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능력주의 -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 제목만 보고도 자신을 돌이켜보니 수능, 국가고시, 국가공인 자격증 시험까지..

나역시도 수많은 시험을 거쳐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와야했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된다.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 차라리 그게 공정하다고 믿은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미친 자들은 '노력'의 대가를 마땅히 받는 것이고 미치지 못한 자신은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했던것 마저도.

시험 능력주의를 말하기 위해서 이 책은 초반부터 '학교' 교실 속을 들여다본다.

성적과 진학이라는 획일적인 가치 강요로 자고 있는 학생, 선행 학습과 학업 중단을 선언한 학생, 공격성과 반항성의 일환으로 나타나는 학교폭력과 우울증(자살), 그리고 최근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가속된 교육의 격차와 학교의 위기까지.

그리고 짚어본다. 과연 우리 학교는 시험 만능주의를 인지하고 있는걸까. 이를 바꾸기 위한 '노오력'은 하지 않은 것인가.

수능만능주의가 팽배한 한국 교육에서 수행평가, 동아리, 봉사, 독서, 행동특성과 인성등을 골고루 반영한 학생부종합전형과 입학사정관제, 논술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평가'하거나 '선발'할 때는 당연한듯한 절차로 공정과 변별의 합리성을 앞세우면 결국 시험문화(culture of testing)만이 남는다.

학원과 입시준비가 학교교육을 압도하고 각종 고시와 시험을 치뤄 승리한 시험선수(혹은 시험형인간) 엘리트들이 권력(지위)과 경제력(부)을 차지한 후 자녀에게 세습하는 나라, 한국이다. 성적°성과로 서열과 등급 매기기가 중심이 된 이곳은 시험은 공정하고 그 결과는 능력의 증거라 생각하기에 명문대 졸업장을 신분증 혹은 브랜드처럼 여기고 있다.


한국은 사람을 평가할때 시험성적이력을

거의 절대시하는 시험만능주의 사회다.

이런 현상을 '시험문화(culture of testing)이라 부른다.

시험이라는 것은 어느나라에나 있지만, (특히) 아시아나라들에서

시험은 '사회계층이동'과 '더 많은 경제적 기회'라는 의미를 갖는다.



교육과 시험은 분명히 별개의 것이지만,

'시험'이 '교육'을 이겼다.

그리고 시험 중에서도 자격시험이 아닌

순위(ranking)을 정하는 시험이 이겼다.

시험을 통한 절차적 공정과 최고자격자(the most qualified)선발의 원칙이교육과 수련, 공적, 일에 대한 적성 확인 절차를 거친

적임자 선발 원칙을 이겼다.

한국에서는 최고 적임자보다는 최고 능력자 선발을 우선했다.


별개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험'이 '교육'을 이긴 한국에서는 일에 대한 적합성을 따진 '최고 적임자'보다는 그 분야에 대한 순위를 매겼을때 제일 위에 있는 '최고 능력자'선발을 우선했다. 즉 능력있는 사람이란, 그일을 잘 수행할수 있는 '자격'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성적을 엄격히 변별해서 '최상의 순위'순서대로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 그리고 이런 신자유주의 시대의 공정, 능력주의 실적주의가 낳은 차별과 혐오는 노동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로부터 파생된다. 학교는 시험능력주의에 따라 학력, 학벌이라는 정치자본을 가진 신분이 생산노동자의 신분위에 군림하는것이 전혀 이상하지않다고 가르치며, 교과서는 주류 경제학은 시장주의 이론에따라 노동자를 산업전사, 생산성향상을 위해 순응하는 육체노동계급으로 서술하고있다. 한국의 과잉교육열은 결국 노동천시와 맞물려 노동비하로 나타난다.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긍정적으로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선호하는 직업군(전문직,공무원,공기업,대기업)은 경제활동의 10%정도에 불과하며 이들이 장차 피고용자로 일하게 되었을때의 대처나 재해정도는 가르치지않는다. 그렇다면 학교와 사회는 학생들에게 도달 할 수 없는 신기루만을 제시한후 좌절시키고 있는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입경쟁도 결국, 노동의 세계에서 탈출하기위한 전략, 즉 사회적 '노동자신분' 비하, 저임금, 고용불안, 위험한 일터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무엇이 삶을 의미있게 하는가'라는 가치 기준평가에서

한국인들의 대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독 한국인들만 '물질적 복리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대답한 것은

시험능력주의와 무관하지 않기때문이다.

