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의 수기 생각하는 힘 :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39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녜프 지음, 진형준 옮김 / 살림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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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옛 공산주의든, 혁명주의든...


과거 그 이유가 어찌되었든 최근 오늘날까지 대한민국 속에서의 '러시아 문학'이란 (북미등 다른 국가에 비해서)그리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서 인식이 된다.  그러나 러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작가 톨스토이 등을 토대로 생각하건데, 과거와 현재 그 대부분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진 문학의 성격 등을 생각해보면? 의외로 '자유'와 '사상'등에 밀접한 가치를 담고 있는 것들이 많다.   물론! 그 이유에는 옛 제국의 체제속에서, (국가)러시아 스스로가 보다 오래도록 봉건주의에 가까운 계급사회를 형성하고, 유지해왔던 탓이 크게 작용 했을 것이다.   실제로 동시대의 유럽과 비교해보아도, 옛 러시아 제국의 성격과 함께, 그리고 그 속의 '신민'의 권리에 대한 여러가지 조건들을 마주해보았을때, 결국 그 신민의 삶이란 '노예와 같다' 생각해도 전혀 지나침이 없다.


이처럼 굳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더라도, 과거 많은 사상가와 문학가들 사이에 있어서, 그 고질적인 '계층사회'모습은 일종의 부조리와 바꾸어야 할 낡은 것으로서, 인식되었을 것이다.   때문에 이번에 소개하는 '사냥꾼의 수기' 에서도 저자는 보다 담담하지만 확실한 문장으로서, 그 스스로가 살았던 '러시아의 본모습 그대로를 드러내고 있는데,  그러나 이를 마주한 다른 독자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 있어서는 나름 사상에 있어서의 그 어떠한 가치를 찾아 볼 수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야말로 이 작품은 일종의 사실주의적 문학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물론 오늘날 현대적인 자유와 권리에 대한 의식을 확립한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바라보면, 이 책 속의 많은 이야기는 정말로 안타까움 그 자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역유지와 귀족의 소유물로서 인식되고, 스스로의 자질과 의식에 앞서, 귀족이 명령한 삶의 모습으로서 살아가며, 그 무엇보다 자유보다 꾸준히 소작료를 바치는 삶을 선택하는 한 노인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가다보면!   그야말로 러시아 속에 뿌리박힌 '굴복'(또는 노예근성)에 대한 가치가 그 얼마나 확고했는지, 저절로 알 수 있을 정도이다.


허나, 이 모든 안타까움을 느끼고, 또 분노하게 하는 '설득의 힘'에 대하여, 분명 이 책은 여느 다른 책들과 비교해 부족하다는 감상을 받는다.  여담이지만 혹 나 스스로가 '신분제'에 대한 의문을 가지는 책을 써내려간다면?  결국 그 책은 보다 정치.사장적이고, 또 독자의 마음을 충동질하는 약간의 선동의 가치가 녹아들게 되지 않을까?   그야말로 시대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금서'로서, 좀더 더 자극적인 성격을 띄게 되지는 않을까?


이를 토대로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사냥꾼의 수기는 '한 관찰자'의 시선' 그리고 '정지된 한 시대'를 보여주는 내용에 머물러 버리고 만다.   다만! 단 한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다른 많은 특권층과는 달리, 저자 스스로에게 있어서만큼은 그 주변의 농노들이 한 명의 생명이자, 인간으로서 인식되고, 또 접근되었다는 소위 인본주의적 가치관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작품 속에서, 그는 농노에게 '자유를 사라' 주문하기도 한다.   물론 앞서 농노는 거절했지만, 적어도 저자는 그의 삶이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이해하고, 또 그 방편의 하나로서, (당시)권력자로서의 '가치'를 넌지시 그에게 전달하려고도 했다.  


