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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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페퍼민트(peppermint)차를 내리면 풀향이 집안에 감돌았다.

머리가 맑아지고 마음이 진정된다고 엄마가 좋아하는 차였다.

'미각'을 깨우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서 엄마를 위해 내리던 차였고,

같은 간병인으로부터 건내받아 잠깐의 '위로'와 '휴식'을 가져다 준 차였으며,

박하 향이 섬세하게 빚어낸 평온한 공간 속에서 '용서'의 말을 건내게 한 차이다.

이야기는 '식물적인 인간을 돌보는 일과 식물을 기르는 일이 어느정도 닮아 있다' 는 문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야기의 주인공 시안은 유난히 꽃과 나무를 좋아하여 예민한 식물이라도 죽이는 법 없이 잘 보살피던 엄마의 병간호를 오랫동안 하고 있다.

'요즘 애들중에 누가 이렇게 수발을 착실히 들겠어' '대단하다' '딱하다'라는 노골적인 동정과 연민의 시선도 6년이면 익숙해 진다. 제법 환자를 돌볼줄 알게 된건 삼십년 넘게 간병 경력을 쌓아온 배테랑이자 엄마를 함께 돌봐주시는 간병인 최선희 선생님에게 배웠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누군가의 곁에 있는 시간만큼 미래에 누군가도 나를 지켜주고 있을거라고 생각하려고 노력해 보라고 했다.

한 평생 혼자 살지않는 이상 모두 결국에는 누군가를 간병하게 돼. 우리도 누군가의 간병을 받게될거야. 사람은 다 늙고 늙으면 아프니까. 스스로 자기를 지키지 못하게 되니까.

『페퍼민트』 191p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오랜 간병생활을 하는 가족에 대한 이야기 일까? 간병인의 삶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면서 그에 대한 주변 시선은 물론 그들의 삶의 고단함과 희망을 놓지 못하는 비루함을 강조한 얘기가 아니다.

이야기는 엄마가 '무슨 일'로 식물인간이 되었을까라는 의문을 품기도 전에, 병원에서 '해일'이라는 예전에 알고 지내던 친구와의 재회를 먼저 안겨준다. 그러면서 그 친구와의 연락이 끊기게 된 '그 사건'이라는 것이 뭐지, 그래서 이들의 그전 사이는 어땠고, '그 사건'이후로는 어땠고, 다시 만난 지금은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거지라는 생각으로 이끌어나가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고의'도 아니었고"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우리 가족 다 지금은 '극복'하고 잘 지내고 있어"

"애초에 '책임'을 물을 수 없었던 일이야"


어딘가 위태로운 이 대화를 나누고 나니, 시안은 한때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냈던 그 '가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 다음이 어떻게 될지는 생각하지 않은채 이미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가족을 간병하는 시간도 노동시간으로 인정되어 시안은 최저 시급을 받는 노동자가 되었다. 그 월급으로 엄마의 간병용품, 개인 생필품, 식료품을 사느냐 돈을 모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생활이 이전보다 약간은 나아졌다고 생각하며 위로한다.

같은 병실을 쓰는 어른들은 시안에게 아무렇지 않게 심부름을 시킨다.식판을 가져와달라, 설거지를 대신해달라, 화장실까지 부축해달라, 창문을 열어달라, 닫아달라, 간호사를 불러달라는 등의 부탁을 하루에 수십번도 더 받는다. 몸이 불편한 어른들의 부탁을 거절하는것보다 들어주는 일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엄마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일, 자극하기 위해서라면 가리지 않고 했다. 책읽어주기, 저주파 전류 흘려보내기 등. 그러나 모든 노력과 정성이 물거품이 되는 느낌은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프면 모두 어린아이처럼 행동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했다. 고마운 줄 모르고. 이게(간병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모르고. 그런걸 보면 괜히 마음이 상했다.

또래 친구인 해원은 시안에게 매일매일 입시, 연애, 학교생활 등 고민상담을 한가득씩 쏟아낸다. 고민이 이렇게 다채로울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재회한 '시안'과'해원'은 처음엔 데면데면했지만 함께했던 시간이 더 길었기에 호불호, 사소한 습관, 추억이라고 불리는 기억들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금새 가까워졌고 금새 다시 서로에게 기대기 시작했다. 이 무렵의 또래 친구들의 연애 상담, 입시 스트레스, 학교 생활들이 '해원'을 통해 묘사되면, 같은 시기를 보내는 간병인 '시안'의 모습은 더욱더 이질감을 갖고 비교 되며 다가온다.


칠판에 또렷하게 적힌 글자가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 세계의 법칙들.배려하기. 예쁜말 쓰기. 수행평가 제출하기. 수능 D-150.이곳은 낯설고, 내가 속할 수 없는 세계라는 느낌이 이 들었다.

『페퍼민트』 120p

해원에게는 이 있었다.

주말의 약속과 계획이 있었다. 갑자기 사라지면 걱정할 걱정할 가족이 있었다.

지키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스스로를 가련하게 여길줄 알았다.

자기 사람에 대한 각별함과 애틋함이 보였다.

해원을 알아갈수록 내 삶이 얼마나 비루한지 실감하게 되었다.

