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맹가노니 - 이야기의 탄생
이송원 지음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평점 :
절판


최근 한글창제를 소재로 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큰 혹평을 받았다.    물론 먼저 고백하자면 나 스스로는 이 영화를 접하지 않았기에, 정확이 무엇에 대하여, 비판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언론과 일인 방송, 그리고 인터넷을 통한 다양한 매체를 접하다보면,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대중속에 자리잡은 줄기(상식)의 하나를 제대로 건드린 것 만은 확실하다 생각이 되어진다.


실제로 나는 영화의 영역 뿐만이 아닌, 출판의 영역에서도 이 영화의 잔재를 엿보았다. 최근 뜬금없이 드러나는 신미스님의 애민정신...?각설하고 아니! 애초에 이 영화를 접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역사외곡' 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이유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에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면, 최근 한참 뜨거운 '신미스님'에 대한 논란이 아니라, 영화가 표현한 무력한 임금 (세종대왕)의 모습 그 자체를 관객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본다.  실제로 이제껏 등장한 위인전과 교과서, 그리고 픽션의 드라마 등에서 표현된 세종대왕과 비교하여, 이 나랏말싸미의 세종은 정말로 그 분위기가 다른 임금으로 다가온다.  


'무력한 임금과 너무나도 뜨거운? 스님' 그리고 '새로운 한글 창제의 시나리오와 가치관을 비추며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관(메시지)'


이처럼 나름 박하기 짝이 없는 '대중의 평가' 를 마주하면서, 본래 그 영화를 만들어낸 사람들 또한 오롯이 그 평가와 비평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실제로 영화를 두고, 평가를 하는 사람들은 소수의 비평가가 아니다.  그 아무리 심오하고, 또 휼륭한 가치관을 녹여냈다 다하라도! 결국 이를 대중이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의 원인은 결코 대중의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상식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영화의 기획자이자, (책의)저자로서, 한 사람은 이 현실이 상당히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좋게 말하자면 이 영화의 개정판! 나쁘게 말하자면 기획자로서의 변명의 내용을 담은 이 책을 굳이 이 시점에 내놓으며, 소위 '독자의 이해'를 구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강 내용을 간추린다면, 이 책이 주장하는 대전제는 명확하다.   '적어도 이 스스로들은 창작을 했다는 주장' 그리고 '보다 오늘날의 가치관에 가까운 세종의 케릭터를 만들어냈다는' 그 나름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적어도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을 마주하다 보면, 언젠가부터 독자 또한 기획자의 입장에 서서, 영화 곳곳에 숨겨놓았던 '진짜 메시지'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영화 속 세종이 무력하게 표현되었던 이유, 꼴통인 신미스님이 그리 오만하고 또 과격했던 이유, 그리고 한글창제의 과정과 완성의 긴 시간을 통하여, 영화가 드러내고 싶었던 그 가치관!  그야말로 언어가 가진 '힘'을 개방함으로 인하여, 만들어질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가능성에 모든것을 걸었던 진짜 개혁의 이야기 등을 통해서, 적어도 나는 저자가 기획한 나랏말싸미를 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나 그 이해를 통하여, 영화 그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가? 에 대해서는 그리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없다.  이미 위에서 언급한 그대로, 논란과 비평이 쏟아지는 현실을 마주하고, 또 감내해야 하는 것은 창조자 그들이 마주해야 할 현실이기도 하다.   다만, 나는 이 글을 통해서, 기존의 편견, 알지 못했던 저자의 고뇌, 그리고 그가 표현하려고 했던 '개혁'에 대한 시도가 있었음을 알았고, 또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물론 이를 통해서, 그 얼마만큼의 비평이 해소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단 하나! 이 영화가 불교와 신미대사라는 그 특정세력에 대한 예찬(재조명)의 영화가 아님을 개인적인 입장으로서 주장 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유럽 신화 - 바이킹의 신들 현대지성 클래식 5
케빈 크로슬리-홀런드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딱히 북유럽신화에 대한 지식이 없다 하더라도!  아마 헐리우드 영화나 게임 등을 오래도록 즐겨온 사람이라면? 그는 이미 그 훌륭히 사전교육을 받은 셈이다.   이처럼 북유럽 신화에 등장한 신들과 사건 그리고 많은 단어들이 일종의 '오락'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어느덧 현대사회에 있어 이것은 단순한 신화의 영역을 넘어서, 또 다른 형태의 문화를 창조하기도 한 사실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새삼 그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려는 이 책의 이야기를 마주하면서, 이에 '나'로서는 상당히 강한 호기심을 가졌다 고백한다.   실제로 과거 (학생시절) 교육과 교양의 함양을 위해 '억지로' 읽었던 그리스.로마 신화와는 달리, 북유럽 신화란 이미 언급한 '바그너'에서, '마블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그 다양한 매력이 뒤섞인 만큼 그에 따른 흥미 또한 덩달아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신화의 영역에 발을 담그며, 나는 그 나름대로 익숙한? 이야기에 조금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는다.   물론 북유럽 신화 나름의 오리지널리티는 '라그나로크' (신들의 황혼)을 선두로 가장 독특한 것으로서 받아 들여지는 것은 맞다.   그러나 신들 스스로가 전능과 한계 사이에서 저울질되는 존재로 묘사되고, 또 인간과 다름없는 실수를 저지른다는 존재로 비추어진다는 것은 아마도 많은 독자들에게 있어, 고대 그리스신화의 모습을 떠올리게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허나 그리스 신화의 모습과는 달리, 북유럽의 신화에는 인간과 신들과의 사이에 있어서, 그 관계는 매우 흐릿한 점이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신들끼리 그리고 신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거인족들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접하면서, '과연 이들은 인간에게 있어 어떠한 존재인가?' 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의문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신화 사이에서는 '바이킹들의 천국'(영역) '전사들을 이끄는 발퀴레'(신)의 존재가 확실히 존재하지만, 적어도 이 (주된) 신화 사이에서 엿볼있는 지식은 아니였다는 것을 언급해둔다.-