혹여 저자 스스로가 귀족의 마인드로서, '사냥꾼의 수기'를 적어 나갔다면?  그리고 작품 속 만났던 마부와 숲지기들을 그저 사냥개와 같은 존재로 인식했었다면? 적어도 그러했다면 이 책은 결코 지금처럼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오늘날 '사람을 사람답게' 인식하고 대우하는 시대와는 달리, 그 시대 그 국가 속에서의 저자의 인식이 과연 독자들에게 얼마만큼 인상적인 것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그 부분을 생각하면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매력을 지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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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 근대 150년 체제의 파탄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서의동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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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러 요소들을 배제하고, 적어도 이 저자가 정한 하나의 주제로 만 생각하였을때!   분명 일본이란 국가는 이에 깊고 또 비약적인 발전사를 겪어왔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소위 일본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시작에 대하여 설명함에 있어서, 이에 저자는 일본 그 스스로가 처해져있던 '야만' 을 극복하려는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책 속에 담아내었다.


이처럼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일본국 그 스스로가 대.내외적으로 들이밀었던 '야만의 잣대'는 이른바 신 산업기반의 설비와 구축 이라는 나름의 산업화에 기반된 잣대였다고 설명이 가능하다.  실제로 강철과 합금, 그리고 전기와 같은 에너지원을 소비하고, 또 생산 할 수 있는 바탕이 구축되어 있는가? 아닌가?  물론! 이에 일본은 그 기반의 구축에 성공함으로서, 소위 열강의 문명국으로서 이해되는 위치에까지 올라갔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그러한 일본사 전체를 다루는 내용이 아닌 만큼 다시끔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이 올바르겠다.


각설하고 결과적으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본의 기술력'의 시작과 그 과정... 이른바 '능력의 향상과정' 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정리하고 또 전파하는데 목적이 있다.    그렇기에 대략 정리하자면, 과거 일본인은 당시 서양문명 그리고 '산업화'라는 가치관을 접하면서, 이를 자신들보다 뛰어난 하나의 능력으로 이해하고 또 흡수하려 했다고 이해해야 마땅하다.    때문에 역사 속에서, 일본이 겪은 그 많은 사건들을 마주하다보면, 바로 그 스스로가 만들어낸 '능력의 활용'이 어떠했느냐에 따라서, 국가의 이익과 문제점 이 모두에 있어 깊은 연관성이 보여지기도 한다.   말 그대로!  과연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산업화는 그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   단순히 '국민의 삶의 질'과는 달리, 이에 (산업에 있어) 단순히 물건을 빨리 생산하고, 또 어두운 밤을 극복 할 수 있는 (전기) 능력을 손에 넣었다고 해서, 국가와 사회 등이 가질 메리트는 그 어떠한 것이 있었겠는가?

 

이때! 적어도 '역사'의 사실을 들여다보면, 과거 일본국 그 스스로가 정의한 '정답'은 결과적으로 타국 뿐 만이 아닌, 그 제국 스스로의 멸망을 초래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정말로 안타깝게도 이 책 속 수많은 지식인들이 주장하는 '산업화의 필요성' '산업기술의 발전이유' 그리고 '산업화를 활용한 국익선양의 방법'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를 바라보면, 어쩔 수 없이 '제국주의'라는 불편한 가치관을 접하지 않을 수가 없다. ​ 그러나 그 옛 대일본제국이 대포, 군함, 제국의 마인드를 앞세운 성장을 추구해, 결국 비참한 패망의 결과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결국 그 실패를 디디고 올라가, 현대의 기술강국, 극동의 선진국으로서 다시 태어난 일본국을 바라보면서... 결국 '나'는 이 모든 과정의 이야기를 통해서 (감정과는 달리) 그 무엇을 배워야 할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기도 했다는 것을 고백한다.