다른 선진 16개국들은 '사회', '가족', '직업' 라고 대답했고,

이는 한국사람들이 최종 성적표를 '부'로 여기며

다른 가치들을 후순위로 돌린다는 것으로 가치 일원성, 가치 획일성이 매우 큰 나라임을 시사한다.

이책은 이렇게 학력인플레와 대졸청년들의 고통, 능력주의와 개인주의의 자기모순과 한계, 진짜 적용되어야 할 영역과 이를 넘어선 정의와 형평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능력주의는 수평적다양화, 능(能)과 지(知)를 고루 중시하는 사회를 말한다. 따라서 로스쿨, 경영대, 의대로 국가 엘리트를 양성하려는 능력주의가 아닌 순수학문분야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철학, 예술에 특별한 재능을 가자 청년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수 있도록 지원하여 이후 일자리뿐만아니라 높은 보상까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가지 개혁이 필요하다.


✔️관료 법조인의 (지위독점,지위폐쇄) 특권철폐와 반부패, 전문직 직업윤리확보 등으로 '지배집단' 구조개혁

✔️노동의 인간화, 처우개선, 임금격차축소, 단계적 숙련형성 등으로 사회적 연대와 조직운동을 활성화한 '노동사회' 구조개혁

✔️능력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이데올로기에대한 비판적 사고와 정신적 노예화 극복 등의 '가치'개혁과 대학 공공성 확대와 대학서열 구조 완화로 병목통로 확대

이책의 교육의 본질에 집중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계층, 계급, 불평등을 복합적으로 안고 있어 경제, 복지, 노동, 수도권 집중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풀 수 있는 사회개혁 사안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책은 한국의 사회개혁, 불평등극복, 시험능력주의 극복을 위한 일종의 정책 제안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기, 카미유 클로델 - 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
이운진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카미유 클로델을 처음 접한건 내가 좋아하는 프로인 서프라이즈(https://youtu.be/VnJxQDXrn2w)에서 다뤄지면서였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다시 한번 영상을 찾아봤는데 지금봐도 카미유와 로댕의 이야기를 압축하여 잘 담아낸 이야기인것 같다.


​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https://youtu.be/VnJxQDXrn2w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요약하자면, 이 얘기는 두 조각가의 이야기이자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로댕의 연인이라고 불렀고, 비운의 천재라고 불렀던 그녀,

카미유 클로델의 삶에는 여성으로서의 한계, 예술가의 소명과 욕망, 사랑과 실패, 병과 소외, 급변하는 시대의 풍경이 큰 물살로 어우러져 소용돌이 쳤다

빌뇌브쉬르페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처음 진흙을 만지고 놀던 다섯살의 카미유는 점점 인물을 빗어내거나 감정을 표현해내며 주변의 모든것을 눈에 담고 손으로 만들었다.

'인생의 한번은 파리로!'라는 구호를 따라 지식인, 예술가, 기술자, 노동자 등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 전체를 다시 만들고 싶어하며 모이던 1880년대의 파리의 변화 속도는 놀라웠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봐준 스승 알프레드 부셰의 설득으로 예술적 재능을 펼칠 기회의 장소로 파리에 입성했다.

그때까지만해도 조각가로 성공을 거둔 여성의 이름은 들어본적도 없었다. 빌뇌브에서 미켈란젤로(훌륭한조각가)가 되길 꿈꿨다면 파리에서는 그녀 자신(스스로 인정하는 위대한 조각가)이 되고 싶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열여덟의 소녀가 스승이 소개해준 에콜 데 보자르 교장에게 자신의 작품 <다윗과 골리앗>을 보여주었을때 교장은 "로댕에게 조각을 배웠느냐"고 물었고 이때 오귀스트 로댕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니체와 루 살로메도 그무렵 만났다.)

이후 스승이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게되었을때 남겨진 제자들을 마흔 두살의 로댕에게 부탁했고, 그중 카미유가 있었다.

