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No’하고 우아하게 거절하는 법
재키 마슨 지음, 정영은 옮김 / 윌컴퍼니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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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둘도 없는 친구는 과연 어떠한 친구를 말하는 것일까?   옛날 이야기와 같이 살인을 한 친구조

차도 숨겨조는 것이 진정한 친구의 모습인가? 아니면 드라마 토시이에와 마츠 에 등장하는 마츠

처럼 '저에게 모두 맡겨만 주세요' 라며 상대의 요구에 YES만을 되풀이 하는 사람이 진정한 친

구인가?   아마도 실생활을 살아가면서 그러한 친구를 만날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기회주의자이자,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소인배'를 친

구로 가졌다는 위기감이나, 불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과연 사람과 사람과의 친밀과 교류는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이상적일까? 이 책은 바로 그러한 교류의 거리를 말하는 실용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친구를 만나고, 그와 교류하면서 가끔 가장 난감할 때를 맞이하는데, 그것은 바로 상대

가 (주로 금전적 의미의) 자신에게 도움을 청할 때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상황에

서 쉽게 거절의 뜻을 비치지 못하며, 주로 이러저러한 핑계를 대먼서 회피 할 떄가 많은데, 이에

사람들은 괜시리 상대에게 죄스러운 마음을 품게 된다.   물론 자신은 잘못 한 것이 없다.

그러나 그 행위로 인해서 사람은 우정이 변하고, 관계가  소원해지고, 심지어 상대가 자신에게

증오의 마음을 가지지 않을까? 하면서 두려워하고, 또 "이제 저사람과의 관계를 끝내야 겠다" 라

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품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러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도 상대와 좋

은 관계를 이어가려면 상대가 납득하는 거절의 기술을 배울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

이다.   자 과연 어떠한 거절이 자신과 상대를 상처입히자 않는 마법을 발휘하는가?

 

책의 주장에 의하면 그 노하우는 보다 화려한 말솜씨와 같은 기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품고 있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한다.    우선적으로 자신은 상대의 요구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머리와, 남을 위하는 마음과 자신을 사랑하는 아음이 균형을 이루는 마음

의 저울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상대가 원하는 도움이 자신의 능력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상대에게 이해기키는 논리를 전하며, 전혀 도움을 주지 않기  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도움의 100

%는 주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도움은 주는 지혜를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고 적어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많은 노하우의 정보에도 불구하고, 나는 "막상 상대가 도움을 청하면 이 책의 내

용처럼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원래 사람에게도 천성이라는 것이 있지 않

은가?   역시 뭐든지 원하는 바를 얻기위해서는 다듬고 고치는 노력의 존재가 필요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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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의 바보들 - 위기를 조장하는 이코노미스트들의 위험한 선택
안근모 지음 / 어바웃어북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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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고대의 절대군주들과 많은 국가들은 스스로 거대한 토목공사를 일으켜 국가의 부흥을 꾀

했다. (물론 지나친 공사로 몰락한 국가도 있다.) 덕분에 인류는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문화유

산을 가지게 되었고, 또 많은 역사학자들이 그러한 유물을 보면서 당시 시대의 기술.예술적 가치

를 측정하는 기준으로 삼지만,  이에 경제학적인 의미로 그것을 평가하면, 오늘날 위기를 조장하

는 '대규모 통화정책'이 생각나는 부분이 있는것이 사실이다.      

 

과거 제국시대의 이러한(토목공사) 활동은 분명 제국의 부흥을 촉진시키는 역활을 수행했다.   

이 같은 공사는 결국 부를 독점한 소수의 사람들이 수많은 아랫사람들을 위해서 '통화'(금전)을

유통시키는 역활을 했고, 또 수 많은 인력자원과 물자를 소비시킴으로서, 돈이 돌고도는 자금의

흐름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러한 건설의 신화는 고대, 중세, 근대,현대에 이르

는 수 많은 세월에 걸쳐 사랑 받아온 경제 부흥정책으로 인정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근대의 후버댐 이후, 건설의 신화는 이제 그 빛이 바랜 느낌이 든다.    일본의 스카이트

리, 한국의 대운하공사 등 정부가 주도한 공사의 의의는 그 활동을 통한 경제활성화에 있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 보면 이 같은 의의는 더이상 스 효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오히려 대형 건

설사나 대기업의 배만을 불려주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오늘날의 경제침체를 극복

하기 위해서, 은행과 정부는 '과거의 가르침' 그대로 자신이 가진 재력을 쏟아붙고 있다.  그러

나 이제 그 방법이 더이상 통하지 않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우리는 이 시대의 시스템을 들여

다 보면서, 한번 새롭게 진단 해 볼 필요성을 느낀다.    과거와 오늘... 과연 시대를 거치면

서 무엇이 달라졌단 말인가?

