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슈퍼마켓엔 어쭈구리들이 산다 - 슈퍼마켓 점원이 된 신부님과 어쭈구리들의 달콤 쌉쌀한 인생 블루스
사이먼 파크 지음, 전행선 옮김 / 이덴슬리벨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20년간 신부로 일해온 사이먼 파크는 어느날 자신이 천직이라고 믿었던 성직을 때려치고 실업자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나이 쉰인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전직 신부라는 특이한 이력뿐. 20년간의 전직 경력으로 사람에 대해서는 알만큼 안다고 생각한 그였지만 , 갑작스럽게 사회의 찬바람속에 서있게 된 후 그는 자신이 사회를 오판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러 다니면서 아무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 현실에 절망하던 그는 경제난과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하게 된다. 다행히도 그런 그 앞에 구원의 동아줄이 떨어졌으니, 슈퍼마켓 점원 자리에 채용된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슈퍼마켓에서 3년간 일한 경험을 토대로 써온 일지를 묶은 것으로, 누구나 우러러 보는 성직보다는 상품 진열대를 묵묵히 채우는 그 시간이 더 편하고 소중하고 말하는 솔직한 입담에 뜻하지 않은 감동을 받게 되던 책이었다.  이 책을 든 것은 전적으로 호기심때문이었는데, 그런 호기심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진솔하기 그지없는 작가의 이야기에 오히려 감명받을 수밖엔 없었다.  전직 신부가 수퍼마켓 점원이 되었다는 선정적인 (?) 소재에 귀가 쫑끗했던 나로써는 그의 진심에 고개가 숙여지고 말았으니... 그나마 이런 호기심이 다행이라고 생각되는건 그 덕분에 이런 좋은 책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성직과 점원이라는 직업에 대한 나의 낯뜨거운 편견을 보기 좋게 부셔버린 작품으로 , 가벼운 신변잡기인줄 알고 집어들었다가 그만 한없이 진지하게 읽고 말았다. 작가가 워낙 들어줄만한 이야기를 흔연스럽게 떠들어 놓으셔서 말이다. 도무지 누가 알았으리요. 슈퍼마켓 점원 입에서 이런 주옥같은 이야기가 술술 흘러 나올 것이라고 말이다. 하여간 재밌기도 하지만 공감도 많이 되고 배울 것도 많아서 반가웠던 책이었다. 무엇보다 성실하게 20년동안 신부란 직업에 종사한 분답게 인간에 대한 현실적인 통찰력이 넘친다는 것이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히려 그가 신부직을 그만 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되어질 정도였다. 왜냐면 이런 분이, 이렇게 똑똑하고 양심적인 분이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외면한 채 제도권에 함몰되어 버렸더라면, 이런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야긴 들을 수  없었을테니 말이다. 수퍼마켓에서 일어나는 소소하고 자잘한 일상들을 전직 신부의 눈을 통해 들여다 보고 싶으신 분들에게 추천.

이 책을 읽고 스쳐 지나간 생각들 몇 개를 적어 보자면...


1. 성직은 영적인 능력과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는 것. 이 작가가 어느순간 깨달았듯이, 성직 역시 단순한 직업일뿐이며, 그 직업을 잘 수행하는 것은 신앙심이나 영적 재능이나 능력과는 별개의 것이다. 오히려 깊이 생각하는 능력은 평화로운 성직 수행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2.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자주 가는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분들이 떠올랐다. 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손님은 아닐지라도 진상 손님은 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리고 그들을 보다 가깝게 느껴지도록 만들더라. 한번도 대화를 진지하게 나눠 본 적이 없어서 그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저자가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도록 알려 줘서 말이다. 슈퍼마켓 직원들을 이름 모를 직원들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게 해준 점이 특히 좋았다. 우리가 타인을 사물화하게 되는데는 어느 정도는 무지도 한 몫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3. 신부라는 옷이 비록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았다고 그는 말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신부스러웠던 사이먼을 보면서 세상이란 것이 어쩜 그런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옷이라는 것은 그나 그녀를 나타낼 수는 없는 것이며, 우리가 그를 안다고 하려면 옷이 아닌 그 내면의 것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것 말이다. 그런면에서 사이먼 파크, 수퍼마켓 점원 옷을 입고 있는 그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멋진 성직자였다. 결코 성직이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지만 직장에 딱 달라붙어 있는 관계로 승진을 하고 그 자리에 주어지는 존경을 받는 성직자들을 종종 보게 되는 나로써는 사이먼 파크야 말로 신성한 충격이었다. 그의 용기와 지혜에 박수를...


