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론더링 - 국제금융업의 사각지대 기업소설 시리즈 8
다치바나 아키라 지음, 김준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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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옛부터 어른들은 이상했다.  그도 그럴것이 용돈을 주려고 생각하지 않는 주제에, 세뱃돈과 같

은 거금이 들어오면 '어른의 책임'을 이유로 그 돈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는다.   억울한 마음

에 '왜'라고 물을라 치면, '건방지다' 꾸지람이 따라오는 것은 기본이요, 그나마 이유랍시고 들

은 대답은 하나같이 "어릴적부터 돈 맛을 알면 못쓴다" 라는 옛 상식선의 이야기 뿐이다.


물론 이러한 체험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것이라 믿는다.   과거 어른들은 교육과 책임을 이유

로 자녀에게 올바른? '개념'을 심어주려 노력하였다.   "너는 아직 어리다" 라는 이유로 봉인당

한 '어느 지식' 그 중 성적인 것이나, 사상적인 어느것은 나름 통제받아 마땅하겠지만, 나는 개

인적으로 '재산'과 '금융'에 대해서만은 보다 일찍 접했으면 좋았을걸 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

왔다.  


그도 그럴것이 나름 어른이 되면 그 행동의 책임은 전적으로 나의 것이 된다.   때문에 개인의

지식과 인성은 앞으로의 삶을 살게 되면서, 많은 시험대에 오르게 되는데... 그 중 내가 가장 마

주하기 힘들었던 곳은 바로 은행으로, 특히 '비지니스 파트너''펀드매니저'라는 명찰을 달고 외

계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그들에게 나는 항상 내 소중한 재산을 맡겨야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은 잘 모르면서, 어딘가에 자신의 재산을 위탁한다.  물론 그곳의 지명도, 안전성, 특혜

등등 여러가지 요인을 보고 선택하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그 인간이 만든 거대한 룰을 모두 이

해하고 또 활용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는것이 힘이다' 라는 명언에 걸맞게 아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금융은 엄청난 특혜를

그 사람에게 부여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 책의 주인공은 비록 가상의 인물이기는 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금융의 그림자에서 '재산을 불리는' 여러사람들을 상징한다는 면에

서, 상당히 흥미롭다.   나라와 나라와의 금융, 기업과 나라로서의 금융, 개인과 국가로서의

금융... 이 많은 돈의 흐름 가운데서, 미숙한 헛점을 찾아내는 주인공.  물론 그것은 형법상  은

닉,탈세, 횡령이라는 범죄에 해당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 자유시장경제의 세상 속에서, 돈&

권력을 위하여 손을 더럽힐 사람은 세상 얼마든지 존재하는 것 또한 무시못할 사실이기도 하다. 


덕분에 주인공도 그 틈바구니 속에서 나름 부유한 삶을 산다.   알게 모르게 남의 돈을 투자하

고, 또 어리숙한 손님의 돈을슬쩍 강탈하기도 하면서, 그는 음지의 금융 컨설턴트라는 자신의

위치에서의 단물을 충분히 마시고 즐기는 위인이다.  그러나 어느 손님의 등장으로 그는 과거

에 없던 위기에 빠지고, 더욱이 주인없는 50억 엔의 존재는 점점 그의 숨통을 조여오는 칼날의

역활을 하게 되는데...   과연 주인공은 그 손님과 50억의 행방을 탐색하는 많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 할수 있을것인가?    이처럼 이 소설은 이 세상 돈을 추구하는 음지의 존재, 이른바 '돈 으

로 사람이 죽고 사는' 그 세상의 더러움을 진짜배기로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야말로 사람

위에 돈이 군림하는 세상... 아 어쩌면 어른들이 필사적으로 숨기려고 했던 것이 바로 그것

이 아니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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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역열차 - 144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니시무라 겐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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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의 감상을 적어올린 기억이 있다.   유약하고 못난 인간, 그러

나 언제나 마음 깊숙한 곳까지 숨으려 했던 그 유약한 마음 때문에 그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느

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본질을 느끼고, 또 그것을 글로서 남길 수 있었다.   때문에 그의 글