이무렵 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듣고 지옥의문 구상에 대해 영감을 얻기위해 골몰하고 있었는데 그녀를 만난 로댕은 '나의 무자비한 연인, 나의 천사, 나의 열정'이라는 말들로 그녀를 표현 할 만큼 사로잡혔다.

독창적인 재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조각에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나눌수 있을 만큼 놀라운 깊이를 지니니 그녀는 이상적인 여인이였다.

그녀와 로댕은 가르침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시선을 주고받는 관계로, 손으로 흙을 빚는 관계에서 흙으로 마음을 빚어 증명하는 관계로 발전해갔다. 제자에서 작품모델로, 제작조수에서 열정의 연인으로, 더 나중에는 증오의 상대로 바뀌어갈 그녀의 운명의 수레바퀴가 서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카미유가 로댕의 작업실에서 중요한 작업을 맡게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않았다. 그러나 당대엔 공동 작업을 했던 사람들의 이름은 작품에 새겨지지않고 익명으로 처리되는게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로댕작품중 그녀작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길은 없다. 로댕 역시 그녀의 흉상을 제작해준 이래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을 고결하게, 관능적으로, 거침없이 가장 에로틱한 조각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그러나 로댕에겐 로즈뵈레라는 소박하고 묵묵한 성격의 조강지처가 있었다. 재봉사로일하던 가난하고 힘든 시절 스무살의 그녀는 그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의 예술이나 감수성을 이해하기엔 부족했지만 선하고 충실한 영혼을 가진,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베푼 그녀는 그의 아들도 낳았다. (그의 아들과 카미유는 2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사랑에 있어서는 전체가 아니라 마음의 일부분만 받는것은 거절이라고 생각했다.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의 전부여야 한다는 바람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불가능해졌다. 그녀는 그마음을 그림으로, 그리고 조각으로 제작했다.


늙은 여인이 나이든 남자의 팔과 어깨를 감싸안은채 이끌어가고있다. 남자는 얼마쯤은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무거운 몸으로 한쪽 팔을 뒤로 뻗어있다. 막 젊은 여자의 손을 놓쳐버린 순간이었다. 그 손끝엔 돌아와달라고 간청하고 애원하는 알몸의 젊은 여아이 무릎을 꿇은채 매달려있다.

사랑을 알았던 열여덟 청춘의 그녀는 조각계의 거장과 아리따운 제자의 사생활에 관한 소문과 맞서야 했기에 그 어떤 말로 증언하기보다 작품으로 보여주는것을 선택한다. 예술이 자기 비밀에 맞설때 가장 활기차고 위험해 질것임을 알고있었다.

파리에서의 삶은 살아가야할 이유와 성취하고싶은 욕망, 열정, 관능, 갈망, 질투 속에서 흙과 돌을 만지며 유능한 조각가이길, 사랑받는 한사람이길 바랬다.

그러나 이후 사랑의 고통과 이별 질긴 외로움을 안고 아틀리에에서 몽그베르그 정신병원으로, 그리고 일흔 아홉의 나이까지 30년넘게 No.2307로 존재하던 그녀는 1943-392라는 무연고 무덤에 매장되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다


최초의 숨결과 최후의 한숨 사이에 있는 삶의 모습은

모두 다르고 결국 같다.

여기, 카미유 클로델 中


이 책은 사집과 산문집을 낸 작가 이운진이 카미유 클로델에게 바치는 헌정글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알기 위해서는, (특히나 그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록'을 찾는 것 뿐이다.

어린 시절의 일화, 누군가와 나눈 편지들, 남겨진 작품과 사진들로

그 사람의 진짜 목소리를 쫒는다.

물론 몇몇의 기록을 모두 모은다고해도 한 사람의 '완전한 인생'은 되지 않을 뿐더러 더욱이 그것을 '전기'라 할 수 없겠지만,

단지 지난 사람의 흔적을 찾아서까지 말을 건내고 싶은

애착의 글로 이 책을 봐두면 될 것같다.