『페퍼민트』 159p


시안은 스스로 평범한 고3의 세계를 이미 속할 수 없는 낯선 세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때문에 해원과 함께하는 또래 친구와의 시간 역시 일상이 아니라 일탈같이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각자의 일상 묘사와 고민이 달랐던건 각자 신경써야 할 다른 일상이 있기 때문이다. 해원이 뉴스에서나 보는 노인 고독사 소식이 시안은 병원에서 종종 목격하는 경험이다. 해원이 학원 숙제나 진도에 스트레스 받을때 시안은 엄마의 몸에 욕창이 다시 생길까봐 온신경을 쓴다. 가까이에서 접했기에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해볼까 싶다는 생각나는 대로 한 소재지만 해원에게는 '그거 고될텐데'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다른세계의 이야기처럼 대답한다.

시안의 일상은 단순했다.

해원은 시안을 만난 후로 모든게 이전 같지 앟았다.

현수와의 관계, 입시, 일상까지 모두 꼬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안에게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들. 시안의 은 단순하고 단촐했다. 엄마와 간병. 그외에 다른건 염두에 두지 않은것 같았다.

『페퍼민트』 253p

그리고 그런 해원 역시 각자 신경써야 할 다른 일상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프록시모 바이러스 유행이 시작되었을때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뉴스에서 감염병의 확산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증상이 얼마나 심한지, 신규 감염자가 몇명이나 발생했는지 매일 보도되었지만 우리에게는 먼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치사율이 5퍼센트가 넘는다는 뉴스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신경써야 할 다른 일상이 있었다. 해원은 피아노 콩쿠르에 나갈 예정이었고, 나는 가족들과 해외 여행을 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페퍼민트』 89p

그리고 이 이질감을 가져다 준 원인이 되는 '그 사건'은 이야기가 ⅓정도 흘렀을때 등장한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감염병의 중심에서 해원의 가족은 슈퍼 전파자 N번으로 불리게 되었다. 시안의 엄마는 감염 후 지금까지 식물인간으로 지내게 되었던 것이다.


저 애가 내가 느끼는 고통의 일부의 일부라도 이해하는 것,과거를 잊고 편히 사는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지 않겠다는 것이고약한 마음이라는건 나도 알았다.하지만 그래서 뭐?누구의 인생은 망했는데 해원의 행복은 보장되어야 할 이유라도 있나?

그리고 시안은 해일과의 재회하는 순간부터 느꼈던 한때 형제보다 더 가깝게 지냈던 그 '가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졌었던 마음의 진짜 속내를 확인한다. '고의'도 아니었고 '책임'을 물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섣불리 그간 적당히 고생했고 드문드문 행복하게 살아오면서 '극복'했다는 말을 꺼낸 가족을 이해하거나 용서할 순 없었던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다면 '화해'하고 다시 잘 지낼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던 그 안일함마저도.

그거 알아? 우리는 견디고 있어. 이 악취를, 시린 소독 냄새를, 좁은 침대를.

엄마는 뭘 견디고 있어? 문득 엄마도 좁은 몸을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사랑하면서 엄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낭비로 여긴다는게 미안하다.

엄마는 나를 키우는 동안 자신의 삶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한 적 있을까.

『페퍼민트』 121p


우리는 재난을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

사실 그 누구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간병을 시작하는 경우는 없다.

그게 마지막 대화라는걸 알았다면 엄마는 내게 무슨 말을 건넸을까?

엄마는, 우리는, 분명 사랑을 말했을 것이다.

『페퍼민트』 220p

백온유 작가의 작품은 심리를 잘 파고든다. 어떤 사건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일반적인 겉핥기 감정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가장 깊숙한 곳의 원초적인 감정을 툭툭 잘 내뱉고, 머리나 가슴으로 이해하려 하기 전에 그저 와닿는다.

그래,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그런 느낌으로 글을 읽어나가게 만든다.

바로 이전작품인 『유원』이 그러했다. 일반적인 생각에서 완전히 벗어나, 아 정말이지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묘한 공감과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야기를 이끌어나갔다. 화재사건이라는 소재도 죽은사람, 살려진 사람, 살려낸 사람, 그들의 가족들이라는 모두 점이 특이했고 인물들은 하나같이 입체적이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코로나19의 유행과 맞물리며 '팬데믹' 시기라는 말과 함께 '슈퍼전파자'니 '감염병'이니 '백신'이니 '지역구 폐쇄령'이라는 낯설었지만 익숙해진 단어들과 그 시기를 보낸 우리들의 감정들이 모두 녹여져 있었다.

간염병과 간병을 재난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것의 시발점이 되었던 가족의 입장(슈퍼 전파자인 해원의 엄마의 입장, 그 가족이었던 해원과 해일의 입장)과 그들로부터 감염된 가족의 입장(식물 인간이 된 시안의 엄마, 가장이 된 시안, 그의 보호자인 아빠)을 모두 입체적으로 다룬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하나의 입장을 들어보면 또 그 역시 아, 이렇게 생각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야기라는게, 소설이라는게 그렇다. 그들이 감염병 이야기를 뉴스로 들으면서도 먼나라 이야기 처럼 들었듯이, 결국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살아왔구나 라는 지점까지만 가닿는다. 때문에 각각의 입장을 들었을때도 누구의편도 들을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이건 누가 더 '행복'한가 누가 더 '불행'한가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그렇기에 탓하고 원망하는 얘기도 무조건적인 용서와 화해를 나누자는 얘기도 아니다. 가족의 사랑이 우선이냐 우정은 어떻게 지켜내야 하느냐를 내세운 얘기도 아니다.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우위를 두는 중요한것이 무엇이고(그것이 감정이든, 사람이든, 일이든),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데는 어떤것들이 관여되고 어떤마음을 버려야 하는지(이를테면 기만, 위화감, 불안감, 타인의 삶과의 비교 등)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불행하다고 말해왔지만 불행하지 않던 삶과, 잘지냈지만 잘지낸 척 했던 삶 조차도 누군가에게는 또 그 사소함으로 상처가 될 수 있다. 각자의 삶의 형태앞에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붙잡아 덜 중요한것을 버티고 더 중요한것을 지킬는 자신을 설득시키면서 살아간다.