이처럼 그 결말과 과정 속에서, 어떠한 감상을 가지게 되는 것과는 다르게, 적어도 저자가 드러낸 '일본의 산업화 그리고 그 연속성'을 통해서 얻어낸 가치는 실로 눈부시다.  실제로 선진국으로서, 기술보유국으로서, 일본이 지금 누리는 국격의 이익 또한 결코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 아닌가?   때문에 저자 또한 이 많은 이야기를 드러내면서, 일본이 나아가야 할 길 가운데 가장 즁요한 것으로서, 앞선 소재와 에너지의 발전을 꼽고있다.   다만, 근래의 많았던 참사와 사고, 그리고 그 후유증이 일본국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는 있지만?  결국 그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해답에 대한 것에 있어서도, 분명 기술은 보다 더 나은 기회와 해답 또한 그 고뇌자 스스로에게 선사할 것 임을 적어도(저자)는 믿어 의심치 않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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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천사 에드거 월리스 미스터리 걸작선 4
에드거 월리스 지음, 양원정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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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소설로서의 고전적인 가치를 품고 있는 책, 그러나 나름 독자인 '나' 스스로에게 있어서, 생각외로 신선했던 결말을 선사했던 책... 이처럼 공포의 천사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오랜만에 접하는 가장 친숙한 서스펜스물으로서 기억에 남는다.    그도 그럴것이 소설 속 배경의 시대,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가치관과 같은 이 모두를 접합에 있어서, 이른바 '산업혁명의 시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오래도록 인상깊은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이에 예를 하나 들자면 기암성(모리스 르블랑)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당시 구 귀족의 잔재가 남아있었던 사회 분위기와 함께, 그리고 인간이 아직 (미신에 가까운) 괴현상을 받아들이면서 보여왔던 그 '비 과학적인' 모습을 접하면서... 분명 이에 많은 독자들은 오늘날 감히 겪어보지 못했던 시대 속 개성이라는 녀석을 맛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이처럼 처음 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악녀'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  나는 그녀의 이중성과,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면서도, 그리 큰 감명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그녀와 그 아버지 (부녀)는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또 그것을 통해 재산을 얻는 방법으로 살아온 전형적인 악의 축이라 할 만하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이러한 속물들은 오늘날 현대적인 마인드 (또는 기발함)으로 무장한 악당에 비교하여, 그리 큰 매력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는 그 악당의 매력보다는 또 다른 형태의 메시지... 즉 악을 대하는 저자의 또 다른 시각을 이해하는데 긴 시간을 들였다.   실제로 주인공과 그 전체적인 내용과는 달리, 마지막에 들어, 저자는 그 나름의 '처벌'을 악녀 '진 브리거랜드'에게 부여하는데, 이때! 아마도 현대적 사법체계, 아니면 보다 전통적인 권선징악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아마 그 마지막을 그리 쉽게 받아들이지는 못할것이다.


이처럼 결과부터 말하자면, 저자 '애드거 월리스'가 약녀에게 선사한 '결말'은 또 하나의 기회로도 비추어진다.   그야말로 끼리끼리, 자신의 가치관에 걸맞는 상대, 걸맞는 나라에서, 다시 한번 욕망을 위해 날개짓 할 수 있는 삶의 기회를 제공한 그 미래를 비추면서, 결과적으로 그녀 또한 진정 그 스스로가 살아야할 '야만의 제국'에 기꺼이 몸을 던진다.    그러나! 그 결말에 도달하기까지 그녀가 행한 욕망의 행위를 떠올려보면?  (앞서 언급했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관대함에 큰 부조리를 느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서 나는 부조리를 느끼는가?


아마도 내 생각에는 바로 위의 물음이 정작 '소설 속 이야기'보다 더 중요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미 앞서 언급했지만, 진 브리거랜드는 그야말로 천사의 가면을 쓴 사이코에 가까운 '악'이며, 실제로 소설 속에서도 '유산'을 목적으로 수 많은 범죄를 시도하기도 한 전형적인 악녀의 모습을 보였다.  이때 아마도 현대의 가치관에 따르면, 그녀는 기존의 악행까지 더하여, 공정한 사법의 심판대 위에 서야 마땅하나, 이에 저자는 그 마땅한 결말을 내려놓고, 또 다른 형태의 형벌을 그녀에게 부여하였다.  마치 '천상에서 내쫒긴 이브'와 같이... 이처럼 그(저자)가 악녀에게 부여한 최고의 형벌이란! '비 문명'의 야만의 도가니 속에서 살아가는 또다른 미래를 부여하는 것이였다.


