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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박세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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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볼라뇨의 현란한 글발과 동시에 한계를 엿볼 수 있게 해준 단편집이다. 총 14개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것인데, 가장 인상적이고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맨 처음 등장한 " 센시니 " 였다. 사실 이 작품만 읽었는때는 어쩌다 내가 아직까지  볼라뇨의 진가를 발견하지 못했는가 한탄할 정도였다. 그만큼 완벽했다는 말씀. 물론 그런 탄식은 그 다음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 갔지만서도, 하여간 '센시니'의 내용은 이렇다. 


< 가난한 이십대 시절 우연히 응모한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탄 나는 내가 존경해 마지 않던  센시니라는 작가 역시 우수상을 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같은 공모전에서 상을 탔다는 사실에 흥분한 나는 주소를 물어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펜팔은  내가 예상치 못한쪽으로 전개 되어 나가지만 오히려 나는 신이 난다. 우습게도 우리가 나눈 편지 대부분은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였고, 그 정보라는 것이 바로 다양한 공모전에 대한 것이었다. 존경하옵는...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문학에 대한 거창한 대화를 나눌줄 알았던 나는 오히려 허세가 전혀 없는 그의 태도에 , 그리고 나를 자신과 같은 처지의 동료로 대해주는 그의 가식없음에 반하고 만다. 같은 소설을 가지고  다른 공모전들에 꾸준히 응모하고 있다는 센시니는 나에게도 그렇게 해볼 것을 권유한다. 어차피 주최자들은 응모작들을 읽지 않는다면서 말이다. 그렇게 가난과 기성세대에 대한 조롱으로 시작된 센시니의 공모전 응모는 적어도 그에게 돈을 벌어다 주고 있었고, 이젠 그의 조롱에 나도 함께 동참하게 된다. 공모전에 대한 정보 외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던 나는 점차 센시니의 가족사에 대해 듣게  된다. 기자인 그의 장남이 실종되었다는 것과 그가 막내딸을 무척이나 사랑한다는 것까지... 그후 센시니는 무덤가에서 발굴된 50여구의 시체중에서 장남의 것으로 보이는 시신을 발굴했다는 소식을 전해 오고, 그 후  아르헨티나가 민주화된 시점에 아들의 실종을 확인하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그와의 연락은 끊어지고 만다. 우연히 그가 사망했다는 부고를 접한 나는 나중에 그의 딸이 집으로 찾아오자 아무말 없이 그녀를 집으로 들인다. 그리곤 그간의  자초지종에 대해 묻게 되는데......>

 

독재에 대한 저항으로 날로 격화되어 가는 문인들의 고초, 되는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 낙오자 , 살인자, 우울증 환자, 섹스 중독자, 마피아등 인간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고 피폐해지고 있는지, 인생이라는 거대한 조류 앞에 인간은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던 단편집이다. 로베르토 볼라뇨의 단편의 특징이라면 그가 만난 사람의 인생 역정을 끝까지 조망해 보여준다는 것이었다.  짦은 단편안에서도 평범하지도 비범하지도 않은 인물들이 어떻게 일그러지고 망가져 가는지 인생 전체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그건 그가 오랜 시간에 걸쳐 인간을 예리한 관찰력으로 관심있게 지켜본 사람이여서 가능했던게 아닐까 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찰나가 아니라 그들의 결말까지 보여주는걸 보면 인생을 조망하는 시야가 넓다는 것도 그만의 장점. 그걸 보면 아마도 그는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끊임없이 궁금해 한 사람이지 않을까 싶었다. 인생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통찰력이라. 그가 어쩌다 작가가 되었을지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런 장점들에 비해 한계라면 현실에 대한 냉소가 지나쳐 보인다는 점? 때론 조롱처럼 느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인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 그래서 누구보다 사랑하지는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게 하는 작가였다. 한마디로 인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왜 그가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지는 뭐, 굳이 물어봐야 할 필요도 없는 일이겠지만서도, 만약 그가 아주 아주 늙었을때까지 살아있었다면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조롱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인간성에 대한 믿음을 다소나마 회복할 수 있었을까? 내진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그의 현실에 대한 통찰에는 감동을 받았지만, 그가 그려낸 현실에는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탈출구라고 해야 하나 ? 통로라고 해야 하나, 그런게 없어서. 어쩌면 그가 그려 낸 현실이 진짜 현실에 근접한 것일 지도 모르겠지만서도, 내리막만 존재하는 암담한 현실이란 받아 들이기는 커녕 읽는 것조차 버거웠다. 아마 그 자신도 출구없는 자신의 소설에 숨이 막혀 하진 않았을지... 하지만 그는 거짓말을 하는 작가는 못되었으니, 감동이 없는 소설을 쓸 망정 지어내지는 않겠다고 다짐했을 작가의 고집을 안스러워 해야 할지 아니면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쩜  후기 작품에는 그 고집을 꺽지 않고도 감동적인 소설을 써 냈을 수 있었을지 모르니, 나중에 확인을 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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