너무 가까웠기에 병들었고, 가까웠다고 생각한 것보다 더 중요한것을 위해 버렸고, 아파했고, 다시 만나 각자의 삶의 들여다 본 그들은 다시 각자의 방식대로 더 중요한건을 지킨다. 삶이란 계속 무엇이 더중요해, 무엇을 위해 행동할래, 무엇을 지켜낼꺼니 라는 선택들 위에 서있고 결국 그것들의 반복일뿐이다.

비슷한 스토리만 반복하는 드라마로 고정된 텔레비전채널은 지루함을 주듯, 반복되는 삶이 얼마나 사람을 쇠약하게 만드는지. 가끔 고여있는 것 같다가도 삶으로 흘러 넘치는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렇게 축축해지고 한번 젖으면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햇볕과 바람을 제때 받지 못해서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필것이다. 누구든 한명이 썩기 시작하면 우리는 다 썩을것이다. 오염된 물질들은 멀쩡한 것들까지 금세 전염시키니까. 그래서, 살기위해서, 자신도 모르게 그늘을 벗어나 한걸음, 햇볕이 있는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같이 있다 보면 좋은날들도 많겠지만 나쁜 날들도 있을 것이다.

불행해지면 원망할 사람을 찾게 될 것이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화풀이를 하게 될 것이다.

그때마다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해칠 것이다.

우리는 함께하지 않는게 나았다.

『페퍼민트』 264p

마지막에 이르러서 가장 첫페이지에서 읽게되었던 바로 그 문장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늘을 벗어나 햇빛으로 한걸음


이건 결국, 한걸음을 더 내딛기 위한 이야기라는 것을.

작가에 말에도 그 한걸음이 등장한다.

한발 앞서, 미리 상상할 수 없을까. 상상해서 미리 면역력을 기를 수는 없을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이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조금 더 의연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갈 수 있도록.

그들이 나눈 대화, 그들이 나누었던 선택을 곱씹어 본다.

그러니 정말 이 여름의 쌉싸름한 페퍼민트 향이 퍼지는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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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능력주의 - 한국형 능력주의는 어떻게 불평등을 강화하는가
김동춘 지음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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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만 보고도 자신을 돌이켜보니 수능, 국가고시, 국가공인 자격증 시험까지..

나역시도 수많은 시험을 거쳐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와야했다는 것을 새삼 인식하게된다.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하고 있으니 차라리 그게 공정하다고 믿은것도 사실이다. 거기에 미친 자들은 '노력'의 대가를 마땅히 받는 것이고 미치지 못한 자신은 '능력'의 '한계'라고 생각했던것 마저도.

시험 능력주의를 말하기 위해서 이 책은 초반부터 '학교' 교실 속을 들여다본다.

성적과 진학이라는 획일적인 가치 강요로 자고 있는 학생, 선행 학습과 학업 중단을 선언한 학생, 공격성과 반항성의 일환으로 나타나는 학교폭력과 우울증(자살), 그리고 최근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가속된 교육의 격차와 학교의 위기까지.

그리고 짚어본다. 과연 우리 학교는 시험 만능주의를 인지하고 있는걸까. 이를 바꾸기 위한 '노오력'은 하지 않은 것인가.

수능만능주의가 팽배한 한국 교육에서 수행평가, 동아리, 봉사, 독서, 행동특성과 인성등을 골고루 반영한 학생부종합전형과 입학사정관제, 논술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결국 사람을 '평가'하거나 '선발'할 때는 당연한듯한 절차로 공정과 변별의 합리성을 앞세우면 결국 시험문화(culture of testing)만이 남는다.

학원과 입시준비가 학교교육을 압도하고 각종 고시와 시험을 치뤄 승리한 시험선수(혹은 시험형인간) 엘리트들이 권력(지위)과 경제력(부)을 차지한 후 자녀에게 세습하는 나라, 한국이다. 성적°성과로 서열과 등급 매기기가 중심이 된 이곳은 시험은 공정하고 그 결과는 능력의 증거라 생각하기에 명문대 졸업장을 신분증 혹은 브랜드처럼 여기고 있다.


한국은 사람을 평가할때 시험성적이력을

거의 절대시하는 시험만능주의 사회다.

이런 현상을 '시험문화(culture of testing)이라 부른다.

시험이라는 것은 어느나라에나 있지만, (특히) 아시아나라들에서

시험은 '사회계층이동'과 '더 많은 경제적 기회'라는 의미를 갖는다.



교육과 시험은 분명히 별개의 것이지만,

'시험'이 '교육'을 이겼다.

그리고 시험 중에서도 자격시험이 아닌

순위(ranking)을 정하는 시험이 이겼다.

시험을 통한 절차적 공정과 최고자격자(the most qualified)선발의 원칙이교육과 수련, 공적, 일에 대한 적성 확인 절차를 거친

적임자 선발 원칙을 이겼다.

한국에서는 최고 적임자보다는 최고 능력자 선발을 우선했다.