문명의 사법, 그리고 체계화된 사법의 선고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박탈 한 것!


이처럼 그 권리에 대한 박탈의 이야기를 통해서, 과연 그녀가 온전한 처벌을 받았는가?에 대해서는 온전히 각각의 독자들이 결론내려야 마땅하나, 허나! 적어도 낭만적인 '신사의 시대'를 살았던 저자에게 있어서는 그 결말... 피부색이 검은 이교도의 제국 속으로 걸어들어간 그녀의 운명 그 차제를 두고, 이를 하나의 처벌로서 이해했음은 분명한 사실로 여겨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결과적으로 나는 이 같은 차이를 두고, 단순히 세대차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아니면 시대간의 가치관의 차이라고 생각해야 할지, 그 정확한 구분을 위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허나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지금도 나는 포와로의 '연민'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같은 범죄에 대한 관용에 대한 그 특유의 가치관에 대하여, 그리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생각해보면, 이 책 속의 결말 또한 그 나름의 관용이 엿보인다.  범죄와 악녀... 그리고 또 다른 기회를 엿보면서, 나는 분명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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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싸미 맹가노니 - 이야기의 탄생
이송원 지음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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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글창제를 소재로 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큰 혹평을 받았다.    물론 먼저 고백하자면 나 스스로는 이 영화를 접하지 않았기에, 정확이 무엇에 대하여, 비판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언론과 일인 방송,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매체를 접하다보면,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대중속에 자리잡은 줄기(상식)의 하나를 제대로 건드린 것 만은 확실하다 생각이 되어진다.


실제로 나는 영화의 영역 뿐만이 아닌, 출판의 영역에서도 이 영화의 잔재를 엿보았다. 최근 뜬금없이 드러나는 신미스님의 애민정신...?각설하고 아니! 애초에 이 영화를 접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역사외곡' 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에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면, 최근 한참 뜨거운 '신미스님'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영화가 표현한 무력한 임금 (세종대왕)의 모습 그 자체를 관객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본다.  실제로 이제껏 등장한 위인전과 교과서, 그리고 픽션의 드라마 등에서 표현된 세종대왕과 비교하여, 이 나랏말싸미의 세종은 정말로 그 분위기가 다른 임금으로 다가온다.  


'무력한 임금과 너무나도 뜨거운? 스님' 그리고 '새로운 한글 창제의 시나리오와 가치관을 비추며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관(메시지)'


