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샤 창비청소년문학 117
표명희 지음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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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에서 꺼낸 미술관』에서는 아웃사이더 아티스트를, 『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에서는 탈북 여성을,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에서는 장애인을, 그리고 『버샤』에서는 난민을. 창비에서 최근 나온 신간들은 모두 주류에서 다소 벗어난 소외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아직 내리지 않은 비에 흠뻑 젖었습니다.

아직 짓지 않은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아직 마시지 않은 당신 술에 벌써 취하였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전쟁에 상처 입고 죽었습니다.

상상과 현실의 차이를 나는 더 이상 모릅니다.

그림자처럼,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13C 페리스안 시인 루미,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소설 중간에 나오는 『나는 있습니다. 그리고 없습니다.』 라는 시는 이러한 난민들의 입장을 짧고 강렬하게 잘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표지는 히잡을 쓴 여성이 출국하는 비행기를 바라보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두가지를 알 수 있다. '이란', '공항'

그리고 그 두 단어는 영화 터미널의 모티브가 되었던 나세리를 떠올리게 한다. 작년에 얼핏 지나가는 뉴스로 공항을 떠났던 나세리가 결국 다시 공항으로 돌아와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실제로는 이란의 왕정 반대운동으로 추방당한 나세리가 난민신청을 하여 영국으로 가던 도중 프랑스에서 난민서류를 도난당해 무국적상태가 되어 터미널에 머물게 되었지만, 영화 터미널에서는 톰행크스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모국에서 쿠테타가 일어나 서류가 무효화 되어 입국을 거부당하면서 난민신세가 되어 뉴욕 공항에 머무는 이야기로 그려졌다.

실화건 영화건 모두 난민이 되어 공항에서 머무는 이야기로, 이 소설 속에서의 이란 가족 역시 아직 영토구역이 아닌 공항에서 한 난민 심사 신청이 효력을 갖지 못하고 불회부결정이 나면서 공항에서 머물게 된 이야기를 다룬다.


생활이 곤궁해서, 전쟁이나 천재지변의 재난으로 어쩔 수 없이, 종교나 사상 등의 정치적 이유로 자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집단적 망명자, 이재민들을 "난민"이라 한다.

거대한 성이자 화려한 시장통 같은 "공항"은 사람들이 여행 등으로 멀리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공간으로 엇갈리며 오가는 사람들로 닫혀있으면서도 열린 공간이자 설렘과 이국적인 분위기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우리의 마음이 서로에게 가 닿았으니

우린 이미 국경을 넘어선 거예요.

표명희 『버샤』 中


'국경'과 '마음'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 대화는, 이 책이 '난민'과 '공항'에 관한 이야기이라는 것을 알게 한다. 난민 인정 심사를 볼기위해 기다리던 중 세계적 전염병 유행으로 공항이 폐쇄되고 텅 빈 출국장에서 생활하는 버샤 가족들을 통해 공항의 재발견과 난민 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져준다. 표명희 작가는 『어느 날 난민』이라는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무슬림 가족들이 난민 심사를 위해 공항에 체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소설『버샤』로 써냈다.


뱅크시가 우크라이나 전쟁 중에 남긴 벽화 '발레리나'처럼 무모하지만 경쾌하고 매력적인 창작물에 감명받은 작가는 버샤 역시 내전 중 실어증에 걸렸지만 공항에 머물면서 무엇을 보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어떤 문제에 직면하여 어떻게 목소리를 찾아가게 되는지 그 과정 속에서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쿠란에 '신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말이 엄연히 나와있는데도 '남녀 유별'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듯 소외된 무슬림의 딸들은 그런 풍토에 적응해 오며 자유를 모르고 살아왔기에 불의와 구속도 자각하지 못하는 순응하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무슬림 '여자'로 길들여 온 결정적인 수단이 히잡이라는 생각에 히잡을 싫어하던 버샤는 달랐다. 이슬람을 사랑하면서도 '일방통행'처럼 무슬림 딸들에게 하나의 길만 주어진 가부장제, 남자는 가해자여도 거리낄게 없지만 여자는 피해자여도 죄인이 되는 이슬람 문화는 과감하게 비판할 줄 아는 독립적인 성향의 버샤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익명의 '난민'이 아니라, 정체성 고민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꾸며 '인권'을 행사할 수 있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인물'을 입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인권에 대한 환대의 가치를 깊이있게 생각하게 한다.