이처럼 이 주된 신화의 이야기에서!  신들은 자신만의 영역 속에서, 영원한 삶의 이야기를 이어갈 뿐이다.  심지어 그들은 그 놀라운 능력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은? 미래에 도래할 거대한 전쟁을 막지 못한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며, 더욱이 로키라는 신들의 반역자에 대하여, 통찰하지도 또 배제하지도 못한 어리석은 존재로도 비추어진다.    때문에 이 신화는 드물게도 창조와 멸망이라는 순환의 이미지를 가진 가장 독특한 신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 가장 위대한 신 '오딘'이 드러냈던 '한계' 그야말로 세상의 균형을 무너뜨릴 뻔했던 그 강력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신의 한계를 증명했던 한 신화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물론 이에 다른 많은 사람들이 어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 '한계'가 가장 신같지 않으면서도, 또한 매력적인 부분이라고 본다.   그렇다!  그저 인간같은 모습만을 드러낸 여느 신들과는 달리, 북유럽 신화의 그들은 그 한계를 통해서, 가장 인간적인 존재로 (나에게) 비추어졌다.   이 세상 삼라만상 시작과 끝이 있는 것과 같이!   이 신화 또한 신성과 영원과는 다른 개성적인 가치를 세상에 내놓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인생의 탐나는 심리학 50 - 프로이트에서 하워드 가드너까지 인간 탐색의 흐름과 그 핵심, 개정판
톰 버틀러 보던 지음, 이정은.김재경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진정 인간이 위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수 많은 종족 가운데서, 유별나게 인간이 탐구하는 영역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처럼 많은 질문 가운데서, 나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그 스스로의 '내면'을 끝임없이 탐구하는 생명체라는 것을 꼽고 싶다.  실제로 인간은 스스로의 삶 뿐만이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의미에 대해서도, 나름의 가설을 세우는데 성공한다.   그야말로 인간의 선과 악에 대하여, 그리고 공동체로 살아가는 생명체로서의 질서유지와 지배 성장에 이르기까지!   그 무수한 의미를을 정립하는 역사의 일부분을 접하다 보면?  그야말로 인간이란 단순히 (절대적인) 신이 만들어낸 시험지를 풀어나가는 착하기만 한 학생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미치기도 한다.


이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수 많은 내용 또한 심리학이라는 한정된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50명에 달하는 그 무수한 학자들의 (주장)핵심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의미있는 것들이 가득하다.  실제로 사회적 인간이라는 가치관을 달고 살아가는 존재로서, 단순히 스스로의 자아를 발견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결코 오늘날과 같은 공동체 속에서 살아 살 수 없을 것이다.   이 세상 문명이란 곳에서 일어나는 개인과 사회 국가의 갈등과 그 영향을 바라보면서, 이때 이 책의 독자라면, 이를 통하여, 저마다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가르침'의 길을 찾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물론 이에 오롯이 나 개인의 삶이라는 부분에서 바라보아도, 나는 이에 '나 자신을 지키는 방법' 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가졌다 고백한다.   사회 생활을 하면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스트레스' 그리고 인간관계가 가져다 주는 그 많은 단점을 극복하고, 또 예방하기 위해서, 아마도 이에 대한 정립된 심리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생각에 분명 그것은 단순히 책 속의 내용들을 그저 학문으로서, 또 이론으로서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닌 보다 나에게 알맞는 살아있는 가치를 받아 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
클라우스 베른하르트 지음, 이미옥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통틀어 단순한 정신병으로서 인식하고 있었다면?   이에 결과적으로 가장 현명한 치료방법이란 병원! 특히 의학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일 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단 한번쯤이라도 '정신과'의 문을 두들긴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에 조금이나마 위로와 치료를 바라며 다가선 병원에서 쥐여진 그 두꺼운 '시험지' (테스트지)와 결코 길지 않은 면담시간, 그리고 한 바구니 담겨진 약물과 그 영수증(비용)이 주는 나름의 허무한 감정을 말이다. 


