. 

어느날 엄마는 갑자기 멋진 풍경을 보여 주겠며 아이들을 데리고 먼길을 달려 숲 속에 도착한다. 엄마와 이모가 서로 나누는 어린시절 이야기는 아이들이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여서 아이는 이런 시간에 게임이나 했으면 좋겠다며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아직도 있을까? 볼수 있음 좋겠다!'라며 아이들에게 자신이 보았던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기대하는 그 모습에 마지못해 따라나선다. 숲을 걸으며 개구리소리, 작은 동물의 울음소리와 움직이는 소리를 들으며 혹시나 그들이 놀랄세라 손전등도 켜지 않고 이동한다. 그믐밤은 달빛이 없어서 숲을 더 어둡게 만들지만 대신 달맞이 꽃과 별빛이 더 밝게 보이게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이 마주하게 된 노란불빛이 아주 선명하게 다가오게 한다. 
'함께 볼 수 있어서 다행이야, 내가 너희만 했을때 보게 된 이 풍경을 너희한테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라며 자녀들을 꼬옥 끌어안자, 아이들은 그 마음을 조금 헤아릴 수 있게 된다. 반딧불이을 맞이한 자연 속에서 아이의 마음은 그렇게 한뼘 자라게 된다. 
아이들의 눈에는 반딧불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둠 속에서 반딧불 무리가 밝히는 그 빛은 신기하고 환상적이여서 마지 그믐밤이여서 달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 노란 불빛들이 사실은 달빛 조각들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 불빛들이 모이고 모이면 보름달이 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아이들은 그 반딧불에 소원을 실어담아 하늘로 올려보내는 몸짓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소원은 개인의 소원이 아니었다. 
'이 어두운 숲을 오래오래 밝게 비춰줘, 그리고 우리도 꼭 다시 만나자'하는 그 자연에 대한 순수한 마음. 우리의 손길과 시선이 닿지 않는 숲을 걱정하며 달빛조각 같은 반딧불을 모아 하늘에 띄우는 그런 상상을 하는 아이는 아마도 처음 만나는 이 숲과 금방 사랑에 빠지고 그러한 숲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달빛 조각』은 부모 세대와 아이 세대의 연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자연과 사람의 상생 관계를 이토록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첫장면은 충전기에 잔뜩 꽂혀져 있는 패드와 핸드폰을 보여주지만, 마지막에는 강과 숲과 반딧불을 보여준다. 그 노란 불빛은 너무나 다정해서 '언젠가 또 이곳으로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렴'이라고 말해주는것 같았다. 그때까지 반딧불 무리가 사라지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물러 있기를. 할아버지가 보여준 풍경을 엄마와 이모가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던 만큼 사랑하는 마음이 계속 이어져 계쏙해서 이곳에 도달할 수 있기를.

그믐밤, 숲속에서 쳘처진 보물찾기의 보물은, '지키고 싶은 마음' 그것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봤던 멋진 풍경을 네게도 똑같이 보여주고 싶었어'라는 예쁜 마음과  아름다운 풍경이 담겨진 한여름밤의 꿈같은 그림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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