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움직인 프레젠테이션
하야시 야스히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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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젠테이션 (presentation)  이라는 단어는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자본주의적" 단어이다.  물건을 만들고 소비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프레젠테이션은  "마케팅" 을 위한 시작 단계로, 스폰서에게 기획을 보고하고 지원을 받아내는 수단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그 단어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세상에는 이러한 행위 자체가 없었는가?   있었다면 이러한 행위를 과연 무엇이라고

불렀을까?   이 책은 시작 첫 페이지부터 이러한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는 질문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위해선 어떠한 요소가 필요한가?  발표자의 자신감? 기획의 기발함? 아니면 뛰어난 룸살롱 뒷공작? 

물론 그 모든것이 복합적으로 작용 할때 성공적인 마케팅이 가능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프레젠테이션이란 어떠한 것인가?

에 대한 근본적인 지식, 즉 "설득"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지식이 뒷받침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말로서 뭔하는 것을 얻었던 "설득" 힘은 수천,수만의 군사력과 맞먹는 위력을 발휘했다.

실제로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외교가 "서희"는 타고난 설득력으로 거란의 침입을 저지하는 동시에 거란에게 강동6주의 통치권까지

획득했다. 그러나 그 사건은 현대적 프레젠테이션과는 거리가 멀다. 서희는 고려에게 이익을 제공했지만, 거란에게는 아무런 

이익을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적인 프레젠테이션을 과거의 사건을 토대로 설명하기에는 개인적으로 서희 보다는 제갈량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제갈량의 주인 유비는 근거지를 조조에게 잃어버리고,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이에 제갈량은 중립지역에 가까웠던 오나라의

손권을 움직이기 위해서 동오를 방문한다.  그 지방의 "엘리트"(중앙신료) 들을 뛰어난 말솜씨로 누르고, 군인들에게는 조조의

군세를 축소시켜 알려줌으로서 군사적 자신감을 더해주는가 하면, 실질적 실력자인 주유를 일종의 "거짓말"로 격분시켜

조조를 순식간에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게 제갈량은 오나라의 지원을 얻어냈고, 오나라에게 약속한 이익을 제공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자신의 주인 유비에게

더욱 더 큰 이익을 제공하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이는 오늘날 추구하는 "마케팅"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프리젠테이션은 이상은 있지만 이를 위한 자원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수단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기획(제품)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자원(돈) 이 필요하다. 그러나 돈을 쥐고 있는 스폰서는 분명히 자신들의 이익

을 원하지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단계나 완성을 통한 성취감에는 관심이 없다.  

스폰서는 분명 자신을 도와줄 (아군) 이기도 하지만, 이익을 나누어 주지 않으면 순식간에 돌아설 (적) 과 같은 존재이다. 

플래너들은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기획에 자본을 투입해야 하기에 거짓말이나, 과장된 표현도 

어쩔 수 없이 써야하고, 스폰서의 의견이나 참견을 과감하게 배제하는 뻔뻔함도 필요하며, 무엇보다 스폰서의 이익보다 자신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이익을 더 우선시 해야 하는 비양심적인 의무를 기꺼히 수행해야한다.

그는 이 비정한 세계를 흥미있고 재미있게 풀어가기 위해서 "역사"를 이용했다.

 

항해 해야 하는 길이를 일부로 축소하고, 거짓말과 과장된 보수를 약속하며 기획을 밀어붙인 콜럼버스부터 

거대한 라이벌을 제치고, 자신의 플랜을 성공시킨 히데요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건을 예로들며 이어가는 

경쟁과 성공의 이야기, 그것이 역사를 움직인 프레젠테이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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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씽링크 1 - 잃어버린 고리
배상국 지음 / 도모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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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白凡) 김구 선생은

해방후 소련연방과 미국의 개입으로 인해서 자유진형과 공산 진형으로 나뉘어진 한반도를 걱정하고, 사실상 체제의 지배자인

김일성과 이승만을 설득하여 "최소한 분단만은 막아야 한다" 고 주장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민족 지도자였다.

 

그러한 위인의 암살사실은 분명 비극적인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실제로 많은 한국인들이 김구 선생의 암살을 아쉬워 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대중적인 역사적 사실이자, 한국인으로서 알아야 할 기본적인

상식으로서 인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김구선생이 살해당했다는 사실만 인식하고, 어째서 피살 당해야만 했는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살해당했는가?

하는 세세한 사실에는 눈을 감아 버리는 것 같다. 