이 책의 줄거리는 크게 난민 가족 버샤가족이 어쩌다 난민이 되었으며 공항 출국장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전반부 이야기와, '한국판 터미널'로 난민을 주제로 기사화 되었다가 점점 버샤의 '개인적 사건'에 초점을 맞추며 자극적으로 흘러가는 기사로 인한 갈등, sns의 파급력, 인권변호사와의 만남, 진우와의 로맨스를 담은 중반부 이야기, usb 편지, 교회 바자회, 코로나로 인한 공항 폐쇄, 버샤의 '개인적인 사건'에 숨겨진 반전과, 목소리를 되찾으며 자발적으로 자신의 사연을 자신의 목소리로 드러내며 극복하려 용기내는 후반부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 책이 흥미롭게 다가왔던 것은, 자칫 잘못하면 무거울 수 있는 주제들을 어린 버샤와 더 어린 버샤의 동생들의 시선으로 그려나갔다는 점이다.

'난민 수용소에서는 난민처럼 있어도 되지만 공항에서는 이용객처럼 있어야 한다'라는 규칙아래 '난민 인정을 간절히 바라는 난민'으로서 국민도 아니고 난민도 아닌 존재로 공항에서 불편하게 지내야 하는 버샤 가족. 하지만 아이들의 시선에서는 '머물 곳을 찾지 못해 정처 없이 떠도는 유렁'일 지언정 '난민 캠프에 비하면 호텔급'인 공항은 마냥 놀이터처럼 그려졌다. 수많은 면세점을 보면서 놀이공원이나 백화점에 놀러온것 같은 기분으로 게이트를 누비고, 사람들을 관찰하고, '분수'가 쏟아지는 화장실을 내집처럼 드나들고, 여행에 들뜬 사람들이 탑승 게이트에서 잃어버리고 간 물건들을 주워 사용하기도 한다. 우리가 흔하게 생각하던 공항의 모습을 '문화적 차이'라는 관점과 '어른과 아이의 차이'라는 큰 틀 안에서 색다른 시점에서 관찰되고 묘사된점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리고 흥미로운 관점 두번째는, 이 중동 아랍소녀와 교류하게 되는 공항 비정규직 근무자 진우(J)가 버샤와 가깝게 지내면서 중동 현대사 공부를 비롯하여 중동 문화에 대해 알아가고 우리와 가깝게 느끼는 장면들이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건 그 사람의 '배경'과 '환경'도 함께 다가온다는 것이기에, 진우는 버샤가 속해있는 문화를 우리와 다른, 먼곳의 이야기가 아닌 밀접한 교집합 관계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렇게 진우와 진우 친구를 통해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대한 인식 차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처지와 입장 차이 까지도 폭넓게 다룬다.


그리고 우리의 통념, 상식, 편견 들에 대해서도 친구들과의 의견다툼으로 다루면서 거꾸로 우리 사회에 적용시켜 보도록 하는 화법이 이 자칫 사회적인 문제로 무겁게 다룰 수 있는 이야기를 무겁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큰 역할을 한다.



반항,분노에서 시작한 혁명은 결코 성공 할 수 없어.

그건 사랑에서 출발해야한단다.

사랑의 힘으로 넘지 못할건 세상에 없단다.

표명희 『버샤』 中


더욱이 이야기는 무겁지 않도록 다루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포용, 연대, 영향력, 그렇게 결국 '사랑'으로 흘러가게 된다.


버샤가 버샤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과정을 스스로 말하게 되기까지 주변의 영향력이 컸다. 그리고 버샤는 이제 그 영향력을 다시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우리가 할일을 찾았어요"라는 J의 말은, 이 책으로 우리가 할 일을 찾게 만든다.

책을 읽으며 함께 부딪혔던 여러 난관과 편견과 소수목소리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모두 포함하여 이제는 생각을 접고 우리 역시 실천할 때다.

