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없는 일주일
조너선 트로퍼 지음, 오세원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아내가 직장 상사와 바람이 나는 바람에 세상이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조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누나로부터 듣게 된다. 자신이 벌이고 있는 드라마만으로도 버거워 죽겠는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유대식 7일장인 시바를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니, 조니는 아연실색이다. 아버지가 종교적인 사람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다. 물론 가끔 자신들을 닥달해 시나고그에 데리고 가긴 했지만서도, 그게 종교적인 믿음이 있어서라기 보단 그저 자식들과 무언가를 하고 싶으셨던 것이라고 짐작했었던 조니는 자신이 그간 잘못 알고 있었나 어리둥절해진다. 아버지의 유언에 깜짝 놀란 것은 비단 그만이 아니여서, 형제들 모두 어떻게 시바를 치뤄야 할지 난감해 한다. 장례식을 치르는 직계 가족들만 허둥댈뿐, 조문객들은 침착하기 그지 없는 시바를 치르면서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은 그간 못푼 회포를 풀기 시작한다. 그간 떨어져 살면서 각자의 드라마를 찍고 있던 가족들은 한자리에 모이면서 과거의 울분과 현재의 고통으로 서로를 할퀴기 시작한다. 누구보다 아내가 상사와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한 조니의 트라우마는 상상을 초월한다. 어떻게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할 만큼 망가진 그를 보면서 가족들은 도움을 주는 한편 정신 사납게 하는데도 일조를 한다. 한때 촉망받은 운동선수였지만, 사고로 인해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 받곤 촌구석에 갇혀 살아온 형은 조니를 볼 때마다 원망의 눈길을 지글지글 보내 온다. 아기를 가지려  별별 노력을 다했건만 여전히 되지 않은 임신으로 상심한 형수는 조니에게 야릇한 눈길을 보내오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어 아득바득 살고 있는 누나는 남편에게 그렇게 무시를 당하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사는지 존경스러울 정도다. 집안의 사고뭉치인 막내는 자신보다 한참 연상인 약혼녀를 장례식장에 데려 옴으로써 개차반 집안의 대미를 장식한다. 어쩜 그리도 한결같이 엉망인지...루저라는 것이 그 집안의 특징이라도 되는 듯 제 정신인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신기한 가운데, 그런 그들이 7일동안 어디도 가지 못하고 장례식장을 지켜야 한다니... 시한폭탄이 째깍 거리는 소리가 들려 오는 듯하다. 보통 가족이라고 해도 그 정도의 압력이면 없던 갈등도 생기게 마련인데, 이 가족이 어디 보통 가족인가? 언제 분노가 폭발할 지 분위기 살벌한 가운데, 조니의 전처가 찾아와 그의 아이를 가졌다고 고백한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엄마가 레즈비언이며, 옆 집 아줌마와 연인 사이라는 폭탄을 터뜨리자, 드디어 가족들은 서로를 향해 난타전을 벌이기 시작하는데...과연 이 콩가루 가족은 어떻게 시바를 끝낼 것인가? 이들에게 행복한 미래란 가능한 것일까?


아버지의 장례식을 계기로 모인 4남매가 각자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인생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는 나름 모범적(?)인 전개를 보여주던 가족(!) 소설이다. 아버지의 장례식이나, 그를 받아들이는 가족들의 냉소--이 집안의 트레이드 마크임--, 아내의 불륜, 유아 심리학자인 엄마가 아이들에게 끼친 해악, 엄마와 아빠의 평범하지 않은 관계, 그리고 풀리지 않은 앙금이 남아 있는 조니와  형 사이의 과거, 매력적인 사내긴 하지만 책임감없는 어른으로 성장해 버린 막내를 보는 안타까움등등...개성이 넘친다는 말은 한없이 겸손한 것이고, 그보단 맹랑하고 대책없던 가족들의 장례식 성장기라고 보심 되겠다. 첫장면부터 심상치 않더니만 마지막까지 표현하기 쉽지 않은 사건들을 시원시원하게 풀어내던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문제가 없는 가족 구성원이라고는 한 사람도 없는 가운데 능력껏 할 수 있는 소동들의 극한을 보여주면서, 그럼에도 그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갈등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섹스에 대한 묘사가 지나치게 적나라해서 읽기가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현대 가족의 초상을 이보다 적나라하게 그려내기도 힘들다는 생각으로 재밌게 읽었다. 작가 특유의 냉소적인 유머감각이 압권으로, 극악을 달려가는 등장인물들 간의 충분히 낯을 붉힐 수 있는 갈등들을 유머 감각과 재치로 무난하게 넘겨 내는 솜씨가 관전 포인트다. 막 나가는 가족들의 면면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가롭게 읽으라고 쓰여진 책은 아니다. 나름 통찰력에 깊이가 있는 편, 다만 섹스에 대한 표현 수위가 비교적 상세(?)한 편이라, 적나라한 표현에 얼굴이 붉어지시는 얌전한 분들은 들지 않으심도 좋을 듯 하다. 소설 자체적으로 본다면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사연을 테이블 위에 다 올려 놓고  갈등을 풀어간다는 점에서 화끈해서 좋았다. 일상 생활에서 이렇게 극적으로 자신의 갈등을 풀어낸다는 것은 아마도 거의 기적에 가까울 듯....상상력 만으로 만들어 낸 것임에도 어쩜 그리도 설득력있게 풀어내던지, 작가에게 점수를 왕창 주고 싶었다. 적어도 신선하고 특이하긴 했다. 물론 이렇게 정신 사나운 가족들이 진짜로 실제할까 의문스럽긴 했지만서도. 그렇게 가상이라는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게끔 생생하게 표현해내던 묘사력이나 박력있는 전개 역시 소설의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었지 않나 싶다. 한마디로 실제로 벌어지는 상황을 생중계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잘 썼다는 말씀.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 모든 것이 아버지의 장례식 7 일 안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다. 제목 그대로, 당신없는 일주일 동안~! 멋지지 않는가. 가끔은 이렇게 치고 박고 하면서 풀어낸 갈등도 멋지다니까. 혼자 숨어서 풀려 했다간 결코 풀어내지 못했을 그런 갈등을 가족들과 함께 풀어간다는 점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이 의미가 있었던게 아닐까...그렇게 보니, 결국 아버지는 대단하셨다가 이 이 책의 결론이란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가족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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