은 글쓴이 자신의 인생과, 사상을 대변하는 자전적인 요소가 강하다.   그리고 일본의 문학은

그러한 그들의 글을 일본 특유의 문학 '사소설'로 분류한다.    그렇기에 나 개인도 이 다자이

를 통해서 사소설의 존재를 알았고, 또 나중에 이르러 위의 '고역열차'까지 이르렀다.   인간의

내면, 그러나 단순한 일기가 아닌, 문학으로 승화된 어느 낮선 이의 이야기... 과연 이 책

의 저자는 어떠한 인생을 살았을까?   그야말로 사소설은 다른이의 인생 모두를 엿보는 색다

른 경험을 선사한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그야말로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한 인물이다.  소설 속 자신을 '칸타'

라고 소개한 그는 어린시절 부터 '자신'이 어긋나기 시작한 계기를 '성범죄로 구속당한 아버지

'의 탓으로 돌린다.   아버지는 성범죄자, 그것은 단순한 '이혼'조차도 흉볼거리로 생각하던 과

거 일본의 사회에 있어서, 사실상 죄인과 다름없는 차별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였다.    그렇

기에 그의 어머니는 이혼에 성까지 바꿈은 물론, 정든 장소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의 삶을 꾀했

지만, 그의 아들 칸타는 결국 삐뚤어진체 고등학교를 중퇴, 스스로 사회의 뒷골목으로 녹아들

어간다.

 

허나 어린나이, 그곳도 변변한 교육도 못받은 그가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때문에 그

는 먼저 어머니의 지갑을 턴다.   그리고 곧 일용직 노동자로서, 항만창고를 전전하는 생활에

익숙해진다.   이에 저자는 말한다.   일용직 노동자로서의 삶에 익숙해지면 그 길에서 벗어나

기 힘들다고 말이다.    실제로 칸타는 완전히 그 삶에 익숙해졌다.    돈이 필요해지면 그는 좁

디좁은 단칸방에서 나와 항만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그리고 그곳에서 벌어들인 '일급'을 가

지고 마치 내일은 없는 사람처럼 먹고 마시고, 여자를 산다.   그야말로 내일은 내일 오늘은 오

늘, 그에게 성실과 처축, 미래의 준비는 본래 그의 사전엔 없는 가치관이다.

 

허나 그러한 칸다가, 친구를 사귀면서 그는 본래 느끼지 못했던 어떠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아르바이트로 들어온 청년, 그는 여느 청년처럼 미래에 대한 꿈이 있고, 배워

온 교양이 있고, 무엇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열정이 있다.   그러나 반대로 칸타는

것이 없었다.  그렇기에 칸타는 처음 그에게 품었던 '우정'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낀다.

그것은 바로 '질투' 와 '증오'이다.

 

자신은 그저 먹고, 자고, 싸고, 성욕을 해결하는 원시적?인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상대방은

아니다.  그는 같은 항만노동자에서, 자격증을 딴 '정식'창고직원이 되었다.   게다가 게이오대

학의 여학생을 연인이랍시고 당당히 그에게 소개까지 한다.  그 뿐인가?  결국 그는 창고를 떠

나, 번듯한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많은 월급을 받는 사회인의 모습을 착착 갖추어 나아가

려고 한다.     때문에 그는 칸타의 거울이 된다.  그리고 그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 칸타는 과거에 없었던 '열등감'에 쩔쩔매고, 결국 그 혼란을 분노로 바꾸어, 죄없는

친구에게 쏟아낸것이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밑천을 드러낸 못배운 놈이 되어버렸고, 또

그 친구와의 우정까지 잃어버린다.    실제로 친구는 칸타에 대한 우정을 접었다. 아니... 혐오

하게 되었다. 

 

칸타는 그들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리고 그 능력부족을 매우기 위해서, 욕설, 폭력, 거

짓에 매달렸다.      그러나 이 글과 함께 그의 삶을 함께했던 독자들은 그 천박함 모습뒤에 숨

겨진 어느 감정... 즉 칸타가 필사적으로 표현하는 '외로움의 표현'을 느낀다.   인간이 어찌

'야망'과 '욕망'이 없을 소냐?  결국 그도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존경받고, 우정을 나누고, 순수

한 감정으로 맨살을 섞는?행위를 꿈꾸는 인간이다.   때문에 그는 그들을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한 것이다.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관계를 붙잡고 늘어지기 위해서, 못배운 그가 할 수 있는 것

은 매달리고, 윽박지르고, 때쓰는 방법 뿐이였다.  