여기, 카미유 클로델 - 시작하며 中


그녀를 추억하고 그녀를 예찬하며 그녀의 슬픔을 감히 짐작해보며 함께 흐느끼다가 그녀가 못다한 말까지 꺼내어 그녀의 일생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아트북스에서 여성 작가에 대해 다룬 책 중 『여기, 아르테미시아』와 같은 형식의 제목을 띄고 있는 이 『여기, 카미유 클로델』은 사실 결이 좀 다르다. 전작이 논문형태에 가까울만큼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며 시대 배경과 작품 해설의 '사실적 검증' 에 논점을 맞췄다면 이책은 '감정선'의 흐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랑에 대한 좌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픽션 소설처럼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반전이 이루어지는 포인트는 두 목차였다.


홀로 선 여자, 그리고 예술가


역시, 이거지. 이래야 아트북스지 했던 부분은 책의 중간부분부터 나왔다.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었는가?』 『여기, 아르테미시아』 를 읽으면서 19세기 이전 여성이 미술사에 남겨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여성미술가의 발견은 더 귀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살아남아 이렇게 이름을 남길 수 있었는가. 그 노력과 재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이 여성 누드를 그리는 것은 당연했으나 여성은 그곳에 낄 수 없었다. 그저, 관행이었다. 그녀가 파리에 갔을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들어가고자 했던 보자르 학교에서는 여성의 입학은 허락되지 않았고, 그녀는 스승의 추천을 받아 콜라로시 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1883년부터 그녀는 쉬지 않고 전시를 했으며 작품을 출품했다.

'금지된 꿈으로 가득찬 내면을 최초로 표현한 조각가'

'이런 작품은 미켈란젤로 이후 처음이다!' '스승만큼 뛰어난…'

'놀라운 걸작이다' '세기의 위대한 조각가…'

명성있는 로댕의 뮤즈이자 시인 폴클로델의 누나라는 꼬리표가 늘 달려있었었지만 그녀는 세간에서 이런평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대담한 조각이 순수함 대신 관능으로 환기되며 작품이 평가 절하되거나 전시가 취소되는 등의 난항을 겪기도 하였으나 사회에서 배척당할만한 무명의 예술가로 지내기엔 그녀의 천재성은 높은 찬사를 받았기에 대규모 전시회와 작품 판매의 행운을 잠시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주 재료로 쓰던 대리석/오닉스의 재료비를 포함하여, 보조자와 주조공의 임금, 운송료, 보관비 등 당시 1년 동안 조각에 드는 비용을 만만치 않았다.

그녀가 지인들과 나누던 편지에 수없이 '돈'과 관련된 '외상''집세''판매가'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할 만큼 '독립된'미술가로 살기에 지독한 재정난을 겪었고, 그녀의 삶은 곧 피폐해져 갔다.


책 속에는 이와 관련하여 다른 여성 작가들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롯이 자신(의 작품활동)에 집중 할 수 있는 자신을 위한 방과 고정된 수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이 인용되어 있다.

물질적 자립은, 단순히 돈 자체라던가 즐거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덜 받는 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점에서 그녀는 세간의 모진 풍파에 영향을 '덜' 받을만큼 독립된 예술가로 살지는 못했다.

궁핍한 현실은 주변 사람들을 불신하게 만들었고, 예민해진 신경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영감을 훔치고 표절하려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실제로 로댕의 친구 조각가로 인해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고 늘 로댕과의 비교(영향력)를 겪어왔던지라 모두 자신을 파멸시킬 음모자들이라는 의심의 눈으로 세상에 방어태세를 갖추게 된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힌 카미유는 자기 작품을 산산조각 내거나 부수는 파괴행위로 이어졌고 피해망상이 심화되며 사람들이 자신을 독살하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동생 폴 클로델은 이러한 카미유의 마음을 '혐오'와 '광기'라는 말로 표현했고, 그녀는 가족에 의해 결국 정신병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이래 죽을때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마지막 일기


가장 압권이였던 부분은 이 부분이였다.

내내 그녀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 구성되어 비극, 슬픔, 고통, 분노, 증오, 외로움과 괴로움 등으로 가득찼던 표현들이 이부분에서 깨달음을 얻은듯, 체화한듯 오히려 덤덤하게 서술해 나가며 이윽고 이 삶을, 모든 운명을 받아들이고 모든 할일을 끝내듯이 마무리를 짓는다.