 

솔직히 일반인들 에게 김구선생은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위인이자, 학생시절 등장하는 시험문제의 하나, 그리고 명절때 등장하고,

평상시에는 사라지는 그러한 존재에 가깝지 않은가? .. 말하자면, 김구는 대중적으로 친숙하게 다가오는 인물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백범을 주제로 한 소설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분명 흥미롭다.

개인적으로도 역사의 한 사건을, 문학 으로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가지기도 했다. 

나는 이 책에서 김구를 만나고 싶었다.  일제시대 독립운동, 독립군의 편성, 지도자로서의 활약, 그리고 해방후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노력하다, 비참하고 장렬한 하지만 의문에 싸인 죽음을 맞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위인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나의 바램과는 그게 벗어난 책이였다.

이 책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백범 암살사건의 사실을 무대로 그려진 가상의 "첩보 스릴러" 와 "음모론"의 혼합물이다. 

이야기는 "위인" 김구가 아니라, 가상의 첩보요원 "동욱" 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유능한 C.I.A 요원이자, 고아시설 김구 선생에게 은혜를 입은 동욱이 한국으로 돌아와 정보국 4과에 배속된다.

그는 비밀리에 북측의 요인과 접촉하고 "이중첩자"로서 일하라는 명령을 받고, 임무를 위해서 공산당 관료와 접촉하는데 성공하지만,

갑자기 그들의 행보가 드러나면서, 북쪽에는 대대척인 숙청작업이 시작되고, 남쪽에서는 김구선생이 암살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결과적으로 북과 남은 더욱더 냉전적이고 적대적인 관계가 되어 버린다.

 

이 책은 묻는다.  "남과 북이 화합을 버리고, 결국 나뉘어지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북쪽은 소련과 "스탈린"에게 무력을 제공받았다. 결국 나뉘어도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화합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쪽은? 열악한 군사적 상황과, 미군의 철수, 북쪽에 비해 열악 하기 만 한 경제환경에도 불구하고, 분단을 선택한 이유는?

이 책에는 바로 "일제의 잔재" 때문이라고 적혀있다.   

 

일제에 충성한 많은 사람들이 조선이 해방되자, 일본으로 건너(도주)갔다. 그러나, 소극적이지만, 은근히 일제가 주는 먹이를 받아 먹었던

기회주의자들은 일제가 떠나자, 망설임 없이 친일을 버리고, 자유주의자, 민주주의자, 민족운동가 라는 명찰으로 바꿔 달았다.

그러나 그들이 친일을 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복수심과 분노가 충만한 국민들이 "친일 청산" 을 부르짖어

그들은 목숨과 재산 모두를 잃어 버릴 수 있는 위기를 맞았다.   그들은 살 길을 열기 위해 "정치"를 이용한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껏 친일을 하면서, 쌓아둔 "부" 가 있지 않은가?  그들은 "부"를 정치가들에게 제공한다.

 

정치가들은 그 돈으로 정치를 하고, 입지를 다지고, 권력을 유지하는 대신, 그들을 보호하고 요직에 임명했다.

그 덕분에 친일 성양이 강한 경찰이 만들어지고, 친일 정부가 만들어져 그들의 신변과 재산을 보호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리고 안전장치로서 국민들에게 새로운 "적"을 만들어 주었다. "공산당" 이라는 새로운  적을 말이다. 

 

지배층들은 국민들이 다른 생각을 못하도록, 국민들이 반일감정,일제청산보다 "공산주의"를 미워하도록,

빨갱이와 공존하느니, 차라리 다시 일본의 지배를 받겠다!! 는 생각이 일반화 되도록,

그들은 철저한 "적"의 존재를 만들었고 그들을 미워하게 했고, 증오하게 만들었다.

그 증오를 위한 "분위기 조성"에 김구는 분명 방해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김구는 분단이 아닌 화합을 강조했고, 선천적으로

일제를 미워 했으며, 무엇보다 남.북 모두에게 존중받는 존재이기도 했다.

김구가 만약에 남측의 지도자가 되었다면, 남북의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대대적인 친일세력의 축출은 이루어 졌을 것이다.

이 책 속의 지배층 들은 그 사실이 무서웠고, 결국 암살이라는 비열한 수단을 이용해 방해물을 치워버린다.  

 

지나치게 유능하거나, 눈에 띄는 존재가 "국가" 아니 "지배층"에 의해서 숙청당하는 일이 있다. 

