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스도 전설 한정판 세트 (설정 자료집 + 엽서북) - 전6권
미즈노 료 지음, 채우도 외 옮김 / 들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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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정의의 용사' 라는 단어를 마주했을때! 아마 이에 많은 사람들은 옛 기억 속의 만화영화 등을 떠올리며, 그 나름 추억의 영역에 발을 내딛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이것으로 나이 인증) 물론! 나 또한 여느 변신로봇물과 용사물을 통하여, 이른바 '사랑과 정의의 용사' 라는 단어에 세뇌되었던 세대였던 만큼 분명 그 조상격?에 해당하는 이 작품에서도 그와 비슷한 감성의 메시지를 기대하면서 책을 읽어 나아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해서 이 '로도스도 전설'은 적어도 밀레니엄 이전의 현대적 감성'과는 거리가 먼 보다 생소한 분위기를 간직한 책이였다. 아니... 그보다는 그 어렸던 만화속의 주인공들과는 다른, 역사 속 '전설'에 더 어울리는 용사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려나? 실제로 절대악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로도스도 섬의 총제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이 모든것을 극복할 수 있는 용사의 자질을 갖춘 어느 위대한 인물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는 지금껏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아름다운 결말'을 내팽개치고, 비정하기 짝이 없는 결말속 이야기들을 드러낸다.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여느 꿈 많은 아이들이 접하기보다는, 적어도 롤랑의 노래, 에다, 아서왕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청소년과 성인들이 보다 더 읽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가치를 이해 할 수 없다면? 과연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과연 어떠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그 마지막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적과 용기로 극복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 과실의 주인공으로서 '군림'하는 자는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아무도 없다. 도리어, 저자 스스로가 고백한대로 그는 어느 절대적인 자가 등장하는 내용에서 벗어나,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가 가진 어리석음과 함께, 그 닥친 어리석음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희생 할 수 있는 인간 그 고귀한 정신들의 집합을 그려냄으로서, 소위 영웅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싶었다는 메시지가 가득하기는 하지만... 이에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드러내자면? 역시나 그 모든 것을 소화 하기에는 이 작품 자체의 '스케일이 작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운 점이 크게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각설하고 결국 이 모든 위기와 극복 이후의 로도스도의 미래에 대해서, 그 어느 하나 쉬운 것은 없다. 강력함은 분열되고, 선지자는 꺾였으며, 군웅 속의 영웅들 또한 자신들만의 각오 속에서, 사명을 다하고 스러져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로도스도의 구원을 말하고, 또 그 속의 성웅과 영웅을 기록한다.

때문에 이에 적어도 '판타지 작품'의 세계관에 있어서, 이 모든 것에 대하여 (나름의) '충격'을 받을 독자도 분명히 존재하리라 생각이 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오늘날 등장하는 판타지의 이야기 또한 보다 더 비정하고, 폭력적이며, 심지어 '영원한 정의'를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비추어볼때, 결국 역사 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관 또한 돌고 돌아 다시 이 시점에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게 하는 점 또한 나름 이 '로도스도 전설'이 오늘날 던져주는 하나의 메시지로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라고 나는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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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리얼 스칸디나비아 - 북유럽 사람이 쓴 진짜 북유럽 이야기
브론테 아우렐 지음, 안나 야콥센 그림, 김경영 옮김 / 니들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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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처럼 오늘날의 상식선에서 생각해보면?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속에는 북유럽 감성이라는 흔한 수식어와 함께,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선진 복지국가라는 높은 위상을 지닌 것으로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그 생각을 달리하면 어째서 스칸디나비아 속 국가들이 그 높은 수준의 행정력을 자랑 할 수 있는지? 아마 그 본질적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다른 이들보다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쩌면 그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일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추위와 얼음의 땅! 그 유명한 야만전사 바이킹을 키워낸 땅이라는 사실에 걸맞게, 그 땅은 적어도 인간들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환경을 지니고 있지 않다. 심지어 농작물을 통한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구조때문에 어쩔수 없이 '바다의 민족'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그들이 축복받은 환경과 자원에 힘입어 '선진국'이 외었다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저자는 '덴마크 사람'으로서 행복하다 말한다.

