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의자 유래 사전 - 한눈에 알 수 있는 350가지 의자의 역사와 디자인
니시카와 다카아키 지음, 사카구치 와카코 그림, 박유미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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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수많은 발명품과, 신 소재가 만들어지고 쓰여지고 있는 오늘날!    그야말로 첨단 과학문명의 혜택을 오롯이 누리고 있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의외로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의자는 과거와 비교하여, 그리 큰 진화?를 이루어내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오늘날 많은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선호하는 '기능성 의자' 와 같은 예는 논외이다.  그러나 반대로 보다 극단적인 주장을 펴자면?   구조와 재질, 그리고 디자인 등 그 많은 부분에 있어서! 결국 의자란 물건은 (의외로) 생각보다 더 크게 '옛 가치'에 속박되고, 또 머물러 있다고도 생각이 되는 부분이 있다.


이에 나의 개인적인 물건을 통해 비추어 보면, 집안 한 켠을 차지한 식탁의자, 소파 등이 바로 그러한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실제로 이 것들은  '엔틱' 이라는 이름하에 만들어지고, 또 판매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이 책의 내용을 참고로 한다면?  나무와 가죽, 마직물과 같은 자연재료로 구성되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유럽과, 미국...과거 많은 의자의 특징과 디자인을 본딴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비교적 옛 것에 얽매인 물건' 이라는 정의가 가능하다. 

그렇기에, 이러한 예를 생각하며 '이 책을 바라보면?'   의자란 결국 '믿기 힘들정도로 느린 변화를 보여준 물건' 이라는 감상을 들게하며, 물론 이는 이미 위에서 언급한 '재료'와 '디자인'의 영역을 벗어나서도 쉽게 드러나는 것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것이 그 고대.중세의 옥좌와 같이 이미 '신분'이라는 가치가 변화한 오늘날에도 의자는 나름대로 주인의 '격'을 상징하는 물건으로도 이해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격의 차이와, 의자자체의 가치 등을 따져볼때,  과연 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하고 있을까?    이때!  이 책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의자들을 들여다 보고, 또 그 변화를 마주하게 해주는 일종의 사전과 같은 책이다.


실제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의자는 그 '앉는다' 라는 그 쓰임새를 넘어, 각각의 시대 본연의 또 다른 가치를 부여받아 왔다.  때문에 이는 (그야말로) 의자로 바라보는 역사의 변화! 라고도 이해가 될 수 있다.   과거, 사람들이 의자를 만들면서, 그 무엇을 우선했는지, 그리고 무엇이 유행하고, 또 의자를 생산하고, 팔려 나아가는 그 과정 자체가 어떻게 변화하고 또 확장되었는지... 바로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   의외로 이 책은 그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서, 또 다른 의미의 내용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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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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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여느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 등을 접하다 보면, 문득 뇌리 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경외와 신비감!   이처럼 오늘날 현대인의 삶 속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옛 정신'과 민족, 신화에 이르는 폭넓은 가치관과 더불어, 그리고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기념비적인 건축물의 존재 또한 어느덧 이러한 역사(고고학)을 마주한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른바 그 인간이 지닌 지성과 능력에 대하여, 일종의  경의로운 감상을 강하게 심어주는 역활을 충실히 수행한다.    물론!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나 스스로 또한) 의심의 시선 등을 두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실제로 오래도록 사랑받은 그리스&로마 문명부터 시작하여, 또 거대하면서도 화려한 '황금 시대'을 자랑한 이집트 문명 등을 생각해본다면? 분명 이 모든것을 접한 인간 스스로가 그 과거의 흔적들에 압도되고 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도 생각이 되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존재하는 법... 이에 솔직히 표현하자면 저자 스스로가 몸담고 있는 '유라시아의 역사' 그 중 '극동 아시아'의 역사를 바라본다면, 이에 평범한? 입장의 독자들에게 있어서, 그리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이 표현하는 것은 '전쟁사'도 '문명사' 도 아닌 보다 인류학에 가까운 가치관이다.   때문에 이 책이 드러내는 이 모든 사실들 또한 비교적 단조롭고 또 소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역사에 크고 작음을 따지거나, 미개함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또한 저자 스스로가 드러내듯이 이 많은 사실들을 발견하고, 또 보존하기 위하여, 오늘날까지 끝임없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고고학의 현실에 대하여도 결코 소홀히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앎과는 다르게, 옛 유목민족의 역사, 샤머니즘의 이해, 그리고 보다 인간관계에 집중된 고대 인류의 기원설을 접하는 것은 '역사의 초보'로서는 나름 어럽고 또 난해한 법이다.


