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그림자를 읽다 - 어느 자살생존자의 고백
질 비알로스키 지음, 김명진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20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린 동생 킴, 저자는 왜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엔 없었을까 궁금해한다.  동생을 갑자기 잃었다는 상실감에 동생과의 추억을 봉인하고 살았던 저자는 외아들이 청소년기가 되자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가족안의 저주가 되풀이 되지 않을까 라는... 더이상 동생의 자살에 대한 의문을 서랍속에 가둬둘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저자는 그간 외면하고 살았던 기억들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그로부터 시작된 동생 따라잡기...제목 그대로 이미 사라진지 오래된 동생의 그림자를 읽고 있던 책이다. 질문을 하는 주체는 있지만 대꾸를 해 줄 당사자가 없다 보니, 자신의 추측에 의하거나 주변 탐문에 의해서 동생을 그려낼 수 밖엔 없는 저자의 아픔이 제목에 잘 나타나 있지 않는가 한다. 저자가 읽어낸 것은 결국 동생의 그림자에 불과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녀가 그렇게 간절하게 원하는 동생의 실체는 이미 오래전에 무덤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이제 저자에게 남은 것은 동생이 남긴 희미한 그림자뿐... 과연 언니는 동생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알아낼 수 있을까?


이 책을 보면서 가족안에서의 불행이라는 것은 가랑비에 옷 젖듯 그렇게 서서히 익숙해 지는 것이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그걸 모르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딱 자살할만한 상황이었구만서도, 언니는 별별 책들과 심리 상담사를 찾아 다니면서도 여전히 알아내지 못하는걸 보면서 말이다. 그녀는 끝까지 동생이 왜 그런 선택을 했으며, 그것이 진심이었을까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단지 충동이 아니었을까. 진지하지 않은 장난같은 시도였는데, 그것이 나쁘게 악화되어서 일이 그렇게 커져버린 것이 아니었을까라고 말이다. 왜냐면, 그 아이가 그렇게 불행하다는 것을 언니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동생이 불행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살할 정도라곤 생각하지 못했던 것, 그것은 그녀가 실제로 자살을 한 이후에도, 자살을 한 뒤 20년이 지난 뒤에도 여전해서, 이 책 안에서도 저자는 여전히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겐 왜 자살을 택했지? 내가 막을 방법은 없었을까? 그앤 정말로 죽고 싶어했던 것일까? 이건 모두 장난이 아니었을까 라는...