 

앞서 말했지만 일본의 아베노믹스와 미국의 통화정책이 가지는 의의는 경제흐름의 활성화

이다.    쉽게 말하자면 지갑을 닫은 대중들을 대신해서 정부가 자금을 풀어 임시로 돈을 돌게하

겠다는 것인데, 저자는 그것을 설명하면서, "그 퍼주기는 훗날 더욱 큰 경제위기를 가져온다" 라

는 자기 주장을 편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오늘날의 퍼주기는 무언가 잘못되어 있다.    국가는

자신이 가진 통화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빚을 내서 일부로 퍼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서 경제가 돌아가고, 시민들이 지갑을 열고, 소비가 촉진되고, 세금과 소비세같은 수입이 들어오

면 성공이라는 것이 그들이 원하는 긍정적인 효과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통화정책이 실패한

다면 지금보다 더욱 끔찍한 결과가 나올것이다.  시민 국가 모두가 부채에 허덕이는 사태가 일어

날 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저자는 투자는 좋지만 그 해택이 어느것에 돌아가야 하는가? 하는 주장을 통해서, 일반인

들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경제 위기를 있는 그대로 전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정보를 접하는

사람들에게 앞으로의 미래를 전망하게 하고, 그에 대한 준비를 서두르라며 그 위기에 대한 해결

책을 내놓고도 있다.     그는 우리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배운 사람들'이 그 누구도 따라 할수 없

는 바보짓을 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과연 그것이 바보짓일까? 아니면 우리를 구원해 줄

모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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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 - 난징대학살, 그 야만적 진실의 기록
아이리스 장 지음, 윤지환 옮김 / 미다스북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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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의한 파괴와 학살, 그것은 전쟁의 본질이자 인간이 스스로 지니고 있는 폭력성의 진수라

할 수 있는것이다.   이렇듯 누구를 지배하고 파괴하고 싶다는 욕망은 실제로 역사적으로 무수한

문명과 도시들을 파괴했으며, 그것은 바빌론의 부유함도, 카르타고의 삼중성벽도, 로마의 거대

함도, 미국의 근대적 자유주의의(인권주의) 이념조차도 집어삼키며, 고금을 통틀어 변치않는 불

멸의 가치관으로서 지금까지 살아남고 있다.  

 

때문에 역사를 배우고 알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학살' 과 '강간'은 상당히 친숙한 단어로 다

가오는 것이다.     경멸하고 미워하고 경계해야 할 가치관이자 단어이기는 하지만, 전세계에 모

범적인 정복전쟁을 치룬 나라는 세상에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절대 악' 이라며

경멸의 눈초리를 보낼 수 만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강간과 학살은 사회통념

상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이다.     때문에 전쟁에 의해서든 평화로운 사회에 있어서이든 그

것은 처벌과 책임을 물어애 마땅하며, 패전국이든 승전국이든 모두 그 죄에 대한 도의적 책

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난징 대학살 (저자는 난징 강간으로 부르기도 한다.) 은 한국과 중국 일본에 이르는 극동아시아

에 있어서, 민감한 역사적 분쟁을 일으키는 '역사'중 하나이다.     난징 대학살의 어째서 기억

되고 있는가?  그것은 세계2차대전 즉 근대의 역사속에서 발생한 최근의 기억이기도 하지만 그

무엇보다 일본제국에 의해서 비슷한 피해를 당했던 중국인들과, 한국인들이 서로 '민족적 동질

감' 을 느끼며 그 기억(역사)를 결코 잊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사건을 포함한 많은 일본제국의 범죄는 '냉전'과 '국가의 이해관계' 라는 핑

계에 의해서 지금껏 잊혀지고 또 감추어져 왔다.    중국. 한국. 베트남에 이른 많은 피해국가가

일본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지만, 일본이 사과는 커녕 그토록 당당하게 버티고 있는 이유 또한 이

미 예전부터 강대국들에 의해서, 그 죄가 (사실상) 용서 받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피해국가

의 입장에서는 일본을 몰아세울수는 있지만, 강제 할 수가 없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일본은 그 강대국으로서의 힘과 영향력을 이용해서 지금껏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어

왔다.    물론 이 난징에 대한 역사도 그 많은 감추어진 역사중 하나인데,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

으로 감추었던지 이 책의 저자 또한 "일본.미국에 이르는 많은 '영향력있는 학술지와 교과서' 에

서 난징 학살에 대한 내용은 극히 빈약하며, 책을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는데도 상당한 노력을

했을 뿐 만이 아니라, 많은 일본 우익들에 의해서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했다." 라면서 그 솔직

한 심정을 내비친다. 

