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 다잉 다이어리 - 당하는 죽음에서 맞이하는 죽음으로
제니스 A.스프링 & 마이클 스프링 지음, 이순영 옮김 / 바롬웍스(=WINE BOOKS)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5년동안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한 책이다. 임상심리학자이자 아내이고 엄마로써 바쁜 생활을 하고 있었던 저자는 엄마의 죽음으로 아버지를 홀로 돌봐야 하는 처지가 된다. 그 후 아버지가 돌아가신 5년 후까지 아버지를 돌보면서 간병이는 것이 생각보다 쉽기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한 일을 생각하면 보다 잘 해야 하겠지만서도, 자신의 생활이 있고, 간병을 한다는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니 말이다. 저자 자신이 임상심리학자라서, 누구보다 더 잘 알 수 있었을 것 같은 느낌들을 정리한 것인데, 놀라운 것은 그녀 역시 자신의 일엔 객관적이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서구의 임상 심리학자가 이럴진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간병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싶다. 


뭐, 간병에 관한 이런 저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건 다른 곳에서 본 것과 다르지 않고, 내가 흥미롭게 본 것은--아니, 실은 구역질나게 생각되었던 것은--아버지가 말기암으로 코에 관을 삽입하지 않고서는 연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자, 그걸 빼라는 오빠의 말에 펄펄 뛰더라는 것이었다. 어차피 더 살아봤자 고통만 가중될 것이기에 편안하게 돌아가시게 하자는 것이 저자 오빠의 생각이었건만, 저자는 그동안 아버지를 위해 애를 썼던 것이 자신이니까, 자신이 그런 결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간 간병에 별로 관여하지 않았던 오빠는 아버지를 자신보다 덜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쉽게 내리는 것이고, 고로 자신이 아버지가 죽고 사는 문제에 관해 누구보다 인간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냐. 하지만 그녀를 보면서 그녀의 생각이 단지 그녀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기분이 나빴다. 그녀같은 경우가 전적으로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신만이 진정으로 사랑을 안다는 이유로, 그들은 불필요한 생명연장에 동의한다. 그리고 그들이 죽지 못하게 난리를 친다. 자신들이 무슨 잔다르크같은 여전사 인양 거드름을 피면서 말이다. 과연 그런 생각이나 결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보지도 않으면서, 어쩌면 그런 생색내는 결정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생각도 해보지 않으면서 말이다.

과연 누가, 80이 넘은 늙은 나이에, 한 세상을 족히 살아온 사람에게, 말기 암에 걸려 더 이상 인간다운 생존이 불가능한 이 상황에서, 관을 코로 꼿아 하루 하루를 연명하는 식물인간의 삶을 원한다는 것이냐, 과연 그런 시간들을 지속하는 것이 효도인 것일까? 그녀가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를 자연의 순리에 맞게 보내 드리자고 말하는 오빠가 개망나니에 불과한 것일까? 아버지를 전혀 사랑하지 않는 그런 자식인가 말이다.

거기다 더 구역질 나는 것은 그녀가 자신이 아버지를 일찍(?) 죽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유산을 노려서 그런게 아닐까 걱정한다는 것이었다. 내 참...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마당에도 어쩜 그리도 자신의 생각만 하는지...아버지가 백만년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언젠가는 돌아가실텐데, 그때 아버지의 유산이 돌아오는건 당연하지 않는가? 유산을 탐스럽게 바라보는 자신을 들여다 보면서, 그것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하는건 아닐까 생각하는 저자의 생각이 속물스러웠다. 그냥 아버지의 고통을 더 이상 연장하기 싫어서, 아버지를 위해서 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일까? 어떻게 거기엔 전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착한 딸...이란 단어에 얼마나 많은 함정이 있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것이 단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일때--여자들 중에선 이런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객관적이고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지 않는건 무척 위험한 일이다. 자신이 옳다는 것에서 한 발자욱도 움직이지 않는 그런 착한 여자들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안해도 될 고통을 받게 되니 말이다. 그녀가 그렇게 자신만 잘나고 착한 사람인양 하지 않았더라면, 오빠가 배은망덕한 불효자가 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5년 동안의 간병 때문에 지쳤다고 난리를 치면서 남에게 분노를 토하는 일도 없었을테니 말이다.

부모를 간병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죄책감에 두려움에 분노에 좌절에 우울에 그런 감정까지 감내해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더 그렇다. 그걸 제대로 현명하게 판단해서 행동하는 사람을 거의 못 본 것 같다. 여기 나오는 저자 역시 그렇게 현명한 사람은 못 되지 싶다. 그럼에도, 저자 자신이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아버지의 죽는 길을 동행했다고 본다. 그녀에게 잘 된 일이다. 그렇지 못했을 시, 그녀가 자신을 용서할 사람이 아니여 보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은 표지에 쓰여진 한 마디 말이었다.

" 죽는 건 나니까, 내 의견을 물어봐 주겠니?"
 죽는건 죽는 당사자에게 맡겨라. 누구보다 그들의 인생이니 말이다. 괜한 감상이나 착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그들이 원치도 않는 삶을 강요해 놓고는 마치 자신이 대단한 일을 하는 듯 생색을 내는 일은 하지 마라. 우린 영원히 살 수 없다. 인간으로 태어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도 성숙의 한 과정이지 않겠는가. 인간이라면 각자 해야 할 결정이고 말이다. 남의 육체에 엄청난 고통을 가하고도, 자신이 당하는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삶을 강요한다는 것은 아무리 봐도 잘못된 것이지 싶다. 삶 만큼이나 죽음도 삶의 한 부분이다. 그러니, 당사자에게 결정하게 두라. 그리고, 제발 부탁이니, 죽음을 그렇게 두려워 하지 말았으면...어차피 우린 다 죽을 목숨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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