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단맛 매드 픽션 클럽
파울루스 호흐가터러 지음, 김인순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크리스마스 전날, 어린 손녀와 게임을 하고 있던 할아버지는 초인종 소리에 밖으로 나간다. 누군가와 함께 겨울밤 속으로 사라진 할아버지는 돌아오지 않고, 그를 찾아 나선 손녀는 끔찍한 시체가 되어 있는 할아버지를 발견한다. 사건 소식을 듣고 달려온 코바치 경감은 처참한 정경에서 연상되는 것과 달리 할아버지가 돌발 사고로 사망했을 거란 추측을 한다. 누군가 쓰러진 할아버지의 목 위로 차를 돌진했고, 죽은 할아버지의 몸통을 헛간으로 옮겨놓았다는 것이다. 제 정신인 인간이라면 사람의 머리를 고의로 으깨놓는 그런 일을 하진 못했을테니, 누군가 갑작스럽게 전개된 돌발상황에 당황하다 이렇게 됐을 거라고 추정하는 경감. 그가 수십년간 경찰에 근무하면서 경험으로 터득한 직감은 하지만 할아버지의 목이 한번에 날카로운 무언가로 잘린 것이라는 검안의의 말에 무색해져 버린다. 살인이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원한을 살만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주변의 말에 정신병자의 소행이라고 확신하는 경감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동물학대 사건과의 연관성에 무게를 둔다. 한편 별 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은 채 자행된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 손녀는 두려움으로 커다래진 눈망울을 응시할 뿐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 말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을의 유일한 소아과 정신의인 호른은 크리스마스 휴가철에 근무를 하는 것도 불만이구만 이런 저런 소동을 벌이면서 들이닥치는 환자들로 보려니 억장이 무너진다.  충동성 조절 장애라는 진단을 구실삼아 딸 셋과 아내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슈미딩거, 갓 태어난 딸이 악마라고 믿는 젊은 엄마, 무심하고 냉정한 부모 밑에서 성장한 탓에 우울증에 시달리는 젊은 여인,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몰라 도움을 청하지도 못하는 청년등...인간에 대한 연민과 그 앞에 나타난 인간에 대한 경멸이 교차하는 가운데, 그는 자신의 냉소적인 성향이 시간이 가면서 점점 강화된다는 생각에 울적해 한다. 그런  와중에 마을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리면서 들어온 실어증 소녀, 호른은 그녀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암담하다. 경찰에선 정신병자의 소행이라는 점에 무게를 두는 가운데, 정신병자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호른 역시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연 무기력한 할아버지를 그렇게 끔찍한 방식으로 죽일만큼 정신 나간 자가 이 마을에 있을까? 그리고 있다면 왜?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주관하던 마을의 신부는 평소 앓던 정신병으로 발작을 하고, 호른앞에 불려 나온 그는 뜻밖의 말을 들려 준다. 정신병자의 눈에 비친 장례식장의 풍경이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호른은 그의 말을 기억해 두는데...과연 호른은 소녀의 입을 열게 할 수 있을까? 호른과 코바치 모두 범인감으로 지적하는 열 여섯살의 싸이코 패스는 정녕 이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일까?

 

정신과 의사인 호른을 포함한 네 사람의 시선을 통해 살인 사건을 해결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작가가 정신과 의사라서 그런지 등장인물 대부분이 정신병자라는 것이 차별점인데, 덕분에 정신과 의사가 그다지 썩 재밌는 직업은 아니라는걸 짐작하게 해준다는 점이 특이했다. 이유는 하루종일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는 것이나, 무심히 지나기 쉬운 마을 사람들의 내밀한 속내마저 알고 있다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로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고치기 힘든 정신병자들을 대하면서 경멸감과 냉소와 무기력에 절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들을 도와주기 위해 손을 내밀어야 하는 당위성에 갈등하는 모습을 보려니,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한다는 것도 보통 힘든게 아니겠구나 싶었다. 재밌는 점은 책 곳곳에 호른의 짜증과 불쾌함이 묻어 나는데도, 그것이 기분 나쁘게 전달되지 않더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의 불평이 과장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둔 것이라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내가 그 사람이라도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는 뜻이다. 그렇게, 한번도 정신과 의사를 해 본 적이 없는 독자에게서 어렵지 않게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점이나, 한 마을을 담당하는 정신과 분석의가 되어서 마을 사람들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 전혀 뜻밖의 사람들도 정신적인 고통을 숨기며 살아간다는 의외의 사실을 알게 해준다는 것,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는 것등이 장점이다.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개성이나 살아있는 사람을 보는 듯한 생생함도 책의 재미를 더했는데, 이혼으로 쓸쓸한 경감에서부터 세상 모든 사람들을 이해해도 자신의 아들만은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과의, 부모와 형에게 받은 학대를 환상으로 이겨내려는 소년과 소박한 노인네로 보이지만 실은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사는 벌치기 할아버지, 종종 정신이 횟가닥 하고 나가는 마을의 신부등 일상적이지 않음에도 이해 하기 어렵지 않는 사람들로 포진시켰다는 점도 맘에 든다. 말하자면 주변에서 있음직한 살아있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고나 할까. 그들 각자의 사정을 들려 주면서 누가 범인인지 끝까지 추측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추리소설로써의 입지를 탄탄하게 하고 있었다. 잘 된 추리 소설을 기대하고 집어 드셔도 실망하시진 않으실 듯...

 

그나저나, 이 책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 하나...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냉정하고 무심한 부모가 있고, 학교 성적에 목숨을 거는 부모가 있으며, 폭력을 구사하고 학대를 하면서도 반성을 안 하는 부모가 있다는 것을. 한마디로 우리나라 부모와 별다르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그들이 우리보다 훨씬 더 냉정하다는 것 정도? 냉장고에서 바로 나온 인간들처럼 차갑기 짝이 없더라. 으스스할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그런 부모들이 아이들을 망친다 점을 주목하면서 작가 역시 경고의 목소리르 내고 있던데, 거리가 아무리 멀다 해도 우리가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어쨌거나 세상에나... 유럽 사람들이 우리랑 똑같단 것은 정말로 충격이다.  우아하고 이성적인 그들은 절대로 무식한 우리랑 다르다고 방송을 통해 그렇게 많은 말을 들었는데 말이다. 그러게 너무 주눅들어서 살 필요는 없다니까.. 인간이 사는 곳이면 어디나, 다들 비슷비슷하다니 말이다. 잊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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