소수가 다수를 위해서 희생해야 한다는 인식 속에서 수많은 "정의"가 사라져 갔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와, 손에 쥔 권력, 그리고 가지고 있는 재산의 안전이 아니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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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다니엘 포르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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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인 은 죽음 을 새로운 삶을 위한 출발점으로 보았고, 그리스인은 "종료" 로 보았고, 중세시대 에는 공포의 존재 그 자체였다.

죽음이란, 공포인가, 환의 인가?  뭐...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든 죽음이란,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확실한 존재임에는

의논의 여지도 없다. 

 

죽음과 같은 우울한 장르를 모두가 웃는 "코미디"로 승화시키려는 노력, 블랙 코미디는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두려움을 넘고, 고난을 웃어넘기는 인간의 낙관적인 생각과 이념이 만들어낸 웃음의 미학, 이 소설 또 한 그 이념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른다.

 

책의 주인공은 여느 소설에 등장 할 법한 평범하고, 가여운 존재이다. 약혼자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불쌍한 남자.

소설가라고는 하지만, 뭐 하나 히트 낸 책도 없고, 가진 것 이라고는 낡아 빠진 아파트와 무책임하고, 불결한 생할 덕분에 입주한

룸메이트 "바퀴벌레군"(아니면 양??) 뿐 인 처량한 인생..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을 버린 여자에 대한 그리움과, 하룻밤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 줄 존재를

찿아야 한다는 수컷으로서의 본능에 충실한 훌륭한?? 인격체다.

그러한 주인공의 주위에는 (*본문의 2~3 페이지 마다)  항상 죽음이 함께한다. 길을 가면서 목격한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고 

자신이 다니는 휘트니스 센터의 트레이너가 죽고, 이웃집 채소가게 아줌마가 죽고, 오랜만에 통화한 첫사랑이 죽었다,

심지어는 점심으로 질겅거리며 씹어댄 6개의 "생굴"도 마찬가지...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그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친했던 사람, 아는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의 삶과 상관없는

타인이 일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헤어진 여자와 재결합 하는 것이고, 자신을 "몸짱"으로 개조하는 것이며, 자신과 정열적인

하룻밤을 보낸, 끝내주는 몸매의 아가씨가 "트랜스잰더" 였다는 것을 뇌리에서 완전히 삭제 하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은 제 3자와 같은 위치를 차지한다. 주인공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즐거움도, 두려움도, 신경쓰이는 귀찮음도..

그 무엇도 아니다.   우리들에게도 죽음이란 그런것이 아닌가? 살면서 "난 죽을거야" 라며 공포에 떨고 사는 사람이 몇 이나 되나?

"죽음이란 멋진거야" 라며 들뜨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 이나 있나?  그렇다.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오면 오는거고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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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더 메이드 살인 클럽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스토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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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이란 예측하기가 어렵다. 획일화 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찿으려는 사람도 있고, 사회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존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밖에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일"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죽음에 대한 동경" 일본인들의 문학 작품이나, 정서를 담은 작품들을 보다 보면,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사람들 처럼, 생활고에 지치고, 각박한 사회나, 공부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것도 있지만,

자신만의 "만족감" "철학적인 이유"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떄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도 이와 마찬가지의로 "죽음"을 동경한다.  그녀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곳에서 살고, 주변의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가정의 행복을 최고로 여기는 가정적인 어머니와 아버지를 둔 평범한 여고생이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불편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고,무언가 부족한 듯 불만을 한 가득 지닌,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여고생 이기도 하다.

삼삼오오 모여서 의미도 없는 수다를 떠는 또래의 여자들,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곤충 클래스"의 남자들,

잘 나가는 우등생이 존재하면, 찌질한 열등생 또한 존재하는 이 세상의 이치. 그리고  "반복되는 시시한 일상"

모든것에 흥미를 잃어버린 그녀가, 같은 반의 무뚝뚝남 도쿠가와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상당히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앤" 은 "도쿠가와"에게 죽음을 주문했다. 그것도 단순한 죽음이 아닌,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충격을 주는 그러한 죽음.

엽기적이고, 고어적인 죽음, 그러면서도 아프지 않으면서도 깨끗하고 안전한 죽음.. 이치에 맞지 않는 엉망진창인 주문이지만,

2명의 청소년들은 살인노트를 만들고, 예행 연습까지 해 가며 그날을 위한 준비를 착착 해 나간다. 