별개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험'이 '교육'을 이긴 한국에서는 일에 대한 적합성을 따진 '최고 적임자'보다는 그 분야에 대한 순위를 매겼을때 제일 위에 있는 '최고 능력자'선발을 우선했다. 즉 능력있는 사람이란, 그일을 잘 수행할수 있는 '자격'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성적을 엄격히 변별해서 '최상의 순위'순서대로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능력주의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와 맥락을 같이한다. 그리고 이런 신자유주의 시대의 공정, 능력주의 실적주의가 낳은 차별과 혐오는 노동의 중요성을 가르치지 않는 학교로부터 파생된다. 학교는 시험능력주의에 따라 학력, 학벌이라는 정치자본을 가진 신분이 생산노동자의 신분위에 군림하는것이 전혀 이상하지않다고 가르치며, 교과서는 주류 경제학은 시장주의 이론에따라 노동자를 산업전사, 생산성향상을 위해 순응하는 육체노동계급으로 서술하고있다. 한국의 과잉교육열은 결국 노동천시와 맞물려 노동비하로 나타난다.

학생들이 교과서에서 긍정적으로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선호하는 직업군(전문직,공무원,공기업,대기업)은 경제활동의 10%정도에 불과하며 이들이 장차 피고용자로 일하게 되었을때의 대처나 재해정도는 가르치지않는다. 그렇다면 학교와 사회는 학생들에게 도달 할 수 없는 신기루만을 제시한후 좌절시키고 있는것은 아닐까 생각해볼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대입경쟁도 결국, 노동의 세계에서 탈출하기위한 전략, 즉 사회적 '노동자신분' 비하, 저임금, 고용불안, 위험한 일터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무엇이 삶을 의미있게 하는가'라는 가치 기준평가에서

한국인들의 대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독 한국인들만 '물질적 복리가 가장 중요하다'라고 대답한 것은

시험능력주의와 무관하지 않기때문이다.

다른 선진 16개국들은 '사회', '가족', '직업' 라고 대답했고,

이는 한국사람들이 최종 성적표를 '부'로 여기며

다른 가치들을 후순위로 돌린다는 것으로 가치 일원성, 가치 획일성이 매우 큰 나라임을 시사한다.

이책은 이렇게 학력인플레와 대졸청년들의 고통, 능력주의와 개인주의의 자기모순과 한계, 진짜 적용되어야 할 영역과 이를 넘어선 정의와 형평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능력주의는 수평적다양화, 능(能)과 지(知)를 고루 중시하는 사회를 말한다. 따라서 로스쿨, 경영대, 의대로 국가 엘리트를 양성하려는 능력주의가 아닌 순수학문분야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철학, 예술에 특별한 재능을 가자 청년들이 자신들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수 있도록 지원하여 이후 일자리뿐만아니라 높은 보상까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가지 개혁이 필요하다.


✔️관료 법조인의 (지위독점,지위폐쇄) 특권철폐와 반부패, 전문직 직업윤리확보 등으로 '지배집단' 구조개혁

✔️노동의 인간화, 처우개선, 임금격차축소, 단계적 숙련형성 등으로 사회적 연대와 조직운동을 활성화한 '노동사회' 구조개혁

✔️능력주의, 성장주의, 물질주의 이데올로기에대한 비판적 사고와 정신적 노예화 극복 등의 '가치'개혁과 대학 공공성 확대와 대학서열 구조 완화로 병목통로 확대

이책의 교육의 본질에 집중한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계층, 계급, 불평등을 복합적으로 안고 있어 경제, 복지, 노동, 수도권 집중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풀 수 있는 사회개혁 사안으로 보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책은 한국의 사회개혁, 불평등극복, 시험능력주의 극복을 위한 일종의 정책 제안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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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 - 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
이운진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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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유 클로델을 처음 접한건 내가 좋아하는 프로인 서프라이즈(https://youtu.be/VnJxQDXrn2w)에서 다뤄지면서였다. 책을 다 읽은 지금, 다시 한번 영상을 찾아봤는데 지금봐도 카미유와 로댕의 이야기를 압축하여 잘 담아낸 이야기인것 같다.


​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https://youtu.be/VnJxQDXrn2w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요약하자면, 이 얘기는 두 조각가의 이야기이자 두 남녀의 사랑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로댕의 연인이라고 불렀고, 비운의 천재라고 불렀던 그녀,

카미유 클로델의 삶에는 여성으로서의 한계, 예술가의 소명과 욕망, 사랑과 실패, 병과 소외, 급변하는 시대의 풍경이 큰 물살로 어우러져 소용돌이 쳤다

빌뇌브쉬르페르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처음 진흙을 만지고 놀던 다섯살의 카미유는 점점 인물을 빗어내거나 감정을 표현해내며 주변의 모든것을 눈에 담고 손으로 만들었다.

'인생의 한번은 파리로!'라는 구호를 따라 지식인, 예술가, 기술자, 노동자 등 온갖 부류의 사람들이 자신의 삶 전체를 다시 만들고 싶어하며 모이던 1880년대의 파리의 변화 속도는 놀라웠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봐준 스승 알프레드 부셰의 설득으로 예술적 재능을 펼칠 기회의 장소로 파리에 입성했다.

그때까지만해도 조각가로 성공을 거둔 여성의 이름은 들어본적도 없었다. 빌뇌브에서 미켈란젤로(훌륭한조각가)가 되길 꿈꿨다면 파리에서는 그녀 자신(스스로 인정하는 위대한 조각가)이 되고 싶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열여덟의 소녀가 스승이 소개해준 에콜 데 보자르 교장에게 자신의 작품 <다윗과 골리앗>을 보여주었을때 교장은 "로댕에게 조각을 배웠느냐"고 물었고 이때 오귀스트 로댕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니체와 루 살로메도 그무렵 만났다.)

