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의 열기
가르도시 피테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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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전쟁이 지나간 어느날... 이때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환경과 현실을 받아들이며, 내일과 모래를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에 실제의 삶 뿐만이 아니라, (그 상황을 그린) 가상의 소설에 있어서도 불운을 마주한 많은 사람들은 결국 '포로'와 '생존자'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지만?  이에 결과적으로 그들은 그 잔혹한 운명에 있어도 절망을 넘어 희망을 꿈꾸었고, 또한 그 가치관을 마주하게 된 많은 사람들도 (결국) 이를 기억하며, 소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또 이를 타인에게 전파하려고도 한다.


때문에 결국 생각해보면 이 소설 또한 '인간의 존엄'을 상징하는 또 다른 모습의 매체라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이 소설 스스로가 드러낸것과 같이 이는 '실화소설'로서 나름의 진실을 담아내고 있으며,  특히 최악의 환경속에서도 행복이라는 가치관을 갈망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가치관을 담아내고 있기도 하기에,  이에 나 스스로 또한 이 줄거리를 접하면서, 보다 진지한 마음을 품게 된 되기도 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혹 예를 들어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거기에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살 날이 얼마남지 않은 사람이 생각 할 수 있는 행복의 모습이란 과연 어떠한 것일까?  이에 나 개인적인 생각을 들내자면, 그것은 더욱더 자신을 내려놓는 삶을 살다 스러지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결국 극복하지 못할 거대한 장애를 인식한 순간,  대부분의 인간들은 보다 스스로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지 않는가?   때문에 이에 준하여 생각한다면?  결국 이 소설의 주인공들 또한 시대의 아픔과 과오의 영향 속에서 '안타까운 예' 를 남겨야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들은 행복을 추구했다.   심지어 주변의 '자애롭고' '명석한 자' 모두가 이를 아니다! 라고 정의 했지만,  마치 그들은 서로간에 이끌리는 자석과 같이 편지와 만남, 그리고 결혼을 통하여, 결국 선고받았던 삶에서 벗어나 조금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부여잡는다.    물론!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그들은 사회적 인간의 사랑보다는 보다 원초적인 사랑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예로부터, 사회적 동물이였던 인간은 이른바 '정략' 과 '지참금' 이라는 이름하에 오롯이 그 인간만이 아닌 능력과 재산에 대한 조건 까지도 앞으의 사랑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에 포함시켜왔다.    허나 최악의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그들에게 과연 그러한 조건이 충족될 수 있었을까?  아니다.  결국 그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것을 잃었기에 서로를 향한 보다 더 강한 교감을 나눌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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