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아리는 아리송 창비청소년시선 45
정연철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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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는 고등학교 국어교사인 정연철 선생님이 학생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에게 물들어가면서 직접 '송아리'라는 학생이 되어 적은 시들이다.


자신의 의견을 고수하기 보다 이런 저런 의견들을 접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아리송한게 많은 팔랑귀이지만, 그만큼 잘 들어주고 수용과 공감에 열려있는 마음을 지닌 캐릭터가 탄생되었다. 네 말도 맞고 네 말도 맞아, 그건 줏대 없는거 일 수도 있지만 공감을 잘하는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언제나 맞다고만 하진 않는다. 때때로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에 대핸 과감하게 아니라고 말하기도 하는 송아리는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팔랑귀'에 '아리송'한 것이 많지만 덕분에 사람에게 상냥하고, 성심껏 잘 '들어준다'는 장점을 갖고있는 송아리에게 『송아리는 아리송』이라는 제목을 붙여준 이 시를 보면, 어쩐지 남북 전쟁 중이던 중위가 외딴 전초기지 황야에서 수족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안 부족을 만나 충돌, 교류, 수용, 우정등을 다누는 『늑대와 함께 춤을』 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주인공인 던바 중위가 '늑대와 춤을'이라는 이름을 채택하고 수족과 함께 생활하면서 '주먹쥐고 일어서', '발로차는 새', '머릿속의 바람', '열마리 곰' 등 인연을 맺는 이 이야기에서, 극중 사람들의 이름이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신념이나 성격을 드러냈던 점이 '송아리는 아리송'과 어쩐지 닮은 점이 보였다.


성심껏 들어준다. 들어만 준다.

들어준다는 건 어쩌면 천근만근 묵지근한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

<들어준다는 것> 中


더욱이 수록된 시구 중에 '들어준다는 것은,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것' 이라는 표현은 이름도 특이하게 짓는 인디언 부족의 말로 '네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가 바로 '친구'를 뜻하는 것과 연결선상에 있는 느낌을 가져다 준다.

'등에 지고 가는 것=덜어주는 것=들어주는 것'

그래서 인지 가장 마음에 드는 표현은 바로 이 시였다.


너 알아? 사람은 뒷모습에도 표정이 있다는 거.

넌 수학공식에서 괄호야,

가장 먼저라는 뜻, 잊지마.

<괄호> 中


'뒷모습의 표정'도 눈치채고는 이내 마음쓰여 얼른 힘이 되어 주고 싶어 다가가는 친구 송아리, 그런 친구에게 고등학생 다운 표현, 수학공식에서 가장 먼저 계산하라는 기호인 '괄호'를 예를 들며, '너가 항상 가장 먼저야'라고 말해주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네 슬픔을 등에 지고가는 자' '네 등의 슬픔을 가장 먼저 알아봐 주는 자'이기도 한 것이다. 때문에 '들어준다'는 것은 삶의 무게 뿐만이 아니라 계속 같이 걸어주겠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좋은 '관계'를 말할 때 '곁'에 있어주는 것 만으로도 힘이 된다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집과 학교 구석구석에, 골목 곳곳에,

틈날때마다 채집해준 단어들로 '해시태그'를 달아둔다.

그럼 내 안에 '알고리즘'이 작동해

좋은것만 보게 돼 좋은것만 생각나.

<멘탈보호 해시태그>中


두번째로 좋아하는 표현이 있는 시는 이 시이다.

어느날 문득, '어째 행복하지가 않다'라는 말을 내뱉었을대, 지인이 자신만의 방법이라고 알려준 방법과 비슷했다.

'그럴 땔 대비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행동들을 메모장에 잔뜩 적어두는게 중요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행복을 까먹거든. 메모장에 가득 좋아하는 일들을 적어놓고 그럴때마다 펼쳐보면서 거기에 써있는 행동을 하면 돼. 강아지와 산책 후 샤워하기, 발마사지기 하면서 과일먹기, 핸드드립 커피 내린 후 책 읽기, 다이어리 꾸미기, 팝콘 먹으며 영화보기 등 사소하지만 즐거운 기운을 가져다 주는 것들을 잔뜩 수집해 두어야 해. 그래서 행복이 뭔지 모를때 그걸 꺼내 보내는 거지. 그중에 하나는 반드시 내 기분을 다시 좋아지게 할꺼야.'