섣부르지 앓게 차분하고 치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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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 걸음으로 신나는 책읽기 63
황선미 지음, 하니 그림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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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어린이의 시점에서 고민하고 성장하는 동화책을 본다. 이책은 소심한 영재가, 자신을 닮은 겁쟁이 예비 안내견 바론과 함께 아빠의 돌봄 아래에서 같이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영재의 아빠는 '퍼피워킹'을 위해 기꺼이 '바론'의 만의 자원봉사자가 된다. 1년 동안 아빠의 돌봄을 받게될 바론은 다시 시각 장애인의 안내견이 되어 봉사하게 될 것이다. 이를 '퍼피 워킹'이라고 한다. '강아지의 걸음으로'라는 뜻이다. 이 강아지의 걸음은 자신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누군가를 돕기 위한 발걸음이다. 

눈이 불편한 사람의 눈이 되어줘야 하기에 횡단보도 건너는 법, 계단을 안전하게 오르내리는법, 전철이나 버스 타는 법을 배워 발걸음을 같이하도록 노력한다. 규칙을 배우고, 뛰거나 짖지 않는 연습도 하고, 화장실에 가고 싶거나 이탈하고 싶어도 잘 참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한마디로 '하지 말라는건 참고, 해야 하는 것만 하는' 훈련을 통해 얻어낸 걸음이다. 강아지 자신도 하고 싶은 것이 있고 뛰고 싶을 때도 있고 두려운 것들도 있을 테지만 그런 마음보다 시각장애인의 도우미로서의 역할을 위해 발걸음을 맞춘다. 이런 바론의 발걸음은 함께 사는 영재의 걸음에도 영향을 준다.

조심하고 배려하며 자기 한걸음 한걸음의 발걸음에 대한 책임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사명감. 

영재는 강아지의 걸음을 보며 자신의 성장을 위한 발걸음을 한발 내딛는다. 
오랫동안 끙끙 앓으며 괴로워했던 어떤 순간의 마음을 드러내고, 자신을 존중해야 다른 사람과 상호 존중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는 더 유대감 있는 관계로 한발 다가서려는 용기를 배운다.  

"때 쓸일이 아니야, 옳은 말이지만."

"누구 도우미가 될지 모르겠지만, 누구한테든 도움이 되지 않겠어?"

"정답이 어디 하나뿐이겠어? 다른 길도 있는거지"

영재의 아빠는 바론을 곁에 두며 영재에게 많은 삶의 힌트를 준다. 서로 돕고 배려하며 살아가는 법, 서툴고 두려운 걸음걸이도  함께 발 맞춰 걷는 법, 자신의 일에 책임지는 법, 잘못했을 땐 사과하고 잘못된 일을 당했을 땐 똑바로 마주하여 사과 받는 법, 그리고 용기내어 용서하는 법.

바론은 결국 누군가의 도움이 되는 강아지가 되었다.
도움 받은것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영재도 결국 자신의 감정을 돌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고 솔직해지니 타인과의 관계도 더 진솔해 질 수 있었다.

배려하며 조심스럽게 나란히 걷는 강아지의 걸음으로 우리도 타인과 보폭을 맞추며 걸어가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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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나에게 솔직하지 못할까
일자 샌드 지음, 곽재은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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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센서티브>, <서툰감정>을 집필한 심리상담사 일자샌드의 <컴 클로저>의 개정판으로 관계가 어렵고 자기 자신을 다루는 법도 잘 모르는 서툰 어른들에게 자신을 제대로 돌보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기위해 스스로를 속이고 일부러 실수하기도 한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위해, 삶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피하기위해, 자기안의 생각과 욕망을 억누르기 위해 하는 이런 행동을 우리는 오랫동안 여러이름으로 불러왔다. 방어기제(프로이트), 대처기술(인지치료사), 자기보호전략(심리학자) 등. 감당하기 힘든 고통과 슬픔에서 우리를 구제할 좋은 수단이기도 하지만 결국 구체적 현실로 부터 다르게 인지하여 삶으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하여 실제보다 더 좋거나 나쁘게 보게할 뿐이다. 성숙한 자기보호를 위해선 자기 스스로 어떤 감옷을 두르며 살았는지 알고, 지속과 중단에 대한 결정을 할 수 있는것이 중요하다. 삶의 깊이감, 풍성함, 유대감, 기쁨 등을 온전히 누려 충실하게 삶에 임하고 더 큰 인생의 선물들을 받아갈수있도록 고민해볼 필요가있다.