비록, 작가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라는 단서를 붙여 작가만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간 그녀의 마지막 페이지지만, 너무나 이입이 되는 부분이라 정말 그녀가 쓴 것이라고 믿어지게 된다. 그렇게 이부분을 읽으면서 얼마나 손을 부들부들 떨었는지


처음 흙을 만지던 다섯 살의 어린아이였던 나,

사랑을 알았던 열 여덟 청춘이었던 나,

그리고 들개처럼 세상에 맞섰던 나의 무엇이 일흔 아홉의 내 안에 남았을까?

-

조각가이기를 바라며,

사랑스러운 한 사람의 여인이기를 바라며 나는 돌을 다듬었다.

돌 만큼 한 사람을 사랑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

나는 내가 살아온 세상과 계속 살아갈 세상을 다 잃어버렸다.

당신이 아니었다 해도 내 삶은 무너졌을까?

-

사랑은 한 생애를 걸고 천천히 만드는 작품이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우리가 거짓말같은 아름다운 삶의 한때를 나누어 가졌다는 사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그럭저럭 용서할 것이다.

-

나에게는 이제 잊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부질없어보인다.

비극으로 보이는 삶이더라도 나는 내 삶을 완수하고 싶었다.


로댕은 카미유에게 분명 독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독히 사랑했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조각했던 그 시절은 분명히 존재했음을 인정한다. 비록 영원하진 못했었도. '당신이 없었다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있었던'시절을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그럭저럭 용서할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사무치게 마음이 아팠다. 이 구절에서 멈칫하며 울컥이는 마음을 잠시 달랜 후에야 뒷 부분을 읽어야 했다.

그 '용서'의 마음은 로댕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리라. 그 뒤로 스스로 혹사시켰던 자기 자신에게도 분명 향했으리라 짐작한다.


로댕의 지인이 보낸 편지에는 로댕의 진심이 언급되어 있다.


어느날 로댕이 찾아와 「애원하는 여인」앞에서

갑자기 멈추어 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작품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처럼 말입니다.

나는 그가 당신을 버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로 인해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뜬지 15년이 지났군요.

살아 있었다 해도 그는 카미유 당신만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작품 중개인 외젠 블로가 카미유에게 보낸 편지 中


그녀는 이 말에 흔들렸을까.

어쩐지 한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영화 『아가씨』 이즈미 히데코의 대사 中


이 책을 읽고 나니, '비운의 그녀'라는 수식어만 붙었던 까미유를 조금 더 확장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구보다 치열했고, 강렬했고, 결국 통달하며 삶을 용서했을 그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녀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비극으로 보이는 삶이더라도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완수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바란다.

이곳에서 흙을 처음 만지던 그때 처럼, 늙은 나무 아래 흙한줌이 되는 그때가 되면 구름을 빚고 있기를.

1943.10.19. 여기,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도서 #아트북스서포터즈2기 #아트북스서포터즈리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권리를 주장해 -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인권 가이드 창비청소년문고 41
국제앰네스티.안젤리나 졸리.제럴딘 반 뷰런 지음, 김고연주 옮김 / 창비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 인권선언 1조에는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있다.

권리는 평등하다. 그리고 불가양하다.

권리가 생기는 시기가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여기,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권리를 위반하거나 침해하려는 상황에서 주장할수 있어야 한다.

평화, 존엄, 관용, 자유, 평등, 연대 정신 속에서 성장해야한다.

이 책은 15가지 권리(생명, 평등, 참여, 신분, 안전한공간, 위험에서 보호, 폭력에서 보호, 신체온전성, 사생활, 사상의 자유, 소수자와 선주민, 평화적시위, 형사사법 제도)를 세가지 공통 질문 속에서 설명하며 구성되어있다.

✔무슨 뜻인가요? (권리의 내용 이해)

✔현실은 어떤가요? (현 실태, 위기, 문제점 파악)

✔권리를 위한 투쟁 - 행동하기 (투쟁의 사례)

예를 들어 제일 처음 나온 권리는 생명,존엄,건강(신체적, 정신적)과 안녕을 위한 권리이다. 우리는 양질의 식수, 적절한 영양식과 집, 위생설비와 의료를 누릴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깨끗한 기후와 지속가능한 환경이 필요하며 이와 관련하여 기후 위기에 의해 야기되는 환경파괴로 인한 권리침해에 대해 목소를 높인 식수보장, 바다자원보호, 탄소배출제한, 감영병 예방운동을 펼친 청소년들의 사례를 들려준다.