그 표현과 맞아 떨어지는 것이 바로 이 시였다. 틈날때마다 채집해 둔 나의 #소확행 해쉬태그를 열어 알고리즘 작용을 시켜 좋은 기운으로만 수렴되도록 마음을 가다듬는 일, 그걸 어른이 되서야 알게되었는데 고등학생 송아리가 벌써 행복의 원리를 알고 있는것 같아서 대단했다.


송아리는 쪼그려 앉아 작은 무당벌레에도 한참 시선을 빼앗기는 잔정이 많은 아이다. 그렇기에 시 전반에는 그런 송아리의 마음이 듬뿍 담겨있다.


하고 싶은게 많고, 자신의 좋은 점을 발견해 칭찬하려 애쓰고, 사랑과 그리움, 고민과 궁리, 반박과 반항, 틈과 행복, 삶에 대한 응원들이 한가득 담겨있어서, 마지막 시에 이를 즈음 '송아리 많이 컸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시를 읽는 나는, 고등학생을 훨씬 오래전에 떠나온 나도 송아리 만큼 많이 컸을까. 하며 돌아보게 만든다.

항상 시는, 마음에 와닿는 시구절을 만나면 내 인생과 마주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더 이입하면서 읽게 된다. 청소년 시선에서 쓰인 청소년 시이지만, 그시절을 지나왔기에 여전히 청소년의 마음이 남아있어 그런 마음으로 읽어내려간것 같다.


새해를 맞이한지 9달이 지나고 단풍이 지는 계절이다.

선선해지고 선명해졌지만, 현명해지고 있는걸까 하는 아리송함이 든다.

바닥에 낙엽이 떨어지고 그 잎들이 바싹 말라 썩어가도, 우리에게 그 잎은 여전히 단풍잎이다. 내 지나온 삶의 얼룩투성들도 고운 단풍으로 기억될까 의문이다.


매일 지나는 길에 있는 모퉁이를 돌 때마다 기대한다.

모퉁이 너머에 있는 그길을 선택한건 잘한걸까, 그 너머엔 무었이 있을까, 잘하고 있는걸까, 내가 선택한 길에 책임질 수 있나, 나는 내가 걷는 보폭만큼 진화하고 있나.


이리 치이고 저리치이고, 이런 저런 핑계에 지고 사는 요즘,

'진다'는 말에, '해도 하루를 다 지내고 진다. 내일 또 뜨려고 오늘은 이만 진다.'라는 그 뻔한 말이 적잖이 위로가 되는 가을 밤.


마음 먹는대로 되지 않는 다고 생각할땐, 차라리 마음 '먹지' 말고 '굶어'.

괜찮아 방황해, 그 방황하는 길목으로 물줄기를 주면서 나만의 길로 가꿔나가면 돼.


잘하고 있나 질책하고 돌아보다가도,

뭐 괜찮아, 괜찮겠지 라며 결국 다독이는 것도 자기 자신.

만만하지 않은 세상을 호락호락(好樂好樂)하게 사는 것이 방법이라고


작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게 잔정을 뿌려주는 것이 삶을 사랑하는 방법이라면, 차라리 느리게 살면서 천천히 많은 것을 보며 차츰 단단해 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 웃자, 웃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고, 자꾸 웃어야 웃음도 는다.


웃음 꽃이 피어야 인상도 피고 인생도 피고, 예쁜 문양을 가진 나뭇잎이 되어 선명하게 무르익으면 다시 가을이 되어, 지고 떨어져 모퉁이를 돌고 거름이 되었다가 다시 선명한 잎으로 피어나는 일이 돌고 돌겠지.


특별하고 각별해. 세상은 아리송하지만, 호락호락(好樂好樂)하게 살아가자고 말하는 시, 『송아리는 아리송』이다.


어둡고 잘지만 다양해서 찬란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고등학생 송아리의 시선으로 학교생활 속 교우관계세상 속 편견 맞서려는 의지, 자신만의 개성을 찾으려는 고민들을 담으며 '오늘 보다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별도의 진도를 나가는 중' 인 송아리의 성장담을 담고 있는 이 시를 읽으면서,


세상 작은 일들을 시처럼 단비처럼 적셔 내리며 맞이하며 사는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함께 마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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