비록 살인적인 추위?와 그 추위 못지않게 무뚝뚝한 사람들이 살아가지만! 그래도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모두를 위한 공동체 속에서 행복하게 산다. 그도 그럴것이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바비큐를 하고자 하는 정신머리?를 가졌다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을것이란 생각 또한 들지 않는가? 그들은 국가와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억지로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만약 능력있다 하여, 끝없는 기회와 만족을 누릴 시간을 독점하고, 또 능력이 없다 하여 그 최소한의 보호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체제요 현실이라 주장한다면... 아마 적어도 저자의 상식에 있어선 그것을 두고 최대의 비극이라고 감히 주장했을 것이 분명하리라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 책 속의) 저자 스스로가 살아간 삶은 그 비극과는 동떨어진 것이였다는 것이 엿보인다. 그는 사회가 보장하는 혜택을 누리고, 스스로가 선택한 직업을 가지며, 북유럽 특유의 문화를 통하여 친구를 사귀고, 또 휴일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에 그가 이야기하는 북유럽의 모습은? 분명 지금의 나 스스로가 보아도, 정말 부러운 것이 많았다.

이에 반대로 내가 한국인의 삶, 한국의 모습, 한국이란? 주제를 드러내는 책을 낸다면 과연 어떠한 책이 나오게 될까? 혹 그 내용에는 즐거움과 만족과는 달리, 현 사회와 국가 자체가 지닌 한계, 문제점, 개선점에 대한 지적이 난무하는 내용이 되지 않을까? 각설하고 분명 나는 북유럽의 모습을 동경한다. 그리고 또 가능하면 그 모델이 자국에 있어서 크게 적용되기를 바라지만? 과연 그 실행에는 어떠한 한계가 있을지? 또는 한국인이 그 얼마만큼 그 독특함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이처럼 이 책은 단순히 북유럽의 삶을 나열한 그 내용에서 벗어나, 나에게 있어 진정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나름의 척도로서 받아들여진 일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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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자작 감행 - 밥도 술도 혼자가 최고!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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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긋하게 혼자서 즐기는 식사행위! 흔히 혼밥이라고 불리우는 행위에 대하여, 이제 한국사회나 일본의 사회나 모두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때문에 이에 대한 행위 뿐 만이 아니라, 그것을 주제로한 또 다른 창작물까지도 소비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 예를 들어 만화나 드라마등으로 이름높은 고독한 미식가도 그 나름 혼밥의 가치를 표현한 유명한 창작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봐도 이른바 혼밥문화가 정착하게 된 시간을 생각해보면 대략 10~15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렇다면 결국 혼밥이란, 비교적 사회 젊은 층이 선택하는 신 문화의 한 종류로서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적어도 이 책의 내용에 따르자면, 굳이 그렇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친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 스스로 드러낸 나이는 63세! 이에 조금 잔인한? 말로 들리겠지만 결론적으로 이미 미래의 비전보다는 과거 인생의 많은 삶을 산 나름의 노련함 등이 더 돋보일수 있는 나이다. 그러나 바로 그 노련함이 이 책의 주제를 살려냈다. 과거 일본의 식 문화, 식사, 일상에 대한 잔잔한 만화를 그려왔던 저자이기에! 결국 만화가 아닌 이 에세이에 있어서도 그 고유의 색은 전혀 바래지 않는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세상에 넘쳐나는 맛있는 음식, 장사 없는 세월에 흘러 사라져가는 음식, 반 평생 먹어왔어도 질리지 않고 다시 찾게되는 음식, 생각치 못하게 그 스스로 황금조합을 찾아낸 개성넘치는 음식, 일본인이기에 사랑하고 또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음식... 그야말로 저자의 기억속에서 끄집어낸 그 수많은 음식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정말로 그는 풍요로운 식사의 삶을 살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위 외식에서 집밥에 이르기까지, 비록 화려하거나 고급진것 과는 그 거리가 먼 선택지라 하더라도, 적어도 언제나 '쳇바퀴 도는 듯한' 식사에 만족하는 나에 비하면, 그는 단어 그대로의 미식가의 자질을 충분히 만족시키며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그 내용만 보면 '그 누구라도 도전 할 수 있는' 매우 서민적인 내용이 가득하지만... 어째서 나는 그 속에서 '부러움' 과 '로망'이라는 가치관을 발견하게 될까?