 

그러나 결국 저자는 '난징 대학살(강간)에 대한 하나의 저서를 완성시킨다.     이 책 속에는 역사

적으로 일어난 난징 대학살의 실체, 일본제국이 학살을 해야만 했던 이유와, 당시 일본인의 사회

와 그 민족적 분위기에 대한 분석, 난징 대학살의 비극 속에서, 인간으로서 자애감을 가지고 학

살을 막았던 많은 외국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으며,  마지막으로 일본이 패전함으로

서 그에 어떠한 책임을 졌고, 앞으로 극동아시아의 선진국으로서 어떠한 행동을 하여야 하는가?

하는 저자의 주장을 담았다.  

 

개인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의 내용은 (그 내용에 대한 참혹함에 비위가 상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그 주장이 합당하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책이 출판된 시

점(1997년)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일본은 이 책에 대한 모든 내용을 부정한다.

아니 그에 머무르지 않고, 이 책에 대한 저자와, 난징에 대한 역사를 반박하는 서적을 베스트 셀

러로 만들고, 심지어 일부 우익들은 저자(아이리스 장)를 정신적으로 약회시킬 정도로 집요한 인

신공격을 퍼부었다.    그렇기에 결국 그녀는 스스로 자살을 했고, 덩달아 이 책은 그의 마지막 

유작이 되어버렸다.     이에 나는 생각한다  "진실을 되찾는 행동이 어째서 전도유망한 저널리스

트를 자살로 몰고 가게 했는가?"  역시 역사는 강자의 편에 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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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교회 잔혹사
옥성호 지음 / 박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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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허구이지만, 100%진실을 담고있는 책.    저자는 스스로 이 책의 내용을 그렇게 평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 본연의 내용 덕분에 크게 2가지의 평가를 받고 있는데, 그 하나는

'정작 본인이 종교에 몸담은 목사이면서도, 한국 기독교의 단점을 폭로하고, 그 반성을 촉구

하고 있다' 라는 긍정적인 반응과,  '누워서 침뱉는 것과 다름이 없다.' '작가가 스스로 인기를 얻

으려는 쇼다' '한국 기독교의 명예를 회손하려는 악의적인 시도이다.' 라는 교인들의 (어쩌면 당

연한것...) 격렬한 분노이다.

 

이처럼 이 책은 위의 평가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의 교회와 그 교인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불편

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곳에는 하느님이 없다" 라는 글귀처럼, 소설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초

대형 한국교회의 모습은 그야말로 '성직' 과는 다른 '기업'의 모습이며, 주인공이자, 등장인물

중 하나인 장세기 역시, 점점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어, 교인들을 이용하고, 하느님을 이용하기

까지 이르며, 오로지 돈과 직책을 유지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타락한 성직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때문에 해당종교와 전혀 인연이 없는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의 이야기는 "성직 또한 인간세상에

속한 하나의 직업에 불과하다" 라는 느낌을 받았다.      오로지 성장과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고,

권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하고,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으려

는 공동체의 움직임과 더불어, 상사와 직원사이의 불화가 결국 "절이 싫으면 떠나라" 라는 막장

에 이르게 되는 현실... 그것이 오늘날의 직장에서 심심치 않게 보여지고 있는 문제점이다.   이

에 저자는 말한다.  "성직이라고 다를 줄 알았는가? 아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라도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장세기는 못 배우고, 또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변변한 자격증도 가지고 있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서초교회에 오랜기간 헌신하고, 성직을 향한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 성실함을 인정받아 소소하지만 서초교회의 작은 직책(청년부)를 맡는 행복과 가

난하지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누린다.     그러나 서초교회의 지도부가 교체되면서, 그는 점차 초

심을 유지하며, 성직의 길을  걷지 못하게 된다.  

 

서초교회는 어느덧 목사들에게 스펙을 요구하고, 글로벌 포교를 위한 지식을 요구하고, 언론과,

정치세력을 이용한 로비를 통해서 교회의 몸집을 불리는 것을 최우선사항으로 삼으면서, 자연스

럽게 목사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때문에 신앙심을 제외하면 아무런 재

능도 없는 장세기에게 있어서, 지금의 서초교회는 매우 불안하고 불편한 존재로 다가오지만, 그

는 먹여살릴 가족과, 한국의 초대형 교회라는 간판의 매력에 굴복해, 어느덧 스스로 '글로벌

미션"에 최선을 다하는 서초교회의 충복이 된다.

 

어느덧 서초교회는 하나님보다 실적을, 신앙심보다는 신도들과 헌금의 액수를 중요하게 생각하

는 초대형(기업형) 교회로 변질되었고, 또한 대표장로의 도덕적 문제와, 불투명한 자금운용 등으

로 세상사람들의 욕을 먹는 교회가 되었지만, 그들은 오히려 세상의 시선을 '사탄의 시험' '악마

의 시기심' "이럴때일 수록 변치않는 신앙심이 필요하다" 라는 교구적 슬로건을 이용해서 신도들

을 조종하고, 세뇌시킨다.  