그밖에도 각종차별(인종, 성, 장애, 빈곤)과 투표권, 강제노동과 부당이득, 사상과 종교의 자유 등을 예로든다.

개념과 사례를 들어 이해를 마친후에는 주장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단계별로 제시한다. 자각, 토론, 반박, 연설을 위한 팁과 방법을 알려주고(자신감, 정확한 자료제시, 예의  등) 주장을 대중앞에서 실천할수 있는 행동방법(캠페인, 집회와 시위, 책임묻기, 관련법 살피고 요청하기)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책은 누구든, 어디에 살든, 언제든, 가지고 있는 권리가 무엇아지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안내서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는 눈 키우는 법 - 우세한 눈이 알려주는 지각, 창조, 학습의 비밀
베티 에드워즈 지음, 안진이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표지는 미니멀초상화-눈미니어처 일부이다.

1785년 등장하여 1820년대 갑자기 끝나 짧은 기간동안 미국과 영국에서 유행하던 눈초상.

한쪽 눈만 그리는 조그만 그림으로 눈미니어처(eye miniatures)라고 불렸다고 한다.

"나 여기있어요. 당신을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눈 미니어처를 소개하는 부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네케 흐로텐부르 『소중한 시선-18세기 후반 눈 미니어처에서의 친밀한 시각』

"눈 미니어처는 초상화의 본질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당신을 바라보는 행위이자

당신을 한 장의 그림에 집어 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또한 책의 서문에는 눈과 관련된 많은 명언들이 등장한다.




키케로

"얼굴은 정신의 초상이고, 눈은 정신의 통역가"

성제롬

"얼굴은 정신의 거울이고, 눈은 말하지 않고도 마음의 비밀을 고백한다"

라틴어 격언

"얼굴은 정신의 초상이고 눈은 정신의 밀고자다"

요기 베라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유래 미상 격언

"눈은 영혼의 창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한쪽 눈은 내면을 보고 다른 쪽 눈은 외부를 본다"

파울 클레

"한쪽눈은 보고, 다른쪽 눈은 느낀다"


눈과 관련된 이 수많은 명언중 이 책과 가장 가까운 명언은 파울클레의 말이다.

이 책은 눈과 연결된 뇌의 작용, 그래서 더 우세한 눈을 이용하여 드로잉을 할 때의 우수성을 언급하면서 다양한 눈과 뇌의 연결고리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제각각 뇌 구조의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신호를 통해 겉으로 표현된다. 어느 손(handedness)을 많이 다루느냐에 따라 왼손잡이냐 오른손잡이냐로 나뉘고, 주로 어느쪽 발(footedness)이 먼저 앞으로 나가느냐에 따라 왼발잡이냐 오른발잡이냐로 나뉘는 것처럼, 어느쪽 눈(eyedness)을 우세하게 사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왼눈잡이냐 오른눈잡이냐로 나뉘고 있다.


우리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나뉘어져 있고, 양쪽 뇌와 두 눈은 서로 관련이 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두가지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만나서 대화를 할때 통제를 받는 것은 언어를 관장하는 좌뇌이며 좌뇌는 오른쪽눈과 연결이 되어 있기에 우리는 잠재의식적으로 오른쪽 눈을 보면서 대화를 한다. 왼쪽 눈은 비언어적인 우뇌의 통제를 받아 즉 음의 높낮이, 감정, 시각적인 측면에 반응한다.

▶오른손잡이+오른눈잡이 (수가 가장 많은 집단)

말하는 것과 눈에 보이는 것이 일치하는 경험을 많이 한다.

계획을 세우고 미리 계획한 단계들을 밟아서 결과물을 얻어내는데 능하다

계획한 일을 마칠때까지 다른 관심사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주의를 뺏기지 않는다.

새로 입력되는 정보에 신경쓰지 않거나 다른(가능성의) 길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

▶오른손잡이+왼눈잡이

현실을 잘 파악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을 볼수 있다.

우뇌(시각적, 비언어적)에 반응하는 좌뇌 언어에는 기대와 과장도 포함될 수 있다.