이후 스승이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게되었을때 남겨진 제자들을 마흔 두살의 로댕에게 부탁했고, 그중 카미유가 있었다.

이무렵 로댕은 단테의 신곡을 듣고 지옥의문 구상에 대해 영감을 얻기위해 골몰하고 있었는데 그녀를 만난 로댕은 '나의 무자비한 연인, 나의 천사, 나의 열정'이라는 말들로 그녀를 표현 할 만큼 사로잡혔다.

독창적인 재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조각에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나눌수 있을 만큼 놀라운 깊이를 지니니 그녀는 이상적인 여인이였다.

그녀와 로댕은 가르침을 주고받는 관계에서 시선을 주고받는 관계로, 손으로 흙을 빚는 관계에서 흙으로 마음을 빚어 증명하는 관계로 발전해갔다. 제자에서 작품모델로, 제작조수에서 열정의 연인으로, 더 나중에는 증오의 상대로 바뀌어갈 그녀의 운명의 수레바퀴가 서서히 굴러가기 시작했다


카미유가 로댕의 작업실에서 중요한 작업을 맡게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않았다. 그러나 당대엔 공동 작업을 했던 사람들의 이름은 작품에 새겨지지않고 익명으로 처리되는게 당시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로댕작품중 그녀작품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길은 없다. 로댕 역시 그녀의 흉상을 제작해준 이래 사랑에 빠진 여인의 모습을 고결하게, 관능적으로, 거침없이 가장 에로틱한 조각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https://www.youtube.com/watch?v=VnJxQDXrn2w


그러나 로댕에겐 로즈뵈레라는 소박하고 묵묵한 성격의 조강지처가 있었다. 재봉사로일하던 가난하고 힘든 시절 스무살의 그녀는 그의 모델이 되어주기도 했다. 그의 예술이나 감수성을 이해하기엔 부족했지만 선하고 충실한 영혼을 가진,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는 헌신을 베푼 그녀는 그의 아들도 낳았다. (그의 아들과 카미유는 2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사랑에 있어서는 전체가 아니라 마음의 일부분만 받는것은 거절이라고 생각했다. 한사람이 다른 한사람의 전부여야 한다는 바람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불가능해졌다. 그녀는 그마음을 그림으로, 그리고 조각으로 제작했다.


늙은 여인이 나이든 남자의 팔과 어깨를 감싸안은채 이끌어가고있다. 남자는 얼마쯤은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무거운 몸으로 한쪽 팔을 뒤로 뻗어있다. 막 젊은 여자의 손을 놓쳐버린 순간이었다. 그 손끝엔 돌아와달라고 간청하고 애원하는 알몸의 젊은 여아이 무릎을 꿇은채 매달려있다.

사랑을 알았던 열여덟 청춘의 그녀는 조각계의 거장과 아리따운 제자의 사생활에 관한 소문과 맞서야 했기에 그 어떤 말로 증언하기보다 작품으로 보여주는것을 선택한다. 예술이 자기 비밀에 맞설때 가장 활기차고 위험해 질것임을 알고있었다.

파리에서의 삶은 살아가야할 이유와 성취하고싶은 욕망, 열정, 관능, 갈망, 질투 속에서 흙과 돌을 만지며 유능한 조각가이길, 사랑받는 한사람이길 바랬다.

그러나 이후 사랑의 고통과 이별 질긴 외로움을 안고 아틀리에에서 몽그베르그 정신병원으로, 그리고 일흔 아홉의 나이까지 30년넘게 No.2307로 존재하던 그녀는 1943-392라는 무연고 무덤에 매장되는 것으로 삶을 마감한다


최초의 숨결과 최후의 한숨 사이에 있는 삶의 모습은

모두 다르고 결국 같다.

여기, 카미유 클로델 中


이 책은 사집과 산문집을 낸 작가 이운진이 카미유 클로델에게 바치는 헌정글이다.


한 사람의 일생을 알기 위해서는, (특히나 그 사람이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록'을 찾는 것 뿐이다.

어린 시절의 일화, 누군가와 나눈 편지들, 남겨진 작품과 사진들로

그 사람의 진짜 목소리를 쫒는다.

물론 몇몇의 기록을 모두 모은다고해도 한 사람의 '완전한 인생'은 되지 않을 뿐더러 더욱이 그것을 '전기'라 할 수 없겠지만,

단지 지난 사람의 흔적을 찾아서까지 말을 건내고 싶은

애착의 글로 이 책을 봐두면 될 것같다.

여기, 카미유 클로델 - 시작하며 中


그녀를 추억하고 그녀를 예찬하며 그녀의 슬픔을 감히 짐작해보며 함께 흐느끼다가 그녀가 못다한 말까지 꺼내어 그녀의 일생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아트북스에서 여성 작가에 대해 다룬 책 중 『여기, 아르테미시아』와 같은 형식의 제목을 띄고 있는 이 『여기, 카미유 클로델』은 사실 결이 좀 다르다. 전작이 논문형태에 가까울만큼 그녀의 발자취를 따라다니며 시대 배경과 작품 해설의 '사실적 검증' 에 논점을 맞췄다면 이책은 '감정선'의 흐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랑에 대한 좌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픽션 소설처럼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반전이 이루어지는 포인트는 두 목차였다.


홀로 선 여자, 그리고 예술가


역시, 이거지. 이래야 아트북스지 했던 부분은 책의 중간부분부터 나왔다.

