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문인의 비정상적인 죽음 - 황제의 정치 보복에 죽어간 불세출의 문인 36인
리궈원 지음, 김세영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다소 투박하긴 하지만 제목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중국 " 문인 " 의  "비정상적인 죽음 ". 처음 집어들었 땐 참 촌스러운 제목이네, 이런 책에 뭐 볼게 있겠어, 아마 연대별로 사건만 나열하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럼에도 마침 읽을만한 것이 없기에 허실삼아 읽어보기로 한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이었던지...연말이라고 다들 올해의 베스트 텐을 뽑느라 바쁘던데, 내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올해 베스트 오브 베스트에 뽑고 싶을 만치 수작이다. 작가가 10년을 고심해 쓴 책이라고 하는데, 중국의 무구한 역사에, 그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우뚝 선 천재 문인들과 그들의 광기 서린 통치자가 빚어낸 드라마틱한 이야기들,  작가 개인의 경험에서 우러난 통찰력,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일관된 주제를 아우르는 집중력,  명쾌한 논리, 허를 찌르면서도 경치게 웃기는 삐딱한 문장들, 대륙적인 깊이에, 현실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현명함에다, 중국 천재 문인들의 좋은 문장들을 골라내는 안목까지...책 한 권을 읽으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감동과 재미, 그리고 정보의 기대치를 월등히 넘어서는 매력적인 책이었다. 그러니 내가 어찌 반하지 않고 배기겠는가. 한방에 갔다. 개인적으로 난 중국 작가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니 신뢰한다고 보면 되겠다. 워낙 인구수가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인문적인 전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중국 출신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수작을 종종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 깊이가 다르다. 그에 비하면 일본 작가들은 얄팍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늘 한 수 배우는 기분이 들고,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며, 에밀레 타종 소리를 바로 앞에서 들은 듯 멍한 감동에 젖어 들기 일쑤다. 하여간 올해가 가기 전에 이런 수작을 만나게 되서 무척 반가웠다. 횡재한 기분이 들 정도로 의외의 수확이었으니까.

 

왜 비정상적인 죽음이냐고? 제 명에 자연사 하지 못했으니 그렇다. 그렇다면 왜 제 명에 못 죽었는데 라고 물으신다면 간단히 말해 입을 다물고 있지 못해서 그런거라 보심 된다. 입을 다물고 있는게 뭐 그리 어렵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을텐데... 그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당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고, 이 책에 나오는 중국의 문인 36인은 소위 시대를 뛰어 넘는 불세출의 천재들이라, 보여도 너무 잘 보였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보이는게 있으니 말하고 싶은건 인지상정!  그것이 자만이건 순정이건 애국심이건 광기건 울분이건 간에 말이다. 하지만 설마 말 좀 거슬리게 했다고 날 어쩌겠어? 라는 안이한 생각은 곧바로 잘못된 생각이었음이 판명되었으니... 여기서 가장 비극적인 점을 꼽으라면 바로 회복이 불가능하단 점일 것이다. 날아간 목을 다시 붙일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 과정들이 중국  3 천 년 역사를 통해 꾸준히 반복되고 있었다니, 생각을 넓혀 보면 그것은 비단 중국에만 있는 일은 아니지 싶다.  <유토피아>의 토마스 모어 경이나 정몽주도 그런 경우니 말이다.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중국에는 그들만의 특출난 문인 학대 드라마가 존재했었으니, 그것이 바로 이 책을 쓸 수 있는 기발한 착상으로 연결된다. 이 책의 작가인 리궈원은 그것을 새롭고 맛깔나게 조명해 낸 것이고... 하여 작가에 의해 엄선된 중국 역사에서 비정상적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문인들의 이름을 열거해 보면 이렇다.

 

사마천, 이백, 이사, 혜강, 이후주, 왕안석, 이 청조, 고계, 장거정 ,서 위, 이지 ,도융, 진자룡, 공자진 등 비교적 낯 익은 이름이 반갑게 (?) 들어있었다. 그 특별한 사람들 중에서도 인상적인 작가들을 추려 본다면, 궁형의 고통을 사기를 쓰는 에너지로 승화시킨 사마천, 젊은 혈기에 분수도 모르고 날뛰었다가 조조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예형, 광기가 지나쳐 목이 달아났다는 사령운, 천재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관직에의 미련을 못버렸다는 이백, 시인으로 살았더라면 확실히 명줄 길어졌을 황제 시인 이 후주컴플렉스 덩어리인 황제 (명태조인 주원장)를 만나는 바람에 이른 죽음에 이를 수밖엔 없었던 고계, 봉건시대에 공산주의를 실현하려다 위아래 협공으로 죽음에 이른 하 심은, 책만 읽던 백면 서생이 황제의 신임을 얻은 관계로 군정을 돌보다 아예 나라를 말아먹은 방효유등을 들 수 있다.  대충의 면면들이 이러할지니 흥미진진한 이야깃 거리가 널려 있음을 짐작하실수 있으실 것이다. 36명 작가 문인들의 이야기 자체도 물론 대단히 드라마틱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이 책를 돋보이게 하던 것은 작가 자신의 목소리였다.