▶왼손잡이+왼눈잡이 (희소 집단)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분야(수학, 양자물리학)활동 가능성이 높다.

단, 현대사회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적응 못할 수도 있다.

▶양쪽 눈이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경우(전체 성인의1%)

순수하고 개방적이고 상대를 신뢰하고 믿음직하고 꾸밈없다.

죄뇌가 무든 것을 지배한다.(언어로 표현된 지각과 신념만이 정확하다고 설득)


우리는 우리와 마주하는 얼굴을 보는 독특한 습관이 하나 있다.

보통 자신의 오른쪽 눈으로 상대의 오른쪽 눈을 들여다보며 소통을 하는데, 이렇게 의도치 않더라도 자동으로 (상대 입장에서는) 왼쪽 얼굴에 집중하는 경향이 얼굴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한쪽은 웃고 한쪽은 우는 두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우리는 한쪽 감정으로 전체를 인식한다.

"대화는 괜찮았는데, 자리는 불편했어요" 라는 모순은 이런 인식의 차이에서 생겨난다. 시각적 정보와 감정적인 단서를 찾는 왼쪽과 오른쪽 눈이 일하는 비중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기 전략'은 무의식의 과정이라 사적인 습관으로 쌓이고, 이는 인관관계를 맺는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그림이 오랜 세월동안 존재 가치를 유지해온 방법은 상징그림이다. 중요한 시각적, 언어적 특정 개념이나 조직을 나타내거나 추상적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구별, 특히 왼쪽눈은 어둠, 달, 불확실성과 연관되어 있으며 오른쪽 눈은 햇빛, 내양, 선한의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왼쪽눈이 비언어적 고나찰을 오른쪽 눈이 언어와 관련되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있던 까닭일 것이다. 이후 전시안(하나의 눈), 제 3의 눈(상상의 눈)을 찾거나 신성한 눈(호루스의 눈), 악마의 눈, 섭리의 눈 등으로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회화의 소재로 쓰여왔다.


"As I can?" 이것이 내 최고의 한장인데, 당신은? 쯤으로 해석되는 얀반에이크의 초상화와 "내가 당신을 보고 있다. 이곳을 보라!" 라는 자기 선언적 초상화를 그린 뒤러의 맥을 잊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셀카일 것이다. "내가 여기있다. 이게 나다"라고 말하는 이미지를 선택하여 타자를 바라보는 이 셀카는 "당신의 눈에 비치는 나는, 내가 보는 나와 같은가?"라는 질문을 역으로 하고 있다.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어떻게 비춰지길 바라는지를 담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초상화(자화상)의 본질은 자신을 바라보는 행위이자 자신을 한 장의 그림(혹은 사진)에 집어 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눈 편향이 개개인의 성격이나 사고방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앞으로 더 밝혀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으며 시각적으로 인지한 내용을 좌뇌로 전달한다. 저자는 좌뇌를 사용해서 사물의 이름을 판별하는데 익숙해져 있으니 이제부터는 우뇌를 사용해서 사물을 진짜로 보는 연습을 해보자고 이야기를 한다. 보는데도 요령이 있고 그 요령을 익힌다면 생동감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세한 눈으로 보고, 본것들을 단어들과 연결하는 능력과 언어적 소통을 감독하는 능력을 기른뒤, 비언어적이고 시각적인 우뇌를 사고와 문제해결에 참여시켜 자신의 뇌에 대한 일정한 통제력까지 획득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시각적 뇌와 언어적 뇌, 그리고 양쪽 뇌가 연결된 양쪽 눈을 적절히 활용해 풍성한 경험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기, 아르테미시아 -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
메리 D. 개러드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Here, Arrtemisia는 그녀의 묘비명이다.

이름만으로 존재를 증명하고 명성을 증언한것이다.

1593년 그녀가 태어났을 당시 여성은 법적으로 아버지나 남편의 소유물이었으며 여성혐오와 마녀사냥이 극에 달하던 시기였다. 그런 그녀의 묘비명이 이름으로 새겨져있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카라밧조와 젠틀레스키, 클림트가 그린 유디트의 그림은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비교감상해봤을 그림이다. 같은 인물을 두고 각기 다른 해설과 시선으로 그려낸 유디트는 유약하거나 매혹적인 팜므파탈이였지만, 그녀는 달랐다. 강인하고 주최적인 영웅의 모습이였다.