『왜 위대한 여성미술가는 없었는가?』 『여기, 아르테미시아』 를 읽으면서 19세기 이전 여성이 미술사에 남겨지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여성미술가의 발견은 더 귀하게 다가온다. 어떻게, 살아남아 이렇게 이름을 남길 수 있었는가. 그 노력과 재능에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남성이 여성 누드를 그리는 것은 당연했으나 여성은 그곳에 낄 수 없었다. 그저, 관행이었다. 그녀가 파리에 갔을때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들어가고자 했던 보자르 학교에서는 여성의 입학은 허락되지 않았고, 그녀는 스승의 추천을 받아 콜라로시 학교에서 수업을 받았다. 1883년부터 그녀는 쉬지 않고 전시를 했으며 작품을 출품했다.

'금지된 꿈으로 가득찬 내면을 최초로 표현한 조각가'

'이런 작품은 미켈란젤로 이후 처음이다!' '스승만큼 뛰어난…'

'놀라운 걸작이다' '세기의 위대한 조각가…'

명성있는 로댕의 뮤즈이자 시인 폴클로델의 누나라는 꼬리표가 늘 달려있었었지만 그녀는 세간에서 이런평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대담한 조각이 순수함 대신 관능으로 환기되며 작품이 평가 절하되거나 전시가 취소되는 등의 난항을 겪기도 하였으나 사회에서 배척당할만한 무명의 예술가로 지내기엔 그녀의 천재성은 높은 찬사를 받았기에 대규모 전시회와 작품 판매의 행운을 잠시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주 재료로 쓰던 대리석/오닉스의 재료비를 포함하여, 보조자와 주조공의 임금, 운송료, 보관비 등 당시 1년 동안 조각에 드는 비용을 만만치 않았다.

그녀가 지인들과 나누던 편지에 수없이 '돈'과 관련된 '외상''집세''판매가'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할 만큼 '독립된'미술가로 살기에 지독한 재정난을 겪었고, 그녀의 삶은 곧 피폐해져 갔다.


책 속에는 이와 관련하여 다른 여성 작가들에 대해서도 함께 언급하기도 했다. 특히 버지니아 울프는 다른 무엇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롯이 자신(의 작품활동)에 집중 할 수 있는 자신을 위한 방과 고정된 수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이 인용되어 있다.

물질적 자립은, 단순히 돈 자체라던가 즐거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영향을 덜 받는 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점에서 그녀는 세간의 모진 풍파에 영향을 '덜' 받을만큼 독립된 예술가로 살지는 못했다.

궁핍한 현실은 주변 사람들을 불신하게 만들었고, 예민해진 신경은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영감을 훔치고 표절하려 한다고 믿기 시작했다. 실제로 로댕의 친구 조각가로 인해 표절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고 늘 로댕과의 비교(영향력)를 겪어왔던지라 모두 자신을 파멸시킬 음모자들이라는 의심의 눈으로 세상에 방어태세를 갖추게 된다. 이러한 생각에 사로잡힌 카미유는 자기 작품을 산산조각 내거나 부수는 파괴행위로 이어졌고 피해망상이 심화되며 사람들이 자신을 독살하려는 생각까지 이르게 된다. 동생 폴 클로델은 이러한 카미유의 마음을 '혐오'와 '광기'라는 말로 표현했고, 그녀는 가족에 의해 결국 정신병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이래 죽을때까지 그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있었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마지막 일기


가장 압권이였던 부분은 이 부분이였다.

내내 그녀의 감정의 흐름에 따라 내용이 구성되어 비극, 슬픔, 고통, 분노, 증오, 외로움과 괴로움 등으로 가득찼던 표현들이 이부분에서 깨달음을 얻은듯, 체화한듯 오히려 덤덤하게 서술해 나가며 이윽고 이 삶을, 모든 운명을 받아들이고 모든 할일을 끝내듯이 마무리를 짓는다.

비록, 작가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이라는 단서를 붙여 작가만의 상상력으로 채워나간 그녀의 마지막 페이지지만, 너무나 이입이 되는 부분이라 정말 그녀가 쓴 것이라고 믿어지게 된다. 그렇게 이부분을 읽으면서 얼마나 손을 부들부들 떨었는지


처음 흙을 만지던 다섯 살의 어린아이였던 나,

사랑을 알았던 열 여덟 청춘이었던 나,

그리고 들개처럼 세상에 맞섰던 나의 무엇이 일흔 아홉의 내 안에 남았을까?

-

조각가이기를 바라며,

사랑스러운 한 사람의 여인이기를 바라며 나는 돌을 다듬었다.

돌 만큼 한 사람을 사랑했다. 그것이 전부였다.

-

나는 내가 살아온 세상과 계속 살아갈 세상을 다 잃어버렸다.

당신이 아니었다 해도 내 삶은 무너졌을까?

-

사랑은 한 생애를 걸고 천천히 만드는 작품이어야 했는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우리가 거짓말같은 아름다운 삶의 한때를 나누어 가졌다는 사실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그럭저럭 용서할 것이다.

-

나에게는 이제 잊는 것도 기억하는 것도 부질없어보인다.

비극으로 보이는 삶이더라도 나는 내 삶을 완수하고 싶었다.


로댕은 카미유에게 분명 독이였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독히 사랑했고,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조각했던 그 시절은 분명히 존재했음을 인정한다. 비록 영원하진 못했었도. '당신이 없었다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있었던'시절을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그럭저럭 용서할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사무치게 마음이 아팠다. 이 구절에서 멈칫하며 울컥이는 마음을 잠시 달랜 후에야 뒷 부분을 읽어야 했다.

그 '용서'의 마음은 로댕에게만 향한 것이 아니리라. 그 뒤로 스스로 혹사시켰던 자기 자신에게도 분명 향했으리라 짐작한다.