진정한 나를 만나기 위해서는
첫째, 그동안 내가 어떤 자기보호 전략을 쓰고있었는지 점검해 볼 것.
둘째, 무엇이 잘못된 행동이었는지 알고 중단, 해방을 통해 내면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것.
셋째, 성숙한 자기보호의 방법으로 감정과 관계를 회복하고 균형점을 찾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단계까지 이르는 것 이다.

진정한 내적 자아를 인식하지 못한채 습관적으로 자기보호만 하게되면, 스스로 보호해서 덜 다치긴 한 것 같은데 꼬리를 무는듯 비슷한 경험이 계속펼쳐지면서 주변 상황에 끌려다니고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일들에 알수없는 불쾌한 감정들이 계속해서 쌓이기만 할것이다. 해결되지 못하고 회피했던 감정들은 의식아래에 남아 눈치채진 못하지만 계속 짊어지고 가기 때문이다. 경우에따라 그 짐은 계속 커지며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잡는다.

미성숙한 자기보호전략으로 동일한 패턴에 갇히는 대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자기보호전략을 써왔는지 면밀히 들여다보고, 자신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수정하거나, 지속하거나, 포기할줄 알아야한다.

나 자신을 포용하여 나 자신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자신과, 세상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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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저자 / 창비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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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이기도 한 이길보라 작가 역시 '코다'이다.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아이로서의 삶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와 관련된 '영화'와 '도서'를 많이 접했을 뿐만아니라 자신 역시 '사적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 활동 중에 있다. 간결하지만 강렬한 작가 소개글부터가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소개글만으로도 작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나에게 부모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부모는 나에게 수어를 가르쳤고, 나는 눈을 마주치며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 '장애'가 된 건 입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부터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딸인 '코다'로 살고싶다.

이것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편찬된 역사가 아닌 '장애의 역사'이자,

'나의 역사'이다.

이길보라,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中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가르쳐준 가족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이한 사랑하는 '내 사람'들을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외부 사람들'에 의해 우리 가족은 '장애인 가족'이 되었다. '눈을 마주치며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가족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과 마주하게 될때 세상이 '비장애인 중심'으로 편찬되고 있는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초반의 이 부분을 읽을 땐 나도 모르게 울컥하고 말았다.

내가 가족의 품에서 '안전'하게 자라다가, 세상이란 위험한 곳으로 한발걸음 걸었더니 세상은 내 가족을 '불완전'하게 바라 보았다. 그나마 자녀가 '학교'를 다닐 때에는 '보라네 어머니'라는 학부모의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다시 학생이 아니게 되었을때, 그러니까 자녀가 사는 공동체 세계가 '사회'라는 이름으로 확장되었을때 내 부모는 '장애인'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고졸, (호떡,와플,풀빵 등을 파는) 자영업자, 청각장애인.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가르는 말들 사이에서 이것이 그들의 '이력'이자 '특이사항'이 되었다.


뒤늦게 엄마의 생을 가늠해 본다.

농인이자, 여성이자, 비장애인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아온 삶을.

나는 아직도 모르는게 많다.


그리고 농인의 자녀로 살아가는 자신이 삶을 반추해본다. 그렇게 '장애의 역사가 곧 나의 역사이다.' 라고 당당히 말하며 비장애인 중심으로 편찬된 역사가 아닌 '장애의 역사' 그대로가 필요하다고 말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인상깊게 본 부분들은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통념의 프레임에 대한 부분이었다.

이를테면 '장애인은 불쌍해', '장애인들은 다 똑같은 장애인들아닌가' 라던가

'장애인들은 (우리의 도움을 받는 존재들이니 다) 착할거야'라는 것들이다.


모두의 인생이 그렇듯 기쁘고 가슴 벅찰때도 있고,

화가나고 속상할 때도 있다.

대게 후자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 '그럴줄 알았다'고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불쌍하다'는 듯 혀를 찬다.

자신의 삶의 '서사'를 구축하는 소유권과 주체성을 꺾어버린 채

나와 부모님을 그저 '불쌍한 사람'으로 '대상화' 한다.

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집중할 때 나는 불편함을 느낀다.


영화 감독이기도 한 작가에게 가장 많이 하는 인터뷰 질문이 있다.

"농인의 자녀로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라는 이 말은 작가가 지겹도록 들어왔던 질문이다. 질문이 내뱉어 지는 순간 세상이 그녀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는 이미 정해져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그리고 대답을 듣기도 전에 그들 멋대로 동정과 연민을 쏟아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까지.