 

'하나님보다 교회가 우선인 교회'  과거의 장세기였다면 스스로 그 서초교회를 떠났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 가정, 사회적 신분, 수입원에 대한 당연한 미련이 결국 그를 강자에게 굴복하면서

사는 '인간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렸다.     이제 그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마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초교회가 가리키는 손가락의 방향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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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역사 - 언젠가 어디선가 당신과 마주친 사랑
남미영 지음 / 김영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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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연인들도, 그리고 실제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도 '사랑'이라는 감정은 언제나 이성과 지성을 뛰어넘는 제일의 가치관을 가질 때가 있다.      나

의 어린시절 남.녀와의 사랑이란 그야말로 플라토닉 러브라는 단어에 걸맞는 순진함과 두근거림

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점차 세상이 개방되고, 습득하는 정보가 풍부해 지

면서 이제 사랑이라는 단어에 포함된 '사랑의 방식'은 사람 각각의 가치관과 믿음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는데, 불행히도 근래의 드라마나 자본주의적 현실에 대한 필요성 때

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란 '믿음'보다는 '조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한 과거 플라

토닉에 대한 이미지도 그야말로 가상의 이야기, '환상의 범주'로 밀려난지 오래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오늘의 세상은 '소나기'를 읽은 감상에 대해서 "앞으로는 좀더 건강한 여자를 사

귀어야 겠다" 라는 답변 따위가 등장하는 시대인 것이다.    로멘스도 환상도 없는 현실적인 세

상... 그야말로 암울하지 않는가?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배운 적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

고, 남.녀가 만나면 자연스럽게 그들만의 사랑을 이어간다.      그것을 생각하면, 사람들의 D.N.

A속에는 이미 사랑에 대한 프로그램이 깔여있다고 생각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며, 사랑이란 자

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인간의 감정이라고도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많은 작가들

과 이야기꾼들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회제로 삼고, 또 역사적으로 아름다운 세기의 명작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책의 세상에는 사랑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고 가문을 버리고 부귀영화를 버리는 로멘티즘과, 강

철의 전함처럼 자신의 믿음을 밀고 나가는 에고이즘, 암사마귀처럼 타인을 파멸시키면서 까지

자신만의 사랑을 고집하는 나르시즘과 마지막으로 자신을 희생하면서 까지 남을 사랑하고 헌신

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는 마조히즘에 이르는 수많은 사랑의 방식이 등장한다.     때문에 사람들

은 로미오와 줄리엣, 소나기, 오만과 편견, 춘양전, 웨대한 개츠비, 안나 카레리나 같은 수많은

작품들과 그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나가는 사랑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그에 감동하고,

증오하고 동경하게 되면서, 어느덧 자신의 인생에서의 사랑의 요소가 무엇인가? 하는 정의를 내

리게 되는 것이다.

 

꿈꾸고, 동경하고, 분노하는 도중에 어느덧 사람들은 그 사랑에 대해서 자신만의 주관을 가진다.

그렇기에 사랑에 대한 책을 접한다는 것은 본격적인 사랑을 이루기 전 행하는 연습이자, 보다 매

끄럽고 아름다운 사랑을 이루기 위한 나침반을 가지는 것과 같다.   그러나 저자가 우려한 바 그

대로 현대의 사람들은 그러한 문학의 세계보다 보다 현실적이고, 스마트하다는 거짓의 가면을

쓴 대중매체에 더욱 더 관심을 가진다.      이제 우리들은 사랑을 하기 위해서, 사람의 조건을

본다.   1등급부터, 3등급까지의 계급을 나누는 결혼 정보회사와 같이, 사람들은 이제 상대방의

재산, 직업, 외모에 이르는 다양한 조건을 종합해서 타인에 대한 점수를 매기고 사랑의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그 뿐인가? 과학자들 또한 '사랑의 효과는 최고 3년' 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또 사랑의 감

정이란 인체에 분비되는 흥분제의 영향이라며, 과학이라는 첨단 지식을 바탕으로 그에 대한 정

의를 내리기에 열심히다.      때문에 이제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가치관은 더이상 과거처럼 아름

다운 낭만과 환상의 이미지를 지니지 않는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에 대해서 일종의 분노와 한

탄과 같은 그의 느낌을 매우 적나라 하게 써내려 간다.     "스스로 사랑의 감정을 가상과 문학의 

세계로 밀어낸 인간이 얼마나 아깝고 어리석은 일을 벌였는가?" 하는 주장과 함께 말이다.

 

열정은 시험과 승부에만 사용되는 가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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