<밑줄 그은 말들>

"겉으로 보기엔 그것은 일종의 선택으로 보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의 눈에는 충격적인 선택이자 직무 태만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르지만 내 결정의 근간에는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존재가 되기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사람을 향한 분노. 사회에서 개개인의 역활은 타인의 삶에 질서를 줄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 역활을 바꾸거나 등한시하면서 , 내적 혼돈을 가까스로 이겨내며 살아가는 허약한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 자신만의 내적 기둥이 없는 사람은 다른 이가 자신을 위한 기둥 역활을 해주길 바란다. 사임한 신부가 그런 이에게 도움을 줄 수는 없지 않는가.--15

 

내적으로 보면 그것은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만약 집에 불이 난다면 우리는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무조건 취해야 하는 행동이다. 나는 교회와 안전함과 집과 소유물을 떠나 윈스턴과 마찬가지로 슈퍼마켓에서 선반 채우는 일자리를 잡았다. 그 일 말고는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한마디로 미친 짓이었을지 모르지만 , 행복한 일이기도 했다. 단순한 마음에 무슨 장애물이 있겠는가.--16

 

천재성이란 하루가 당신을 힘겹게 만들 때 오히려 희망을 거머쥐는 능력에 있다. 그것도 가능한 즉시.-34

 

"신뢰란 내가 하겠다고 맘먹어서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주는 거야."

사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를 생전처음 듣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종종 신뢰라는 것이 열망하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라도 되는 양, 또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모든 도덕심을 그러 모으기라도 해야 하는 듯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신뢰란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이다.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이다. 누군가 삶에 크나큰 은혜를 베풀때 우리는 그를 신뢰하게 된다. 그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했던 무언가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저인망 어선이 갈매기를 불러 모으듯 그들의 선의가 우리에게 신뢰를 이끌어 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우리 교대 조원들 사이에서느껴지던 것이었다. 물론 어제까지만.--68

 

'그냥 장난이라니까' 라는 말은 암울한 만트라 주문이다. 남에게 상처를 줄 의도이면서도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주문이란 뜻이다. 그러한 주문은 신뢰를 무너뜨리고 오히려 희생자에게 책임을 덮어씌운다. 이 모든 것이 상황을 잘못 이해한 피해자의 탓이라는 듯 말이다.

"난 그저 장난친 거라니까~!"

도대체 로즈메리는 왜 아이에게 행복한 마음만 주는 것을 그리도 힘들어 할까? 내 생각에 그 심리는 별로 복잡하지 않은 것 같다. 말하자면 그녀도 어린 시절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빼앗겼던 것을 어른이 된 후 다른 사람에게서 빼앗고 싶어한다. 더구나 받아본 적이 없는 것은 절대 줄 수 없다.--75

 

<좋은 부모의 조건>

1. 몇 명의 독립적인 인간을 거의 20년 동안 이끌어갈 만큼 충분히 강하다.

2. 아직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을 개발하지 못한 아이의 욕구에 늘 주의를 기울인다.

3. 사람과 사회의 활동에 관심이 많다.

4.스스로 헤쳐가는 삶의 모험에 관심이 많다. 죽음이 가까워지면 스스로 이해하며 살아온 인생을 되돌아 보길 기원한다.

5. 주변 사람들에게 늘 함께하길 독려하고 모험심을 장려한다.

6.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 속에서 살아간다.

7. 좋은 시절이든 안 좋은 시절이든 곧 지나갈 것임을 잘 인식하고 있다.

