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세대를 위하여 - 거트루드 스타인 자서전, 오테르 자서전 1
거트루드 스타인 지음, 권경희 옮김 / 오테르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한번은 분노한 남자가 아버지를 흙바닥에 질질 끌며 과수원으로 끌고 갔다.'멈춰라!'드디어 늙은이가 괴로워서 소리쳤다.

"멈춰! 난 내 아버지를 이 나무 너머로 끌고 가지는 않았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기질을 씻어 버리기는 어려운 일이다.우리 모두는 시작할 때는 좋다.왜냐하면 젊은 시절에는 우리 자신의 죄보다 다른 사람의 죄가 더 크게 쓰여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와 맞서 격렬하게 싸우면 되기 때문이다.하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고 우리가 지닌 죄가 죄의 전부라는 것을 알게 되면 그러면 다른 사람들과의 죄와의 싸움은 사라진다.">>

                                                             --거트루드 스타인,세 사람의 생애중에서--

 

처음엔 약간의 혼란이 있었다.분명 앨리스라는 여자가 거트루드 스타인의 자서전을 집필한 줄 알고 읽기 시작했는데, 서술자가 종종 바뀌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말이다.
역자의 실수일까? 어쩌다 이렇게 큰 실수를...하면서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거트루드 본인이 동성 애인이었던 앨리스를 대신해 집필한 본인의 자서전이란다.

귀엽고 깜직한 발상이네, 하면서 둘 사이의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면 가능 하지 않았겠구나 싶다.

남의 머리속에서 나온 것처럼 쓰고 있는 것을 보니 평소 둘 사이에 거의 거짓이 없을 만큼 가깝지 않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스타인인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지 못한채 책을 읽었기에 한동안은 감을 못잡았다.
한번도 직선적으로 둘이 어떤 관계라는 암시가 이 책에는 안 나온다.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해 난처해 할 사람은 아닌 듯 한데도 직선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을 보니 그 당시엔 그런 것을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는 분위기였는가 보다.
하지만 사실, 1차대전 전후 유럽이라지만 동성애를  이 정도로 묵인할 것이라는 것도 예상치 못했다
스타인의 책에 의하면 그 둘의 관계를 문제 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스타인이 천재고 탁월한 감각이 있는 사람이기에 봐준 것인지, 아님 당시의  예술인들 사이에선 다른 이의 성적 취향에 대해 관대했던 것인지,그도 아님 스타인이 일부러 난처한 사건들은 빼버린 것인지는 모르 겠지만서도...

 자신을 " 천재작가 " 라고 칭하는 스타인,잃어버린 세대라는 말을 만들어 낸 남성같은 카리스마를 지녔다던 그녀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에 처음이다.

미국태생으로 지루한 것을 못 참는 천재였던 그녀는  파리로  건너가 피카소나 카티스를 비롯한 다양한 화가와 헤밍웨이를 비롯한 당대 작가들과 평생  교류를 하며 살았던 대단한 안목을 지녔던 여류 작가,자신이 천재었던 것만큼 다른 천재들을 끌어 들이는 힘이 있었나보다.
그래서 당대의 천재들과 천재에 가까운 사람들,그리고 그들의 연인들이 거의 다 이 책속에 등장한다.

단점이라면 그 덕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그 사람들에 대한 뚜렷한 특징들을 알기도 전에 지나간다는 것이라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영리한 여자의 영리한 글솜씨임에는 틀림 없지만, 만났던 사람들 모두를 자서전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하지 않았나 한다.

어쨌거나 그녀의 말대로라면 스타인은 사랑속에서 한 세상 멋들어지게 한 사람이었다.
가는 곳바다 그녀를 지지해주고, 도와주며, 예술인들과 다정한 사람들로 언제나 삶이 풍요로웠으니 말이다.게다가  충성스런 앨리스가 그녀의 반평생을 지켜 주었으니 애정면에서도 부족함이 없지 않았을까 한다.
그런데 만약 현재의 시점에 스타인이 자신의 자서전을 쓴다면 어떻게 쓸까?
최소한 자신의 동성애에 대해 한마디 정도는 하지 않았을까 ?
천재였지만 유대인이고 동성애자라 유럽 문단에서 소외를 당했다는 스타인.
이 책에서는 그런 소외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본인의 공과만 적은 자서전.아마 이 시대에 살았더라면, 이렇게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들만이 아닌 더 솔직한 음성을 남겼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천재들의 뒷담화를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 었음을 밝히는 바이나 ,생각 같아서는 좀더 자세히 남겨주셨으면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스타인 본인의 자서전이니, 자신의 책에 무엇을 쓰건 그녀 맘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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