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다듬기
이상교 지음, 밤코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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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지금 마른 멸치가 되었지만 바닷속을 헤엄치던 널 상상해'라는 작가의 머릿말에서 은비늘 반짝이며 날렵하게 헤엄치는 멸치를 생각해본다.

춤추듯 바닷속에서 유유히 헤엄치며 어디로든 갈수있고 모든곳이 모험장소가 되었던 멸치의 꿈.

가족끼리 멸치국수를 먹기로 한날 아들과 아빠는 국물을 내기 위한 멸치 다듬기 역할을 맡았다. 부자가 나란히 앉아 두 접시에 멸치 대가리와 내장, 몸통을 구분하며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사이, 신문지 위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멸치들은 신문 기삿거리들 사이에서 다시 유유히 헤엄친다. 바닷속이 아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와 피서지, 도심한복판, 공연장, 전시장을 유유히 헤엄치며 또다시 어디로든 갈수있고 모든곳이 모험장소가 되어 잠시나마 꿈을 꾼다. 멸치 육수로 우려지는 몸통들은 다시 은비늘은 반짝이며 꿀렁꿀렁 춤을춘다.

육수가 우려지는동안 가족 모두 역할분담을 하며 요리를 한다.
식탁 위에 모락모락 김이나는 완성된 멸치국수를 후후불며 쪼로록 나눠먹는다. 멸치의 여행도 끝나고 가족들이 함께 요리를 해나갔던 여정도 마무리된다.

한 식탁에서 음식을 나눠먹는 일은 잦지만 그 음식을 요리하기 위해 가족 모두가 모여 함께 역할분담을 하며 같이 만드는 일은 결코 잦은 일은 아니다. 멸치다듬기는 바닷속에서 다 펼치지 못했던 멸치의 여정의 연장선이기도 하고, 아이가 먹는 한끼의 식사가 이렇게 손이 많이가는 정성스런 조리의 여정이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다.

멸치 다듬기는 가족의 소소한 추억 다듬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조금 더 자란 아이는 나중에라도 깨달을 수 있을까. 바닷속에서의 꿈을 신문지위에서 잠시 떠올려본 멸치들처럼 훗날 어린시절을 떠올려본 아이가 따뜻했던 멸치국수만큼 따뜻했던 시간을 같이 떠올릴수 있길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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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너머 자유 - 분열의 시대, 합의는 가능한가 김영란 판결 시리즈
김영란 지음 / 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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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는 3만원 이하, 선물은 5만원 이하, 경조사는 10만원 이하여야 한다는 구체적인 액수와 함께 2016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첫 제안자의 이름인 '김영란법'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포함되어 있었지만 심의에서 빠졌다가 이후 시행된 '이해충돌 방지법' 또한 초안과는 달라졌다하지만 '제2의 김영란법'으로 불린다.

대한민국 사법사상 첫 여성 대법관이자, 입법제안 당시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기도 했던 바로 그 '김영란'의 새로운 저서 『판결 너머 자유』가 출간되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이성적인 기관은 법원으로, 법이 실패하면 모든 것이 실패한다." 는 이념 아래 이 책은, 20C 후반 「정치적 자유주의」 「정의론」 등의 고전을 남긴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의견들을 대법원의 최신 「전원합의체 판결」들과 접목하며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고 외치는 시대이지만 동시에 '극단적인 대결'로 치달아 되려 '다양한 목소리'가 설 자리가 좁아지는 모순적 상황이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합당한 다원주의'를 인정하고 공적 정의관에 의해 효과적으로 규제되는 사회를 '질서 정연한 사회'라고 얘기하던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검토하면서 과연 우리 사회는 합당한 다원주의 사회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상반되지만 합당한' 신념체계들이 공존하는 사회라 할 수 있는가? 되려 다원성을 부인하고 공감이 아닌 동조로 양분된 여론과 편 가르기 문화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서 최근까지도 치열하게 논의되었던 남성 상속인의 제사 주재자 우선 판단여부, 전교조 법외노조 사건, 양심적 병역거부, 성전환자 성별정정 허가, 미성년자 상속 등 결코 간단하지 않은 판결들을 다룬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견, 반대의견, 별개의견, 보충의견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념과 가치관들이 부딪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중첩적 합의’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럼에도 ‘공적 이성’의 산물이자 '가장 이성적인 기관'인 법원에서 이를 이끌어내 사회의 표본이 되어야 한다고 뜻을 강력히 내비친다.

책의 부제는 분열의 시대, 합의는 가능한가이다.
'합당한 다원주의 현실로 인한 합당한 불일치'의 사회에서 다양한 판결들을 제시하며 합의에 이르는 길로 안내한다. 그러면서 다원주의 사회는 개별적 '연대' 뿐만아니라 집단끼리의 '연결'이 더 중요하고 이를 통해 분열의 간극을 보다 가깝게 이끌어 낼수 있을것이라 대답하고 있다.