로댕의 지인이 보낸 편지에는 로댕의 진심이 언급되어 있다.


어느날 로댕이 찾아와 「애원하는 여인」앞에서

갑자기 멈추어 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작품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습니다.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처럼 말입니다.

나는 그가 당신을 버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로 인해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뜬지 15년이 지났군요.

살아 있었다 해도 그는 카미유 당신만을 사랑했을 것입니다.

작품 중개인 외젠 블로가 카미유에게 보낸 편지 中


그녀는 이 말에 흔들렸을까.

어쩐지 한 영화의 대사가 떠오른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영화 『아가씨』 이즈미 히데코의 대사 中


이 책을 읽고 나니, '비운의 그녀'라는 수식어만 붙었던 까미유를 조금 더 확장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누구보다 치열했고, 강렬했고, 결국 통달하며 삶을 용서했을 그녀를 이해하고 싶다면, 그녀의 마지막 말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비극으로 보이는 삶이더라도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완수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바란다.

이곳에서 흙을 처음 만지던 그때 처럼, 늙은 나무 아래 흙한줌이 되는 그때가 되면 구름을 빚고 있기를.

1943.10.19. 여기,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


#도서 #아트북스서포터즈2기 #아트북스서포터즈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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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권리를 주장해 -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인권 가이드 창비청소년문고 41
국제앰네스티.안젤리나 졸리.제럴딘 반 뷰런 지음, 김고연주 옮김 / 창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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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인권선언 1조에는 "모든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똑같은 존엄과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되어있다.

권리는 평등하다. 그리고 불가양하다.

권리가 생기는 시기가 정해져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여기,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면 권리를 위반하거나 침해하려는 상황에서 주장할수 있어야 한다.

평화, 존엄, 관용, 자유, 평등, 연대 정신 속에서 성장해야한다.

이 책은 15가지 권리(생명, 평등, 참여, 신분, 안전한공간, 위험에서 보호, 폭력에서 보호, 신체온전성, 사생활, 사상의 자유, 소수자와 선주민, 평화적시위, 형사사법 제도)를 세가지 공통 질문 속에서 설명하며 구성되어있다.

✔무슨 뜻인가요? (권리의 내용 이해)

✔현실은 어떤가요? (현 실태, 위기, 문제점 파악)

✔권리를 위한 투쟁 - 행동하기 (투쟁의 사례)

예를 들어 제일 처음 나온 권리는 생명,존엄,건강(신체적, 정신적)과 안녕을 위한 권리이다. 우리는 양질의 식수, 적절한 영양식과 집, 위생설비와 의료를 누릴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깨끗한 기후와 지속가능한 환경이 필요하며 이와 관련하여 기후 위기에 의해 야기되는 환경파괴로 인한 권리침해에 대해 목소를 높인 식수보장, 바다자원보호, 탄소배출제한, 감영병 예방운동을 펼친 청소년들의 사례를 들려준다.

그밖에도 각종차별(인종, 성, 장애, 빈곤)과 투표권, 강제노동과 부당이득, 사상과 종교의 자유 등을 예로든다.

개념과 사례를 들어 이해를 마친후에는 주장하는 법을 알려주기 위해 단계별로 제시한다. 자각, 토론, 반박, 연설을 위한 팁과 방법을 알려주고(자신감, 정확한 자료제시, 예의  등) 주장을 대중앞에서 실천할수 있는 행동방법(캠페인, 집회와 시위, 책임묻기, 관련법 살피고 요청하기)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이책은 누구든, 어디에 살든, 언제든, 가지고 있는 권리가 무엇아지 제대로 알고, 이해하고, 주장할 수 있도록 이끄는 안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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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눈 키우는 법 - 우세한 눈이 알려주는 지각, 창조, 학습의 비밀
베티 에드워즈 지음, 안진이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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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표지는 미니멀초상화-눈미니어처 일부이다.

1785년 등장하여 1820년대 갑자기 끝나 짧은 기간동안 미국과 영국에서 유행하던 눈초상.

한쪽 눈만 그리는 조그만 그림으로 눈미니어처(eye miniatures)라고 불렸다고 한다.

"나 여기있어요. 당신을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을 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눈 미니어처를 소개하는 부분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하네케 흐로텐부르 『소중한 시선-18세기 후반 눈 미니어처에서의 친밀한 시각』

"눈 미니어처는 초상화의 본질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당신을 바라보는 행위이자

당신을 한 장의 그림에 집어 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또한 책의 서문에는 눈과 관련된 많은 명언들이 등장한다.




키케로

"얼굴은 정신의 초상이고, 눈은 정신의 통역가"

성제롬

"얼굴은 정신의 거울이고, 눈은 말하지 않고도 마음의 비밀을 고백한다"

라틴어 격언

"얼굴은 정신의 초상이고 눈은 정신의 밀고자다"

요기 베라

"그냥 지켜보기만 해도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유래 미상 격언

"눈은 영혼의 창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한쪽 눈은 내면을 보고 다른 쪽 눈은 외부를 본다"

파울 클레

"한쪽눈은 보고, 다른쪽 눈은 느낀다"


눈과 관련된 이 수많은 명언중 이 책과 가장 가까운 명언은 파울클레의 말이다.

이 책은 눈과 연결된 뇌의 작용, 그래서 더 우세한 눈을 이용하여 드로잉을 할 때의 우수성을 언급하면서 다양한 눈과 뇌의 연결고리를 이야기한다.