이에 어쩌면 위의 그 많은 경험(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저자 스스로가 만화가로서, 비교적 불규칙한 생활을 이어 왔기 때문일 수도 있을것이다. 흔히 식사란 무엇일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을까?'에서 고민하고 또 결국 그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었던 실질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더욱이 그 2~30분 정도의(점심시간) 짧은 시간에 있어서도 혼자서 먹는 밥을 원하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

적어도 그 이유에 있어서, 저자는 나름의 (인생)스토리가 있다. 물론 그가 세상의 맛집에 정통한 '혼밥의 달인'은 아닐지는 몰라도, 적어도 세상 속 에서 쌓아올린 '인생의 맛'을 잘 알고있기에, 이에 저자는 그 인생의 맛이라는 녀석을 그저 독자에게 설명하고, 또 은근하게 권할 뿐이다. 그래서일까? 결국 이 많은 이야기를 접하면서, 독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먹는것이다. 물론 그 식사의 형태에 있어서, 저자가 권하는 맛을 한번쯤 맛보는 시도를 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그보다는 지금껏 내가 잊고 있었던 맛, 기억하는 맛, 지금 당장 먹고싶은 맛을 향해서 전진하는 그 과감함을 보여주는 것이 그 나름의 '책 속의 메시지'를 보다 잘 이해하고 수행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먹는 것을 잘 참는다'

물론 결과적으로보면 지금의 음식이 더 맛있고 또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 맞을 것이나, 결국 그 맛을 보는 시도와 의미를 생각해보면, 결국 많은 사람들은 식사가 아닌 특식을 위해서 노력하고 분발하고 참아오는 것이 아닌가? 이에 적어도 저자가 말한 식사는 일상의 맛이다. 평일내내 참아가며 기다리는 금요일 저녁 딱 한순간의 자유! 또는 원하는 것을 손에넣기 위하여 희생하기 쉬운 밥 한끼의 값에 대하여, 혹 저자는 그에 대하여 어떠한 주장을 할까?

"아깝다" 혹 저자는 이러한 말을 하지 않을까? 그 가난뱅이의 상징이라는 '버터밥'을 만드는데도 저자는 그 만의 비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 버터밥의 진화?를 위해서 저자는 단순히 정형화된 수단 또는 대중매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 스스로의 경험의 축적을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맛집 검색, 리뷰, 요리책, 맛팁! 어느덧 세상에는 정보가 흘러넘치며, 그 수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이에 적어도 나는 그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맛'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 적어도 그것들은 나 스스로를 위한 맛은 아닐 것이다. 그야말로 대중이 아닌 나의 맛, 이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 자신만이 만들어낸 개성넘치는 샌드위치를 해 먹는것! 바로 그것이 저자가 표현한 혼밥의 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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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방 이야기 - 그녀의 일기
나나로 지음 / 처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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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속 내용의 주 무대인 '키스방'의 사전적 의미는 유해업소이다. 물론 불법 성매매와 비교해 그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발생하는가?에 대한 가벼운 궁금증이 일기는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쓰려는 글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생각하기에 이에 오롯이 책 속의 감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성적인 욕구를 발산하는 장소,상대,그리고 방법... 이처럼 적어도 인간이 아무리 사회적 동물을 칭한다 할 지라도 결국 그 동물(짐승)이라는 본질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하는 이상! 적어도 성性은 살아가는 인간 그 모두에게 있어서, 반드시 해소(또는 배출)해야 하는 하나의 큰 욕구로서 그 큰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에 '그림자'라고 표현한 그대로 성욕이란? 때때로 이 키스방에서 벌어지는 많은 이야기가 증명하듯 가장 은밀하고, 또 사회인으로서 당당히 드러낼 수 없는 나름의 수치심을 주는 것으로도 인식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이에 적어도 여느 독자의 입장에 있어서는 이 내용들이 때때로 대담하거나, 혹은 이해하기 껄끄러운 것으로서 받아들여 질 수 있겠다.

실제로 세계의 많은 나라들과 비교해 대한민국은 아직 성행위 대하여 대단히 엄격한 잣대(법률 또는 사회통념적 인식)를 들이민다. 특히 이 키스방의 경우 또한 분명 국가와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부류의 것! 이라고 정의 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여느 환경에 대한 한계 등을 이유로 사실상 그 존재를 '묵인'하는 것에서 그 아슬아슬한 존속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거의 분명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분명 '나' 또한 과거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을때 '성인에게만 허락되는' 그 많은 것에 있어서 대단한 흥미를 보여왔고, 또 그것에 대한 나름의 글을 쓰기도 했다. 허나 오늘날 성인물 또는 에로배우 등에 대한 매우 관대한 인식이나 포용에 대한 것과는 달리! 나는 개인적으로 이 키스방의 여자들 또는 손님들에 대한 그 많은 내용에 있어서, 독자가 스스로 이에 '같은 포용력'을 발휘해줄 필요는 없다고 감히 주장하려 한다.