롤스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우리 사회의 입법과 사법 영역에 적용해 봄으로써 이것의 '선택'으로 저것이 '포기'되는 방향보다는 절충, 조율, 합의, 책임, 성찰로 '합당한 다원주의'이자 '민주시민'의 길로 걸어가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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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사회 - 안전한 삶을 위해 알아야 할 범죄의 모든 것
정재민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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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사회』는 tvN 「알쓸범잡」 , SBS 「지옥법정」등의 방송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만능 법조인 정재민 작가의 신간이다. 판사, 군검사, 법학박사, 법무부 심의관, 국제전범재판소 연구관 등 범죄와 관련된 다양한 직종을 거치며 작가만이 가질 수 있었던 ‘범죄’와 관련된 현장 체험과 느낀점들을 모아 서술한 범죄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전반부는 현재의 범죄 대응 시스템(경찰 수사, 검찰 기소, 법원 재판, 교도소 수감과 교정)에 대해서 그간의 범죄들을 예로 들며 여러 제도와 용어적 특성들을 쉽게 설명해 준다. 그리고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범죄의 원인을 분석하고, 정의롭고 안전한 미래를 위한 제도 변화의 필요성과 예방책까지 강구하며 '사는듯 사는삶'을 바라며 마무리된다.

"모든 사람이 안전해지기까지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예전에는 '범죄'라는 것이 뉴스에 나오는 '큰 일(이지만 남의 일)'이였지만, 이제는 '주변의 일(이자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묻지마 살인과 살인예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흉기난동과 폭행, 무분별한 마약 사건, 사이코패스, 가스라이팅, 신종 피싱 및 집단사기 사건 등 최근 급증하는 범죄들은 시간, 장소, 대상자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적인 범죄로 '무차별성'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무차별성을 지닌 강력 범죄의 나라로 전락하게 된 경위 및 원인을 생물학,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등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하며 결국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범죄, 범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환경과 구조의 중요성에 다다른다.

우리는 이제까지 범죄사건이 일어나면 주로 범죄자가 원래 어떤 성향의 사람이었는지 사적이고 심리적인 영역에만 치우쳐 책임을 물었다. 범죄 '사건'은 범죄자 개인의 '형량'으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우리 '사회'로 돌아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간과해 왔던 것이다. 범죄 소식과 사건은 흥미진진한 기사거리가 아니라 범죄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현제도와 구조, 입법의 영역으로 다각적인 시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으며, 그제야 비로소 '범죄 사회'가 아닌 '정의로운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위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노력하며 범죄를 막기 위해 작가가 어떤 입법을 추진하고 어떤 제도의 변화에 주목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다보면 어느새 정의로운 사회, 공존하는 사회를 위한 기준을 바로세우고 있는 독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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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짝홀짝 호로록 - 제1회 창비그림책상 대상 수상작
손소영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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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창비그림책상 대상 수상작은 고등학교 영어교사인 손소영 작가의 『홀짝홀짝 호로록』이다.

배고팠던 담장 밖 오리와 문 밖의 강아지는 집 안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의 간식인 우유를 몰래 먹는다. 고양이는 곧장 화를 냈지만 우연히 터진 서로의 방구 소리에 웃음이 터지고, 웃음을 공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된다. 왁자지껄 어울리다 방 안을 어지럽히며 놀다가 으레 죄책감에 함께 도망가고, 마침 내리는 비는 다시 그들이 놀이터가 되어 흠뻑 물구덩이에 덤벼들며 함께 뒹군다. 다시 실내로 들어와 따뜻한 코코아를 나누어 마시는 모습은 처음 우유를 마실때와는 이제 전혀 다르다. 그들은 즐거운 하루를 공유한 친구가 되었고, 그렇게 노곤해진 몸을 서로에게 기대고 포개어 한 몸처럼 엉켜 잠든다는 내용이다. 

이 책은 흔한 동물들의 울음소리인 야옹, 멍멍, 꽥꽥같은 음성어는 담고 있지 않다. 고양이, 강아지, 오리가 친구가 되어 어울리며 신나게 놀다가 따뜻하게 잠드는 이 모든 내용을 58가지 의성어·의태어만으로 시청각, 후각, 촉각을 두루 담아내 우리의 비언어적인 행동들 속에서 서로 공감하고 공유하는 감성의 언어를 배우게 한다. 이 모습까지 책장을 덮는 순간까지 지켜 보고 있노라면 포근함이 온몸에 퍼져 그들과 한바탕 같이 즐긴 느낌이다. 