그래서일까?  책 속에서도 저자는 종종 (독자들의) 이해를 위하여, 인디아나 존스의 이야기를 자주 꺼내든다.   그야말로 일반인들 사이에 있어서도 이 옛 영화만큼 '고고학' 또한 외곡된 사고방식으로서 이해되고 있는 것이 사실인 것이다.    이에 저자는 말한다.  본래 고고학이란 자극적이지 않다 라고 말이다.  그리고 만약 존스박사와 같은 행위가 세상에 만연하다면?  결국 인류의 옛 유산의 대부분 또한 자극적인 파괴 행위 속에서 자취를 감추었을 것이라고...


때문에 결국 역사를 올바로 마주하고, 또 배워 나아가는 것이란?  그저 화려함에 압도되고 또 도취되는 것이 아닌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 에서부터 시작된다. 라는 생각이 미친다.   실제로 이 책의 많은 흔적들을 바라보면, 그 모든것은 그저 인간이 '힘껏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남게 된 일종의 잔여물에 불과하다.    무덤, 토기, 악기, 가면... 이처럼 이 이야기가 들려주는 모든 것에는 위와 같은 인간의 삶이 녹아있다.   유라시아, 그리고 크게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사람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 역사의 이야기!   이처럼 나는 이 저자의 서술을 통하여, 보다 나와 가까운 하나의 역사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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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 (완역판, 반양장) 세계기독교고전 15
존 번연 지음, 유성덕 옮김, 루이스 레드 형제 그림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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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의 내용을 접하게 되면서, 나는 어느덧 이 많은 내용이 과거 접했던 '단테의 신곡'과 상당부분 닮아있다 라는 감상을 받게 되었다.   그도 그럴것이 이 책의 이야기 또한 기독교에 대한 가치관을 드러냄에 있어서, 신곡과 같이 오랜여정을 그려내고 있고, 또한 결과적으로 신앙에 대한 굳은 믿음과 희생을 최상위의 가치로 드러내며, (두 작품 모두) 보다 올바른?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독자에게 오롯이 드러내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는 최상의 교훈이란 모두 '믿음'으로 이어지지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그 유명한 기독교의 시대(중세)를 거쳐왔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줄거리 속 인간의 삶 또한 오늘날과 다름없이 종교에 대한 불신, 그리고 보다 거 나은 가치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하다.   실제로 책 속의 주인공은 믿음을 향한 여정을 준비하며, 주변의 이웃, 가족, 심지어는 온갖 지식으로 무장한 여러 모습들에 의하여 끝임없이 스스로의 신앙을 위협받는다. 


이에 그러고보면 기독교의 신앙이란 생각외로 폭넓은 포용력과는 다르게,  꾸준히 신앙을 유지시키기 위한 '조건'에는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예를 들면 주인공 또한 믿음에 대한 갈망을 증명하기 위하여, 그리고 종교 스스로가 제안한 신에 대한 섬김과 그 보상을 마주하기 위하여 이른바 세상과 싸우고, 또 가족을 등진다.   이에 아마다 종교에 발을 디디지 않은 '나'와 같은 사람들은 그 섬김의 과정이 매우 길고 또 불합리하게 느껴질수도 있겠다.   허나 의외로 이들에게는 오랜세월 종교의 박해라는 역사적 사실을 겪어왔다는 것을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이처럼 위의 종교는 (결과적으로) 그 스스로의 뿌리를 넘어, 보다 더 넓은 의미의 민족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때 어쩔수 없이 마주하는 다양성에 의하여 종교 그 자체의 '기준'이 흔들리게 되었다면?  이에 아마도 기독교의 모습과 그 영향력은 분명 오늘날과 비교하여 상당부분 약화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생각되지 않는가? 


때문에 이를 생각해보면, 이 천로역정은 그 흔들리지 말아야할 '기준'을 드러낸 하나의 기록이라고 생각해야 할 지도 모른다.   옛 중세를 넘어, 근대, 현대를 겪으면서...  어느덧 이 세상 다양한 문명과 그 속의 사람들은 기존의 종교와는 다른 또 다른 많은 가치관을 낳았다.   이때 정말로 종교인으로서의 인간이란 보다 더 많은 가치에 흔들릴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문학, 과학, 타 종교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인간이란... 삶의 이유란 무엇인가? 에 대한 그 무수한 질문과 해답에 대한 길은 보다 더 넓어졌다.   이때! 이 책은 구원으로 향하는 길... 그야말로 꾸준이 좁은길을 갈 수 있는 하나의 오랜 지도서로서, (지금도) 그 여느 종교인들의 바이블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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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의 열기
가르도시 피테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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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전쟁이 지나간 어느날... 이때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환경과 현실을 받아들이며, 내일과 모래를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실제의 삶 뿐만이 아니라, (그 상황을 그린) 가상의 소설에 있어서도 불운을 마주한 많은 사람들은 결국 '포로'와 '생존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지만?  이에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 잔혹한 운명에 있어도 절망을 넘어 희망을 꿈꾸었고, 또한 그 가치관을 마주하게 된 많은 사람들도 (결국) 이를 기억하며, 소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이를 타인에게 전파하려고도 한다.