그래서 작가는 장애인들에게 자신의 '원치 않는 순간들'과 '고통들'에 대해 스스로 말할 권리를 쥐고 있다기 보다,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장애인의 고통과 상실에만 주목하려 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낸다.

이렇듯 에이블리즘(Ableism, 장애 차별주의, 비장애중심주의)과 오디즘(Audism, 청인 우월주의로 농인에게 청인처럼 행동하게 하는 것)이 만연한 사회에서 포용되기보다 차별받고 거절당한 경험이 더 많았던 작가지만, 이런 질문에는 부모님이 농인이라서 불편한점보다 자신이 코다여서 좋았던 점을 강조해서 대답하는 쪽을 택한다.


누군가를 '대상화' 하여 항상 밝고 아름다울거라고 생각하는건 위험해요.

실제로 농인이 농인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와 사기행위도 많아요.

착한 장애인만 존재해야 한다는 그런 통념은 또 하나의 선입견 아닐까요?


우리는 '장애인들'이는 한 범주를 대상화시킨 후 그들의 세계나 성격, 태도들에 대해 '이럴 것이다'라는 수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사건 사고에서는 '약자'인 장애인에게 성적, 금전적으로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실제로는 그들 사이의 범죄나 그들이 주가 된 사건들도 더러 있어왔다. '대상화' 시킨 그들에 대한 전형적인 편견이기도 어찌보면 '너네는 약자니까, 우리가 도와주면 고마워하기만 하고 그냥 착하고 얌전하게 있어'라는 더 폭력적인 시선이 그 안에 숨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같은 농인이라도 인종, 잔존청력, 수어 습득 시기 등에 따라 '엘리트'와 아닌자 들로 '계급'이 나뉘기도 하고 그들 사이에서 조차도 경쟁과 차별이 있어 '갈등'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할 것이다. 우리가 '장애인들'이라는 단어와 '그들'이라는 대상화로 개개인의 개별성과 각기다른 정체성들을 너무 쉽게 외면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이런 계급차이도 그러하지만, 생각의 차이는 더욱 심하다.


우리는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타인의 경험과 감각을 상상하며 말하고 있는지 질문한다.

나의 위치가 아닌 너의 위치에서 듣고 있는지,

어떠헥 하면 다르게 생각하고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작가는 '장애인의 날'에만 두각을 받는 것이 싫어 차라리 이럴거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달라고 생각했다. 이후 사회의 인식이 바뀌어 이날이 동정의 날이 아닌 장애인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사회 구조를 알리고 공감대를 확장하는 의미로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부르자고 투쟁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된 것은 그 뒤로 한참 후의 일이었다.


작가가 '장애인의 날'이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바뀌는 과정을 주목한것 만큼 관심을 보였던 또 다른 주제는 '지하철 장애인 시위'에 대한 생각이었다. 작가는 <썰전>프로에서 팽팽하게 나누었던 담론을 거론하였다. 청인인 장애인 차별철폐 대표가 나와서 하는 담론이였기에 '수어'나 '자막'통역 하나 없었던 방송, 그리고 '말'만 오갔던 '방송 프로그램'의 특성. 2001년 장애인 이동권 연대의 투쟁에서 20년이 지난 2022년 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이르기까지 과연 무엇이 달라졌는지 생각해보도록 했다.

이 투쟁이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이라는 외침과 함께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와 이를 위한 권리 예산 확보를 주장하고 있다는 부분에 주목한다. '탈시설권리'란 시설에서 나와야 지역사회에서 '이동'받고 '교육'받고 '노동'할 수 있다는 모든 권리의 바탕이 되는 개념이다.


환경이 바뀌면 관계망이 변하고 활동범위가 달라지고 삶이 변한다.

'향유의 집' 사무국장 강민정


이런 말들을 보면, '이동권'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그 투쟁의 과정에서 얼마나 혐오의 말들을 쏟아내고 있는지도 돌아보게 만든다.


이 책에는 수많은 '다름', 그러니까 장애와 질병을 겪는 사람들, 재일조선인, 다문화가정, 미등록 이주 아동, 불법체류자와 난민,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기후위기 활동가 등 수많은 '소수자'의 삶을 다룬다. 그러면서 우리가 그 '다름'을 마주하는 자세를 정확하게 짚어준다. 손쉬운 연민, 구분, 단순하고 납작한 공감, 그뒤에 따라오는 편견, 차별, 거절까지.


