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의 고향 - 한국미술 작가가 사랑한 장소와 시대
임종업 지음 / 소동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국인이면서도 한국미술에 대하여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나'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서양미술사에 비해 한국미술사를 늘 찬밥 취급해왔다.  그렇기에 내가 생각하는 한국미술은 과

거 선비의 정신을 표현한 다양한 수묵화들이나 병풍도, 아니면 불교의 가치를 표현한 다양한

불교화들이 전부이다.    그러나 분명 한국의 미술은 정체되지 않고, 오늘날에 이르렀고, 나름

세계 각국의 개성 뿐만이 아니라, 보다 더 창의적인 한국의 미(美)를 살린 다양한 창작품을 세

상에 내 놓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한국미술이 오늘날에 이르러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현대 미술가들이 각각의 작품 속에 어떠한 가치관을 녹여내고 있는가? 하는 그 사실을

보고, 또 공감하게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과거 한국의 미술은 붓과 먹으로 정신을 표현한 즉 상징적인 면을 강조한 작품들이 많았다. 그

러나 오늘날의 미술은 보다 창조의 가치가 더해진다.   자신이 사랑하는 땅, 사람, 정신, 역사...

이렇게 각각이 추구하는 가치관 또한 다르지만, 보다 달라진 것은 화가들이 표현하는 그 시각

적인 개성, 화려하고 또 개성적인 그 이미지의 다양함은 분명 그것을 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보다 재미있는 감상을 해주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여 준다.  


허나 나 역시 한국인인 모양이다.  이 다양한 작품의 세계에서, 나는 무심코 색감과 붓터치, 표

현기법을 통한 개성의 분류가 아닌,작품 속에 녹아있는 화가들의 가치관을 보려고 한다.    '단

순히 아름다워서는 안된다.'  이렇게 작품속에 메시지를 여내야 한다는 신념을 가

진 화가들은 많다.   그렇기에 예로부터 전해오는 한국의 정신, 사회에 의해 소외된 사

들, 잊혀진 고향, 재조명하고 싶은 과거의 인물 등등 사진속에 박힌 작품들은 각각

자신들의 주장을 오롯이 품어낸다.


글이 아닌 그림으로 표현되는 어떠한 주장.  대부분 가난한 삶을 감수하는 화가들이지만, 이들

은 모두 예술가로서의 혼을 지니고 또 사랑하고 있다.   작품을 보는 시선은 하나가 아니다.  

아니 적어도 억대의 미술품, 세계에 예술혼을 인정받으며 명성을 얻은 소수의 작품들에게만 시

선을 주는 그러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생각한다.    그 예로 책 표지에 그려진 그림은 과거,

古 노무현 전대통령이 사랑한 작품이다.   그분은 오롯이 그림의 아름다움에 반했다.  그리고

한때 이름없는 그 그림을 가까이 두고, 또 외국의 사절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은근히 자랑했다

고 하니, 그분은 그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을 즐긴 인물이라 할 만하다.   그렇기에 나 또한 그

러한 인물이 되고 싶다.    예술은 투자의 수단도 심미안을 갈고닦는 교과서도 아니다.  그저 마

음을 열고 받아들이는... 그리고 바라보는 표현의 존재가 아닐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서실력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지영 옮김 / 생각의집 / 2016년 6월
평점 :
절판


책을 읽어 나아가면 그리고 곧 읽는다는 것에 중독된다면, 어느덧 이 저자의 이야기처럼 수 많

은 문제에 맞닥뜨린 나 자신을 발견 할 수 있다.   쌓여가는 책, 허나 반대로 사회인으로서 점

점 독서시간을 만들어 갈 수 없는 힘든 현실... 그러나 그 문제점을 감내하고, 극복하며 끝내 E

북의 마수에서 벗어나, 아날로그적 종이책에 대한 애정을 지켜내는데 성공한다면? 분명 그 사

람은 이 저자와 같은 진정한 독서인으로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닌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 또한 독서를 즐기는 사람이라 자부한다.   그러나 책 속에 녹아있는 저자의 활동을 눈

여겨 보면, 나의 독서량은 그야말로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저자는 '서평가'라는 이름을 당당

하게 내보이며 그것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그의 독서량은 한해 4천권을 넘긴다