고양이, 강아지, 오리는 우리들의 반려 동물들이기도 하다. 함께 여러 감정을 느끼고 공유하지만 대화를 나누지는 못한다. 이에 착안한 걸까, 우리의 반려동물들 끼리도 아마 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친구가 되는 과정, 얼마든지 놀잇거리가 될 수 있는 주변 환경을 탐색하며 함께 어울린다는 것의 따뜻한 감정을 사랑스러운 이 동물 캐릭터들로 잘 나타내고 있다. 눈동자와 눈꼬리의 위치, 입꼬리의 떨림, 얼굴의 붉어짐, 왼쪽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고갯짓과 허둥거림 등의 생생한 표정과 행동으로 충분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은 그저 상황에 맞는 상징적 언어 제시로 되어 있어 몇번을 읽으며 '이럴땐 어떤 표정과 행동이 나오게 될까?' 라는 질문으로 놀 수 있는 '말놀이 그림책' 이자 타닥타닥, 모락모락 처럼 사물을 형태에서도 움직임을 찾아 낼 수 있는 생생한 '그림 문자책(타이포그래피)'이다. 

두리번 거리며 친구를 찾고, 왁자지껄 우당탕거리며 친구가 되고, 화끈화끈한 순간도 투덜투덜한 순간도 토닥토닥으로 감싸줄 수 있는 시간을 공유하고 나면 우리는 이를 '우정'이라고 부르게 된다. 다채로운 언어표현과 감정표현 뿐만이 아니라 어울림을 통한 사교성, 놀이의 즐거움을 아는 유희성, 반려동물과 함께 공존하는 삶의 방향성을 알려주는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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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니악
벵하민 라바투트 지음, 송예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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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iac 은 무언가에 열중하여 미치광이처럼 구는 사람, 즉 광적인 애호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천재들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 생각을 어떤 식으로 펼치길래 '천재'라고 불릴만한 업적과 행동을 펼쳐낼 수 있는 것일까. 『매니악』 은 이 편집증적인 '폭발적 지성'이 '새로운 안목과 창조'를 구현하기 까지의 그들의 격돌과 고뇌와 결단을 보여주는 책이다. '이책은 사실에 기반한 허구의 작품이다'라고 명확히 밝히긴 했지만 작가 벵하민 라바투트는 실제 인물들을 두고 픽션과 논픽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이어붙인다. '신의 한수'로 불리는 영역에 발을 디뎠던 광기 어린 지성의 폭발을 보여주었던 물리학자 파울 에렌페스트, 컴퓨터 과학자 존 폰 노이만, 그리고 바둑기사 이세돌을 선택하여 1,2,3부로 구성된 이 책은 실존 인물과 사건을 바탕으로 그들이 걸은 길과 인류사에 남은 족적을 확인시켜 준다.

1부 파울 에렌페스트를 통해 '확실성'이 무너진 고전 물리학에서 '비이성'('비인간적인 지성'이 '기술'을 매개로 얼마나 우리 삶을 침범할 수 있는지)을 발견한다. 새롭고 독창적이며 우리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인간에게 얼마나 위협적이며 파괴적일 수 있는지 경고한다.

2부 존 폰 노이만을 통해 오늘날 '인공지능'의 가능성을 예견하며 현대 컴퓨팅의 기초를 다지는 프로젝트에서 '인간의 이해나 통제를 넘어 진화하는 지능을 가진 <스스로 생각하고 진화하는 자기 복제 기계>의 탄생은 가능한가' 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 최초의 프로그래밍이 가능 컴퓨터를 발명하고 게임이론, AI, 디지털 라이프, 세포 오토마톤을 개척하며 금세 무찌를 수 없는 존재로 진화해가는 AI의 초기 시대의 놀라움과 두려움을 보여준다.

마지막 3부에서는 데미스 허사비스가 탄생시킨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역사적 대국을 다룬다. '0.0001.'의 확률로 '신의 한 수'로 불리우며 이뤄낸 다섯 대국중 단 한번의 승리. 인류가 지닌 힘과 희망의 극적인 상징 을 발견하게 된 순간의 짜릿함이 이 책 속에 담겨 있다.

"그것은 어느 컴퓨터도 둔 적이 없는 수였다. 인간이 고려할 법한 수도 아니었다. 인간의 경험치를 훌쩍 뛰어넘은 것은 물론, 알파고의 무한해 보이는 능력조차 초월한 수였다. 새로웠고, 수천 년간 축적된 지혜와의 급진적 결별이자 전통과의 완벽한 단절이었다."라는 이세돌와 인공지능의 대국에서 우리는 어떤 인류의 미래를 그리게 되었을까.

폭발적인 지성으로 창조해 낸 '인공지능'의 진화가 우리 세상에 어떤 격변과 위험을 가져다 줄지 통찰을 선사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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