 

1960년대 홍위병이 난리를 치던 문혁 시절, 단지 소설을 쓴 지식인이라는 이유로 <우파>로 몰려 22년간 곤혹을 치른 작가답게 그는 지식인의 한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권력에 조롱하고 저항하는자, 화를 면치 못할 운명이리니... 정의? 표현의 자유? 그런거 믿고 까부는거 참 위험하단 말이지. 문학은 길고 권력은 짧다? 그게 무슨 소용 있냐고 그는 되묻는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다고 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엔 없었다. 물론 진실이란 이름하에 꼿꼿이 핏대를 세우며 목청을 높이는게 뭐 그리 잘못된 일이겠는가 만은, 정치적인 맥락에서 보자면 황제가 바란 것이 그게 아니란 건 뻔한 거 아니겠는가. 비록 모양새는 안 좋다고 해도 비굴한 삶이 죽음보다는 낫다는 작가의 견해에 난 반박할 수 없었다. 그의 삶이 증명하듯이 실제로 문인은 힘이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이유 중 하나로 정치와 문학이 전혀 별개의 재능이라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던데 일리있는 분석이지 싶다. 아무리 문학의 천재라 한들 정치에 능하기 어렵고 , 아첨만을 원하는 통치자에게 진실을 들이민다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히려 까닥 잘못 했다간 소인배의 손에 목만 달아나기 쉽상이지, 그것이야 말로 낭비가 아니겠는가라는 작가의 생각에 나 역시도 동조한다. 다만 불행한 점이라면 아마도 역사가 되풀이 되는 한, 그러한 낭비는 계속되지 않을까 라는 점이다. 역사가 꾸준히 증명하고 있 듯, 인간은 과거를 통해 그리 잘 배우는 편이 아니니 말이다.

 

어쨌거나 작가의 통찰력과 식견에 마냥 공감해가며 신나게 읽은 책이 되겠다. 특히 공감가는 문장중 몇 개만 적어 놓으니 맛뵈기로 음미해 보시길...

 

이른바 대중 운동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대중을 운동시키는 것의 다른 이름이다. 이 욱이 일개 시인에 불과했다면 그의 변태심리고 기껏해야 몇 명 머리가 빈 여자들에게 먹히는데 그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존귀한 천자였고, 그런 그가 유례없는 전족의 명을 내리자마자 아첨꾼들이 호응하고 어용 문인들은 치켜 세우기 바빴다. 그러니 가련한 백성들이 이 명령을 천둥처럼 느끼지 않을 도리가 있겠는가?--260

 

무릇 한가지에 너무 집착해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쉬지 않고 생각하는 것을 의학적으로 '정신병' 이라고 한다. 왕 안석은 소인이거나 위선자나 기인이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사람임에 틀림없다. 

 

명 태조는 사람 죽이는데 취미가 있었으며 특히 문인에 대해서는 아예 대놓고 열을 올리는 수준이었다. 아마도 농민의 편협한 생각에 비롯된 , 지식인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타의식과 의심 때문이었을 것이고, 혹은 천민 출신이었던 그가 용상에 오르면서 의식 저변에 깔려 있던 열등감이 발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중이나 소도둑이었던 자신의 과거를 입밖엔 꺼내는 자는 어느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다. 피비린내나는 탄압과 광적인 살인이 그에게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길이었다. --369

 

중국의 선비는 몽둥이로 머리를 치거나 채찍으로 엉덩이를 갈기지만 않으면 감지덕지해 마지 않는 가련한 존재다. 혹 그를 귀한 손으로 대접이라도 하면 금세 자신을 알아주는 지기라도 만난 양 목숨까지 바치려 드는 것이 그네들이다.... 따라서 황제가 되었다 하여 소인이 아니란 법 없고, 앙심을 품지 말라는 법 없으며, 사소한 원한으로 보복하지 말라는 법 없다... 하지만 천재가 살인마 황제를 만나면 그것이 어느 시대건, 어느 사회가 됐건, 설령 폐하의 심기가 유난히 좋아서 친근하게 그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함께 현대 시가와 민간 문학의 발전 전망을 논하고, 사우나와 술집 아가씨들이 중국 작가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논한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없다. 놀이가 끝나고 나면 결국 가게 되는 길을 똑같다. 결국 침묵하지 않으면 허리가 잘리게 되어 있고, 허리가 잘리고 싶지 않으면 침묵하는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것이 주 황제의 논리이자 고금의 수많은 통치자들이 받들어 모셨던 신조다.--375

 

항상 하는 말이지만 중국의 지식인 가운데 군자도 많지만 소인도 적지 않다. 점잖은 척, 고상한 척 하면서 남을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 남이 가진 것을 질투하면서 남이 없는 것은 비웃고, 자기가 못하는 일은 남도 못하게 하며, 자기가 얻지 못하는 일에 대해 남은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사람들, 남의 결점을 들춰 내 잘난 척하고 반박은 거절하는 이들, 겉으로는 점잖은 척 하면서 속으로는 음흉한 마음을 품고 있는 자들, 소인의 마음으로 군자의 심정을 판단하고 진부한 말로 남의 말을 편집하는 자들을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것이다.--557

 

 그렇게 보면 불안하고 뒤숭숭한 시대에는 훌륭하고 뛰어난 작가들이 많이 나오고, 평범한 시대에는 엄살을 부리며 유난을 떠는 작가들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타락한 시대에는 당연히 배꼽 아래 정사를 다룬 외설 작가들이 나오게 되어 있다. 문학이라는 것이 우환 속에 자라나고, 안락함 속에 죽어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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