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삶 - 당신 아이를 움직이는 또래 집단의 힘
마이클 톰슨 & 캐서린 오닐 그레이스 & 로렌스 J. 코헨 지음, 김경숙 옮김 / 양철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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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얼마전 EBS에서 해준 다큐 <불리>를 보곤 왕따의 심각성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 그동안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귓등으로만 흘려 들었었고, 종종 자살을 하는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때조차 어쩌다 극단으로 치달은 사건이라고만 생각했지, 그것이 체계적으로 벌어지는 사건이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다. 그런데 왕따 현장을 실제로 보니 그 파괴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더군다나 그런 일들을 벌이는 아이들이 평범한 보통 아이들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이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를 경각하게 한 것 , 왕따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그 누구도, 어떤 어른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하더라는 점이었다. 선생님은 선생님대로 무기력하게 모른 척 하기 바빴고, 부모는 부모대로 왕따를 당하는 자식들에게 어떻게 대응을 해 줘야 하는지 모르고 있더라.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앞에서도 그 모양이니 보통때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려나 아득해지는 장면이었다. 그들의 무능력은 상상 이상이여서, 아이들이 그 안에서 좌절감에 자살을 하는 것도 무리도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당해, 선생님은 도움을 안 줘, 부모는 부모대로 맞고 왔다고 야단을 쳐, 사면초가라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 한마디로 피해자를 도와 주기는 커녕 피해자를 더욱 더 피해자로 만드는 것이 왕따의 진행과정이었다. 왕따 당한 아이들이 자살을 하게 되는 것이 비단 아이들의 문제만은 아니라는걸 알게 해주는 장면이었다. 식겁했다. 그리고 반성이 됐다. 우리 어른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아이들의 문제라는 이유로 방치했다는 것에 대해.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보니 의아스러웠다. 왜 아직까지도 그 흔한 대응 메뉴얼 하나 없는 것일까 라는...왕따 당한 아이들에 대한 이슈들이 문제가 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닌데도, 왜 아무도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싶었던 것이다. 왜냐면 다들 "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 라는 말만 되풀이 할 뿐, 자신들의 행동을 어떻게 교정해야 할지에 대해선 감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무지가 상황을 악화시킨다고 자각이 되면, 무언가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옳아 보이는구만, 다들 그저 예전에 수백만번은 했을 행동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었다. "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기만 해요 "라고 토로하면서. 과연 그렇게 우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 갑갑했다. 하지만 보기만 해도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걸 알아 내는건 어렵지 않았다. 일단 <불리>를 보면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점들을 보면 이렇다.


1. 선생님이 때리는 아이를 두둔하는 장면. 한 아이가 친구를 때리는 장면을 본 선생님이 둘을 부른다. 화해를 시키는 선생님. 때린 아이는 사과를 하면서 손을 내밀지만 맞은 아이는 화가 나서 손을 내밀지 못한다. 이때 선생님은 손을 내밀지 않는 아이를 야단친다. 자신은 맞았기 때문에 사과하고 싶지 않다는 아이의 말에 선생님은 이유가 있어서 맞았겠지 라고 한다. 이런 패턴들이 왜 자꾸 반복되는지 모르겠으나, 매맞는 아이들이나 매맞는 아내들, 그리고 매맞는 부모들의 경우는 늘 이런 식이다. 맞는 것도 억울한데 이유가 있어서 맞았을 거라 주변 사람들이 추측해 주는 것이다. 그들이 수치심에 입을 닫고 사는 것도 이상할게 없지 않나. 과연 이유가 있어서 맞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왜 왕따에 대해 걱정하는 척을 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선생님들에게 왕따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은 있기는 한 것일까. 단지 아무 일 없이 하루가 조용하게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은 아닐까.