고 하며, 그의 집 또한 '장서의 괴로움'에 적힌 그대로 누울곳을 제외한 모든 공간이 책으로 덮

여있다.  때문에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의 수집욕과 독서욕은 그야말로 집착에 가까운 병으

로 느껴진다.    그리고 도저히 일반인이 생각하는 건강하고 교양있는 독서를 권장하고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허나 내 개인적인 감상에 따르면 저자는 분명 매력적인 독서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

늘날 오락을 위한 다른 수단이 무궁무진한 세상에서, 저자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즐기는

독서를 한다.   그리고 저자에게 있어 가장 아까운 행위는 바로 수 많은 사람들이 행하는 '자기

계발을 위하여 책을 읽는 행위, 순간적인 지식을 위해 책을 뒤적이는 행위, 베스트셀러와 같은

공식적으로 추천되는 책을 골라서 접하는 행위 등이다.   그야말로 나 자신을 위한, 나만의 독

서법이 빠진 독서는 영양가가 없다는 저자의 주장,   단순히 책 한 두권을 읽어 내려가, 속성으

로 그 내용을 마주해 봐야, 그것은 독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책을 통해서 우러나

오는 품격, 지식 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이다.   과거 세종대왕이 책을 읽는데 있

어 기본 100번 마음에 들면 200번 그 내용을 반복해 독서했다는 것을 기억하자.    차별없이, 진

득하게,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서를 즐기는 것을 중요하게!  이처럼 저자의 독서는 느릿느

릿 천천히 공든탑을 쌓아 올리는 독서이다.


독서를 할 시간이 없다고 한탄하지 말고 우선 책을 접하는 습관부터 들이자, 버스&지하철 같

은 대중교통에서 20~30페이지 정도 읽어 내려가려 노력해보자, 한번에 읽기보다는 조금씩, 교

양.베스트셀러,자기계발서 같은 교과서 같은 독서보다는 우선 손에 잡히는 재미있는 독서를

하자, 잡지든 만화든 상관없다.  마치 게임을 하듯 책을 가지고 놀아 보도록 하자, 그러면 자연

스레 읽는 노하우를 기를 수 있다.  그리고 그 노하우는 점점 나 자신을 읽는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든든한 아군이 되어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한민국은 순시리공화국이다 - 잃어버린 세월에 대한 의혹, 혹은 진실, 황당하고도 미스터리한 시간의 곤두박질에 대한 엽기적 고찰!
박그네 지음 / 서교출판사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16 병신년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 최순실게이트 만큼 기가막힌 사건이 또

있을까?  국민의 주권을 지키고,절대적 다수를 대표하여 국정을 맡아 이끌어야 할 대통령이 개

인적인 친분을 구실삼아, 위임받은 권한을 마음대로 부여하고 또 방임하기에 이른다.   물론 아

직까지 이 사건은 조사중이고, 또 사법에 의하여 그 죄가 선고되지 않았기에, 대통령을 포함

한 당사자의 죄가 어디부터 또 어디까지인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할 일이지만, 그래도 국민들은

지금까지 밝혀진 일 만으로도 대통령 박근혜의 퇴진을 요구하고 또 그에 걸맞는 책임을 지라

요구한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으라"  그 당연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밝혀지는 촛불

의 행렬... 물론 나 또한 그러한 행렬에 동참했고, 또 열혈히 부르짖었던 정의가 바로서기를 바

라지만, 불행하게도 지금 이 대한민국의 저울은 아직도 권력자와 그 추종자들에게 기울어진 그

대로인 것 같아 허탈하기만 하다.


그러나 거리에 촛불이 타오른 이후, 분명히 변화한 것도 있다.  일부 언론을 비롯하여 많은 예

능 지식인들이 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요구함은 물론, 한때 지도자를 모셨던 일부 직원들과 

관계자들의 양심선언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 뿐인가?  이 웃지못할 사실을 꼬집는 수 많은 정

보들이 현대의 통신망을 통해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또 그것을 각색한 수많은 풍자가 등장해

현실에 실망하고 지친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웃을 수 있게 한다. 