 

그러나 결국 그것은 칸타의 욕망을 실현시켜주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제부터 열심히

해서, 나도 따라가겠다는 기특한 결심을 보일 칸타도 아니다.  그렇기에 그는 나름의 최선을

다해, 위의 글을 쓴다.   이 세상에서 범죄자의 아들로서, 미천한 항만노동자로서의 때를 벗겨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믿음과 함께, 그는 두툼한 원고를 보낸 심사장에서 좋은 소식이 있

기를 바라는 그 마음하나로 작가상을 받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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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목욕탕과 술
구스미 마사유키 지음, 양억관 옮김 / 지식여행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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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하면 제일먼저 떠오르는 것은 온천이다.   물론 한국에도 유명한 온천은 많지만, 과거 접했

던 한국의 온천 대부분은 일종의 건강랜드와 같아서, 이미지만으로 따지자면 목욕탕과 별로 다를

것이 없었다.   뭐.. 단순하게 말하자면 이미지, 로망이 없었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나는 만약

여행을 떠날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번쯤 (내가 생각하는) 온천을 한번 접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허나, 이 책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온천의 나라, 목욕의 문화로 유명한 일본 또한 그다지 한국

의 사정과 다를것이 없어 보인다.   아니 마치 고급진 나의 환상을 지적하듯 저자가 몸을 담근

공중목용탕, 광천수탕, 온천 등의 뜨신물?은 지금의 '나'가 보아도 서민적이고, 또 위화감이 없

는 것이였다.  "눈에 띄는 개성이 없다"  그러나 저자 '쿠스미 마사유키'는 바로 그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저자는 '고독한 미식가' '우연한 산보' 같은 작품들을 통해서,  무언가 특별한 이벤트나

즐거움보다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 주변에서 쉽사리 접 할수 있는것, 그리고 그 사람들이 실생

활에서 자신들의 즐거움을 향유하기 위하여 즐겨찾는 이른바 B급시설을 예찬한다.    조금 지

저분한 후지산 페인트화를 배경삼아 뜨끈한 탕에 몸을 담그는 그 쾌감, 그리고 무언가 모자란

것 같지만 대신 싸고, 양많은 박리다매 식당에서 저렴한 안주와 술로 배를 채우고  그러고도 심

심하면 그는 주변의 사람들을 탐구하고, 심지어 자신의 주변 어질러진 많은 물건들을 관찰하

며 나름 '돌아오라 1990년대'의 추억에 빠져든다.


때문에 저자를 바라보면, 그는 나름대로 느긋한 게으름뱅이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는

음식에 '본가'를 따지지 않고, 하물며 명성을 따르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꼼꼼하게 무언가를

따지고, 또 머나먼 '목적'을 위해서 재빠르게 움직이는 행동력을 보여주기 보다는 나름 주어진

무언가에서 자신의 소소한 보물을 찾아내며, "야 바로 이런것이 좋다니까" 라는 나름의 정신승

리를 이룬다.


자... 과연 그는 그 낡은 가게에서, 그 오래된 욕탕에서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오롯이 그의 주장에 귀 기울이고 또 나름의 연륜으로 그것을 이해하는 공감대를 가지고 있어

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나는 '고독한 미식가' 에 대한 감상문을 쓰면서 '도데체 무엇

을 표현하려는지 모르겠다" 논한 바 있다.   그러나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 최초의 감상

과 다른 시선으로 그의 미식가를 바라본다.   그렇다 나도 어느새 어렷한? 아저씨가 된 것

이다.   화려함 보다는 수수한 그 무엇에 이끌리는... 아니 과거와는 다른 무언가를 추구하는 새

로운 시선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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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평전 - 스스로 빛났던 예술가
유정은 지음 / 리베르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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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과거의 인물을 알아가는데 있어서, 우리들은 대부분 기록에 의존한다. 어린시절 '교양과 인

성'을 기른다는 목적으로 추천되었던 기록... 즉 위인전부터 시작해서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그 수 많은 교육효과 덕분에, 많른 사람들은 보다 획일적인 지식을 '상식'으로 이해하기 시작

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어떠한 인물들은 역사의 의미를 떠나, 왜곡된 상식의 대명사가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어떤이는 이처럼 다른 주장을 편다. 세상의 상식에 저항하는 내용, 과거의 인물을 보

다 올바르게 바라보게 하기위한 학문의 일환, 이른바 평전은 그 지은이가 펼치는 하나의 주장

이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때문에 어쩌한 평전은 세상의 사람들의 격렬한 저항을받기도

한다. 예를들면 민족 반역자로 이름높은 이완용 평전은 그 당시 독자들의 격렬한 비판을 받았

다. '이완용을 변호하다' 그 어떤이의 평가를 보면서, 과연 대중들은 어떠한 감상을 품게 되었

을까?

