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박스
아모스 오즈 지음, 곽영미 옮김 / 열린책들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아모즈 오즈의 책은 처음 읽어보는데 ,만만찮은 필체에 ,짜임새 있는 구성에, 이야기를 끌어가는 상상력에, 개연성 있는 인물 구성들이 좋은 작가의 책이란 것을 인정하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라고 하더니 그말이 무색하지 않은 듯하다.

줄거리는 이혼한 부부--알렉과 일라나--가 그들의 아들인 보아즈의 신상을 의논하기 위해 편지를 주고 받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남편에게 보아즈가 빗나가는 것을 잡아달라고 애원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일라나는 그 한편으로는 이혼시 잔인했고, 그 다음엔 냉정했던 자신의 전 남편을 몰아세운다.
그런 전 아내에게 전 남편 알렉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
부모의 싸움과 이혼, 그리고 엄마의 방황과 재혼에 따른 혼란을 고스란히 겪은 보아즈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어찌해야 할 지 몰라 반항을 하는 인물로 모든 가족들의 애물단지가 되지만 차츰 자신의 정체성과 세상을 깨우쳐 나가고,가난하고 소심하지만 마음을 따듯했던 일라나의 현재 남편 미셀은 보아즈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끈다는 사명감으로 알렉의 돈을 받다가 결국 그 돈 때문에 자신의 본분을 잃어 버리는 속물로 등장한다.

일라나는 상처만 남은 결혼이었지만 ,알렉을 잊지 못해 과거를 회상하며 자신들이 왜 그렇게 헤어져야 했을까 뒤돌아보고(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블랙 박스다, 그들이 과거에 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해석함으로써 어떻하다가 그들이 추락했는가를 연구한다는 의미에서...)
오해로 첨철된 그들의 과거를 어떻게 해서든 바로잡아 보려 노력하지만, 그에 대한 전남편 알렉의 대답은 언제나 냉소적이고 비난조일 뿐이다.
그런 그들이 결국 알렉의 어린 시절의 집에 모여 그들의 과거를 청산하며 무엇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생각한 다는 것이 이 책의 줄거리다.
알렉은 암으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아 그곳에 오고, 그는 과거를 되돌아보며  미셀에게 자신의 과오 덕분에  잃어버린 것을 미셀을 잡으라고 충고한다.

하지만,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엔 미셀의 마음은 이미 얼어 붙어서 받아 들이려 하지 않는데...
결국 알렉이 서서히 죽어가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모두의 앙금을 풀어가고, 서로의 위치를 찾아간다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줄거리다.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로만 이루어진 이 책은 좀 지루하긴 하지만 현재의 이스라엘을 조명해 볼 수 있는 통찰력있는 책이었다.무엇보다 이 작가가 평화주의자라는 것이 이 책을 읽는 부담을 덜어 주었다.
이 작가는 현재의 이스라엘에 만연해 있는 광기--종교에 최고의 권위를 부여해 인간을 등한시하는--에 섬세한 아이러니로 일침을 가한다.
직설적인 독설보다 더 현재를 뚜렷히 바라보게 하는 이 작가의 재주에 좀 부럽기도 했다.
현실이 광기로 흐르는것이  어디 이스라엘 뿐이랴...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이 백배 천배는 우리나라보다 심하다는 생각이지만...)
이런 지각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이 이스라엘로써는 대단한 정신적 자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물론,이런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들이 그의 말을 경청하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이 그렇다고 대단한  정치적 발언으로 첨철된 책만은 아니다.
인간 사이의 불신,오해--알렉과 일라나는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잘못된 사랑방식 때문에 서로를 질식시키는 사람들로 나온다-- 서로의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자신의 입장만을 되풀이 하는 사람들의 행태와 진심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냉소밖에는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등장해 현대사람들의 사는 방식의 단면들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사람들은 변함이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선하고 진실하며 정직한 것을 추구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숨겨야 하며,상처를 안 받기 위해서 미리 냉소와 빗나간 재치로 무장하는 것이 똑똑한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한  삐뚤어진 사람들이 대거 등장해 그래도 자신의 진심을 알리기 위해 애를 쓰다 결국은 그래도 얼추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다는 이 책을 보며...냉소가 질리는 그런 날들이 오면 정말 사는게 재미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사람들이 진심만을 말한다면  너무 재미없어서 죽을려나?
리뷰가 삼천포로 흐르는 것 같아 그만 쓰련다. 읽을 만한 가치는 충분한 책이였지만,복잡한 것을 싫어하시는 분들에겐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골치아픈건 싫어 하시는 분들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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