<좋지 않은 부모>

1.자신의 재미, 우정, 힘 , 통제력등 스스로의 요구를 만족시키는데 아이를 이용하려 든다.

2.아이를 겁주고 조종하는 데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힘을 이용하려 든다.

3.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존재도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

4.잘못된 일만 강조하거나 더 잘할 수도 있다는 식의 주장만 하는 부정적인 존재다.

5.다른 영혼에게 여유를 베풀기에는 해결되지 않은 분노가 슬픔으로 가득차 있다.

6.자신이 모두가 시키는 해야 하는 심부름꾼 같다고 느끼며, 피곤해하고 짜증 부리고 분노하는 데 극도로 에너지를 소모한다.

7.늘 기분에 따라 행동하며 아이를 대하는 데 일관성이 없다.

물론 나는 14가지 모두에 해당한다. 하지만 앞서 제시한 7가지를 더 선호한다.--174

 

어릴적 우리를 대하던 어머니의 태도는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 자신이 그러한 영향력에 고마움을 느끼는지는 어디까지나 별개의 문제다. 사실 어떤 이는 어머니에게서 독립한 뒤 나머지 일생 전부를 그 영향에서 회복하는 데 소비해버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종종 심리치료사들은 상담 중인 고객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부모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자신에게 전혀 솔직하지 못한 그들의 무능력이라고 이야기한다.....왜 계속해서 그의 기분을 맟줘주었느냐고 물었을때, (제인의 아버지는 딸을 근친상간하는 자였음.)제인은 " 그래도 부모니까 나를 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었던 거죠."라고 대답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심리치료사에게 부모와의 사이에서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럼으로써 끝장나는 것은 자신의 남은 인생뿐인데, 뭐, 그리 대수겠는가.

 

성직에 있을때 늘 어머니날이면 곤혹스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어떤 이들은 진정으로 어머니에게 따스한 애정을 품고 있었지만, 어머니라는 존재가 주는 질식할 듯한 부적절하고 전통적인 정서를 부담스러워 하는 성인도 많아서 그들을 정기적으로 상담해야만 했다.--285

 

일반적으로 생존을 위협받을 경우,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부모를 기쁘게 하려고 애쓴다고 한다. 다시 말해 부모를 기쁘게 할 지 자신을 기쁘게 할지 선택해야 할 상황에 놓이면 부모 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억누르고 거짓 자아를 만들어 성인으로 성장해야 한다. 아이가 어리든 성인이든 간에 부모라는 존재를 아이가 마지막까지 맞서 싸워야만 할 전투가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자녀는 그 전투 이전에도 수많은 싸움에 참가해야 한다. 확실히 스타브는 바로 그 특별한 전쟁의 어디쯤인가에 도달한 듯했다-311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나는 정말로 쉽게 하는 말이 아니었기에 그의 말에 반박했다.

"나도 정말 힘든 시기가 있었어. 내 말을 믿어, 절망에 빠져서 절벽에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시도했던 적도 있고, 악몽을 꾸며 흐느껴 울던 밤도 얼마나 많았었는데. 그렇지만 무슨 일이 닥치든 간에 결국에는 모든 것이 다 괜찮아질 거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어. 왜냐면 이야기의 끝이라는건 없거든. 그게 내가 발견한 사실이야. 이야기는 바뀌는 거야. 내 경우에는 확실히 그랬어. 결코 끝나지는 않아. 그리고 네 것도 아주 좋은 거라고. 캐스파. 이제 막 시작한 이야기거든."327

 

하늘 아래 있는 모든 주제에 관해 이야기해왔던 20년이라는 세월 이후, 마침내 말을 잃은 것이다. 물론 그래도 상관없었다. 대신 신도들이 나를 축복했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와서는 나를 안아주었다. 그러니 살면서 배웠듯이 떠날 때가 다가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328

 

그러니 만약 그곳에 행복을 끌어들인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반면 절망을 불러들인다면 절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의 선반을 자신의 경험에 투사하고, 그 점은 슈퍼마켓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분노하고 좌절하거나 타산적이 된다면 우리의 쇼핑 경험도 그렇게 될 것이다.-3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