2.부모들의 대응 자세. 자신의 자식이 왕따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도무지 눈치 채지 못하던 엄마에게 제작진이 그 장면을 보여 주었다.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날이 심해지는 왕따를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부모의 반응? 아이를 불러다 야단을 친다. 왜 맞고 사냐고 , 너는 입도 없냐고, 너를 곯리는 친구는 친구가 아니라고...자신의 아이가 남의 아이에게 당하는 꼴을 보려니 하도 억장이 무너져 그러는가보다고 짐작은 되지만서도, 아이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 주지 못하는 부모가 맘에 안 들었다. 난 당연히 아이의 상처를 먼저 보듬어 줄거라 생각했었으니 말이다. 부모는 아이가 문제를 집으로 불러 들인 것에만 신경을 쓰는 듯했다. 다른 아이들처럼 아무 문제 없이 학교나 다니면 좋은데  왜 우리가 신경을 쓰게 하냐는 것이다. 그런 것 정도는 네 선에서 알아서 해결했어야지..라는 뉘앙스.


그렇다 보니 아이들은 기댈 곳이 없었다. 왕따 문제가 단지 아이들 문제라고? 아니다. 아이들을 귀찮아 하는 어른들의 문제기도 하다. 자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놀라는 척 호듭갑만 떨다, 그 후론 까맣게 잊어 버리는 어른들의 문제다. 자살한 아이의 부모가 울면서 들고 일어날 때 나몰라라 하는 선생님들의 문제기도 하고, 그렇게 많은 개선책 건의에도 불구하고 늘 같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교육관계자들의 문제기도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하고, 아무것도 할 생각이 없는 어른들의 문제라는 것이다. 왜 우린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면서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조금만 손을 내밀면 보다 나은 해결책을 내어 놓을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어른들은 잘 모르는 아이들의 숨겨진 삶. 이 책에서도 왕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선 딱히 대답을 주지 못한다. 아니, 주었는데도 내가 발견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읽기는 했는데, 아무리 봐도 왕따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자식이 왕따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선 적절한 메뉴얼이라고 할만한걸 찾아 볼 수 없었다. 기대한 명쾌함이 아니라 어디서나 들을 수 있었던 흔하고 미적지근한 일반론만 있다는 것은 마법의 주문을 기대하면서 열심히 읽어 내려간 나에겐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이 책에선 아이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들여다는 본다.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착하고 마냥 순수해보이는 그들이 왜 또래들에게는 그렇게 잔인한지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그리고 그것이 당하는 아이들에게 왜 그다지도 상처가 되는지도...더불어 그것이 그저 너희들은 착하게 살아라는 말로는 해결되지 않는 복잡한 성격을 띤 것이라는 점도.  그렇다. 개입을 해야 한다. 그들은 완전히 성숙한 어른이 아니니 말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왕따가 존재하는 걸 보면 아직은 미숙한 그들이 자신들만의 사회생활을 해 나가면서 그런 상황을 연출해 내는 것이 그렇게 극단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걸 이해해야 한다. 하니 상황이 악화되다 못해 통제불능이 되어서, 고통에 울부짖는 아이들이 나오기 전에 우리 어른들이 무언가 해야 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면 현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명해 지기 위해선 좀 더 관심과 사랑을 갖고 그들을 들여다 봐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 만으로는 부족하다. 행동이 필요하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건데, 누군가 적절한 메뉴얼을 만들어 주길 고대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일단 정확하게 통찰하고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 같은 심리학자가...매맞는 아내들의 심리에 대해 , 알콜중독자 가족들의 심리에 대해 , 그들의 상황이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알려 주었다. 그것이 피해를 당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도움과 안도감을 주는지 짐작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공정함이란 그런 것이다. 모두를 안도하게 하고 설득한다. 그것처럼, 왕따에 대한 연구를 좀 더 해주시길 바란다. 지금의 선생님들처럼 소극적이고 모른 척 하는 자세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하는데는 어느 정도 게으름도 있지만 무지에서 기인한 것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니 누군가 알려 주시라. 어떻게 우리가 해야 하는지를...그런 시발점이 바로 이런 책이라는 생각에서 추천작으로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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