이처럼 나름 박하기 짝이 없는 '대중의 평가' 를 마주하면서, 본래 그 영화를 만들어낸 사람들 또한 오롯이 그 평가와 비평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실제로 영화를 두고,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비평가가 아니다.  그 아무리 심오하고, 또 휼륭한 가치관을 녹여냈다 다하라도! 결국 이를 대중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의 원인은 결코 대중의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식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영화의 기획자이자, (책의)저자로서, 한 사람은 이 현실이 상당히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좋게 말하자면 이 영화의 개정판! 나쁘게 말하자면 기획자로서의 변명의 내용을 담은 이 책을 굳이 이 시점에 내놓으며, 소위 '독자의 이해'를 구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강 내용을 간추린다면, 이 책이 주장하는 대전제는 명확하다.   '적어도 이 스스로들은 창작을 했다는 주장' 그리고 '보다 오늘날의 가치관에 가까운 세종의 케릭터를 만들어냈다는' 그 나름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적어도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마주하다 보면, 언젠가부터 독자 또한 기획자의 입장에 서서, 영화 곳곳에 숨겨놓았던 '진짜 메시지'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영화 속 세종이 무력하게 표현되었던 이유, 꼴통인 신미스님이 그리 오만하고 또 과격했던 이유, 그리고 한글창제의 과정과 완성의 긴 시간을 통하여, 영화가 드러내고 싶었던 그 가치관!  그야말로 언어가 가진 '힘'을 개방함으로 인하여, 만들어질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가능성에 모든것을 걸었던 진짜 개혁의 이야기 등을 통해서, 적어도 나는 저자가 기획한 나랏말싸미를 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그 이해를 통하여, 영화 그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가? 에 대해서는 그리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그대로, 논란과 비평이 쏟아지는 현실을 마주하고, 또 감내해야 하는 것은 창조자 그들이 마주해야 할 현실이기도 하다.   다만, 나는 이 글을 통해서, 기존의 편견, 알지 못했던 저자의 고뇌, 그리고 그가 표현하려고 했던 '개혁'에 대한 시도가 있었음을 알았고, 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물론 이를 통해서, 그 얼마만큼의 비평이 해소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단 하나! 이 영화가 불교와 신미대사라는 그 특정세력에 대한 예찬(재조명)의 영화가 아님을 개인적인 입장으로서 주장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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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신화 - 바이킹의 신들 현대지성 클래식 5
케빈 크로슬리-홀런드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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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북유럽신화에 대한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아마 헐리우드 영화나 게임 등을 오래도록 즐겨온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그 훌륭히 사전교육을 받은 셈이다.   이처럼 북유럽 신화에 등장한 신들과 사건 그리고 많은 단어들이 일종의 '오락'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현대사회에 있어 이것은 단순한 신화의 영역을 넘어서, 또 다른 형태의 문화를 창조하기도 한 사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새삼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려는 이 책의 이야기를 마주하면서, 이에 '나'로서는 상당히 강한 호기심을 가졌다 고백한다.   실제로 과거 (학생시절) 교육과 교양의 함양을 위해 '억지로' 읽었던 그리스.로마 신화와는 달리, 북유럽 신화란 이미 언급한 '바그너'에서, '마블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한 매력이 뒤섞인 만큼 그에 따른 흥미 또한 덩달아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신화의 영역에 발을 담그며, 나는 그 나름대로 익숙한? 이야기에 조금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북유럽 신화 나름의 오리지널리티는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을 선두로 가장 독특한 것으로서 받아 들여지는 것은 맞다.   그러나 신들 스스로가 전능과 한계 사이에서 저울질되는 존재로 묘사되고, 또 인간과 다름없는 실수를 저지른다는 존재로 비추어진다는 것은 아마도 많은 독자들에게 있어, 고대 그리스신화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허나 그리스 신화의 모습과는 달리, 북유럽의 신화에는 인간과 신들과의 사이에 있어서, 그 관계는 매우 흐릿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신들끼리 그리고 신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거인족들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접하면서, '과연 이들은 인간에게 있어 어떠한 존재인가?' 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신화 사이에서는 '바이킹들의 천국'(영역) '전사들을 이끄는 발퀴레'(신)의 존재가 확실히 존재하지만, 적어도 이 (주된) 신화 사이에서 엿볼있는 지식은 아니였다는 것을 언급해둔다.-


이처럼 이 주된 신화의 이야기에서!  신들은 자신만의 영역 속에서, 영원한 삶의 이야기를 이어갈 뿐이다.  심지어 그들은 그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은? 미래에 도래할 거대한 전쟁을 막지 못한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며, 더욱이 로키라는 신들의 반역자에 대하여, 통찰하지도 또 배제하지도 못한 어리석은 존재로도 비추어진다.    때문에 이 신화는 드물게도 창조와 멸망이라는 순환의 이미지를 가진 가장 독특한 신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 가장 위대한 신 '오딘'이 드러냈던 '한계' 그야말로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릴 뻔했던 그 강력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한계를 증명했던 한 신화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물론 이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한계'가 가장 신같지 않으면서도, 또한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본다.   그렇다!  그저 인간같은 모습만을 드러낸 여느 신들과는 달리, 북유럽 신화의 그들은 그 한계를 통해서, 가장 인간적인 존재로 (나에게) 비추어졌다.   이 세상 삼라만상 시작과 끝이 있는 것과 같이!   이 신화 또한 신성과 영원과는 다른 개성적인 가치를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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