이전부터 유디트나 막달라 마리아는 여성의 고정된 유형의 정체성을 부여하기에 좋은 소재였는데, 아르테미시아는 카라밧조의 화풍은 이어받되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인물을 빚어내 변화하는 유형을 만들어 깊이와 복잡성을 얻어냈다.

그녀의 회화는 거의 최초로 여성적시각에서 젠더관계를 보여주었다. 대담하고 인습타파적으로 가부장제도에 맞섰고 기성권위(미켈란젤로와 카라밧조)에 도전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성숙하고 건장하며 전통적인 여성미가 없는 영웅적 여성상(강인한 여성지도자)로 등장시켰던 것이다.

그렇게 수십년에 걸쳐 아르테미시아는 유디트를 시작으로 여성에게 힘을 실어주는 이미지를 계속 그렸다. 이로써 여성에게 가해진 제약으로부터 가상의 탈출을 추구했으며 유사한 미적 전략들을 사용해 문화적 제약에 도전했다.

7장의 목차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의 내용 구성은 다음과 같다.

✔그녀의 발걸음(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나폴리, 잉글랜드)과 그녀가 만난 작가, 후원자들. 그녀가 불러일으킨 저항운동과 연대의 물결

✔죽음을 무릅쓰고 정숙한 아내로 순결을 지킨 성서속 여성적인 덕행의 모범이자 구약시대 규범의 상징인 '수산나'에게 저항과 사회적 모순을 표현

✔드레스와 장신구라는 유희를 개인의 독자적 선택문제의 자유로 대담하게 주장하고 '막달라'에게 역할극하듯 다채로운 삶으로 연결

✔"겸손이 오만함을 처단"하는 도나텔로의 정신을 이어받아 반가부장적 도전의 영웅적 주인공으로 '유디트'를 그려 "여성이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를" 주장

✔악마같은(악명높은) 여인의 전형이된 '메데이아'를 자신의 삶을 통제할줄아는 사람으로, 감정적이고 연약한 '에스더'를 죽어가는 디바의 인간적인 모습으로, 성서 속 유약한 '야엘'을 강인한 여성으로 표현하며 젠더 역할이 전도된 권력이미지로 활용

✔여성의 이중성('이래야 한다'와 '이러고 싶다')사이에 끼인 분열되고 상충된 자의식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극복하기위한 전략을 고안하고 알레고리와 자신을 동일시

✔교양학문과 뮤즈들의 알레고르를 그림으로 그림으로써 여성 성취와 모계계승을 담아 이념의 유산을 확장 및 전달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역시나 그녀의 재해석한 여성 인물들의 그림이다. 보란듯이 남성과 여성의 시각적, 개념적, 지위적, 육체적, 인간적인 차이를 보여준다. 성별을 떠나 그녀의 그림에는 결국 자기 삶을 개척하고 고뇌하고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즉, '주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려 애썼다. 그녀부터가 스스로 개척해 나간 삶을 살아가는 '주체적인 여성'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였다.


책의 말미에 몇 줄로 정리된 그녀의 이력. 성폭행의 피해자이자, 가부장적인 가정의 딸과 아내, 엄마로 살았지만 화가이자 가장이자 사업가였다. 무엇보다 이 책의 부제목처럼 '최초의 여성주의 화가'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젠더갈등을 수면으로 드러내며 논쟁해왔던 정치가였다.


아르테미시아의 가장 탁월한 전문가인 아메리칸대학 미술사 교수 메리D.게이드의 이 책은 솔직히 논문이나 다름없다. 마지막 60페이지정도가 참고문헌과 이미지출처등으로 적혀있는것을 보면 얼마나 심도있게 연구를 해왔는지를 대변한다. 수많은 여성작가,음악가,권력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던 작가는 페미니즘미술사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공로상을 탄적이 있었던만큼 바로크시대에서 여성화가로 꽃피운 아르테미시아의 이야기를 깊이있고 입체적으로 다루고있다. 그리고 질문한다.


당시 시대상을 뚫고 창조적 상상력으로 그려낸 여성영웅은 현재 사회적 삶은 한계를 뛰어넘었는가.

아니면 아직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