 

그러나 결국에는 비정한 살인마도, 불쌍한 비사체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계획을 실행 할 용기도 부족했고, 애초부터 의지도 없었다.  

그들은 한 때의 엽기적인 소꿉놀이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 

비정한 어른도 되지 못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도 되지 못한 자아들의 엽기적인 소꿉놀이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그러나 그들이 계획했던 잔재들 ("살인노트" "예행연습을 했던 사진들")은 계속 남아, 무책임하고, 충동적이였던

그들의 괴거를 계속 회상하게 할 것이다.

 

먼 훗날, 어른이 된 그들은 과거 그들이 만들었던 "살인노트" 를 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당시에는 그렇게 비장하고 진지 했었는데... "옛날의 나는 이렇게 유치 했구나.. 하면서 말이다."

 

확실히 죽음은 모든것 을 끝낼 수 있는 수단이다.   죽으면, 혼란스러운 마음도, 우울한 마음도, 격렬한 마음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한 때의 무모함으로 끝내기에는 우리들의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자신의 인생을 괴롭히는 일들이 영원히 이어지는

일은 없다.  나중에는 그들의 주인공처럼 한 때의 "부끄러웠던 추억" 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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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의 여인들 - 역사를 바꿔버린
엘리자베스 케리 마혼 지음, 김혜연 옮김 / 청조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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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역사는 속박과, 불평등의 역사라고 한다.

속된말로 인류가 땅에 "알박기" 시작 하면서, 여인들의 역사는 어두운 그늘속에 지배되어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인들은 남성들에게 복종해야 했고, 남성들의 정치도구가 되어 휘둘리며, 심지어는 심심풀이용(노예) 으로 팔리기도 했다.

힘이 모든것을 지배했던 과거의 시대부터, 모든 인간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21세기가 되기까지, 여인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물론, 세계사를 보면, 남성들을 위해서 "현모양처" 가 된 여성들이 더 많았지만, 남성을 능가하는 능력과 정치적 감각으로,

남보다 위에 섯던 "당찬 여성" 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러나 역사의 평가는 그녀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현모양처로 이름을 높인 신사임당 (신인선), 치요 와 같은 위인들은 "이상적인 여성들의 귀감" 이 되어 사람들의 좋은 평가를 받지만,

남자를 뛰어넘어 자신의 가치를 높었던, 당찬 여인들은 그 기세 때문에 뜻밖의 악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을 기준으로 그들을 평가 하는가? 

 

"여인천하" 처럼 권모술수로 신분을 상승시킨 장희빈, 남편 유방을 도와 한나라의 기틀을 잡고, 그를 대신해 권력을 차지한 여인

여치(여태후), 모두가 자신의 영달과 가치관의 상승을 위해서 모든것을 이용해 "승리한" 여인들 아닌가?

제한 된 세상 안에서, 자신이 이용 할 수 있는 모든것을 이용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것, 그것이 "지혜"라면 옳은 것이고,

"미모"라면 천박한 것인가?  분명, 장희빈은 마지막에 사약을 받아 죽음으로서, 악녀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오로지 그들이 맞이했던, 결과만을 보고 그들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잔인하다고 본다.

 

 

남자들도 정치적인 연줄이나, 남을 밟고 올라서는 "권모술수" 를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 

반대로, 평생 쾌락과, 놀음을 쫓는 사람도 있었고, 이완용 처럼 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준 자도 있으며, 여성을 방패삼아 권력을 누리는

자도 많았다. 같은 행동, 같은 가치관을 향해 달렸지만, 어째서 "남자" 와 "여자 라는 것 만으로 180도 다른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어째서, 카사노바는 희대의 "로멘티스트" 이고, 마타하리는 희대의 "요녀" 로 불리워야 하는가?

 

이 책 "스캔들의 여인들" 도 그러한 의문점을 드러내는 책 중 하나다.

책 속에는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잔 다르크" 부터, 그저 자신이 좋아했던 일을 밀고 나갔던 여성 비행사 "아멜리아"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미모를 이용해 부자들과 지도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여인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사회의 룰, 남자들의 그늘, 아래 짖눌리다 생을 마감한 여인도 있다.  

 

이 책이 말하는 "스캔들"은 문란하고 음란했던 여성들의 문화사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전면에 나설 수 없었던 남성들의 세상에서, 결코 대중적이지 못했고, 다소곳하지 못했던  "기센 여성"들의 이야기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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