때문에 결국 생각해보면 이 소설 또한 '인간의 존엄'을 상징하는 또 다른 모습의 매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소설 스스로가 드러낸것과 같이 이는 '실화소설'로서 나름의 진실을 담아내고 있으며,  특히 최악의 환경속에서도 행복이라는 가치관을 갈망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가치관을 담아내고 있기도 하기에,  이에 나 스스로 또한 이 줄거리를 접하면서, 보다 진지한 마음을 품게 된 되기도 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혹 예를 들어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거기에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사람이 생각 할 수 있는 행복의 모습이란 과연 어떠한 것일까?  이에 나 개인적인 생각을 들내자면, 그것은 더욱더 자신을 내려놓는 삶을 살다 스러지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결국 극복하지 못할 거대한 장애를 인식한 순간,  대부분의 인간들은 보다 스스로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때문에 이에 준하여 생각한다면?  결국 이 소설의 주인공들 또한 시대의 아픔과 과오의 영향 속에서 '안타까운 예' 를 남겨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행복을 추구했다.   심지어 주변의 '자애롭고' '명석한 자' 모두가 이를 아니다! 라고 정의 했지만,  마치 그들은 서로간에 이끌리는 자석과 같이 편지와 만남, 그리고 결혼을 통하여, 결국 선고받았던 삶에서 벗어나 조금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잡는다.    물론!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그들은 사회적 인간의 사랑보다는 보다 원초적인 사랑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로부터, 사회적 동물이였던 인간은 이른바 '정략' 과 '지참금' 이라는 이름하에 오롯이 그 인간만이 아닌 능력과 재산에 대한 조건 까지도 앞으의 사랑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에 포함시켜왔다.    허나 최악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그들에게 과연 그러한 조건이 충족될 수 있었을까?  아니다.  결국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잃었기에 서로를 향한 보다 더 강한 교감을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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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러더퍼드의 편지 - 유배지에서 보내는 믿음의 글들 세계기독교고전 43
새뮤얼 러더퍼드 지음, 이강호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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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고백하는 바이지만, 나는 종교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것이 인간의 역사에 대한 깊은 탐구심과, 흥미를 가지고, 또 여러 경전을 접하는데 있어서, 큰 장점이 되어 준 것 또한 (일부)사실이다.   그도 그럴것이 세상에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편견'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과거 역사가 증명하듯이  어느 한가지의 정의가 스며든 인간이 다른 정의와 맞부딪치며 보여준 '불꽃'의 무서움을... 적어도 나는 그에 대한 큰 교훈을 '역사를 배운 큰 가르침'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기에 결국 이 책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종교중 하나로서, 그 영향이 인간의 정서와 정신에 있어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에 하는 나름의 해답을 발견하려는 이유가 크다.   이에 아마도 그와 다른 '종교'에 더 큰 의의를 두는 독자라면 분명 나의 서평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으리라 생각이 되어진다. (바로 위의 이유와 같은 것으로 말이다)  그도 그럴것이 나는 이 굳은 종교의 열의를 마주하며, 일종의 위험한 '고지식함'의 가치를 발견하고 또 불편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물론! 서방세계에 있어서 '기독교'의 존재와 함께 사회 공동체를 유지한 '전도자'(종교인)이 가지는 그 의미는 매우 크고 중요하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들은 오늘날과는 다르게, 인문학과 윤리관 그리고 종교관이 합쳐진 '종교'의 큰 가치관 아래서 살아왔고, 또한 아직 미숙하기 짝이 없었던 의학과 과학같은 새로운 가치관 보다는 보다 옛 전통을 계승한 그것이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분명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 보여지듯이  저자 또한 한 공동체의 '정신적 지주' 이자 '종교인' 으로서, 편지속에 보다 다양한 삶 속의 가치를 (올바로)세워주는데 힘을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결국 말하자면 '새뮤얼 러더퍼드' 가 강조한 최대의 가치는 그 대부분이 신앙에 기댄 것이 많다.   인간이 살면서, 병에 괴로워하고, 소중한 타인을 죽음으로서 떠나보내고, 알 수 없는 미래에 흔들리고... 무엇보다 보다 강대한 세력에 의하여 믿음의 변화를 강요받게 된다면?  과연 그 시대의 참된 인간으서,  어떠한 삶의 형태를 취하여야 할 것인가?    이에 적어도 저자는 스스로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가장 기독교적인 믿음의 증거를 드러냈다.  그리고 더욱이 그 증거를 통해,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의 질문에 있어서도 나름의 해답을 보여준 인물로도 인식되는 것 같다.   


어떠한 일에도 믿음에 흔들리지 말라...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이 기나긴 기록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그들의 가장 큰 의의이자, 교훈이 아닐런지.  이처럼 나는 스스로 그 짧은 결론을 내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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