순식간에 국민들의 조롱거리가 된 대통령과 그 측근들... 과거에는 감히 생각치 못했던 그 조롱

이 오늘날에 널리 퍼져 나가는 것은 마땅히 잘못을 저지른 권력자 그들이 감당해야 할 것

이다.   실제로 권력을 등에 업은 안하무인을 존경 할 인간이 이 세상 어디에 존재할까?  이처

럼 순실이 시리즈와 같은 매체가 등장하고, 대통령을 닭대가리 최순실을 순시리로 부르며 조롱

하는 것은 어느덧 이 나라의 하나의 문화가 되어간다.   허나 이를 무례하라 하지 말라!  이 또

한 한 시대의 모습이 아니던가?   '근혜를 만 보내고픈 티즌들의 연대.      이러한 네티

즌 연대가 결성되고, 또 이러한 유머집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이 나라의 권력,국가의 품격

을 회손하기 위한 반국가적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보다 건강한 권력이 사람들을 보듬고, 또

국민을 위한 정부가 대한민국에 만들어지기를 소망하는 민초들의 또 다른 형태의 요구라 보아

줄 수는 없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랑스 유언
안드레이 마킨 지음, 이재형 옮김 / 무소의뿔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래 자전적 소설은 그 내용을 파악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저자의 체험과 공상의 소설

적 내용의 경계, 그리고 은유적이고 추상적으로 표현된 그 많은 단어 앞에서, 독자들은 자칫하

면 그 소설속의 미궁에서 헤매이는 작디작은 미아가 되어버린다. 실제로 나는 이 '프랑스의

유언'에서 미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굳이 내용을 따지자면 그리 어렵지는 않다.   저자 스

스로의 등장과 함께, 그가 살며 품어온 환상이 자라고, 시들고, 이윽고 현실로 다가오게 되지

만 결국 그것은 바라는 만큼의 것이 아니였다는 내용...  허나 문제는 그 환상의 아틀란티스를

품으며 살아가게 한 원인에 대한 저자의 추상적이고, 서사적인 표현이 복잡하고 어렵다는 것

이다.   그가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망명을 한 이유가 된 '조모'의 위치는 그야말로 줄이거나, 단

순화 시키기에는 그녀의 인생이 무척이나 파란장만했나보다.  


저자는 소설에서 러시아인으로 태어난 하나의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태어나고 자라면서,보다 넓은 사고를 펼치는 인물로 표현되는데, 이에 그가 그러한 공상

의 소년이 된 것은 패쇄적이고 강압적이였던 그 소비에트 연방의 세계에서, 유독 할머니의 출

생이 빛났기 때문이였다.    조모는 프랑스인이다.  제정러시아시절 러시아로 넘어와 혁명시

절러시아의 청년과 가족을 꾸렸고, 독.소전쟁을 거치며 고생을 했을 뿐 만이 아니라, 소비에트

공산정권의 노골적인 감시아래 꿋꿋이 자신을 지킨 강인한? 인물이다.  


이에 생각하면 주인공 소년은 혼혈아다.  그리고 자유와,혁명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두개

의 사상과 이념을 저울질 할 수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기도 하다.    물론 조모가 노골적으로 그

에게 사상을 가르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위대한지도자 '스탈린'을 시작으로 희생

하고 지배받는데 익숙한 소년에게 조모의 '프랑스'는 보다 이질적이지만 한편으론 매력적

인환상의 나라였을 것이 분명하다.


철의 장막이 드리워진 세상속에서, 저자는 한때 그가 떠올렸던 프랑스를 아틀란티스라 표현

했다.   그리고 그것은 이는 한국의 어느 가수가 불렀던 가사 그대로 '저 먼 바다 끝에 뭐가있

을까?' 정도의 불분명한 것이기도 하였다.   때문에 소년은 점차나이를 먹으면서 아틀란티스를

잊는다. 