이에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도 나름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그렇기에 때때로 감정이 격해질때, 순간적으로 '나 자신을 놓는다'는 그 무서운 경험을 통해서!  언젠가 그 원인이 무엇인가?  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도데체 어떠한 방법이 필요한가? 같은  그 해답을 정말로 간절히 원해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에 이 책은 그러한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선택지를 제공해 준 것은 맞다.   다만 비교적 최근에 접한 기록이기도 하고, 또 스스로도 노력해본 경험 또한 짧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이 책이 공황과, 우울증에 대하여 가장 큰 극복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는 결론은 (안타깝게도) 지금으로서는 감히 단언 할 수 없다는 것을 밝히는 바다. 


이처럼 분명히 이 책은 개인의 정신의 극복과 해방을 도와주는 '뇌 과학'의 책이라고 보여진다.   게다가 일일히 그 내용을 다룰 수는 없지만? 단 하나 단언 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은 분명 개인 스스로의 자존감을 세우고, 또 강화하는데 있어서, 그 주장을 강하게 펴고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가장 큰 주장 중 하나라 생각되는 것은 자신(개인)과 사회(외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자신 스스로가 피 할 수 있는 내면의 피난처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에 저자는 정말로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기에, 이에 독자 스스로가 그 무엇에 이끌리던 그 방법을 통한 극복을 꾀하는 것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남은 인생 10년 - Novel Engine POP
코사카 루카 지음, loundraw 그림, 최윤영 옮김 / 데이즈엔터(주)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미리 언급해두지만, 이 책은 저자 '코사카 루카'의 데뷔작이자, 유작이기도 하다.    이처럼 저자 스스로가 안타까운 여생을 살았던 탓일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이 책의 내용 대부분에 있어서, 죽음이란 가치는 단순히 한 개인의 삶의 끝을 표현하기도 하며, 이와 반대로 다른 누군가에게 있어서, 기억이자 추억... 또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오는 연속성이라는 새로운 가치 또한 드러내, 독자(나)로 하여금 많은 감상을 남기에 하기 충분한 것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실제로 소설 속의 주인공은 희귀병으로 인하여, 거의 10년이라는 삶 밖에 살 수 없는 존재이다.     이때! 아마도 과거 수 많은 문학 속에서 드러난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라 하면,  이에 보다 자유로웠던 존재가 되거나, 아니면 가장 아기같은 존재가 되어, 삶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이다.   이처럼 결론을 말하자면, 본래 주인공들은 병을 핑계삼아 '사회적 인간' 이라는 굴레를 벗어버릴 수 있는 나름의 선택지(또는 툭권)를 강요받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주인공인 '마츠리'는 삶을 정리하는 존재가 아닌, 삶에 강한 집착?을 드러내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야말로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 '병'을 숨기고, 나름의 사회활동에 큰 열의를 드러내며, 심지어는 그에 큰 성과를 부여잡는 흔치 않은 경험까지 하게되는 활동력 넘치는 인물이라고 생각 될 수도 있다.


허나 문제는 언제나 얼마남지 않은 수명이며, 또한 끝임없이 그녀를 괴롭게 하는 병든 자신의 몸이다.   


앞서 표현한 그대로, 마츠리는 단순히 삶에 집착하는 것에서 벗어나, 사회적 인간으로서 가장 열심히 살아가려는 노력까지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많은 노력과는 달리, 그녀가 가장 안타까워 한 것은!   바로 막 시작한 인간의 감정... 즉 사랑을 향유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나도 적다는 그 현실적인 한계에 대한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취미'와 '일'이라는 개인적인 가치는 스스로 그 끝을 맻을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자신만이 아닌, 타인과 함께 해야 하는 사랑의 미련? 만큼은 오롯이 자신만이 끝을 맻었다해서, 끝나는 쉬운 가치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소설 속의 사랑은 결국 안타까움과, 애절함을 강하게 드러내었다.   아니... 애초에 마츠리 스스로가 그저 충실한 삶의 이유를 핑계로 (또는 바쁘다는 것을 핑계로) 죽음이라는 것을 잊고 도망치려고 했다면?   사랑과 인연이라는 그 가치야 말로, 마츠리의 집착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실제로 소설의 줄거리에 있어서도 사랑 없이는 그 무엇도 표현할 수 없다.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것.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존재, 가치있는 존재, 사랑받는 존재... 그 모든것을 가능하게 한 가장 큰 가치관이 무엇이였나?   그것에 대하여, 저자는 함께하는 사랑의 존재를 드러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