물론 그 속에서 저자가 주장하려는 메시지는 알겠다. 사회적으로 '성인'이 됨으로 인해서 겪는 수난과 한계! 이에 사회가 수 많은 젊은이들에게 절대로 평등하지 않고, 혹독하고, 때론 잔인하다는 것을 분명 나 또한 알고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리저리 흘러들어와 이른바 '한계'와'막장'에 이르러 그들이 '어쩔 수 없이' 키스방에서의 삶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적어도 저자 또한 "그것은 아마 각각 다를거다" 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린 상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가 키스방에서 '버텨나아갔던' 이유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키스, 터치, 그리고 진상등을 겪어 나아가는 '대가'로서 단 시간에 상당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 또한 이른바 '은퇴'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을때까지! 드럽지만 참고 또 참는다고... 적어도 이 책은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현실과는 상관없이 (안타깝게도) 이곳은 일본이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곳은 적어도 어덜트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나라, 그나마 양지로 드러나 그 나름의 네트워크와 안전망을 구축한 나라가 아니다.

이에 그가 그토록 질색했던 '진상'들의 공통점은 어떠했는가?

결국 이들 대부분은 저자를 비롯한 많은 키스방의 사람들을 '샀다' 인식한 것이 아닌가? 실제로 그가 겪은 많은 사실들 가운데서, 결국 그녀를 지켜준 방어망은 '키스방의 룰(약속)' 뿐이다. 사실상 상대를 물건이나 노예로 취급하는 부류 앞에서 그가 겪었던 그 많은 이야기! 심지어는 강간미수에 그쳤던 그 일화까지 합치자면, 결국 저자는 이에 적어도 '키스방의 문을 두드리려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경고'를 이 책의 주제로 삼았어야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허나 내가 몽상가에 불과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저자의 입장에 있어서는 키스방 또한 삶의 선택지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나름의 '무심함'이 엿보이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미친다. 단순히 '죄'라는 생각을 떠나, 스스로 몸을 팔아가며 살아가는 선택을 하는 것에서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면... 또는 이를 감내 할 수 있는 '보상'이나 '목적'이 있다면? 이에 저자는 그 선택이 오롯이 잘못되었다 정의 할 수 없다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결국 이 책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아는 작은 사회의 한 구석, 한 축의 '리얼한' 세계를 다루는 하나의 체험기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 '한 시간에 4만원' '주.야 타임 자유선택' '키스 가벼운 터치가능' '참으로 다양한 성욕 덩어리들만의 만남'... 이에 그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책 속에서 구해달라거나, 개선을 요구하거나,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또는 측은지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 저자는 이와는 달리 그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여기봐봐! 한국에도 이런 곳 (이런 놈?) 이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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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1~2 세트 - 전2권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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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면서, 나는 그 내용을 떠나, 본질에 해당하는 그 배경의 '생소함'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이처럼 그 아무리 세계화가 진행되었다 해도, 실질적으로 이렇게 번역이 된 비유럽 세계의 문학을 접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실제로 주인공을 포함하여, 그 세계속의 삶을 비추면서, 표현되는 그 많은 부분에 있어서, 적어도 '한국인의 가치관'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여담이지만 오늘날에 있어서도 '동양 사상'이 한국인의 본질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지는 것과 같이 저자 역시도 나이지리아의 독특한 사상과 종교 또는 믿음에 의하여 그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구축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론! 민족과 국가 라는 울타리에 있어서, 철학과 사상 종교가 없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는 그저 나 스스로가 나이지리아에 대한 문외한에 불과 할 뿐, 분명 저자는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스스로의 가치를 녹여 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리는 것은 사회통념상 '비극'이라 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 많다. 처음 그 순수한 사랑도, 또 주인공을 둘러싼 그 신비한 신화적 존재조차도 결국 현실의 한계라는 장벽 앞에서, 그저 힘없이 무너져내리는 보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가난과 차별... 이것은 그야말로 아프리카의 부족과 민족 그 모두에게 있어 큰 그림자를 드리운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한 것이 아닌가?

때문에 결국 현실에서도 극복하지 못한 문제를 어쩌면 그 나름의 '당사자'로서 그 가상의 이야기나마 '행복하게' 끝내지 못함은 저자 그 스스로가 일부러 써내려간 어떤 메시지(또는 각오)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일까? 이에 빼앗기도 강점당한 사실에 있어서, 그 경험의 기억을 공유하는 한국인 (나) 는 어쩌면 이 저자의 가장 큰 제3의 이해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그 생소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고 해도! 그래도 가슴 먹먹한 짖눌린 삶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나 또한 삶의 본질을 모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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