언젠가 한 아이가 이곳에 서서 저 안개 자욱한 지평선 위에 전설의 도시가 서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지... 이제 그 아이는 없다.  나는 치유된 것이다.  242P


이처럼 공상의 나라의 소년은 '러시아인'이 되어가고, 조모의 세계는 시간과 역사의 흐름에 휩

쓸려 점점 그 색체를 잃어간다.   그리고 결국 시간이 더 흘러 어른이 된 주인공 앞에 드러난 것

은 아틀란티스가 아니라, '러시아'와 '프랑스'라는 생소하고도 낮선 존재다.   조모의 세계의 영

향을 받아 소년 스스로가 만들었던 환상의 국가가 아닌, 저자가 떠난 러시아와, 자신을 망

명자이자 낯선이로 마주하는 프랑스... 결국 죽어버리고 말았는가?  조모의 그리고 자신의 프랑

스는 죽어버리고 말았는가?   그러나 이제 저자는 그것을 표현해 죽음이라 표현하지 않고, 유언

이라 했다.  유언 그것은 죽어 무엇을 남긴다는 의미.  과연 저자에게 남아있는 유언은 어떠한

것일까, 그리고 그것이 이 책이 말한 영원성을 간직하는 최고의 방법이였는가.  이에 나는 (저

자가 주장한) 그 영원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말 그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말

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들은 나의 증오를 갖지 못할 것이다
앙투안 레이리스 지음, 양영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일어난 동시다발적 테러는 프랑스 뿐 만이 아니라, 세계 많은 사람들

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자유의 나라, 이민자에게 관대한 평등의 나라, 수준높은 계몽주의로

유명한 그 나라가 어떻게 테러의 목표가 되었는가?    이에 이러한 의문은 지금껏 알고 있었던

많은 상식을 파괴하고, 또한 어느 교훈을 가져다 주게된다.    '오늘날의 테러는 목적을 위해선

수단 윤리의식 조차도 쉽게 저버릴 수 있다 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러나 이미 오늘날의 군사

학자들에 주장에 의해 드러난 '전쟁'의 본질(수단)은 기존과는 다른 양상을 띈다.   지식인들은

선진국의 드론폭격, 테러국의 무차별 테러 모두 비윤리적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러나 적어

도 이 책의 저자에게 있어서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그는 군인이 아닌 일반인에

불과하며, 평화로운 도시에서 사랑하는 아내, 아이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 모두 전쟁과 파괴라는 단어와는 동 떨어진 생활을 만찍해 왔다.


그러나 불행은 갑작스럽게 찿아온다.   어느날 갑자기 테러라는 생소한 행위에 의하여 희생된

아내. 아이러니 하게도 '그 유례없는 사건에 희생되어 주변의 비할 바 없는 위로, 동정, 지원 등

을 받게되었지만, 이 책에 드러난 저자의 심경을 해아리면 그것은 '고맙기는 하지만 전혀 위

로가 되어주지 못하는' '확실하게 말해 귀찮은' 것으로 해석된다. 


솔직히 저자의 입장이 되면 '나'는 어떻게 될까?   젊은날에 아내를 잃어버리고, 아기와 함께 홀

로남게 된 '나'   아내를 살해한 범인들은 바다 건너 머나먼 곳에서 '내가했다' 으스대고, 반대

로 살인범들에 대한 처벌 (정의구현)은 기대와는 달리 더디고 또 불가능 할 것만 같이 느껴

진다...  만약 그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그 현실에 무너질 것이다.  분노하

고 자포자기 하며, 언제나 모든것을 원망하는 삶을 살 것만 같다.    그러나 저자는 그렇지 않

았다.   물론 그조자 모든것을 털고 새삶을 살겠다거나, 극복하겠다 라는 희망적인 이야기는 하

지 않는다.    그는 분노를 표출한다.  "네놈들이 원하는 그러한 삶은 살지않겠다" "너희들의 뜻

대론 되지 않겠다" 라는 일념으로 슬픔을 끌어안은 홀아비는 아이와 함께 미래를 살아간다.  


분명 이 책의 가치는 용서와는 다르다.   그는 성자가 아니며, 책 그 어느 부분에도 테러를 일으

킨 그들에 대한 용서의 글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책에서 희망을 엿본다.  무

엇이 이 책을 아름답게 하는가?  그것은 바로 저자 스스로가 선택한  '미래의 삶' 에 대한 그 분

명한 의지가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피해자들이 극복하기를 바란다.   슬픔도 추모

도 좋지만, 그들이 포기를 하거나, 분노에 사로잡혀 언제까지나 멈추어 있는 것을 원하지는 않

는다.   때문에 저자의 용기, 분노의 방출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바람직하게 느껴지지 않았

을까?   저자에겐 아직 아이에게 사랑을 배풀어야 할 아빠. 라는 선택지가 남아있기도 하고 말

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