고통을 인정하는 것이 장애를 경험하는데서 비롯되는 가치까지 부정하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는 고통에 '공감'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고통이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그 고통이 가져다 주는 가치나아가야 할 확장적 가치관으로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넓어진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단순한 이해와 납작하게 눌린 공감이라는 착각을 넘어설때 비로소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공감과 이해가 전부가 아니라, 고통이 계속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하며 그러한 경험에 우리가 어떻게 연대하고 연결될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권리를 찾는 과정은 자신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회는 동등한 출발점을 만들 준비가 되어있는가. 우리는 어떤 몸과 언어를 중심으로 사고하고 세상을 바라보는가. 당신과 나의 고통은 보다 적극적으로 기록되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우리의 삶을 거기서부터 다시 쓸 수 있다. 우리는 어떻게 함께 살 것인가. 유구한 역사를 지닌 질문과 그에 따른 실험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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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여자들은 세계를 만든다 - 분단의 나라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김성경 지음 / 창비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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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냉전 이후 북조선은 경제적, 정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핵개발'에 매달리게 되었고 남한은 이에 대응하기위해 미국과 안보동맹 강화 및 군사력 확장에 나서면서 '안보' 앞에서 대결과 적대의 관계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어왔다. 핵실험과 잦은 미사일 발사로 남한의 '안보'가 위협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남한사회에서 북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감각은 증폭되어 갔으며, 적대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었으며, 경제주의적 사고가 사회를 완전히 장악하면서 경제적 실효성과 실익에 대해 따지는 통일 회의론까지 고개를 들며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 평화와 통일에 대한 관점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다.

작가 김성경은 군인인 아버지로 인해 군부대 안에서 자라오면서 누구보다 군대, 안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왔고, 결국 북한 사회문화와 이주민, 여성, 청년 등을 주로 연구 주제로 다루는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로 자리매김 하였다.  

작가는 150명을 훌쩍 넘기는 북조선 여성들을 만나면서 비로소 한반도를 옥죄고 있는 분단의 현실이 책에서 배운것보다 훨씬 더 일상과 의식을 장학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녀들을 만나면서 분단 반대편의 존재가 아닌 '사람'으로 인터뷰가 가능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기에 그녀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산문, 편지, 소설과 영화의 재구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서술하면서 가장 그녀들의 삶을 역동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할 수 있었다. 

식민과 전쟁, 분단, 냉전과 탈냉전, 지역화와 세계화가 개인의 삶에 어떻게 중첩되어 있는지, 이 역사적 소용돌이속에서 '남겨진 사람들도 뭐든 해야했다, 살아야지 어쩌겠는가'라는 선택이 아닌 필연적인 억척스러움과 절실함을 보여준다. 때문에 전쟁과 같은 일상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국가와 민족이라는 거대한 구조를 극복하는 여성들의 행동적 실천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분단 체제 앞에서의 한국사회의 모순을 폭로하기도 하고, 남북 공통으로 적용되는 가부장제의 민낯을 보여주기도 하며 노동자로 내몰린 여성들의 고된 경험과 국가와 이데올로기의 억압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고 자신의 존엄도 지키려 노력했던 여성들의 삶은 기적과도 다름 없었다. 

남한 사회는 북조선 사람들에 대해 무지하다. 식민과 분단 구조에서 가장 힘겨운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했던 북조선 여성, 조선족 여성들의 모습은 우리가 손쉽게 떠올리는 북조선 여성들의 이미지나 서사와는 사뭇 다르며, 북한에서 선전하고자 했던 모습과도 거리가 있다. 가장 낮은 서열에서 자매애와 가족애를 실천하는 여성들의 행위주체성은 전복과 해방의 실마리를 안겨준다. 전쟁, 냉전, 분단 체제 속에서 살아남은 여자들의 역사는 현재를 규정짓고 미래로 전수될 것이기에 우리의 이해가 더 필요하며  우리 사회가 함께 숙고해야할 일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북조선과 마찬가지로 분단에서 자유롭지 못한 남한사회를 한번쯤 되짚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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