우리는 제각각 뇌 구조의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다양한 신호를 통해 겉으로 표현된다. 어느 손(handedness)을 많이 다루느냐에 따라 왼손잡이냐 오른손잡이냐로 나뉘고, 주로 어느쪽 발(footedness)이 먼저 앞으로 나가느냐에 따라 왼발잡이냐 오른발잡이냐로 나뉘는 것처럼, 어느쪽 눈(eyedness)을 우세하게 사용하고 있느냐에 따라 왼눈잡이냐 오른눈잡이냐로 나뉘고 있다.


우리의 뇌는 좌뇌와 우뇌로 나뉘어져 있고, 양쪽 뇌와 두 눈은 서로 관련이 있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두가지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와 만나서 대화를 할때 통제를 받는 것은 언어를 관장하는 좌뇌이며 좌뇌는 오른쪽눈과 연결이 되어 있기에 우리는 잠재의식적으로 오른쪽 눈을 보면서 대화를 한다. 왼쪽 눈은 비언어적인 우뇌의 통제를 받아 즉 음의 높낮이, 감정, 시각적인 측면에 반응한다.

▶오른손잡이+오른눈잡이 (수가 가장 많은 집단)

말하는 것과 눈에 보이는 것이 일치하는 경험을 많이 한다.

계획을 세우고 미리 계획한 단계들을 밟아서 결과물을 얻어내는데 능하다

계획한 일을 마칠때까지 다른 관심사나 새로운 아이디어에 주의를 뺏기지 않는다.

새로 입력되는 정보에 신경쓰지 않거나 다른(가능성의) 길을 놓칠 가능성이 있다.

▶오른손잡이+왼눈잡이

현실을 잘 파악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길을 볼수 있다.

우뇌(시각적, 비언어적)에 반응하는 좌뇌 언어에는 기대와 과장도 포함될 수 있다.

▶왼손잡이+왼눈잡이 (희소 집단)

창의적이고 진보적인 사고를 요구하는 분야(수학, 양자물리학)활동 가능성이 높다.

단, 현대사회의 일상생활에서 쉽게 적응 못할 수도 있다.

▶양쪽 눈이 정확히 대칭을 이루는 경우(전체 성인의1%)

순수하고 개방적이고 상대를 신뢰하고 믿음직하고 꾸밈없다.

죄뇌가 무든 것을 지배한다.(언어로 표현된 지각과 신념만이 정확하다고 설득)


우리는 우리와 마주하는 얼굴을 보는 독특한 습관이 하나 있다.

보통 자신의 오른쪽 눈으로 상대의 오른쪽 눈을 들여다보며 소통을 하는데, 이렇게 의도치 않더라도 자동으로 (상대 입장에서는) 왼쪽 얼굴에 집중하는 경향이 얼굴에 대한 우리의 반응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한쪽은 웃고 한쪽은 우는 두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우리는 한쪽 감정으로 전체를 인식한다.

"대화는 괜찮았는데, 자리는 불편했어요" 라는 모순은 이런 인식의 차이에서 생겨난다. 시각적 정보와 감정적인 단서를 찾는 왼쪽과 오른쪽 눈이 일하는 비중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기 전략'은 무의식의 과정이라 사적인 습관으로 쌓이고, 이는 인관관계를 맺는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그림이 오랜 세월동안 존재 가치를 유지해온 방법은 상징그림이다. 중요한 시각적, 언어적 특정 개념이나 조직을 나타내거나 추상적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의 구별, 특히 왼쪽눈은 어둠, 달, 불확실성과 연관되어 있으며 오른쪽 눈은 햇빛, 내양, 선한의도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왼쪽눈이 비언어적 고나찰을 오른쪽 눈이 언어와 관련되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고있던 까닭일 것이다. 이후 전시안(하나의 눈), 제 3의 눈(상상의 눈)을 찾거나 신성한 눈(호루스의 눈), 악마의 눈, 섭리의 눈 등으로 다양한 의미를 지니며 회화의 소재로 쓰여왔다.


"As I can?" 이것이 내 최고의 한장인데, 당신은? 쯤으로 해석되는 얀반에이크의 초상화와 "내가 당신을 보고 있다. 이곳을 보라!" 라는 자기 선언적 초상화를 그린 뒤러의 맥을 잊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셀카일 것이다. "내가 여기있다. 이게 나다"라고 말하는 이미지를 선택하여 타자를 바라보는 이 셀카는 "당신의 눈에 비치는 나는, 내가 보는 나와 같은가?"라는 질문을 역으로 하고 있다.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줄 알아야, 어떻게 비춰지길 바라는지를 담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초상화(자화상)의 본질은 자신을 바라보는 행위이자 자신을 한 장의 그림(혹은 사진)에 집어 넣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눈 편향이 개개인의 성격이나 사고방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앞으로 더 밝혀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뇌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으며 시각적으로 인지한 내용을 좌뇌로 전달한다. 저자는 좌뇌를 사용해서 사물의 이름을 판별하는데 익숙해져 있으니 이제부터는 우뇌를 사용해서 사물을 진짜로 보는 연습을 해보자고 이야기를 한다. 보는데도 요령이 있고 그 요령을 익힌다면 생동감 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세한 눈으로 보고, 본것들을 단어들과 연결하는 능력과 언어적 소통을 감독하는 능력을 기른뒤, 비언어적이고 시각적인 우뇌를 사고와 문제해결에 참여시켜 자신의 뇌에 대한 일정한 통제력까지 획득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시각적 뇌와 언어적 뇌, 그리고 양쪽 뇌가 연결된 양쪽 눈을 적절히 활용해 풍성한 경험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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