 

 

허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감한 벌집을 건드린 것에 불과하다. 아니... 적어도 이 '사임당의

변호'는 보다 받아들이기에 수월한 '주장'이 눈에 들어온다. 과연 저자는 신사임당 이라는 인물

의 무엇을 변호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는 과연 신사임당의 무엇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일

까? 나는 그러한 궁금증을 이유로 이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읽어 나아갔다.

 

 

결국 이 책에 드러난 내용은 신사임당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는 내

용이다. 아니... 거기에 더 나아가 오늘날 신사임당의 '배울점'으로 이해되고 있는 현모양처의

이미지가 과거 일본제국 치하에 형성되었다는 과격한 주장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

는 이 주장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현모양처의 신사임당 보다는 천재화가로서의 신사임당을 알아보자"

 

 

"누군가의 어머니요, 아내로서의 인생을 산 인물이 아닌, 스스로의 실력과 교양을 갈고 닦는 여성 지식인으로서의 삶이 드러나는 신사임당을 알아보자!"

 

 

이처럼 저자의 신사임당은 그녀 스스로만으로도 훌륭한 위인의 반열에 든다. 그리고 "휼륭이

일곱 자식들을 길러냈습니다"라는 그녀의 현모로서의 업적은 어디까지나, 주제가 아닌 부제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본래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것이 아니겠는가? 본래 신사임당이

배우기를 멈추지 않고, 효를 다하고, 꾸준히 재능을 갈고 닦는 위인이 아니였다면, 율곡

이이 라는 인물은 결코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 언제까지 "귀한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그를 기억 할 것인가? 이제 그러한 상식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아야 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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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인문학자 - 루브르를 거닐며 인문학을 향유하다 미술관에 간 지식인
안현배 지음 / 어바웃어북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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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도시 파리, 그리고 그 속의 '루브르 박물관'은 세계적으로 수준높은 명화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게다가 아무리 마음먹는다고 해도 박물관의 모든 작품을 감상하는 것

은 사실상 불가능 하다고 하니, 그 양에 있어서도 세상 그 어느 박물관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하

겠다. 때문에 비록 인쇄된 것이기는 하지만, 사진으로나마 작품을 접 할수 있는 이러한 '서적'

은 그 나름대로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읽는이에 따라 단순한 탐플릿도, 미술사를 공부하는 교

재로서도 될 수 있는 책의 매력... 그러나 저자는 이에 더 나아가 미술작품 속에서, 인문학의 가

치를 발견하려고 한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쉽게말해 인간의 가치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붓놀림, 끌과

망치로 표현된 그 예술의 결정체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가치. 그것은 마치 손글씨에서 '인격'이

비춘다는 옛사람들의 교훈을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 본다. 게다가 그들의 작품

에는 역사가 녹아있다. 단순히 그림의 배경이나, 사용된 물감의 재료만이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의 욕구, 그 예로 과거 서양을 지배했던 종교의 가치관 아래서 조차 사람

들은 변함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려고 했고, 훗날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해서는 마치 제방

이 무너지듯 보물같은 예술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독자들은 책이 표현하는 수많은 그림들을 단순하게 마주하기 이전에, 사람이 어째서

예술을 추구하는가? 하는 그 본질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 종교화, 초

상화, 기록화, 지금의 우리들이 단순히 '아름답다'찬미하는 그 수많은 작품들은 본래 그 어느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졌다. 그렇기에 저자는 자신이 소개하는 미술작품들을 이미지가 아니라,

스토리를 보다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있다. 누가 그렸는가? 누구를 모델로 했는가? 그 시대 사

람들은 그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 단순한 누드라 해도,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에 따라, 그

것은 신성을 띄기도 하고, 저속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예술이다. 한번 루브르의 명성을 떠나, 순수한 개인(독자)의 눈으로 한번

이 작품들을 들여다보자.    그러면 모나리자에도 단점이 드러나고, 단순한 스케치에서도 예술

성이 느껴지는 신기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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