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버드의 어리석음 -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제목만 보고 책을 집어 들었던 나는 저자가 <네모난 못>의 저자 폴 콜린스라는걸 알고 반가움이 앞섰다. 엥, 모건의 아빠네. 우리나라에선 비교적 지명도가 낮은 그의 책이 다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네모난 못>을 그렇게 감동적으로 읽고도 그의 다른 원서를 챙겨볼 생각을 못한 나로써는 한국말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여기선 모건의 아빠가 무슨 말을 하려나? 마치 내가 잘 아는 사람이 쓴 글을 보듯 그렇게 책을 읽어 내려 갔다. 

 

모건의 아빠인 폴 콜린스는 아들을 아웃 사이더로 두어서 그런지 역사 속에서도 아웃 사이더에게 관심이 가는가 보았다. 부제가 이름햐여, "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딱 그런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니 말이다. 학부시절 대학 교수의 심부름으로 과거 신문을 복사하던 폴 콜린스는 우리가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과거의 모습에 흥미를 느낀다. 그 속엔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무궁무진했던 것이다. 특히 그의 흥미를 끈 것은 정말로 열정적으로 살았으나 지금은 무참히 망각속으로 사라져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였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는 지금 인기 있는 사람들이 미래엔 무명씨가 된다는 것이 상상이 안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이 후대에서도 여전히 기억된다는 것은 실은 대단히 기이하고 드문 일이다. 호머나 세익스피어가 얼마나 천재인지는 알고 싶다면 굳이 그의 책을 읽지 않다고 된다. 간단한 셈으로도 이해 가능하니 말이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고 사라졌는지 혹 짐작이 가시는가? 대략 추측만으로도 현기증이 나는 숫자다. 사라진 수 많은 사람들속에서 여전히 기억되는 사람들이라면 천재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그건 단지 운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일이니 말이다. 운이 좋아 한 세대를 풍미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몇 세대를 건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니, 모든 사람들이 다 천재가 아니란 것은 자명하고, 또 그들조차 이름을 후대에 남기지도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렇게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사람들 가운데, 이 저자가 주목한 것은 당대에는 유명했으니 지금은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명단이다. 당대 워낙 초절정의 인기를 누린 사람들이라 그 시대 사람들 생각으로 영원히 그 인기가 유지될거라 생각되었던 사람들 말이다. 물론 그들의 생각을 틀렸다. 그후론 아무도 그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일례로 이 책의 제목인 존 밴버드는 '움직이는 파노라마'라는 거대한 두루마기 예술작품을 선보여 한때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예술가로 명성이 자자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와 예술은 한순간에 몰락하여 결국 그는 무일푼으로 죽게 된다. 자신을 최초로 유럽에 온 타이완 인이라고 속이고 다녔던 조지 살마나자르는 어떤가? 영국 최고의 사기꾼이라고 할만한 인물이었던 그는 한번도 가본 적 없는 타이완의 언어와 풍습을 적은 책을 출간해 유명해진다. 금발에 백인이었던 그가 동양인으로 행세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대 아무도 동양인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무지해서 용납 된 사기라 할지라도 가보지도 못한 태생이라 우기고, 그 나라의 언어에 풍습을 기록한 책까지 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그야말로 한 인간이 순식간에 한 나라를 만들어 낸 것 아니겠는가.

 

미국 뉴욕 중심가에 최초로 '기압 지하철'을 만들고자 했던 앨프리드 엘리 비치는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붙이다 몰락한 인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롱펠로우와 함께 당대 최고 시인이라 불린 사람이라었으나 순식간에 조롱거리로 전락한 마틴 파퀘 터퍼는 인기라는 것이 얼마나 가변적인 것인가 생각하게 했다. 근엄하던 빅토리아 시대 컬트적인 연기를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몰고 왔지만 아무도 그가 재능있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로버트 코츠는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자의 비애를 보여준다.  

 

기타 전세계의 과학자, 화가 ,작가, 사업가, 모험가,신학자, 작가, 농부등, 광기에 가까운 열정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매진했으나 어딘지 핀트가 맞지 않아 역사의 뒤안길 속으로 사라진 사람들 대한 이야기 열 세편이 수록되어 있었다. 그 중 내가 가장 안타까웠던 사람은 딜리아 베이컨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탁월한 지성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녀를 망가뜨린 것은 3류 배우에 불과한 세익스피어가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없을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그 추론을 증명하겠다고 장학금까지 받고 영국으로 떠난 그녀는 결국 미쳐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미쳤다고 글을 못쓰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탁월했던 지성만큼이나 집요한 집착의 소유자였던 그녀는 세익스피어는 허구의 인물이고 위대한 작품을 쓴 사람은 베이컨이라는 걸 증명한 책을 내고 만다. 그리고 그 책은 그녀를 마지막까지 지지한 사람들에게 절망을 안겨 준다. 말이 되지 않은 문장들을 주절주절 늘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미쳐도 이성적으로 미치기 때문에 잘 알 수 없다는걸 알려준 사례로,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녀의 인생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그만큼 안타까웠다는 뜻일 것이다.  

 

이봐, 모건( 폴 콜린스의 아들 이름), 네 아빠는 원래 이렇게 이렇게 글을 쓰는구나. 이 책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성큼성큼 거칠것 없이 시원하게 써 내려간 문장들을 읽어가면서 <네모난 못>이 폴 콜린스에게 얼마나 힘든 작업이었을지 짐작하게 했다. 두 책 다  잘 쓴 글이긴 했으나 <네모난 못>이 심장으로 쓴 글이라면 이 책은 머리를 잘 굴려서 쓴 글이란 것이 한 눈에 보였으니 말이다. 영리하게 글을 써내려 가는 지성에 ,역사 밖으로 사라진 사람들을 향한 아련한 연민이 여전히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고 있었으나, <네모난 못>만큼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이야기를 쓴다는게 더 힘든 법인가보다. 성공할시 그만큼 울림이 크겠지만서도... 어쨌거나 탁월한 전업 작가로써 폴 콜린스를 보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적어도 모건이 돈이 없어 교육을 못 받는 일은 없겠네 싶어 안심이 됐다고나 할까.

 

그외에 과연 세상을 바꾸는 성공이란 얼마나 드문 일인가 라는 생각도 든다. 늘 많은 성공 스토리를 들으며 부러워하는 우리들은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과연 그들의 성공이란 것이 마지막까지 성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인생이란 순간이 아니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