저자가 동생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쭉 들어보니.... 네, 그랬다. 저자의 동생은 정말로 자살하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건 동생이 유언장에 쓴 것처럼 그녀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저자는 그걸 볼때마다 눈물짓는다고 하지만, 아마 저자의 동생 킴은 가족들이 유언장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홀가분해지길 원해서 그런 글을 남긴 것일게다. 자신의 죽음은 당사자의 선택이며, 거기에 남은 사람이 죄책감을 느끼길 원하지 않아서 말이다. 아마 그것이 그녀가 바란 진실이었을 게야. 그녀는 누구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기 위해 자살을 택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지쳐서, 어린 시절부터 이어지는 불행에 지쳐서 더이상은 버틸 수 없었던 것일 뿐이지 않을까 한다. 살아온 20년 내내 쭉 불행했고, 꼴을 보아하니 앞으로도 쭉 이렇게 불행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 과연 어떤 선택이 내리겠는가. 누구라도, 이젠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이젠 더이상 불행하고 싶지 않다는, 나를 위해서라도 내가 더이상 혹사당하게 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그렇게까지 불행하지 않았던 저자는 그런 동생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바라보지도 못하는 듯했다. 그 아인 착하고 행복했다고...단지 조금 사람들과 문제가 있었을뿐...이라고 드러난 명백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굳건하게 믿고 있는데, 우습지 않는가.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겐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 가족들은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그렇게도 부끄러운 일일까? 동생이 불행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면 거기에 너무 젖어 있어서, 그것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아마 두 가지 다 해당이 될 것이다. 거기에 이 저자 역시 자신의 가족이 어린 시절부터 가져온 유일한 가정이었기에, 그것이 얼마나 비정상적이고, 사람을 피폐하게 하는지에 대해 모르는 듯했다. 어쩜 거기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핸 방어기제가 작용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고보면 본인 역시 같은 피해자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동생을 자살로 몬 것일까? 그녀의 부모일 가능성이 크다. 딸을 신발에 붙은 껌 취급하는 아버지와 나이만 먹었지 어린 아이처럼 미숙 해서, 10대 막내 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사는 엄마...그 둘이 딸의 기를 얼마나 꺽어 놓았고, 그녀의 인생 플랜을 완전히 망쳐 놓았을지 뻔히 보이는데도, 언니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더라. 실은 동생이 이미 삶을 시작하기도 전에 부모가 꺽어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던데.. 언니는 동생에게 창창한 미래가 남아 있었다면서 그걸 버린 동생을 이해하지 못했었는데...이봐, 언니야. 동생에겐 그런 미래는 존재하지 않았어. 그건 너만의 착각이지. 어쩌면 동생이 오히려 현실적이었을지도 몰라. 아니면 자신의 문제기 때문에 마냥 환상속에 살 수만은 없었던 것일지도. 그래, 엄마는 착한 분이셨어. 무능하고 자기 생각만 해서 그렇지. 그래, 아빠는 나쁜 남자였어. 하지만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잖아? 이기적이고, 충동적이고, 무책임한 사람. 그런 자가 아빠면 그저 익숙해지는 것밖엔 없다는 것을 동생은 어째서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왜 그런 사람에게 상처를 받은 것일까? 라고 저자는 말하던데.... 아마 저자가 동생에게 정말로 미안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동생의 고통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아이가 아이였다는 것을, 그래서 엄마를 보호해줘야 하는게 아니라 자신이 보호받아야 하는 것이었다는 것, 그것이 아이에겐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어 보였다. 물론 저자 역시 홀로 살아남기  바빠서 동생을 챙길 여력이 없었겠지만서도, 여력이 없다고 해서 이해를 못하는건 아닐텐데 말이다. 그렇게 불행한 동생의 현실을 직시하는게 어려운 것일까 싶었다. 하긴 뭐 저자 역시 동생의 엄마는 아니니 말이다. 엄마가 하지 못하는 일을 어떻게 그녀가 나서서 하겠는가. 그녀 역시 할 수 없었다고 보는게 옳다. 그런면에서 그 누구도 킴의 자살을 막기는 어려웠다고 보는게 맞지 싶다. 이 가족 안에서는 그걸 막을만한 사람이 없었고, 동생 역시 모든걸 이겨낼만한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사실 우린 누구나  그렇게 강한 존재가 아니다.


결국 크게 보면 엄마의 무능이 딸의 자살을 불러온 것이라고 봐도 좋지 싶었다. 그럼에도 가장 고통을 당하는 사람도 , 위로를 받아야 하는 사람도 그 엄마라고 생각하는 것이 좀 그랬다. 만약 그렇게 딸이 귀중했다면 그 전에 잘 키우려 노력했음 됐었을거 아닌가. 딸이 불행하다 못해 자살을 택할 정도로 집안 환경을 엉망으로 만든 주제에 딸의 죽음에 슬퍼한다는 것은 뻔뻔해 보인다. 결국 죽은 자만 안 된것인 것일까? 그녀로썬, 그것밖엔 탈출구가 없었다는 것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킴의 자살은 그저 비겁한 자의 충동적이고 이기적인 선택이라고밖엔 생각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살아남은 자에게 자신의 이기심이 보일리 없으니 말이다. 그들은 사실 그녀를 오래전부터 서서히 죽이고 있었다.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걸 지금 자신들이 슬퍼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자살한 킴을 가해자로 생각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게 아닐까 싶다. 그래, 네 동생이 자살한 이유가 궁금해? 그건 너희들 모두의 공모였어. 하니, 이젠 그만 동생이 조용히 잠들 수 있도록 놔두길 바래. 그녀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을테니 말이야. 조용히 쉬는 것, 더 이상 불행에 햄 볶이듯 볶이지 않는 것을 말이다. 킴의 평온을 빌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